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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安哲秀)
출생 -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거주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 대한민국
별칭 - Ahn Cheol-soo, Charles Ahn, 찰스 안
경력 - 컴퓨터 앤티바이러스 개발
학력 -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대학원 의학 석사, 박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직업 -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업가, 대학 교수 (고용주 서울대학교)
활동 기간 - 1986년 ~ 현재
현직 - 안랩 이사회 의장
전직 -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직책 -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11년 ~ 현재)
종교 - 무교
가족 - 배우자 김미경, 딸 안설희
상훈 - 동탑산업훈장(2002년) 등
웹사이트 http://www.ahnlab.com
안철수(安哲秀, 1962년 2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 프로그래머, 벤처 사업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에는 당시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을 역임했다.[3]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4]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의대 교수로 일하면서 백신을 만들다 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면 학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한 안철수는 단국대학교 의예과 학과장을 그만두고 1995년 2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여 백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5] 이후 2005년 3월까지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이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뒤,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차세대융합기술원장 직은 2011년 10월 28일 사임했다.[6]
2011년부터 안철수의 행보는 많은 언론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2011년 중순부터 최측근으로 알려진 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했다. 청춘콘서트 일정 도중 안철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안철수 영입 의사를 밝혔다. 안철수 본인이 2012년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은 2011년 하반기 안철수의 등장 이후 바뀐 정치, 사회적 현상을 ‘안철수 현상’으로 불렀다.
목차
1 생애 1.1 학창 시절1.2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1.3 벤처기업 CEO 생활1.4 유학·교수 생활과 이후
2 철학 2.1 일상 생활2.2 경영2.3 교육2.4 벤처와 중소기업
3 서울시장 출마 관련 3.1 각계 반응3.2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3.3 유력 대권후보3.4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 여부 관심
4 평가
5 약력 5.1 학력5.2 경력5.3 기타 수상
6 저서
7 방송 출연
8 같이 보기
9 주석
10 바깥 고리
1. 생애[편집]
학창 시절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하는게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7]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치는걸로 의심해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8] 그러나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9]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편집]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1988년 《동방 결절 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10] 1991년 《토끼 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이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1]
의대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했다.[12] 그가 컴퓨터를 공부한 이유는 의사로서 전공 실험을 더 잘하고 특기를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 잡지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한국에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의 컴퓨터와 50장 가량의 디스켓을 검사해보니 3장의 디스켓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13] 프로그램의 세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보니 프로그램에 누군가 (c)Brain이라고 써놓은 것이었다.[14] 그 바이러스는 최초로 파키스탄에서 나온 것이었다.[15] 어떤 형제 둘이 컴퓨터 가게를 차려 자기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팔아 가게를 운영하려 했는데 하나만 팔아도 불법 복제가 되어 가게가 망하자 이 형제들이 화가 나 불법 복제를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러스의 시작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원본에는 만든사람의 이름, 주소, 집전화까지 모두 표시되어 있었으나 국내에 유입된 바이러스에는 그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 있었다.[16] 이 바이러스는 한국까지 오는데 3년이 걸렸다. 그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손에서 손으로 파키스탄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바이러스 때문에 디스켓이 파괴되는 일이 많았으나 당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전철을 타면 디스켓이 깨진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긴다”는 등의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17] 안철수는 전공실험을 위해 열심히 배워두었던 컴퓨터 언어 공부를 막 끝낸 참이어서 절묘한 시기에 바이러스를 만난 것이었다. 그러던 중 후배가 안철수에게 찾아와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을 묻자 안철수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나 후배가 이해하지 못하자 본인 자신이 직접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는데 밤을 세워 분석한 끝에 1988년 6월 10일 바이러스가 감염된 과정을 반대로 하면 치료할 수 있겠다 생각하여 ‘백신’(Vaccine)이란 이름의 앤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치료에 성공했다. 이것이 V3 최초 버전인 V1이다.[18]
처음으로 문서화된 컴퓨터 바이러스 제거 프로그램은 1987년에 발표된 번트 픽스(Bernd Fix)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19][20][21], 안철수는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1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고[22] “미국의 백신 대기업들도 V1보다 1년 늦게 만든 것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치료가 된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도움을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 뒤로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혼자서 만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이후 당시 악명을 떨친 LBC,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을 치료하는 기능이 추가된 ‘V2’, ‘V2Plus’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렇게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이중 생활을 했으며[23]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나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의사 생활과 백신제작을 모두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 제작을 하고, 의대에 가서는 박사 과정으로 생활했다.[24] 당시에 한국에는 안철수 말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철수는 2009년 6월 한 유명 방송(무릎팍도사)에 출현해 자신이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렸는데,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3개월동안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고 말하며[25], “V3 최초 버전을 군대가는 날 1991년 2월 6일에 만들어서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를 했다.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26]고 말했다. 안철수의 아내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안철수의 군입대에 대해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더니 허둥지둥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 [27]고 밝혔다.[28]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치료하였으나, 그 바이러스를 만든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당시엔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해 장난으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취직하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에 허점을 만들어놓아 검거된 후 회사에 스카웃되기도 했다. 안철수는 이후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하다가 전역했다.
