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유대인참전용사#홀로코스트생존자
6.25전쟁 참전 홀로코스트 생졵 유대인 병사 3인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한국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 ” 유대인 병사 3인에 관한 짧은 스토리입니다.
첫 번째, 티보 루빈(Tibor Rubin)
1929년 헝가리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루빈은 6남매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44년 초, 루빈의 형 미클로스는 강제징용으로 징집되었고, 동생 에머리는 징집을 피하려고 친구와 함께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에머리와 그의 친구는 기차역에서 체포되어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루빈은 아직 15세도 되지 않은 3월에 집을 떠나 스위스로 피난하는 과정에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 근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루빈은 마우트하우젠으로 보내졌고, 동생 에머리가 그곳에 있었지만, 겨울이 되어서야 형제는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남은 루빈의 가족은 1944년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그해에 사망했습니다.
1945년 5월 5일, 루빈과 에머리는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헝가리를 떠난 형제는 독일 포킹의 실향민 수용소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티보 루빈은 3년을 기다린 후, 1948년 홀로 SS 마린 플래셔 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했습니다.
자신을 마우트하우젠에서 해방시켜 준 미국에 감사한 루빈은 해방 당시 자신과 했던 약속대로 미군에 입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 떨어졌고, 1949년에 재도전하여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한국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해 7월 유엔은 북한군을 몰아내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미 미군은 7월부터 참전을 시작했습니다. 헝가리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루빈은 미군 병사(아직 미국 시민은 아니지만)가 되어 한국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에 소속된 루빈은 동료 병사들이 '악랄한 반유대주의자'로 묘사하는 한 상사의 지휘 아래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여러 장교로부터 명예훈장 추천을 받았지만, 상사는 서류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1950년 가을이 되자 루빈의 부대는 전투로 거의 전멸했고 루빈도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습니다. 11월 2일 루빈을 포함해 대부분 병사가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했습니다. 전쟁 포로가 된 절박한 상황에서도 루빈은 몇 년전 마우트하우젠의 경험을 되살려, 밤에 수용소를 몰래 빠져나와 적의 보급품 창고에서 식량을 훔쳐 동료들을 보살폈습니다. 루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감 중 루빈을 붙잡고 있던 중공군이 그가 여전히 헝가리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헝가리는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들은 루빈을 '인민 공화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제안했지만, 루빈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루빈은 항상 동료 포로들을 보살폈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루빈의 격려에 힘입어 살아남을 힘을 얻었고, 실제로 살아남았습니다.
2년 반의 포로생활 끝에 루빈과 그의 동료 포로들은 1953년 4월 21일에 풀려났습니다. 24세의 루빈의 마우트하우젠 포로로서의 경험은 그에게 불과 5년 후 전쟁 포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그러한 지식과 동료 포로들을 돌보며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40명 이상의 미국 포로들을 살려낸 것입니다.
1953년 11월 27일, 티보 루빈은 미국 시민이 되었지만, 전쟁 중 그의 희생과 용기는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50여 년이 흐른 후인, 2005년 9월 25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76세의 티보 루빈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용기와 헌신을 기리며 미국 육군협회는 디지털 그래픽 소설 ”Medal of Honor: Tibor Rubin’을 헌정했습니다
두 번째, 사이먼 예루힘(Simon Jeruchim)
1929년 파리 출생인 사이먼 예루힘은 폴란드 유대인 출신 부모 사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소설가와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 후,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유대인 용사 중 한 분입니다.
한국 전선의 전투 부대에 배치된 미국 군인(제5보병연대)으로서의 그의 서사시적 여정을 기록한 “Frenchy" 와 홀로코스트 동안의 회고록인 “Hidden in France”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그는 파리의 "L'Ecole des Arts Appliques"응용 예술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뉴욕시의 "School of Arts"를 다녔습니다. 그는 "예술은 평생 충실한 동반자였으며, 특히 프랑스의 나치 점령 하에 있던 어두운 젊은 시절과 한국 전쟁 중에 전투를 벌일 때 기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참전 후 그는 미국에서 예술가로써 명망있는 인물로 자리잡았으며, 한국전쟁 참전용사 국립박물관 및 도서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와 홀로코스트 기념관, 워싱턴 DC 등에 한국전쟁 중 미군에 복무하면서 펜과 잉크로 그린 그림과 스케치 및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할 당시 노르망디에 숨어 지내면서 그린 전쟁 시기의 수채화등이 영구 전시되어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사이먼 예루힘이 2013년 11월 8일, 블라우벨트에 있는 사우스 오렌지타운 중학교에서 열린 '참전 용사 학교로 가는 날'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
안타깝게도 사이먼 예루힘은 2024년 4월 19일 세상을 떠나셨고, 그의 유족으로는 부인(Cecile Jeruchim, 홀로코스트 생존자)과 두 딸(Aviva와 Linda)과 6명의 손주가 있습니다.
