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노티드는 왜 도넛을 선택했을까?
압구정 로데오 주변의 유명한 패션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던 지인의 한마디가 큰 상처가 된 적이 있었다.
뜬금없이 그 친구가 "오빠! 노티드 정말 좋아. 6시 이후 가면 미팅하기에 너무 조용하고 쾌적한데 심지어 디저트에 음료도 맛있어서 나 엄청 자주 가!"라고 말을 건넨 것이다.
그녀의 말이 상처였던 건 당시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리틀넥은 뾰족한 메뉴, 메뉴의 특성을 극대화한 맛, 그 이상의 서비스가 3박자를 맞추며 조금의 홍보에도 파급효과가 매우 크게 돌아왔다.
그런데 노티드는 이런 게 없었던 시점이었다.
쁘띠케이크들이 주력으로 있었지만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는 케이크였으며 심지어 사이즈 대비 비싸게 인식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도산공원 앞은 밤이 되면 다른 골목에 비해 유독 어두웠고 사람의 발길이 금방 끊긴다.
조용한 매장에서 미팅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긴 하다.
아마도 그 친구는 놀리려는 의미보다 정말 노티드를 칭찬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속은 몰랐으니 그러지 않았을까?
난 미팅하기 좋은 카페로 노티드가 꼽히는 게 싫었고 당시에는 같이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씁쓸함이 남았다.
그렇다고 장사가 안된 건 아니었다.
매번 피크 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지만 영업이 종료되고 나면 매출은 기대보다 형편없었다.
아니 솔직히 적지 않은 매출이었지만 도산공원 앞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디저트나 음료가 별로였는가?
내 기준에는 그렇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고 음식을 즐기기 위해 오는 카페라는 인식보다는 티타임을 하고 대화를 하기 위해 오는 카페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당시 지금처럼 카페를 줄 서서 기다리는 분위기는 거의 없었으며 음식점들 앞에 줄은 서도 카페는 적당한 곳에 가서 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대체제가 많은 장소였다.
음식점에서 줄을 서서 먹고 난 뒤 카페까지 줄 서서 기다리고 싶은 고객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고객의 손에 뭐라도 쥐어서 보낼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은 되지 않고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한 전략은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지하나 2~3층으로 매장을 옮기는 것이었다.
압구정 로데오 안에 있는 다양한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퀴퀴한 지하의 몸이 안 좋을 것 같은 공기를 마시며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런 공간들에서 노티드가 연상되거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싹트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미팅 때문에 노티드 매장 테이블에서 대표와 앉아 이야기를 하는 중에 여러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몇 팀 본 적이 있었다.
첫 번째로 우린 우리가 여기서 미팅을 안 했으면 저들이 앉아 매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로는 저렇게 돌아다니는 손님들은 어떻게 하면 기다리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대표 입에서 돌아가더라도 뭐라도 쥐어서 보냈으면 좋겠단 말이 나왔다!
맞다!
아니 꼭 매장에서 먹어야 하나?
뭐라도 구매해서 들고 가면 그 또한 매출이 아니던가?
고객들은 우리 매장을 대화하기 좋은 쾌적한 카페 정도로 여겼고 그것을 벗어나야겠다며 고민했었는데 왜 우린 진작 이 생각을 못 했던가!!
먹다 남든 아니면 맛있어서 집에 갈 때 하나 더 포장하든, 테이크아웃을 서비스가 아닌 목적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 고민에서 노티드의 테이크아웃 메뉴 개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유명하다는 테이크아웃 메뉴들을 찾아 연희동에 먹으러도 가보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그리고 양갱도 만들어보고 츄러스도 만들어보고 별별 것들을 만들고 기획하며 어떤 메뉴가 노티드의 차세대 무기로 떠오를지 고민했다.
그러다 도달한 도착지가 바로 도넛이다.
다운타우너는 미국식 햄버거를 판매하고 리틀넥은 미국식 백반(가정식)을 표방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미국식'이 아닐까?
그럼 가장 미국스러운 디저트는 무엇일까?
베이글? 도넛?
