[列國誌]
3부 일통 천하 (56)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7장 방연, 마릉(馬陵)에 지다 (3)
방연(龐涓)은 계릉 전투에서 제나라 장수 전기에게 크게 패한 후 도읍인 안읍(安邑)으로 쫓기듯 돌아갔다.
위혜왕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위혜왕(魏惠王)은 그간의 방연의 공을 참작하여 그를 문책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방연(龐涓)은 이를 갈며 손빈에 대해 복수할 날만 기다렸다.
한편, 계릉 전투에서 위나라 명장 방연의 군대를 크게 격파한 전기(田忌)와 손빈(孫賓)은 제나라에서 인기가 높아졌다.
거리의 사람들은 날마다 전기와 손빈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명성과 인기가 높으면 그를 시샘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전기와 손빈에게도 그러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름아닌 재상 추기(騶忌)였다.
전기(田忌)는 장군으로서 제위왕의 신임이 두터웠다.
게다가 계릉 전투 이후 백성들간에 인기도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다음 재상은 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추기(騶忌)에게 불안감을 주었던 것이다.
'혹 나의 자리를 전기(田忌)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초조해했다.
추기의 문객 중에 공손열(公孫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공손열은 추기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그의 마음을 짐작했다.
어느 날, 그는 추기(騶忌)가 혼자 앉아 있는 틈을 이용해 말했다.
"임치성 거리에는 점복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상께서는 재상의 앞날에 대해 점을 쳐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추기(騶忌)는 공손열의 말투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뜻으로 점치는 얘기를 하는 것인가?“
"전기(田忌) 장군도 점치는 일을 좋아한다고 하더이다."
추기는 은어(隱語)를 즐기는 사람답게 공손열의 말뜻을 금방 알아챘다.
"좀더 상세히 말해보게.“
"제게 황금 2백 냥을 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점복가에게로 가 이러이러하게 해보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어찌 재상의 앞날이 탄탄하지 않겠습니까?“
추기(騶忌)는 공손열의 귓속말을 듣고 나서 무릎을 쳤다.
"묘책이다."
며칠 후였다.
공손열(公孫閱)은 추기로부터 황금 2백 냥을 받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일반 백성의 복장을 하고 점복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한 무당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전기(田忌) 장군의 문객이다. 장군을 위해 점을 쳐보고 싶으니 그대는 점을 한 번 쳐보아라.“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인지를 말씀해 주셔야 정확한 점괘가 나옵니다."
점복가의 말에 공손열(公孫閱)은 별안간 목소리를 낮췄다.
"알다시피 우리 장군은 전씨의 직계 자손이시다.
지금 장군께서는 제(齊)나라 병권을 장악하시어 그 명성과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계시다.
우리 장군은 큰 뜻을 품으시고 장차 제(齊)나라를 다스리실 생각이신데, 그것이 성공할지의 여부를 궁금해 하신다.
그대는 이에 대한 길흉(吉凶)을 점쳐 보아라."
점복가는 기겁했다.
자신도 모르게 좌우를 살피며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소인은 그런 점은 칠 수 없습니다. 공연히 저까지 죽이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가보십시오.“
"그대는 내가 다른 곳으로 가 또 점을 부탁할 줄로 아는가?“
이렇게 말하며 공손열(公孫閱)은 손을 허리에 찬 칼로 가져갔다.
점복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알겠습니다. 점을 쳐드리겠습니다.“
시초(蓍草) 점을 쳤다.
점괘는 '길(吉)'이었다.
공손열(公孫閱)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황금 2백 냥을 점복가에게 건네주고 그곳을 나왔다.
그로부터 한 시각 후, 한 떼의 군사들이 그 점복가의 집에 들이닥쳤다.
군사들은 다짜고짜 점복가를 잡아채 재상 추기의 부중(府中)으로 끌고 갔다.
추기(騶忌)가 대청 높은 곳에 앉아 잡혀온 점복가를 향해 호령했다.
"네 이놈,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전기(田忌)의 문객이 찾아와 무슨 말을 하였느냐?
네게 점을 치러 갔던 자가 이미 잡혀 와 있으니 속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점복가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공손열과 주고 받은 말을 이실직고했다.
추기(騶忌)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너는 방금 전의 그 말을 왕 앞에서도 할 수 있느냐?“
"소인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추기는 점복가를 끌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추기의 보고와 점복가의 증언을 들은 제위왕(齊威王)은 크게 놀라긴 하였으나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어찌 전기(田忌)가 나를 배신할 리 있겠는가?“
그러고는 전기를 모함했다 하여 그 점복가를 참수형에 처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전기(田忌)는 제위왕의 자신에 대한 신임에 크게 감복했다.
이로써 추기의 음모는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하다.
이 일이 있은 후 제위왕(齊威王)의 마음은 늘 편치 못했다.
전기만 보면 점복가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느덧 제위왕(齊威王)에게는 전기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전기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전기(田忌)가 이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는 제위왕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음을 알고 흔연히 붓을 들었다.
신은 병으로 더 이상 군대 일을 돌볼 수 없습니다.
벼슬을 내놓고 조용한 곳으로 가 신병을 치료하고자 합니다.
전기(田忌)는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손빈도 군사(軍師) 직위를 내려놓고 전기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다.
이에 비로소 제위왕(齊威王)은 전기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 손빈(孫賓)이 쫓겨났다고?
세작을 풀어 제나라 동태를 살피고 있던 방연(龐涓)은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연 활기가 돌았다.
- 내 이제 무엇을 두려워하랴. 바야흐로 우리 위(魏)나라가 천하를 뒤흔들 수 있게 되었도다.
이때부터 위혜왕(魏惠王)은 다시 방연을 앞세워 천하 패업을 향한 야욕에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전에 한나라는 한애후(韓哀侯) 때 정나라를 쳐 멸망시킨 바 있었다.
이로써 서주의 주선왕(周宣王) 때에 건국된 정나라는 한때 패자를 꿈꿀 만큼 강성해졌으나
이후 급격히 쇠약해져 전국시대에 이르러 끝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정나라를 점령한 한(韓)나라는 그 후 북쪽 영토를 버리고 도읍을 남정(南鄭)으로 옮겼다.
남정은 곧 정나라 옛 수도인 신정(新鄭)이다.
이같은 천도(遷都)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영토 확장책의 일환이었다.
정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전국 칠웅의 반열에 올라선 한(韓)나라는 한소후(韓昭侯) 대에 이르면서 본격적으로 천하 패업의 다툼에 끼여들게 되었다.
영토가 인접해 있는 위(魏)나라와 한(韓)나라는 자주 충돌했다.
매해 싸움을 거듭했다.
때로는 한나라가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위나라가 승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위나라가 한나라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병법가 방연(龐涓)의 활약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방연의 전성시대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