대학생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29]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안철수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의과 대학교에서 굉장히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함께 대학 생활을 했고 당시 궁핍한 학생이었던 안철수는 아무 것도 없이 같이 살자며 프로포즈를 했다.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30]
2. 벤처기업 CEO 생활[편집]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을 하는 생활을 7년 정도 했는데[31]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년 2배씩 증가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의대 교수로 재직하려면 지도 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지도 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학생은 불행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반년간의 고민 끝에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더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백신 제작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러나 돈벌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7년 동안 모아놓은 모든 백신 자료들을 가지고 비영리 공익법인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려고 정부 부처를 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특히 삼성 소프트웨어 관련에도 찾아가 삼성 로고를 달고 배포한다고 약간의 돈과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32] 그러던 중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기업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왔고, 안철수는 그 의견에 동의하여 1995년 3월 15일 창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이다.[33]
기업을 만들더라도 백신을 개인에겐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들에만 사용료를 받아 기업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으며, 개인적 사용자들에 한해서 1999년 부터 도스용 백신 소프트웨이인 V3+ 네오라는 백신을 무료 제공하였다. 이후 V3+ 네오는 시그니처 수의 증가로 인해 당시 가장 보편적인 저장매체인 3.5인치 디스켓 2장이 필요하는 등 실제 이용이 매우 어렵고 제한되게 되었다. 결국 한동안 무료백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안연구소는 알약 등의 경쟁 무료 제품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빛자루 제품을 유료에서 무료로 바꾸고 V3 라이트라는 무료 제품을 연이어 출시한다. V3+ 네오는 V3 라이트 출시 이후 단종되었다. [출처 필요] 안철수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간은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자신이 월급을 받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34]
회사를 세우고 몇 개월 지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였다.[35] 보통 CEO들은 회사를 창립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반면에 안철수는 회사를 창립한지 몇 개월 만에 유학을 갔다. 그후 한국에 남은 직원들이 2년 동안 회사를 열심히 키운 덕분에 안철수가 미국 유학 중 1997년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36]
당시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갔다. 보통 재벌그룹 회장 정도가 되면 직접 발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당시 인수에 의욕을 가졌던 맥아피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며 인수를 제안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회장은 이전에 자신에게 회사를 매각했던 일본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켜줬다. 일본 대표는 “당시 회사가 적자나서 힘들었으나 많은 돈을 받고 회사를 팔고난 후 걱정도 없이 잘 지낸다”라며 안철수에게 회사를 팔라고 설득했으나 안철수는 끝내 거절했다.[37] 당시 맥아피는 전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당시 안철수연구소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인수한 후 안철수연구소를 폐기하고 미국 백신으로 한국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러한 인수를 제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에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그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감정을 소비하는 후회는 원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38]
그러던 중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일어나면서 적자가 나던 회사는 흑자로 전환됐다.[39] CIH 바이러스로 인해 30만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40] 이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하게 되어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직원이 50명 가량이었는데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수준이었고 컴퓨터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매출은 급증했고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세후 순익 100억원 돌파는 안철수연구소가 최초로 달성했다.[41]
3. 유학·교수 생활과 이후[편집]
2005년 당시 회사의 경영 사정은 매우 좋았으나 다른 벤처 기업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안철수는 자신의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1년 간 고민했고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회사를 창립한지 만 10년이 되는 날인 2005년에는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대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42] 당시 발표날까지 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철수는 2000년에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 125명에게 각각 650주씩, 자신의 지분에서 총 8만주 (전체 발행 주식수의 1.5%)를 나눠준 바 있다. 그는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개인적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43] [44]
CEO를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45] 같은 시기에 딸도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 이유는 안철수의 부인이 나이 마흔에 ‘법’을 배우고 싶다며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유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5년을 공부한 아내는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안철수도 뒤늦게 미국 MBA 석사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가족이 도서관에 모두 모여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46] 그 때가 가장 소중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8년 4월 30일 귀국한 안철수는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다가[47] 2011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현재 재직 중에 있다.
2005년에는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또한 2010년부터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소셜 네트워크 게임 업체인 노리타운스튜디오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 6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4. 철학[편집]
일상 생활
안철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반말을 못하는 안철수는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48] 간호사와 안철수연구소 직원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처럼 사회적인 지위가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과 가족에게도 존댓말을 쓴다는 점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안철수는 부부싸움을 하느냐는 질문에 “존댓말로 한다”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쓰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라고 말했다.[49] 어머니는 안철수에게 매번 존댓말로 대해주었으며 혼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동안 어머니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늦잠을 자서 택시타고 등교할 때 어머니가 “학교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자 택시기사가 처음에는 사촌이나 친누나로 착각하고 “누나가 참 착하네요” 라고 하였으나 후에 어머니라고 밝히면서 “어떻게 어머니가 존댓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존댓말이 평범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모범적인 사생활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엔 술을 자주 마셨으나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에 과음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이후부터 술을 끊어 전혀 마시지 않고 있으며 흡연도 하지 않는다(참고로 안철수는 과음과 과로로 입원한 상태에서도 회사를 경영하다가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50] 그리고 직원들이나 남들 앞에서 화를 내본 적도 한 번도 없으며 욕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은 뭔가를 참아본 적도 없고 오히려 마음 편한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돈보다 명예가 중요하며, 명예보다 자기 마음 편한게 중요하며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51] 매순간 재미있고 의미있는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의사로서 계속 생활을 했다면 훨씬 단순하고 집중할 수 있는 생활을 했겠지만 의사를 그만둠으로 인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효율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안철수는 자신이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효율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 쓰는 시간은 값진 시간”이라고 하였고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52]
한편 안철수는 자신이 크게 성공한 것에 대해 시기가 잘 맞았다고 말한다.[53] 바이러스는 기계어를 알아야 분석할 수 있는데 적절한 시기에 기계어를 배운 상황에서 바이러스를 만나게 되어 이런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재능과 노력, 운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며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사회적 성공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경영[편집]
안철수는 CEO는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역할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관계에 있으며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게 기본 철학이다.[54] 그는 회사를 경영할 때 영혼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회사지만 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가치관이 있으면 자신이 없거나 구성원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55]
과거에는 바이러스가 장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의 바이러스는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 유포를 통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중국 등에서 한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암거래 하는데 사용되며 러시아의 마피아가 동원되는 등 조직범죄로 발전했다. 안철수는 “백신 회사는 범죄율(바이러스)이 높을수록 이익이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명감이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56] 그는 또 “돈벌이 수단으로 백신 사업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강조했는데 경찰과 군인 등도 마찬가지에 해당된다. 이를 위해 상류층의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사건의 핵심 인물 상위층으로 올라가면 명문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출신들이 많으며 이들이 문제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사회에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와튼스쿨 MBA에서 법학 강의를 들을 때 담당 교수는 “A학점을 줄 수밖에 없는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10년 후에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감옥에 가 있었다”고 말했다며 똑똑하지만 개인적인 성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57]
안철수는 자신과 빌 게이츠를 비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는데 “분야도 다르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도 다르며, 회사 규모 차이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58] 2011년 11월 14일 안철수는 자신의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을 저소득 가정의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12월 9일 기준으로 그가 기부할 주식의 가치는 약 2500억 원이다.[59] 2012년 2월 5일 안철수가 재산을 기부해 설립할 공익 재단 이사장에 박영숙이 선출되었고 2012년 2월 22일 공익 재단의 이름은 공모 결과 안철수 재단으로 선정되었다.