여러가지를 고민하던 중 먹고 바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단맛이 강조된 도넛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도넛을 테스팅하기 시작했다.
처음 대표와 난 길티한 스타일에 글라이즈 도넛이나 엄청 단 도넛을 상상했다.
그러나 당시 노티드 총괄 셰프의 손에서는 그런 도넛이 나오지 않았고 생각보다 아담하고 생각보다 덜 단 도넛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처음에는 개발에서 서로 의견 충돌이 많았다.
나와 대표는 더 달고 크고 죄스러울 정도의 미국적인 도넛을 개발해달라고 말했고 셰프는 한치의 물러섬 없이 지금의 것이 사람들이 더 좋아할 스타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계속 먹다 보니 셰프의 말이 조금씩 설득력 있게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던킨이나 크리스피 도넛을 하나도 못 먹던 내가 노티드 도넛은 2개까지 먹을 수가 있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적당한 사이즈와 적당한 단맛 덕분에 생각보다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조금은 양보해 셰프의 도넛을 차용하고 우리 스타일의 크림들을 개발할 것을 요청해 가짓수를 늘려놓고 보니 하나하나 맛있고 적당히 작아 하나만이 아닌 여러 개를 먹을 수 있는 도넛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담을 박스를 제작해 하게 되었다.
당시 대표의 아내가 육아를 하며 집에서 디자인했다.
첫째,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노란색을 바탕으로 매장이 힘들어 우울하던 우리와 이걸 먹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는 모두의 마음을 담아 행복을 담은 박스를 주제로 디자인했다.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중 웃는 얼굴에 입가의 크림을 혀로 핥아 먹는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이것을 대단한 로고화하려 만든 게 아니었다.
박스에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안한 이미지인데 훗날 노티드의 시그니처 로고인 스마일로고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신감을 넘어 확신으로 가는 길
이제 슬슬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쯤 대표 가족의 미국 출장이 잡혔다.
사실 가족여행에 가까웠지만 목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경쟁 브랜드와의 맛 비교였다.
하와이에 레오나즈 도넛이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워낙 유명했다.
미국에 다양한 도넛 브랜드들이 있었고 만약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글라이즈 도넛이 나왔다면 시장 조사로 다른 브랜드에 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셰프가 만든 도넛은 크림이 들어간 형태의 볼 도넛이었으며 그와 비교해볼 만한 대상이 당시 하와이에 레오나즈 도넛 말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고 하와이로 떠날 여행 계획도 있으니 '간 김에 비교나 해보자'였다.
그렇게 대표는 미국으로 떠났고 며칠 뒤 밤늦게 카카오톡 보이스톡이 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순간
"준아! 됐어! 우리가 더 맛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 하는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왜 우리가 더 맛있는지에 대해 바로 나왔을 때의 맛과 몇 시간 두고 먹었을 때의 맛 그리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차이까지 말했다.
무수한 근거들을 만들어내며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그다음 주 바로 '노티드 도넛'이 드디어 런칭을 하였다.
미국에서 먹고 와 그때부터 만들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이미 박스는 제작업체에 넘겨 제작 중이었으며 사실상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맞는 방향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안도를 넘어 확신으로 다가왔고 우린 자신감을 갖고 드디어 출시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 노티드 도넛은 8개 정도의 맛과 6개가 들어가는 하나의 박스로 출시를 하였고 당연히 처음부터 인기가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나의 몫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었다.
메세지를 담았고 셰프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으며 직접 미국까지 가 검증을 하였다.
이제 홍보 말고는 다른 전략도 없다.
그렇게 행복을 담은 노티드 박스와 도넛이 등장하였고 난 그 행복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저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입니다 중에서
허준 지음
첫댓글 ㅋㅋ 노티드 도넛에 흠뻑 빠져 밤11시에 쿠팡 주문 새벽 배송 기다리며~~이일을 어찌할까요
브랜딩을 배우시는건데,
노티드 도넛이 부각됐군요.
다이어트에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당이 당길땐 도넛은 행복이죠
@재미(8기 백경미) 우리 같이 나누어 먹어요~ㅎㅎ
@6기 김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