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가요의 맛에 젖어 본 적 있는가. 걷잡을 수 없이 축축 처지는 기분을 돋우기에는 아무렴 노래가 낮지. 그것도 클래식보다는 대중가요가 제격이더라고, 한번 들어 보려나. 가뿐한 리듬에 까딱까딱 발장단과 어깨까지 들썩이며 따라가다 보면 기분 전환에 효과 만점일걸. 마음의 처방전으로 노래만 한 것도 없거든.
빠른 템포의 곡이 신나게 흐르고 있어, 빵빵한 반주에 술술 넘어가는 멜로디, 여자 가수의 현란한 율동과 몸매를 살려 주는 타이트한 드레스가 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트롯 특유의 맛을 제대로 담아 잘도 꺾어 넘기는 중견 가수의 테크닉 곁들인 가창력은 압도적이야. 직설적이다 못해 통속적인 가사도 썩 마음에 들어. 노랫말을 입력할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가는 경쾌한 박자가 안타까울 정도야. 이쪽저쪽 돌리던 TV 채널을 딱 고정하고 말았어. 꿀꿀한 기분도 저만치 날아가고 있군. 세상사 무어 그렇게 애타고 슬퍼할 필요 있겠냐고. 다 그런 거고 뭐 그런 거지.
가요가 때로 마음속을 파고드는 연유를 알겠어. 쉽게 감아 도는 흥겨운 멜로디뿐 아니라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가사가 한몫을, 하는 게지. 한 구절 한고비 꺾어 넘는 노랫말이 우리들 세상살이거든. 삶이란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고상하거나 우아한 쪽이 아니라 질퍽하고 아릿하고 지극히 통속적이라서 말이야.
가요 속엔 사랑과 이별과 눈물도 있지만, 시대상과 사회상도 담겨있지.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나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면 지난 세상을 모르고 살던 사변 후, 세대들도 동족 간 전쟁의 아픔과 파란만장한 피란살이와 실향민들의 애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 부산 영도다리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도, 노래 덕분 아닐까. 그뿐인가. 우리나라 여성들이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었을 땐 ‘빨간 구두 아가씨’로, 서양 춤이 들어왔을 당시엔 ‘댄서의 순정’으로 그 시절 사회상을 담아, 내었어. 가요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지.
화면 속 가수가 그녀의 끼를 한껏 발하며 불러 젖히는 트롯이 새롭게 당기네. 일절이 끝난 막간에도 아슴아슴 기억나는 가사가 절로 흥얼거려질 만큼, “인생의 페이지를 열어 보니 그 제목이 ‘시련’이라~♪ 타이틀을 바꾸어 봐~♪ 세상에 시련이라는 말을 지우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어~♪” 여기서 한 소절이 팍 내게 꽂혔어.
“타이틀을 바꾸어 봐.”
이건 요즘 나에게 둘도 없는 명제인 양 엎치락뒤치락, 늘였다 줄였다 하는 고민 줄 아니겠어. 타이틀이란 어떤 일에서건 그 안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주제이자 구심점이기도 하니까. 몇 마디 말이 본질을 겨냥한다고 할까. 최소한의 언어로 전체를 아우르며 사람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이니 어찌 소흘히 여길 수 있겠냐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 첫 자리에 제목을 정중히 모셔 앉히는 것도 그래서이지. 어느 수필가는 자신의 수필집 타이틀을 처음엔 ‘제목 없음’으로 하였다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걱정이, 압박이 되어 결국 제목을 정하여 앞세웠다고 했어. 글 제목이든 책 제목이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타이틀의 위력은 누구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지. 어떨 땐 글 제목 하나를 얻은 것만으로도 내용의 절반은 쓴 것처럼 느껴져. 그러기에 똑 부러지는 글제 하나 낚기 위해 날밤을 새우거나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는 건 마땅하고도 당연한 일 아니겠어.
인생의 페이지에도 타이틀은 필요하다고 여겨져. 타이틀이 있는 편과 없는 쪽을 생각해 보라고, 삶의 느낌도 다르지만, 결과까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거든.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관광객’은 아마추어이고, ‘여행가’는 프로라 했어. 주어진 타이틀은 그 사람을 말해 주는 대명사이면서 삶이 되어 주기도 하는가 봐. 타이틀이 불러일으키는 상상, 구상, 열정, 마음 다짐으로도 삶이 새로워지지 않을까.
무대가 다시 들썩이고 있네. ‘가수’라는 타이틀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휘감은 그녀의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 감정을 살린 간절한 표정과 몸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목의 힘줄까지 부풀게 하는 열창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지. 어떤 일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워. 그녀가 자꾸 타이틀을 바꾸어 보라고 부추기는군. 인생의 페이지를 열어 보니 그 제목이 ‘시련’이더라고, 세상에 시련이라는 말을 지워 보라고, 그러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나. 그럴듯한가?
그녀를 보면 가수라는 타이틀이 부러울 때가 많아. 좋아하는 일도 밥줄이 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은 잠시 접어 두어야 할까 봐. 곡에 맞춰 작사를, 했거나 가사에 맞춰 작곡했을 노래이건만, 그녀에게 와서는 절절한 자신의 사연이고 마음이 되어 살아야지. 저처럼 신바람 나게 일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겠냐고. 그녀의 작은 몸에서 삶의 희비 곡선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면, 노래는 마음의 비타민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져.
무대를 화끈하게 달구었던 그녀가 지금 화면에서 퇴장하는 중이야. 내게도 ‘타이틀을 발꿔 봐~’라는 듯 눈웃음을 길게 날리며, 한때 ‘엔카의 여왕’으로 일본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지. 그녀의 현재? ‘30년 결혼 생활에 아이도 없이 빈털터리로 종지부를, 찍었다’ 는 기막힌 사연이야. 노래에 필(feel)이 꽂혀 버린, 오지랖 넓은 내 느낌에 의하면, 그녀는 방금 부른 노랫말처럼 시련을 지우며 삶의 진로를 바꾸고 있는 게지. 수십 년 노래를 부른 프로 가수답게 말이야. 타이틀을 바꾼다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달라, 진다는 의미를 내포할 것이므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시간에 끌려다니느냐, 시간을 관리하느냐 달렸다고도 해. 조금 착잡해지려 하네, 그 시간이란 놈에게 이끌려 엎어지고 깨어진 상처가 골골이 욱신거리는 아마추어가 바로 나거든. 지금이라도 삶의 타이틀을 확 바꿔 그놈을 한번 관리해보라고? 마음으론 그러고 싶지. 그야말로 일체의 잉여를 배제한, 새뜻하고 가벼운 타이틀로 말이야. 아 참! 이 노래 제목은……몰라. 아무래도 난, 안 되는 걸까.
이런 생각, 이런 느낌, 이런 시간이 오는 걸 보면 내게도 세상 길이 걸쭉해진 모양인가. 오늘 트롯 한 곡이 세상살이를 일러 줄 줄이야. 한마디 말과 글, 평범한 사물도 적소(適所)에 놓이면 마음을 사로잡는 거로군. 유난히 실감 나는, 순간이야.
여음이 다시 맴돌고 있어. ‘타이틀을 바꿔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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