[편집] 교육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고 자신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만 한다면 아이들은 책읽는 흉내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독서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선 부모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60]
[편집] 벤처와 중소기업
안철수는 “대한민국의 벤처기업 95%는 망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혹자는 “요즘 세대들은 너무 안전지향적이다.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을 하는데 안철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카이스트에서 학생을 가르쳐온 안철수는 학생 개개인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학생들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있고 호기심이 왕성하다”며 “다만 그런 도전정신이 강한 학생들을 사회가 더 큰 힘으로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몰아붙이는 사회 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61]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안철수는 “실패의 요람”이라고 바꿔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실리콘밸리에서는 100개의 기업이 나타나면 99개는 망하고 1개만 생존한다. 실패한 기업에게 도덕적인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면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다. 99번 실패를 하더라도 1번 성공하여 1,000배의 성공을 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실패를 전부 갚고도 남게 된다는 것이다. ” 그는 이것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패한 사람에게도 계속 기회를 주는게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살리는 길이며 벤처와 청소년을 살리는 길이라고 이 같은 말을 했다.[62]
[편집] 서울시장 선거 출마 관련
안철수는 여야 정치권에서 정치 입문 제의를 많이 받아왔다. 젊은층의 지지로 인해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한 적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종류별로 다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63] 안철수는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며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64]
이처럼 안철수는 일관되게 정치 입문을 부인해왔으나 2011년 8월 이후로 윤여준이 “안철수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65])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 알리면서 화젯거리가 됐다. 이전에 정치 입문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해왔던 안철수의 입장도 애매하게 바뀐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으며 9월 실시된 ‘청춘콘서트’에는 수십 여명의 기자가 몰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안철수의 출마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를 긴장시켰고 젊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비정치인 인물로써 정당들이 그동안 안철수 영입에 노력해왔음에도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66]
안철수는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세 가지 들었다.
(1)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2)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3)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67]
이 중에서 안철수는 “의미 (1)를 느꼈는데 (2)와 (3)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 (출마를) 거부했다”며, “그런데 최근 들어서 세 번째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을 조율하는것에 대해서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으나[66], 일각에서 제기된 행정경험 부족에 대해 “그동안 대학원장과 대기업 CEO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행정운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충분히 할 수 있을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66]
안철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내가 생각할 때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다. 한나라당은 응징을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한다”라며 “그럼 답은 명료하다.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이것(한나라당이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68] 그는 또 “나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인) 1970년대를 경험했다. (현 집권세력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거 거꾸로 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69]
서울시장 출마 고민에 대해 안철수는 “행정이기 때문에 고민을 시작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장 이렇게 여러 일 때문에 (서울시장) 자리가 열려있는데 이걸 또 이상한 사람이 망치면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게 고민의 시작점이었다. 정말로 자격 없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장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서다”라고 말했다.[67] 안철수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민주당은 안철수 영입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시민운동을 한 박원순 변호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중인 가운데 안철수는 박원순과의 대결에도 부담을 갖고 대화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70][71]
서울시장 출마를 확답한 적이 없으며 여론조사 등을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행정 운영을 통해 서울시를 바꾸려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윤여준 멘토설’에 대해 안철수는 “개인적으로 따로 윤여준을 만난 일은 없었다. 솔직히 석 달 전 윤여준을 처음 뵙기 전까지는 이름도 몰랐다”라며 “그 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되고, 또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제동씨나 김여진씨도 제게 멘토라 할 수 있다”라며 부인했다.[72] 그는 “정치인인 국회의원은 혼자서 바꿀 수 없는게 많지만 대통령이나 서울시장같은 행정가는 자신 혼자서 바꿀 수 있는게 많기 때문에 의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5%를 넘어 2위인 나경원(13~17%)을 두 배 이상 제쳤다.[73]
자신의 지지율이 높은 것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비교가 안 된다. 건국 이래 역사상 가장 심하다. 아직 만으로 40대인 나 같은 사람이 아직 (출마를) 할지 말지도 결정 안했는데, 저렇게 역사가 오래된 당들이 한꺼번에 흔들리면 그게 민심이다. 나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74] 안철수는 서울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하드웨어에 치우친 행정을 문제로 꼽았는데 구체적인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도 내비쳤다.[67] “ (지금 서울시는)완전히 하드웨어에만 매몰돼서 남에게 보이는 사업만 (진행)돼왔다.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실제로 사는 사람의 불편함, 위기 관리는 도외시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예를 들면, 도로 표지들이 무원칙하다. 직진하다가 갑자기 좌회전이 생기고 이런 것들이 통일이 안 되어 있다. 교통 막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도 없다. 주차난도 굉장히 심각하다. 그런 걸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노상 주차장 등에 요즘 같으면 센서를 설치할 수 있다. 이것을 공공 데이터로 만들면 서울시에서는 그것을 이용해서 스마트폰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어디에 자리가 비는지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에너지 문제, 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선진국은 다 공개한다. 그러면 데이터를 시민들이 가공해서 좋은 정보를 만들어 창업한다. 국가 보완과 상관 없는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알리면 일자리가 생긴다. 저 사람들(정치인들)은 그런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다. 평생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갖지 않으면 그런 아이디어를 갖기 쉽지 않다. ”
기존 정치세력들의 분열조장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는데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라고 지적했다.[66]
안철수는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고민도 이렇게 내비쳤다. “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기 발전도 중요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와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로 들어서면 자기 발전의 기회보다는 내가 가진 걸 소모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 10년 간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다. 또한 나는 수평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부 조직은 내가 아무리 수평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10년 이상 그게(유지하는게) 가능할까.[67] ”
[편집] 각계 반응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정치권과 각계 인사들은 관심을 보이면서 안철수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이회창은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라며 안철수 출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75]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조국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정치와 분리된 행정, 글쎄? 안철수 교수는 과기부장관감으로는 검증되었으나 서울시장감인지에 대해서는 안의 ‘친구들’이 누구인지, 이들과 무엇을 하려는지 검증해야 한다. 그의 비전 정책 수행능력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최종적으로 안 교수가 후보가 된다면 그를 도울 것이며 지혜를 모아 제2의 오세훈이 시장되는 것은 막을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76]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이해를 하는데 그렇다면 한나라당하고 같이 일할 수 있다. (안철수 영입 제의는) 당연한 일로 당에서 노력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77]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관전자 입장에서 현실정치로 들어올 때 얼마나 순도를 유지할지 팬으로서 걱정”이라고 말했다.[77]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물론이고 안 원장도 통합후보군에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반한나라 진영이 모여 통합후보를 선출하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라고 말했다.[77]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안철수 원장의 꿈은 혼자 꾸는 꿈이어서는 안된다. 특정 보수 인사가 출마설에 관여하고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도리다”라고 말했다.[77]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안철수 교수는 진정한 보수다. 보수의 핵심가치가 봉사에 있기에 안 교수의 공적 헌신은 진정한 보수 가치의 실현이다”라고 말했다.[77]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누구라도 꿈을 펼치겠다고 나오는 것은 자유지만 탈정치, 무채색을 들고 나왔을 경우 반(反)MB, 반한나라당 심판 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77]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과거 정치인 중 단기간에 치솟고 꺼지는 경우가 있지만 안 원장은 다르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신뢰와 감동이 있고 그게 뿌리이므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77]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내가 경기도민인데, 서울시민이라면 안철수를 찍겠다. 집권 세력이 꼴보기 싫어서 민주당 찍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77]
