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44절을 통한 영적 가르침 두 개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ㅣ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을 향해]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말을 들은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렸다." (사도 10, 44)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은 베드로의 복음 선포를 듣던 중에 성령을 받았다. 이는 강론
이나 강연에서 말씀을 들을 때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신자들에게 일어남을 보는 예이다. 영
적 변화나 회심의 체험은 기도나 피정 중에 또는 안수 중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말씀을 듣
는 중에 더 많이 일어난다. 구원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은 하느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시간
이요, 정신적, 영적인 문제는 물론 육체적인 질병도 치유되는 시간이다. 말씀을 듣는 중에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강론 말씀을 듣는 시간에 조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안 자는 척
하면서 자는 이도 있고, 좌로 우로 꾸벅꾸벅 졸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코까지 고는 이도 있다. 졸지 않는다 해도 강론 말씀에 열중
하기 보다는 딴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보를 읽거나 묵주기로를 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
을 들을 때는 코르넬리우스가 그러했듯이 "지금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당신에게 지시하신 모
든 것을 들으려고 모여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말씀하소서."(사도 10,33)의 태도를 지녀야 하
는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강론이 시작되자마자 '주여, 말씀하소서.
자장가 소리에 제가 잠드나이다.' 하는 식으로 존다.
강론하는 사제와 신자들이 하느님이 말씀하실 것을 고대할 때 그 분위기는 어떠할까? 모두가
신성한 긴장 속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당에 들어오면 가능한 앞줄에
앉으려 하며, 하느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갈망한다. 마치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를 기
다리며 보였던 태도처럼 말이다.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지금 우리는 주님이 당신께 지
시하신 것을 들으려고 하느님 앞에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사도 10,33)라고 했듯이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두 번째 영적 가르침을 보자. 사도행전을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
들은 하나같이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면서 기이한 언어(심령기도 / 방언) 를 말한 것처럼 보인
다. 오순절에 120명 신자들이 그랬고(사도 2,6), 지금 보고 있듯이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이 그랬다. 만약 누군가가 세례받고 신자가 된 사람은 성령 충만하고 심령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베드로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 세례를 받았던 3000명은 성
령을 받은 것이 아니게 된다.
사도행전 2장 37-41절을 보면 3000 명의 신자가 세례는 받았지만 심령기도를 했다는 내용
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세례를 받고 나서 즉시 사도들의 가르침에 열중하고, 성찬
례와 친교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에 열중했다는 말이 나온다.(사도 2,42-47)
유럽에서 최초로 신자가 된 리디아의 경우, 그녀가 바오로 사도로부터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만 나오지, 그녀가 성령 충만했고 심령기도를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사도 16,15) 그런데 그녀는 필리피 공동체를 이끌어가던 지도자였다. 결론적으로 성령 충
만함을 체험하고 심령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란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성령 충만함과 심령기도가 신자 됨의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성령은 비신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 받을 때 한차례 주어진다.
그러고는 그 후에 계속해서 그 신자 안에 머물러 계신다. 그 신자가 성령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세상 욕망에 휩쓸려 살아간다 하더라도 성령이 그 신자를 떠나가는 것은 아니다.
코린토 1서 3장 16절에서 보면, 바오로는 성적인 죄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죄스런 삶을 영
위하고 있는 신자들을 향해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하느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
처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반문한다. 성령은 세례를 통해 주어진 뒤 계속해서 그
리스도인 안에 머물러 있기에, 죄스런 삶으로 그분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을 받았다. "누가 만일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않고 있
다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닙니다."(로마 8,9) 이 말은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불가능하
다는 말이요,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성령을 받은 자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로 구분할 수 없다. 물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
스도인 사이에는 성령을 받은 자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로 구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