국내 이스라엘 전문지 <월간샤밧>에서 한국전 참전 유대인 병사 특집을 취재를 위해 사이먼 예루힘과 만남을 준비하던 중 안타까운 부고의 소식을 전해 받고 실제 만남이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유대인 참전용사’를 기억해주는 한국인에 감명받은 그의 유족들이 사이먼 예루힘의 모든 작품을 한국의 <월간샤밧>에 게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며, 감사의 뜻을 전해 왔습니다.
- 사이먼 예루힘 작품들
<1952년 참전 중 "상동마을에서 한국 주민들"이란 타이틀의 스케치 작품 - 미 육군52 보병연대 당시 배속 상황상 대구의 상동으로 추정 됨>
<그 외 사이먼 예루힘 작퓸들>
세 번째, 바룩 쉴로모 시트린(Baruch Shlomo Cytryn)
그는 (미국명, 버니(Bernie) 1927년 폴란드 키엘체(Kielc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열두 살 때 전쟁이 발발하여 그의 가족은 모두 게토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1942년 키엘체 게토는 폐쇄되었고, 그와 가족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가축 열차에 실려 갔습니다.
그는 여러 강제수용소로 떠 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우슈비츠 그리고 베르겐-벨젠, 작센하우젠, 오라니엔부르크, 마우트하우젠, 다하우, 그로스-로젠 등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죽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았습니다.
1945년 4월 27일, 버니는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난민을 돌보던 히브리 이민 구호 협회(HIAS)에 미국에 가족이 있다고 말했고, 그들은 그를 브루클린에 사는 이모에게 데려다주었습니다. 그 후 버니는 루바비처 회당 바로 모퉁이에 있는 크라운 하이츠(Kingston Avenue 272)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엘리야후 그로스(Eliyahu Gross) 랍비님과 친분을 쌓았으며, 엘리야후 그로스 랍비는 지역 chabad 모임에 그를 데려가곤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그는 미군으로부터 소집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미군이 그를 구해줬기 때문에 꼭 복무하고 싶었던 버니는 친척들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나이가 많지 않은 미국 젊은이들이 수천 명의 유대인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복무를 신청했습니다.
한국으로 가기 전 그는 레베를 만나서 축복을 받았고, 당시 레베는 그에게 괜찮을 거라고, 전쟁에서 살아남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총알은 날아오겠지만, 그에게 닿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갔고. 제116공병전투대대 A중대에서 약 150명의 병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레베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디시어로 쓰여 있는, 그의 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사와 축복을 전합니다. 편지를 받게 되어 기뻤습니다. 제 편지가 여러분을 건강하게 찾아뵙고 앞으로도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건강과 테필린 착용 및 여러 유대인 활동에 대해서도 편지를 보내주세요...
유월절이 어땠는지요? 유월절 세데르는 랍비가 진행했나요? 아니면 목사가 진행했나요? 알려주세요. 유월절 기도를 위한 민얀(minyan- 공동 기도에 필요한 정족수 10명)은 있었나요?
모든 전우들에게 안부를 전해주세요. 그들이 특히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도록 격려해 주세요. 특히 유대인 친구들에게는 가능하면 하루 중 테필린을 착용하는 데 신경 쓰도록 격려해 주세요.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주실 것입니다.
축복과 함께,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Rabbi Menachem Mendel Schneerson.
이후 이 편지는 그에게 특별한 희망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는 공병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가장 먼저 적과 맞닥뜨렸습니다. 많은 전우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의 공포가 밀려 올때면, 그 편지를 읽으며 용기를 나곤 하였습니다. 그는 전쟁 내내 항상 주머니에 수류탄 네 개와 함께 이 편지를 가지고 다녔다고 전했습니다.
이 내용은 2010년 7월 뉴저지 랜돌프에서 JEM(Jewish Educational Media)과 인터뷰 당시 그의 육성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인터뷰 원문. https://www.chabad.org/1393818 )
이상 세 분의 참전용사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먼저 티보 루빈의 이야기를 통하여 반유대주의와 그것에 덮인 잊혀진 용사들의 헌신과 명예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되며, 사이먼 예루힘을 통해, 비록 본인과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지만 2세, 3세와의 만남을 통해 감사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쉴로모 시트린을 통하여 유대인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그들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보다 자세하고 많은 역사적 자료와 이야기들이 2025년 7월 22일 특별 학술 세미나를 통하여 전해 집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6.25전쟁 발발 75주년 특별세미나>
“6.25전쟁 비국가 및 유대인 참전 연구”
일시: 2025년 7월22일(화)
장소: 전쟁기념관 문화아카데미
공동주최: 한미안보연구회 & 이스라엘아카데미
협찬: 전쟁기념사업회, 우리민족교류협회
발표 논문:
발제 1: 승리한 전쟁 6.25 재조명(장삼열 박사)
발제 2: 다큐“Greatest Crisis”에서 조명하는 비국가 참전자(최도영 감독)
발제 3: 유대인 병사의 참전 기록과 기억(양해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