언론사 편집국장들도 안철수 열풍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서울신문 편집국 고위간부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얼마나 깊은가를 충격적으로 확인해주었다”라고 말했고, 강호원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이번 안철수 현상을 두고 “안철수 원장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고, (기성 정치권과 별도로) 그동안 쌓아온 새로운 지지기반이 상당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광덕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안철수 백신’이라는 사회적 기여, 그 성과에 대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강덕 KBS 정치부장은 “안 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상비평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며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식상함과 반감 때문에 안 원장의 참신함이 호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면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용마 문화방송 노동조합 홍보국장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강하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제2, 제3의 안철수가 나올수도 있겠고, 그러면 정치판의 유동성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도 “안 원장이 성공해도 정치권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78]
[편집]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지만 안철수와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발표하자 안철수는 다음날 9월 5일 박원순에게 출마를 양보할 수도 있다고 했고 그 다음날인 9월 6일 오후 4시에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의 대화 끝에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하였다. ‘누가 출마하느냐’, ‘단일화가 되느냐’ 등이 모두 선거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79] ”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라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80] 이후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라며 결의를 다졌다.[81]
안철수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안 원장은)5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5%대의 지지율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그것은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핍박하고 무시하던 시민사회의 상징과 가치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었다.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커밍아웃이다”라고 극찬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조국 교수는 “우월한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교수 양보. 큰 박수를 보낸다. 이 분의 ‘쓰임’은 또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판이 바뀔 조짐이다. 통큰 단결로 서울시장 선거, 총선, 대선을 맞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안철수, 과연 ‘인물’이군요. 이 정도 열풍이면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이 멀쩡해도 취할 텐데, 50%의 지지율에도 흔쾌히 양보. 이번에 박 변호사 도와주시고, 그보다 더 큰 물에서 뜻을 펼치세요”라고 말했다.[82]
안철수의 아버지 안영모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사람이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렸다”고 말했고 대선출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말릴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들 나이도 50이 넘었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가 말려서 되겠나. 이제부터는 일절 말 안 하고 지켜만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83]
이명박은 ‘떠오른 안철수 열풍’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84] ”
이명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모든 문제에 남탓만 해 실망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85]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요동치는 정치판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남 얘기하듯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답답함을 더했다. 대통령은 정치판의 구경꾼이나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안철수 바람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다.[86]
박근혜는 기자들이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병 걸리셨어요?”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은 사과를 요구했고 이후 박근혜는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표현이 부적절 했던 것 같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87]
하지만 한나라당은 안철수가 반(反)한나라당을 천명한 만큼 반감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철수에 대해서 “IT 전문가라고 해서 정치를 잘 하겠느냐”면서 “안 원장이 뭐가 검증이 됐느냐. 예전 운영하던 회사 내에서도 내분이 있어 몇 분이 물러섰다지 않느냐”,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금세 사라진다. 정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것 같다”, “안 원장이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 좌파라고 선언한 것 아닌가 싶다. 이념적 좌파라기보다는 강남 좌파에 가까운 것 같다”라며 성향과 검증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88] 한나라당이 “안철수와 박원순 단일화는 정치쇼”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원순은 “그런 쇼는 더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라며 반박했다.[89] 그러나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의 정치권에서의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라며 안철수를 호평하기도 했다.[90]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안철수를 최근 인기몰이 중인 꼬꼬면에 비유하면서 “꼬꼬면이 ‘품절면’이 됐듯이 안철수도 정치권에서 ‘품절남’”이라며 “꼬꼬면과 안철수는 많은 것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꼬꼬면이 그간 시장의 대세였던 ‘신라면’의 후광을 입고 나타난 ‘신라면 블랙’의 생산중단과 절묘하게 매치가 된 점” 등을 들어 박근혜를 신라면에 비유하기도 했다.[91]
안철수와 박원순은 단일화했으나, 이전까지 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5%에 불과해 ‘안철수의 지지층을 박원순이 흡수하는지’, ‘민주당에 입당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92] 단일화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원순은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힘입어 지지율이 대폭 상승하여 나경원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93] 집전화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답변이 많았으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이 51.6%를 얻어 32.5%의 나경원을 압도했다.[94] 안철수가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안철수연구소의 주가가 상승하다가 다시 불출마 선언을 하자 주가도 같이 떨어지는 등 경제계에도 영형을 미쳤다.[95]
유력 대권후보[편집]
안철수에 대한 여론의 관심에 대해 언론들은 ‘안철수 신드롬’, ‘열풍’ 등의 표현으로 보도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인 이후 언론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 대상에 안철수를 포함시켰다. 안철수는 박근혜와의 1:1 가상대결에서 43.2%를 기록해 40.6%를 기록한 박근혜를 이겼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가 차기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59.0%, 박근혜 32.6%로 나와 차이가 더 벌어졌다.[96] 특히 야권 후보들 중에는 지지율 31%를 기록해 2위를 차지한 문재인(16%)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97]
안철수는 20~30대 젊은층, 대학생, 화이트칼라, 호남지역에서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서울지역에서도 54%의 지지율을 보여 박근혜를 넘어섰다.[98] 하지만 안철수는 2012년 대선 출마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 2011년 9월 7일 안철수는 출근길에서 차기 대선 출마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가당치도 않죠. 사실. 생각해볼 여유도 없고...”라고 말했다. [99][100] 이어 서울 강남지역 총선 출마설이 돌자 2011년 12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3당 창당이나 강남 출마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고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01]
또한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2011년 11월부터 대선을 겨냥한 ‘과외’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문제에 관해서는 햇볕정책 지지자인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가 안철수를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야당 중진의원 등 전문가들이 경제, 국제관계 등 각 분야에서 안철수를 돕고 있다고 알려졌다. [102] 김근식 교수는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안철수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제 시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와 전문가들의 만남을 주도한 것은 김효석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다. 안철수의 지인인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0월부터 민주통합당 중진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안 원장이 공부모임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103]
[편집]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관심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은 2012년 1월 25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대선 후보로 뛸 생각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104] 2012년 4월 16일 중앙일보는 안철수가 대한민국 제19대 총선 이전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보도를 냈으나[105] 안철수의 측근은 이를 부인했다. [106]
[편집] 평가
안철수는 강력한 추진력과 기업가 정신, 도덕성, 차분한 성격, 성공한 사람으로써는 드물게 겸손한 이미지로 기존의 기득권층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 젊은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멘토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교수직에 임하면서 동시에 박경철과 함께 ‘청춘 콘서트’라는 강의를 해오고 있다. 박경철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강의는 1년에 3천건의 강의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일정 문제로 1년에 80여 건밖에 하지 못한다. 안철수는 돈을 많이 주는 기업들의 강의는 되도록 하지 않으며 사람이 많이 오는 무료강연을 많이 하는데 강의할 때마다 적게는 1500명에서 많게는 3천명 정도까지 몰린다.[107]
부경대 이상윤 (대학교수)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안철수등의 한판승부-박근혜벗기기(ISBN 978-89-93989-04-5)'에서 안철수현상에 대해, 이는 한국판 스티브 잡스 기대현상으로서 사실상 IT성공기업가인 미국의 스티브잡스에 한국판 IT성공기업가인 안철수가 여기에 오버랩되면서 발생한 것이라 했다[108].
