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태중에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 무염시태(無染始胎))를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과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무염시잉모태 대첨례’라고 불렀던 이 축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인 9월 8일로부터 역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인간의 부모를 두셨지만, 하느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낳게 할 어머니로서 성모를 선택했기 때문에 성모님이 잉태되었을 순간에 원죄가 전달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가톨릭 국제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성모 승천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에 나타난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에 나타난 은총과 희망적 경륜의 유형 안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공통된 전통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축일의 기원은 5세기경 동방 교회에 속한 시리아에서 처음으로 지낸 ‘지극히 거룩하시고 하느님의 고결하신 어머니의 잉태 축일’로 보고 있는데, 본래 명칭은 ‘하느님의 성조 성녀 안나의 동정 마리아 잉태 축일’로서, 성녀 ‘안나’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후 7~8세기에 들어서면서 동방 교회에서 이 축일이 널리 퍼져 보편화되었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3세기경 ‘성 이레네오’가 성모 마리아를 ‘새 하와’라고 부름으로써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예시하기도 했으나 8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이 축일을 12월 8일에 기념하기 시작했고, 11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교의적 차원에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축일을 로마 전례력에 삽입하면서 미사와 성무일도에서 사용할 전례 문구들을 인준하게 됩니다. 그 뒤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축일에 8일 축제를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서기 1708년 12월 6일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교황 교서를 반포하면서 마침내 이 축일을 대축일로 등급을 격상시키는 동시에 의무 축일로 지정했는데, 당시 본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정녀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시어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셨나이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죽음을 미리 보시고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나이다.” 이후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교황 무류성에 따라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에 의해 원죄 없는 잉태를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로마 미사 경본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잉태 축일’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축일을 기념했는데, 축일 경문 또한 성모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신학적인 내용보다는 그녀의 잉태 자체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이론과 ‘평생 동정’ 이론보다 늦게 대두되었지만, 초기 교회부터 중요하게 믿어왔던 ‘무염시태’ 교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죄에 물들지 않은 특전을 가리키는 가톨릭교회만의 교리로, 마리아 기도 안에 예수님의 어머니에 관한 교회의 신앙 본질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431년 에페소 공의회). 특히 동정 마리아의 무염시태는 마리아께서 단순히 악에서 보존되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으며, 마리아께 은총이 충만함과 동시에 성모 승천 대축일과 마찬가지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시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승천은 물론 원죄 없으신 잉태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티나 주름이나 어떠한 흠도 없는(에페 5, 27)’ 교회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는 흔히 순결함을 강조하는 백합과 장미, 초승달 등과 함께 그려지곤 했는데, 백합이나 장미가 주로 ‘수태고지(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할 것임을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려 준 일)’ 장면에 그려진다면, 초승달은 특히 ‘무염시태’의 그림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요한 묵시록 12장 1절에 기록된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신으로 초승달이 상징인데,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 브라질, 필리핀, 니카라과 등의 여러 나라와 많은 성당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