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순 동시집 《언제나 3월에는》(브로콜리숲)
신복순 글 | 브로콜리숲 | 2024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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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시 한 편에 짧은 산문 한 편 『언제나 3월에는』 신복순 시인의 동시 산문집
2007년 《월간문학》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복순 시인의 동시와 함께하는 산문집이다. 시인은 2014년 세종도서로 선정된 바 있는 동시집 『고등어야, 미안해』 이후 천천히 조용한 걸음으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왔다. 시인의 행보는 자신의 속도에 맞춤 맞게 넘치거나 과하지 않은 즐거운 산책과도 같다. 그러기에 신복순의 글에서는 조용하고 순한 호흡이 느껴진다. 동시와 짧은 단상들이 서로 어우러져 시인이 직접 그린 소박한 그림과 함께 잔잔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신복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지냅니다. 즐겁게 산책도 하면서요. 2007년 《월간문학》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고등어야, 미안해』(2014년 세종도서 선정) 『살구나무 편의점』(공저), 쓰고 그린 그림책 『가슴이 쿵쿵쿵』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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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 / 신복순
날이 어두워지자 할아버지가 그랬어
곧 비가 오겠군
해는 온다고 하지 않아
늘 하늘 높은 곳에 머무르고 있지
그곳에서 빛나고 있어도
과일이 익고
꽃이 피어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지
나에겐 엄마라는 존재가 그래
지금 세상에 없지만
내 마음속 깊이 언제나 있어
따스한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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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과 뒷면 / 신복순
햇살이
노란 은행나무를
환하게 비추었지
앞은 화사하게 빛났지만
뒤쪽은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어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햇살은
밝은 면만 만들지 않아
어두운 뒷면도 살펴보라고
항상 두 면을 같이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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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 신복순
갑자기 비가 왔을 때
누나가 우산을 갖다 줬다
비 맞을 생각을 했는데
무척 기뻤다
또 비가 오길 바랐다
나도 누나에게 우산을 갖다주고 싶어서
그러면 누나도 나처럼
생각지도 않은 기쁨을 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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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사는 눈사람 / 신복순
산골에 사는
영훈이가 눈사람을 만들었어
많은 친구와 어울려 놀고 싶어
여러 개를 만들었지
발은 만들지 않았어
혹시 떠나면
너무 슬플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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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 신복순
쌀은 생각했어
밥이 되어도 괜찮고
죽이 되어도 괜찮고
떡이 되어도 괜찮아
누군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 되어도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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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동시 한 편에 짧은 산문 한 편
동시는 대체로 길지 않다. 길지 않은 동시에 굳이 시작 메모 같은 짧은 단상들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독자들께 일독을 권해 드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에 입던 홑겹 옷에 한 겹 더 옷을 입듯 『언제나 3월에는』은 그러하다. 동시와 짧은 산문(시에 대한 단상)들이 “산문 하나가 시 하나를 안는다는 느낌”으로 나아간다.
아이들은 글을 쓰기 이전 손아귀에 적당한 힘이 생기면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그림은 맨 처음에는 흔적이었다가 선이었다가 마침내 동그라미가 되고 사람이 되고 산이 되고 토끼가 되고 나무와 꽃이 된다. 『언제나 3월에는』을 따라 걷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비롯한 글 그리고 생각들이 조그마한 돌멩이 위에 꽃잎 따다 올려놓은 순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동심을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시인이 책에 남긴 엄마에 대한 헌사 “나를 정성껏 키워준 엄마께 이 책을 바칩니다”는 시인의 아이됨과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깊게 아로새긴다. 어떤 대상이 그리우면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게 아이들이 본디 가진 심성이 아닐까. 강가에 홀로 나가 모랫바닥에 나무작대기로 동글동글 그리다 보면 그게 결국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되니까 말이다.
가수 양희은이 쓴 신문 칼럼(이후 단행본으로 엮임)에도 소개된 시인의 작품 「이월과 삼월」은 시의 생명력과 어디까지 가닿을지 모르는 신나는 여행(양희은은 이 시를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한다)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의 시는 그렇게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가지고 또 어디론가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봄을
빨리 맞으라고
이월은
숫자 몇 개를 슬쩍 뺐다
봄꽃이
더 많이 피라고
삼월은
숫자를 꽉 채웠다
―「이월과 삼월」 전문
“이 시는 이미 발표되었던 시이다. 그것도 오래전에. 시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할 때 이 시를 빼고 할 수가 없다. 오랫동안 시에 대해 자신이 없어 머뭇거릴 때 해마다 이월이 오면 내게 시인이라고 알려준 시이다. 부족한 내가 이 시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양희은 님이 쓴 에세이 『그럴 수 있어』에도 실려 있어 더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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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부분 ‘나오는 글’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은 묵직한 말을 남긴다.
“시 하나에 하나의 세계가 열립니다.
시는 단순히 여러 단어의 조합이 아닙니다.
여기 실린 시에는
엄마와 이별하는 슬픔이 녹아있고
삶을 뒤돌아보는 성찰이 있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외하는 마음이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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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시 한 편에 짧은 산문 한 편
내 시는 참 쉬운 편입니다.
내 시에 대한 일반적인 평은
흔히 있는 평범한 일들을 쉽게 공감되게 쓴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기 편하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 말들에 용기를 얻어 책을 엮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쓰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가 쉬운 편이니 따로 해설을 싣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품에 자신이 없어 누군가에게 부탁하기도 민망했습니다.
대신 뒷부분에 몇 편 정도만 내 생각을 덧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출판사에 그래도 되겠느냐고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몇 편만 그렇게 하면 이상하니 아예 넣지 말든지
아니면 전체를 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산문 하나가 시 하나를 안는다는 느낌으로 하면 그것도
괜찮겠다는 의견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난감했습니다.
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쓴 것입니다.
그중 50편을 뽑았는데 산문을 쓰자면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림까지 내가 그린다면 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한다고 해야 하나?
순수 한 장르에만 속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는데…….
내가 시를 쓰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인가?
이름이 알려지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인정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특출한 재능이 한 가지라도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하나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해진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조금씩은 가능하니 서로 어우르면서 해보자.
결과적으로 여러 분야가 합해져서 나를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래 알던 편한 친구처럼 시가 다가갈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브로콜리숲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여름 신복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