기관·언론의 평가
2011년 6월 - 잡코리아 선정 조사 멘토 1위[109]
2011년 5월 - 대전시 명예시민 (대전시)
2010년 10월 - 세종문화상 사회봉사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2009년 12월 -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교육부문 (AICI, 국제이미지컨설턴트협회)
2009년 12월 - ‘21세기 첫 10년 최고의 CEO 4위’(포춘코리아)
2009년 12월 - ‘2009 IT 파워피플’ 일반인 설문조사 1위 (매일경제신문)
2009년 11월 - ‘취업 준비생이 가장 존경하는 CEO 1위’(잡코리아)
2009년 11월 - ‘한국을 빛낸 파워 브레인’ 기업부문 1위 (월간 브레인)
2009년 10월 - ‘우리시대의 진정한 영웅 1위’, ‘IT분야 존경하는 인물 1위’ (시사저널)
2008년 11월 - ‘가장 창조적인 한국인 7인’ (월간 브레인)
2008년 7월 - ‘한국의 경영대가’ (매경 이코노미)
2006년 11월 - ‘CEO로 영입하고 싶은 리더 1위’ (한국리더십센터 1,503명 설문)
2006년 6월 - ‘지혜로운 경영자 국내 1위’ (지혜경영연구소)
2006년 3월 - ‘호감 가는 기업인 1위’ (주간 이코노미스트)
2006년 3월 - ‘건전한 기업가 1위’ (주간 이코노미스트)
2005년 2월 - ‘2005 Creative Managers’ (대만 BUSINESS NEXT 지, 세계 글로벌리더 100인 선정)
2003년 9월 - ‘우리 시대 신뢰 받는 리더-경영인 1위’ (한국리더십센터 5,169명 설문)
2003년 6월 - ‘차세대 리더-경제부문 1위’ (주간 뉴스메이커)
2003년 2월 -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 부문 대상’ (신산업경영원)
2003년 2월 -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국민대표 선정
2002년 10월 - 동탑산업훈장
2002년 9월 -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 (동아일보-과학문화재단)
2002년 8월 - ‘차세대 아시아의 리더 한국 대표 18인’ (World Economic Forum)
2002년 7월 - ‘2002 아시아의 스타 25인’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2002년 2월 - ‘제1회 대한민국S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한국SW산업협회)
2001년 11월 -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2001년 10월 - ‘Asia-Europe Young Entrepreneurs Forum Award’ (Asia-Europe Foundation)
2001년 6월 - ‘21세기 아시아의 리더 30인’ (일본 시사주간지 SAPIO)
2001년 1월 - ‘전현직 CEO 중 한국에 필요한 CEO 1위’ (매일경제신문)
2001년 1월 - ‘벤처 사장 100인이 뽑은 2000년 벤처인’ (한겨레신문)
2001년 1월 - 조선일보 IT 클럽 ‘최고 영향력 1위’
2001년 - 벤처 이코퍼레이션 가장 존경하는 CEO
2000년 12월 - ‘미래를 이끌 벤처인 1위’ (주간 매경이코노미)
2000년 10월 - ‘제14회 인촌상’ (동아일보사)
2000년 10월 - 주간 dot21 ‘영입하고 싶은 CEO’ 1위
2000년 8월 - 서울경제신문 선정 40년을 빛낼 기업인
2000년 3월 -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젊은공학인상’ (한국공학한림원)
2000년 - ‘아하!PC 대상’ 올해의 IT 인물
1999년 12월 - ‘21세기를 빛낼 기업인 1위’ (매일경제신문)
1998년 7월 - ‘가장 존경받는 프로그래머’ (월간 프로그램세계)
1996년 12월 -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청와대)
1990년 12월 - ‘올해의 인물상’ (한국컴퓨터기자클럽)
1999년 10월 - 월간조선 ‘한국의 50대 기업인’
시사저널 ‘한국의 30대 뉴 리더’
조선일보 ‘건국 후 과학기술 업적 50선’: V3
주간 매경 이코노미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20인’
매일경제신문 ‘21세기를 빛낼 기업인 1위’
(이외 다수)
[편집] 약력
[편집] 학력
2008년 5월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M.B.A., Entrepreneurial Management 전공)
1997년 5월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석사 (M.S.E., Management of Technology 전공)
1991년 2월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Ph.D., Physiology 전공)
1988년 2월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M.S., Physiology 전공)
1986년 2월 -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M.D.)
