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3(일)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담배 이름 MARLBORO 의 이야기
사진작가 박원식(강릉중앙고 44회 동기생) 친우가 촬영하여 카카오로 보내준 사진입니다.
지금의 MIT공대 전신인 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는데,
지방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답니다.
여자측 집안에선 둘 사이를 반대해서 여자를 멀리 친척 집에 보내 버렸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위해 몇 날 며칠을 헤매 다녔습니다.
그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를 만났습니다. 둘은 집앞에서 반갑게 해후를 했습니다.
여자가 말 합니다.
"나 내일 결혼해"
남자는 말없이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줄래?" 라고 말을 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 당시 담배는 지금처럼 필터가 있는 담배가 아니었답니다.
잎 담배였습니다.
몇 모금 피면 금새 다 타들어가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둘은 그걸로 끝이었죠.
그 남자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친구랑 동업을 해서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만들기 시작했습 니다.
그리구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남자는 그 여자 소식을 들었는데... 여자는 남편도 죽고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 외로이 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남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
하얀 벤츠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여자는 망설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는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다음 날 남자가 그녀를 찾아 갔을 때 발견한 건
목을 매단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싸늘한 시신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남자는 자기가 만드는 담배에 Marlboro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Man
● Always
● Remember
● Love
● Because
● Of
● Romance
● Over의 약자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
♡ ~오늘도 멋진 날들 되소서~ ♡
Marlboro
담배의 브랜드. 알트리아 그룹(Altria Group, Inc.)이 소유하고 있으며, 말보로 브랜드는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둔 계열사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 Inc.)에 속해 있다.
1847년에 영국인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가 런던의 '본드 스트릿'에 상점을 열고 담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1854년 이후에 담배를 직접 제조해서 '필립모리스' '케임브리지' '더비' '말보로우' 등의 이름으로 판매했다. 필립의 사망 후 사업을 물려받은 필립의 형제 '레오폴드 모리스'는 1861년에 '조세프 그룬바움'과 같이 '필립모리스 & 컴퍼니 앤드 그룬바움(Philip Morris & Company and Grunebaum, Ltd.)'을 설립했다. 1885년에 그룬바움이 물러나고 회사명을 '필립모리스 & 컴퍼니(Phlip Morris & Co, Ltd)'로 변경했다. 1894년에 '윌리엄 커티스 톰슨'이 회사를 인수했다. 1902년에 미국 뉴욕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1919년에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에 '필립모리스 & 컴퍼니(Philip Morris & Co, Ltd.)'를 설립했다. 1924년에 기존의 '말보로우(Marlborough)'를 '말보로(Marlboro)'로 이름을 바꾸어 새롭게 출시했다. 브랜드의 이름은 런던 공장이 있던 지명 '그레이트 말보로우 스트릿(Great Marlborough Street)'에서 따왔다. 말보로는 여성 흡연자들을 겨냥한 전략으로 '5월처럼 부드러운(Mild As Ma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54년에 시카고 광고 대행사의 '레오 버넷(Leo Burnett)'이 브랜드의 심볼로 '말보로 카우보이'를 만들어 광고를 시작하자 매출액은 놀라울 정도로 급상승했고, 미국 담배시장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던 '카멜' '러키스트라이크' '체스터필드'의 막강한 라이벌로 등장하게 되었다. 1955년에 말보로는 필터 담배를 출시했다.
1972년에 출시된 '말보로 라이트'는 전 세계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 미국 내에서 입지를 굳힌 회사는 1954년에 호주에 지사를 설립했다. 1955년에는 해외 사업부 '필립모리스 오버시즈(Philip Morris Overseas)'를 설립했으며, 이는 1961년에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로 변경되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 (주요한 4가지 일을 마무리)
어제는 아침 9시. 우리 성당 아침회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처음 회의를 시작했는데, 아침 8시부터 사무장에게 그리고 사목회 총무에게 '오늘 직원회의가 있느냐?'라고 수차례 문의 했으나 응답이 없어서 오늘은 쉬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쁠사 사무장으로부터 8시 40분에야 회의가 있다는 연락이왔습니다. 하여 집에서 승용차를 몰고 악세리다를 쎄리 밟았으나, 용산에 결국 9시 20분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老신부님께서는 회의를 주관하고 계셨는데 '왜 늦었느냐?는 말씀에 쉽게 답변을 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재차 질문에 "제가 늦잠 좀 잤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 180주기 행사준비에 대한 중요한 직원회의였기에 어떤 이유든 늦은 것은 나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흑~흑~흑~
회의를 마치곤 곧 바로 여주로 향했습니다. 여주 농장에 거주하시는 장사장 내외가 어렵게 그곳에 농가주택을 짓고 있기에 서류를 갖자 주어야만 했습니다. 아침 11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1시 30분에 여주에 도착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객들이 많은 탓으로 고속도로가 엄청 밀렸습니다. 오후 2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는데 엄청 밀리는 차량으로 인하여 오후 6시에 용산에 도착했고, 홍성에서 올라와 기다리고 있는 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형제들과 코가 삐뚜러질 정도로 酒님을 모셨습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사목회 호총무까지 호출하였는데 기꺼이 참석해 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호총무와 함께 차기 해야할 주요한 행사에 대한 마무리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어떻든 결국 토요일 밤에도 승용차를 용산에 세워두고 1711 호 마지막 버스로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에서 여의도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들녀석을 극적으로 만났지요. 아~! 2015. 9. 12(토)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든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