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9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 한서노회
성전과 왕궁이 완공한 다음 하나님께 헌당을 하기전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여 복을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성전을 헌당하였다.
그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번째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네가 하는 기도를 다 들었다.성전을 구별되이 받겠다.내가 준 계명대로 살아라.그러면 복으로 채워주리라.만약 그렇지 않으면 너희 백성은 비웃음거리가 되리라]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느낌이 왔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을 수 있다.
[당신 나를 더 사랑하는 거지]
질투가 담긴 질문이지만 밉지 않은 질투이다.
하나님은 개개인의 성도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계신다.
[나 만을 사랑하라. 그렇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치하게 질투는 무슨 질투?]
그러나 성경이 밝히기를 하나님은 질투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서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
제가 유추 해석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밝혀 주시기를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셨다.
이 질투로 인한 심판도 기록된 부분이 있습니다.
스바냐 3장 8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선지자 스바냐의 시대,즉 므낫세,아몬이 실정한 반세기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이교도들의 풍습을 따르는 것이 당연시 되다 싶이 되었다.
이러한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질투의 경고를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질투의 결과로 바베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당하였다.
한낱 여성의 질투로 인하여 살인도 벌어 지는 사건들을 만날 수가 있다.
하물며 당신이 택한 백성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을 때 그 분의 질투를 인간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솔로몬 그의 출생의 비밀은 사생아 이다.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으로 인하여 얻은 아들이다.
다윗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 않기 원하는 뜻에서 솔로몬이라 지었다.
곧 솔로몬의 치세 기간동안에는 평안할 것을 기원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제 3대 왕으로 즉위할 때 그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로몬의 등극의 나이를 실제보다 아주 어리게 보고있다.
그것은 마치 유년주일학생 때 듣거나 들려 주었던 이야기와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솔로몬은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그가 처음 왕으로 즉위하고 처음으로 드린 제사후 꿈에 하나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구하기를 지혜를 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부귀까지 주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다.
불륜의 아들이요 사생아인 그에게 왕권을 주셨으며, 또한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까지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그렇게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여 주셨다.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에베소서 2:3 [전에도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라]과거의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다.
그러나 요한복음 1:12에서 우리의 신분의 변화가 있음을 알려 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어찌 우리가 받은 사랑이 솔로몬이 받았던 그 사랑에 비교할 수 없으랴!
오히려 우린 더 값진 사랑을 입었다.
독생자의 피흘림을 통한 구속의 사랑이기에....
다시 솔로몬의 삶으로 돌아 갑시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이룩하려던 사업들을 계승하여 민족을 통일 시켰다.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까지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혔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쌓기 시작하였다.
이웃국가와의 교역을 통하여 나라는 점점 부국이 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던 그 마음이 한편으로 치우치는 듯한 인상을 여기서 받게된다.
강대함과 부국이라는 입지에 서서 하나님을 사랑하던 그 마음이 살며시 감추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왕궁에 이방신을 섬기는 신당이 만들어졌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었다.
아니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배반한 것이다.
백성을 잘 치리하기 위해 지혜를 구하던 솔로몬이 이제는 오히려 그 백성을 쥐어짜는 악한임금으로 백성들에게 비쳐진 것이다.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에 백성들은 지치게 되었다.
자신의 왕궁의 호화로움과 사치가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솔로몬의 모습은 변한 것이다.
하나도 사랑을 받을 수 없는 타락한 모습이 나타났다.
하나님은 두번째 그에게 나타났을 때 분명한 기대치를 주었다.
[네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변국가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할 때에만 하여도 그는 백성을 사랑하였다.
물론 하나님도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매 변절되었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며...]라는 조건을 걸으셨던 그 질투의 결과 그 백성은 갈라져 두개의 분열 왕국이 생겼다.
그리고 그 두개의 왕국 또한 주변 국가로부터 점령당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고린도전서 16:22절에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으며, 또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네게 합당치 않으시다]고 하셨다.
그리고 베드로를 향하여 세번이나 사랑을 확인해 보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고 그의 사랑을 시험해 보았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드리고 있는가?
우리에게 첫째되는 계명을 주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여기서 [마음(heart),목숨(soul),뜻(mind)]은 서로 중복되는 개념들이다.
곧 전 인격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까지도 드려야함을 뜻한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시간과 또한 자신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사랑의 농도가 변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주님을 제일 사랑하여야합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