[편집] 경력 - 현재
2011년 6월 - 현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05년 3월 - 현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 및 CLO(최고학습책임자)
2010년 10월 - 현재 노리타운스튜디오 이사회 의장
2011년 5월 - 현재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 이사
2008년 5월 - 현재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2009년 11월 - 현재 대통령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2008년 9월 - 현재 아름다운재단 이사
대검찰청 검찰정책자문위원
서울시 서울장학재단 이사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비상임이사
유한학원 감사
CJ 나눔재단 이사
아시아안티바이러스협회 부회장
World Economic Forum의 Future of Korea Council 멤버
경력- 과거
2008년 5월 - 2011년 5월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정문술석좌교수
2005년 2월 - 2011년 2월 POSCO 사외이사 / 이사회 의장
1995년 2월 - 2005년 3월 안철수연구소 창업자 겸 대표이사
1991년 2월 - 1994년 4월 해군 군의관(대위 예편)
1990년 1월 - 1990년 2월 일본 규슈 대학 의학부 방문연구원
1989년 9월 - 1991년 2월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
1986년 3월 - 1989년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안티바이러스연구협회 부회장
월간 프로그램세계 편집자문위원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국정보처리학회이사
컴퓨터수사자문위원회 위원
서울지검정보범죄수사센터 자문위원
서울지방경찰청사이버수사 자문위원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자문위원
한국통신정보보호학회 이사
정보통신미래모임 부회장
국립암센터 정보전산 자문위원
보건의료정보분과위원
월간마이크로소프트웨어 편집자문위원
보건의료기술연구기획평가단
월간 인에이블 포커스그룹 위원
이외 다수
[편집] 기타 - 수상
2009년 12월 - 제 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교육부문 (AICI, 국제이미지컨설턴트협회)
2009년 8월 - 제 1회 블루리더십어워드(포브스 코리아)
2003년 2월 - 제 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 부문 대상(신산업경영원)
2002년 10월 - 동탑산업훈장
2001년 11월 -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서울대학교 총동창회)
2001년 10월 - Asia-Europe Young Entrepreneurs Forum Award(Asia-Europe Foundation)
2000년 3월 -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젊은공학인상(한국공학한림원)
1996년 12월 -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청와대)
1990년 12월 - 올해의 인물상(한국컴퓨터기자클럽)
[편집] 저서
단독 저서
《안철수의 생각》 (김영사, 2012)
《행복 바이러스》 (리젬, 2009) ISBN 9788992826259 - 예스24 올해의 책 선정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영사, 2004) ISBN 9788934917205 -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올해의 책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김영사, 2001) ISBN 9788934917915 -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안철수의 인터넷 지름길》 (정보시대, 2000) ISBN 9788988351147
《안철수와 한글윈도우 98 지름길》 (정보시대, 1998) ISBN 8988351002
《안철수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 (정보시대, 1997) ISBN 9788985346863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 제작》 (정보시대, 1995) ISBN 8985346180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 (비전, 1995) ISBN 9788985456142
《바이러스 뉴스 2호》 (성안당, 1991) ISBN 2003519003799
《바이러스 뉴스 1호》 (성안당, 1990) ISBN 2003519003782
공저
《인생기출문제집》 (북하우스, 2009) ISBN 9788956053875
《나눌수록 많아진다》 (지식산업사, 2009) ISBN 9788942390069
《재능을 키워 준 나의 어머니》 (JEI 재능아카데미, 2009) ISBN 9788976492456
《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 (김영사, 2008) ISBN 9788934932307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이미지박스, 2007) ISBN 9788991684348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엇 하나》 (높빛, 2006) ISBN 8995286814
《내 평생 잊지 못할 일》 (한국일보, 2006) ISBN 9788973480029
《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깊은책속옹달샘, 2005) ISBN 9788956923505
《나는 무슨 씨앗일까?》 (샘터, 2005) ISBN 9788946416192
《당신에게 좋은일이 나에게도 좋은일입니다.》 (고즈윈, 2004) ISBN 9788991319011
《나의 선택》 (정음, 2003) ISBN 9788990164193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 (아침이슬, 2000) ISBN 9788988996027
《컴퓨터, 참 쉽네요》 (영진출판사, 1995) 등 ISBN 9788931405439
[편집] 방송 출연
《CEO 특강》 - 대학생! 生生한 꿈을 펼쳐라! (한국교육방송공사, 2008년 6월 18일)
《아침마당》 - 〈목요특강〉 무엇이 성공을 이끄는가 (한국방송공사, 2009년 4월 23일)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문화방송, 2009년 6월 17일)
《MBC 뉴스데스크》 - “기업가 정신 살려야” (문화방송, 2009년 11월 5일)
《일류로 가는 길》 - “왜 ‘기업가 정신’인가?” (한국방송공사, 2010년 1월 15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 ‘이 시대의 멘토 안철수’ (tvN, 2010년 6월 14일)
《MBC 스페셜》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 (문화방송, 2011년 1월 28일)
여름방학특집 ‘안철수와 박경철 2’ (문화방송, 2011년 7월 29일)
《시사매거진 2580》 ‘2580 단독 인터뷰, 안철수 서울시장출마설’, (문화방송, 2011년 9월 4일)
[편집] 같이 보기
안랩 (前 안철수연구소)
V3
박경철
박원순
이찬진
[편집] 주석
1.↑ “"안철수씨 부인 김미경 씨, 의사에서 법률가로"”, 《매일경제》, 2008년 1월 7일 작성.
2.↑ “인터뷰 - 안철수 교수의 아내 김미경 카이스트 교수”, 《국민일보》, 2009년 9월 10일 작성. 2012년 2월 16일 확인.
3.↑ “무릎팍 출연한 안철수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 《동아일보》, 2011년 6월 18일 작성. 2002년 2월 16일 확인.
4.↑ “안철수, '무릎팍도사'서 세계 최초 바이러스 백신 V3 탄생 비화 공개”, 《맥스뉴스》, 2011년 6월 18일 작성. 2012년 2월 16일 확인.
5.↑ 백지연의 안철수, `무릎팍` 안철수와 어떻게 달랐나? 매일경제 2011년 7월
6.↑ 안철수 사임 "35억지원 깎겠다" 한나라 압박탓? 10월 28일, 머니투데이
7.↑ ‘무릎팍도사’ 안철수 “공부는 못했지만 책은 좋아해!” tv리포트 2011년 7월
8.↑ 안철수, “학창시절 활자 중독증 있었다” osen 2011년 7월
9.↑ 활자중독자’ 안철수, "떨어진 종이조각도 줏어 읽었다 tv리포트 2011년 7월
10.↑ 동방결절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Acetylcholine,Ca++및 K+의 영향 서울대학교 1988년
11.↑ 토끼 단일 심방근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²^+^전류의 조절기전 서울대학교 1991년
12.↑ 안철수, '무릎팍도사' 시청률 상승 견인 오토타임즈 2011년 7월
13.↑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한국의 빌게이츠(?)...너무 과분해″ 아시아투데이 2011년 7월
14.↑ 안철수 "한국의 빌 게이츠? 불편한 비유다" 스타뉴스 2011년 7월
15.↑ 무릎팍' 출연 안철수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것이 가장 큰 선물 2011년 7월
16.↑ 안철수, V3 만든 계기 공개!! 아츠뉴스 2011년 7월
17.↑ 안철수 "한국의 빌 게이츠? 불편한 비유다" 스타뉴스 2011년 7월
18.↑ 안철수 “백신개발 심취, 가족에 軍입대도 말 못했다 뉴스엔 2011년 7월
19.↑ Kaspersky Lab Virus List
20.↑ Wells, Joe (1996-08-30). "Virus timeline". IBM.
21.↑ 바이러스 검사 소프트웨어 참고.
