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말하는 당시 오늘) 역사 동아리를 가기도 하고 그저께(목요일) 역사 시험을 치기도 해서 시험 범위이자 내가 좋아하는 역사의 한부분인 임진왜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임진왜란 시작 전, 중국 조선 일본 3국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조선에 대해 말하자면, 조선 건국을 한 이후 큰 전투가 거의 없을정도로 한반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고 있었기에, 군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중국은 내부에서 환관이 횡포를 부려 정치가 혼란해졌었고, 여진이나 왜구도 침략해 나랏일을 제대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길디 길었던 전국 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새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이 사람이 내부의 불만도 돌리고, 세력도 늘려볼겸 정명가도(명을 치려 가기 위한 길을 빌려 달라)라는 구실로 조선을 침략한다.
당시의 조선은 명과 사대관계였기에 명을 친다는 것은 조국을 친다는 말과 비슷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은 이에 반대하며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일본이 매우 강력하고 조선이 발렸다. 일본에서는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무기만 있으면 한발 맞추면 조선의 최고급 무장 기병이 일격사할 수준이었으므로 그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그동안 극심한 평화로 인해 전쟁을 오랫동안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였고, 선조는 자기 아들을 세자로 세워 놓고는 왕이라는 작자가 의주로 피란을 가기도 했다. 그동안 한양에 이어 평양성까지 함락당했으며, 이대로 조선은 거의 멸망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곽재우 등이 일으킨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모인 의병 집단,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들, 선조의 부름을 받고 온 명나라군이 오며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한다.
의병들은 자체적인 전투력은 약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게릴라전을 펼쳤다. 아무리 조총이 강력한다한들, 그 지역을 꽤뚫고 있는 사람들의 기습 매복 공격은 그들도 버티기 어려웠으며, 일본군이 점점 밀리게 된다.
이순신은 뛰어난 전략과 지략을 바탕으로 일본 함대를 학살했다. 그런 것들 외에도 판옥선, 거북선, 비격진천뢰 등 조선의 좋은 배들과 장비들을 이용해서 일본군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였고, 이를 통해 전라도, 충청도 부근의 곡창 지역을 지켜낼 수 있었으며, 일본의 수로를 통한 물자 공급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아무리 명나라가 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다 한들, 명나라는 명나라였다. 그들은 우리 군대와 함께 순식간에 일본군들을 무찔렀으며, 마침내 평양성까지 다시 탈환을 하였다.
이렇게 일본군이 밀리자 일본과 명은 서로 협상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갈등으로 협상이 결렬되고 일본이 다시 쳐들어오는데, 이것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게 없었다. 전에 한번 더털린 일본은 또 한번 거하게 털렸고 결국 꽁지 빠지게 도망가며 우리나라가 승리하였다.
하지만, 이 승리는 상처투성이인 승리였다. 전쟁때문에 국토가 황폐화되어 농사를 짓기 어려워졌고, 덕분에 백성들의 생활도 빈곤해지고 나라의 재정도 바닥났다. 또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문화재들이 파괴되며, 일본의 의해 수탈되었다.
명나라도 우리나라를 도와준 이후 국력이 크게 떨어졌으며, 중국에서는 그동안 명과 조선의 견제를 받지 못한 후금이 자라나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비록 패배했지만, 다양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유재란에서 죽은 후, 일본에선 새로운 정부인 에도 막부가 설립되었으며, 애초에 정치권이 다른 세력이었기에 이들은 조선과 화친을 부탁하였고 이후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한다. 또한 조선에서 털어온 문화재들과 선진 문물을 이용해 일본 문화를 더욱 더 발전시켰다.
이런 암담한 결과가 있었지만, 사실 내가 이 파트에서 가장 흥미로워 하는 것은 왜란이 끝난 이후 선조의 행동이었다.
광해군한테 더뜸 세자자리를 넘겨주고 추노한 선조는, 이후 전쟁의 1등 공신의 명과 그의 병사들을 놓았고, 이순신과 수군, 곽재우와 의병들에게는 털끝만큼의 관심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이순신에게 느낌 질투심으로 추정된다. 자신은 왕이면서도 나라를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갔는데, 한낱 신하인 이순신이라는 작자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영웅 취급을 받으니 도망쳤다 욕만먹는 자신 입장에서는 충분히 아니꼬왔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권위를 치켜세우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의주로 피란을 간 후, 명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해 지원군을 불러들였으므로, 명나라를 치켜세워주는 것이 곧 자신의 권위와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저쨌든 결과는 선조가 이순신을 미워했다는 것이다. 언제는 이순신의 모든 관직을 박탈하고 투옥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런 면에서 선조를 좋게 보지 않는다. 나라를 버린 임금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싫어하는 꼴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