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망상 끊어진 자리가 니르바나
같은 두 글자 겹쳐 사용 뜻 강조
시문의 기교가 돋보이는 선시
성색 초월한 경지는 성색삼매
시간 한계 없는 곳 차별 없는 자리
밀양 한계암 / 글씨 해봉석정(海峰石鼎 1928~2012) 스님
淅淅風吹面 紛紛雪積身
석석풍취면 분분설적신
朝朝不見日 歲歲不知春
조조불견일 세세부지춘
(으스스한 바람은 얼굴 스치고/ 펄펄 날리는 흰 눈은 몸에 쌓인다./ 아침마다 해를 못 보고/ 해마다 봄을 못 본다.)
‘한산시(寒山詩)’에 나오는 시문으로 같은 두 글자를 겹쳐 사용하여 그 뜻을 강조해 시문의 기교가 돋보이는 선시다. 밀양 한계암(寒溪庵)은 1966년 석정(石鼎) 스님 등이 늦가을에 토굴을 짓기 시작해 해를 넘겨 3월에 마무리하고 수행했던 도량이며, 지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마당조차 한 평 없을 정도로 협소하지만, 풍광이 좋은 오지의 암자다. 그러므로 대웅전에 걸린 한산시의 주련이 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석(淅)은 살랑거리는 바람을 형용해 나타낸 것이다. 까닭에 석풍(淅風)은 살랑거리는 바람이다. 석(淅)이라는 표현이 두 번 겹쳐서 사용되었기에 을씨년스런 바람이라 해도 무방하다. 석(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면 사락사락 쌀알을 뿌리는 소리, 바람이 지나가며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접촉하면 사락사락 질감이 있는 소리를 말한다. 이러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차가운 감촉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성(聲), 색(色)을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상쾌하다’, ‘춥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표현하지 아니한 것은 성색(聲色)을 초월한 경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색삼매를 말한다.
‘광찬경(光讚經)’에 보면, “무엇을 멸제제성색무성색(滅除諸聲色無聲色)삼매라고 하는가? 이 정의에 머물 때 모든 삼매에서 소리와 색깔이 있는 것을 모두 보지 않아서 소리나 색깔을 영원히 없애나니, 이것을 멸제제성색무성색삼매라 한다”고 했다.
분분(紛紛)은 눈이 어지러이 펄펄 내리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눈이 몸에 쌓인다는 표현은 머리에 눈이 내려앉는 것을 말한다. 앞 구절이 성색(聲色)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였다면 이 구절은 적요(寂寥)함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구도의 길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외경(外境)의 경계를 단절하지 아니하면 구도는 요원(遼遠)해진다. 한산시에 등장하는 한산(寒山)은 차가운 산이 아니라 속세를 벗어났다는 의미다. 이를 우리나라 산에 비유하면 속리산(俗離山)이다.
펄펄 내리는 눈은 번뇌와 망상이다. 이것이 쌓인다고 하는 것은 미동도 하지 않음이니 곧 번뇌와 망상이 끊어진 마음자리를 말한다. 심적정(心寂靜)하면 그 자리가 곧 니르바나다.
‘관찰제법행경(觀察諸法行經)’에 보면, “한적한 곳에 홀로 있는 것 즐기되 두려워하지 않으며, 밝은 지혜로 경계의 처소를 자주 하되 몸과 마음 적정(寂靜)하여 순수하고 곧게 행하면 그는 삼유(三有) 가운데 뛰어난 데 나아간다”고 했다.
조조(朝朝)는 ‘아침, 아침’을 말하므로 매일 아침이란 표현이다. 아침마다 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심산유곡(深山幽谷)이란 뜻도 있고 하나는 긴 세월을 말하며 또한 정려(靜慮)를 의미한다. 심적(心寂)하면 보리가 싹 트는 법이다. ‘조당집(祖堂集)’에 보면, “보리 지혜의 해는 아침마다 비치고, 반야의 시원한 바람, 저녁마다 분다. 이곳에 잡된 나무는 나지 않으니 산에 가득한 밝은 달이 선법(禪法)의 나무”라 했다.
불견일(不見日), 부지춘(不知春)은 시간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경지를 말하므로 이를 선문(禪門)의 용어로 보면 겁외춘(劫外春)이라고 한다.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면 늘 봄을 말하므로 여기는 차별이 무너진 자리다. 이를 ‘동산어록(洞山語錄)’에서는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니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봄이라서 옥으로 만든 코끼리를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아간다”고 했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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