22.↑ 백신의 아버지 안철수, 국민들에게 감동 선사 강원일보 2011년 7월
23.↑ 무릎팍' 출연 안철수 교수에 시청자 호평…"보석같은 분" 마이데일리 2011년 7월
24.↑ 굿데이스포츠 2011년 7월
25.↑ 무릎팍도사 안철수, “V3 만들던 날 가족에게 말도 안하고 군입대했다” 2011년 7월
26.↑ 안철수 "가족에 군대 간다는 말 안해" 서울경제신문 2011년 7월
27.↑ [1]김윤덕의 사람人, '안철수의 아내' 김미경 교수
28.↑ 안철수는 V3 생각만 하다가 군대 간다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허둥지둥 서울역으로 달려갔고 부인은 안철수가 말하지 않았어도 군대 가는 날을 알고 있어서 군대 가는 안철수를 쫒아와서 바래다 주었을 수 있다.
29.↑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부인과는 유명한 캠퍼스 커플, 프러포즈는… 재경일보 2011년 7월
30.↑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부인과는 유명한 캠퍼스 커플, 프러포즈는… 재경일보 2011년 7월
31.↑ 무릎팍' 출연 안철수 교수에 시청자 호평…"보석같은 분" 마이데일리 2011년 7월
32.↑ 안철수, 1000만 불 인수제의 거절한 이유!! 아츠뉴스 2011년 7월
33.↑ 안철수 KAIST 교수, 17일 무릎팍 도사 출연 디지털타임스 2011년 7월
34.↑ 무릎팍도사’ 안철수, 반쪽짜리 감동 쿠키뉴스 2011년 7월
35.↑ “명강의를 찾아서 박경철·안철수 '미래… 리더십'”, 《한국일보》, 2011년 3월 18일 작성.
36.↑ 민도식, 나를 확바꾸는 실천 독서법 북포스 155페이지 '1997년 직원들에게 안철수연구소를 맡겨둔채 미국에서 유학하며 실리콘벨리에 머물던 중 현재 경쟁회사 맥아피에게 1천만달러 제안 받았지만 거절'
37.↑ 무릎팍 안철수 “외국회사 1000만불 매각제의 단호히 거절” 헬스코리아뉴스 2011년 7월
38.↑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온화한 카리스마로 시청자 압도 한국경제 2011년 7월
39.↑ 안철수 "정치할 생각 있냐고요? 오마이뉴스 2011년 7월
40.↑ 더 늦기 전에"…국가적 대책마련 마지막 기회 sbs 2011년 7월
41.↑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한국의 빌게이츠(?)...너무 과분해″ 아시아투데이 2011년 7월
42.↑ 백지연의 안철수, `무릎팍` 안철수와 어떻게 달랐나? 매일경제 2011년 7월
43.↑ 2004년 저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44.↑ [2]한겨레, 개인보다 공익적 나눔 실천 직원에 주식 8만주 배분도
45.↑ “'돌아온' 안철수.. 2년간 유학 마치고 귀국'”, 《아시아경제》, 2008년 4월 30일 작성.
46.↑ 안철수가 무릎팍서 찬사 받는 이유? 아이비타임즈 2011년 7월
47.↑ 안철수는 왜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까 머니투데이 2011년 7월
48.↑ 무릎팍' 출연 안철수 교수에 시청자 호평…"보석같은 분" 마이데일리 2011년 7월
49.↑ 무릎팍도사 출연 ‘보석같은 사람’ 안철수 박사 어록모음 뉴스한국 2011년 7월
50.↑ 무릎팍' 출연 안철수 교수에 시청자 호평…"보석같은 분" 마이데일리 2011년 7월
51.↑ 무릎팍도사' 안철수, 네티즌 "강연 듣는 줄 알았다 굿데이스포츠 2011년 7월
52.↑ 무릎 팍 도사’ vs ‘라디오스타’ 텐아시아 2011년 7월
53.↑ 안철수, “카이스트 학생들 권유로 무릎팍 출연 osen 2011년 7월
54.↑ 무릎팍도사′ 출연 안철수, ″한국의 빌게이츠(?)...너무 과분해″ 아시아투데이 2011년 7월
55.↑ 무릎팍도사 출연 ‘보석같은 사람’ 안철수 박사 어록모음 뉴스한국 2011년 7월
56.↑ 안철수, “카이스트 학생들 권유로 무릎팍 출연 osen 2011년 7월
57.↑ 안철수, “학창시절 활자 중독증 있었다” osen 2011년 7월
58.↑ 안철수 "한국의 빌 게이츠? 불편한 비유다" 스타뉴스 2011년 7월
59.↑ 이광빈, “안철수 기부주식 2천500억원 넘어”, 2011년 12월 11일 작성. 2011년 12월 11일 확인.
60.↑ 무릎팍도사’ 안철수 “공부는 못했지만 책은 좋아해!” tv리포트 2011년 7월
61.↑ 안철수 교수와 순회강연 ‘시골의사’ 박경철씨 경향신문 2011년 7월
62.↑ IT·벤처 어게인" 전도…'국민교수' 안철수 아이뉴스24 2011년 7월
63.↑ 20 · 30대 내년 선거에 대거 몰릴 것” 조선일보 2011년 8월
64.↑ 안철수 "정치할 생각 있냐고요?" 오마이뉴스 2009년 12월
65.↑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지고 오세훈이 서울시장직을 사퇴하면서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66.↑ 가 나 다 라 mbc 시사매거진 2580 2011년 9월
67.↑ 가 나 다 라 안철수 "이상한 사람이 또 서울시 망치면 분통터질 것" 오마이뉴스 2011년 9월
68.↑ 안철수, "야권과 단일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노컷뉴스 2011년 9월
69.↑ 안철수 "주초 박원순 만나겠다...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 반대" 오마이뉴스 2011년 9월
70.↑ 안철수, "야권과 단일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노컷뉴스 2011년 9월
71.↑ 안철수 "주초 박원순 만나겠다...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 반대" 노컷뉴스 2011년 9월
72.↑ 안철수 "윤여준이 기획자? 그건 언론의 오보" 오마이뉴스 2011년 9월
73.↑ 안철수, 서울시장 보선 여론조사서 압도적 선두 연합뉴스 2011년 9월
74.↑ 안철수 "제2의 박찬종? 난 아니다!" 오마이뉴스 2011년 9월
75.↑ 이회창 "안철수, 간이 배 밖에 나와 연합뉴스 2011년 9월
76.↑ 조국, "안철수 서울시장감? '친구들' 검증해야" 머니투데이 2011년 9월
77.↑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정몽준부터 진중권까지, ‘안철수 출마 검토 이렇게 본다 경향신문 2011년 9월
78.↑ 안철수 핵파괴력? 언론사 편집국장 등에 물으니…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79.↑ 아무 조건 없습니다” 안철수 깨끗한 양보 한겨레 2011년 9월
80.↑ 박원순 "안철수 결단에 놀라···주변사람 모실 것"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81.↑ 안철수-박원순 ‘아름다운 합의’ 17분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82.↑ 조국 "안철수에 큰박수" 진중권 "과연 인물"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83.↑ 안철수 부친 “아들 대권 도전 말리고 싶지만, 알아서 할 것” 경향신문 2011년 9월
84.↑ MB "안철수 신드롬, 변화 욕구가 안 교수 통해 나온 것" 노컷뉴스 2011년 9월
85.↑ MB "올 것이 왔다" 발언에 정치권 술렁 서울경제신문 2011년 9월
86.↑ 대통령은 안철수 바람과 무관한가 중앙일보 2011년 9월
87.↑ 朴 "병 걸리셨어요 농담 부적절했다" 연합뉴스 2011년 9월
88.↑ 한나라, 안철수 맹공..본격 검증 예고 연합뉴스 2011년 9월
89.↑ 박원순 “단일화 정치쇼? 이런 쇼는 더 많은 게 좋은 거 아닌가?” 한겨레 2011년 9월
90.↑ 강남아줌마들도 안철수 교수 찍겠다더라” 한겨레 2011년 9월
91.↑ 전여옥 "안철수는 `꼬꼬면' 박근혜는 `신라면'" 연합뉴스 2011년 9월
92.↑ 박원순, 안철수 지지율 흡수 여부가 변수 한국일보 2011년 9월
93.↑ 박원순 ‘안철수 지지’ 업고 나경원과 오차내 접전 경향신문 2011년 9월
94.↑ MBC 여론조사, 안철수 59%, 박근혜 33%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95.↑ “안철수 뜨자 '출렁'…정치인 테마주 작전 조사”, 《SBS》, 2011년 9월 7일 작성.
96.↑ MBC 여론조사, 안철수 59%, 박근혜 33%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97.↑ “안철수 野대선주자 1위로 '우뚝'”, 《뉴시스》, 2011년 9월 7일 작성. 2012년 2월 9일 확인.
98.↑ 안철수 블랙홀’ … 한나라 지지자 7%만 이동했다 중앙일보 2011년 9월
99.↑ 안철수 출근길 문답 “대권도전은…, 학교가야 해요” 경향신문 2011년 9월
100.↑ “안철수 대선주자로 `우뚝`...김제동·박경철 출마설도”, 《이데일리》, 2011년 9월 7일 작성. 2012년 2월 9일 확인.
101.↑ 강병한. “안철수 “신당 창당·강남 출마 생각 없다””, 《경향신문》, 2011년 12월 1일 작성. 2012년 12월 9일 확인.
102.↑ 신정록. “안철수, 11월부터 大選과외 받고있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29일 작성. 2012년 2월 9일 확인.
103.↑ 강병한. “강인철 “안철수, 평소에도 여러 전문가들 만나… 해석의 문제””, 《경향신문》, 2011년 11월 29일 작성. 2012년 2월 9일 확인.
104.↑ “[http://cn.moneta.co.kr/Service/paxnet/ShellView.asp?ArticleID=2012012607505000440 문성근 "안철수, 대선 나오려면 경선부터" 문성근 "안철수, 대선 나오려면 경선부터"]”, 《매일경제》, 2012년 1월 26일 작성.
105.↑ 안철수 “대선 출마 마음 굳혔다” 중앙일보, 2012년 4월 16일
106.↑ 펄쩍 뛰는 안철수 측근 "대선 출마 결심?" SBS, 2012년 4월 16일
107.↑ 분노한 20 · 30대 내년 선거에 대거 몰릴 것” 조선일보 2011년 8월
108.↑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C%9D%B4%EC%83%81%EC%9C%A4&frameFilterType=1&frameFilterValue=5000023698
109.↑ 이 시대 구루 안철수…나를 버리고 '함께'를 외치자 세상이 환호했다 주간조선 2011년 6월
[편집] 바깥 고리안랩 - 공식 웹사이트
안랩 - 공식 블로그
심층 인터뷰
안철수 “한국은 기득권 과보호 사회”. 시사저널 (2010년 8월 18일).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안철수 교수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고언 (상). 인터뷰365 (2010년 8월 18일).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안철수 교수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고언 (하). 인터뷰365 (2010년 8월 18일).
안철수 "10년 후 한국, 정신 바짝 차리면 좋아질 것" 노컷뉴스 2011년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 ‘중앙비즈니스 포럼’ 인터뷰 중앙일보 2011-07-12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인터뷰 전자신문 2011-07-06
안철수 "잃어버린 IT 3년…선제대응 기능이 사라졌다" 디지털타임스 2011-03-02
이 시대 구루 안철수…나를 버리고 '함께'를 외치자 세상이 환호했다 주간조선 2011-05-16
안철수, "소셜과 모바일 열풍 3년동안 우리는 뭘했나" 블로터닷넷 2011-01-03
창간 60주년 릴레이 인터뷰-안철수 KAIST 석좌교수 대전일보 2010-08-27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한국일보 2009-12-14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세계일보 2010-05-03
안철수가 말하는 '88만원 세대, 불행해진 이유' 머니투데이 2011-06-16
그가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여섯 가지 조언 경향신문 2011-05-29
상생구도 안 만들면 국가경제 위태 매경이코노미 2011-07-13
지방대 순회강연서 만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 ‘시골 의사’ 박경철 경향신문 2011-04-28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옮기는 안철수 KAIST 교수 >> 기득권 보호가 창의력 잠재운다 이코노미스트 2011-04-18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한국경제매거진 2009-01-02
한국의 빌게이츠, 안철수 박사 MBC 2010-02-28
안철수 KAIST 교수 연합뉴스 2009-02-11
안철수 "일자리 위해선 토목공사보다 IT" 노컷뉴스 2009-02-27
안철수 "SW가 토목경제보다 고용효과 크다" 지디넷코리아 2008-10-26
분노한 20 · 30대 내년 선거에 대거 몰릴 것” 조선일보 2011-08-08
안철수 “기득권층,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공멸” 주간경향 2011-08-03
첫댓글 누군지
만일 젊은 이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하면,
제발 늙은 이들은 자리를 비켜주었으면 좋겠다.
은퇴했거나,
혹시 현직에 있더라도
젊은이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젊은이들의 선택에
이렇다 저렇다고 평가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 면이 있다고 시비걸
그런 권한이 도무지 없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불안해?
맘이 안놓여?
현실감이 없어보여?
지금은
분명 21세기
젊은 그들의 세상이다.
21세기가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질 세대들은,
의자를 비워주는 마지막 지혜를 발휘하길...
수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