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세상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이름을 날리면.. 내가 그런 것처럼 기뻐하지요.
가족 같은 우리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내가 수상한 것처럼 환호하며 좋아하는데..
한 편에서는 한강을 타인처럼 느끼며 질투와 시기, 불만을 토로합니다.
우리 한인만 가족처럼 느끼는 게 아니기에.. 동아시아 이웃들도 박수를 치지만 한편에서는 질투의 시선도 보낸다.
특히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동아시아 여성작가를 꼽았는지..
일본과 중국 여성 대표 작가가 한강 처럼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 물망에 올랐다고 하는데..
수상자는 바로 우리 한강님이다. ㅎㅎㅎ^^.
한강님,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노벨상.. 지금은 분명 덜 그러겠지만..
1960년 대 이전에 태어나.. 60~80년 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노벨 문학상은 물론 평화상 등은 선진국에서 받는 상인 듯 아주 성스러운 보배요, 희망처럼 바라보니..
매년 이맘때 발표되는 수상 소식에 혹시 우리나라 사람이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이웃 일본은 노벨 문학상은 물론 과학상을 종종 듯 받는데 우리는? 하면서..
그랬기에 한 해 또 한 해가 가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니 그 바람은 매년 차곡차곡 만년설처럼 쌓여갔지요.
자꾸자꾸 축하하고 싶군요, 한 강님!.^()^..
기쁨과 환호와 박수 속에..
작가 한강은 무엇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거지?. 하는 질문이 샘물처럼 조금씩 올라오고..
축하와 질투 섞인 것들을 접하며
기쁨만이 아닌 아픔이 베이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을 했을 때..
우리 모두는 기뻐만 한 게 아니라 한 편에서는 질투의 화살을 서슴없이 쏘아댔습니다.
만일 김영삼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했으면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한 편에서 질투가 터졌을 겁니다.
우리의 상대는 북한이요, 일본이요, 중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 내부에도 심각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만일 한 강작가의 수상 소식에 일본이나 중국인이 불만을 터뜨리며 시비를 거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담없는 몸짓의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치졸한 질투 좀 그만 하라며..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터지는 불만과 시비는 우리를 허탈하게 아프게 합니다.
남북을 연결하려는 목적의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이북이 폭파했다는 뉴스는..
아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그들의 꼬인 심정을 헤아리며 지나칠 수 있는데..
남이 아닌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지만..
우리 안에서 터지는 꼬인 반발을 남처럼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심각해진 상태로
더 늦기 전에 치료를 해야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눈이 한쪽만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여기든 저기든 한 쪽일 수밖에 없어.. 양쪽을 아우르는 중도는 늘 허둥대며 따라올 뿐이지요.
이 쪽에 서서 저 쪽에 있는 자를 억지로 이 쪽으로 끌어 오는 것은.. 부처님 되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이젠 다 알고 있습니다.
해서 성숙한 사회란 저 쪽에 있는 자를 인정하는 게 이 쪽에 있는 내가 인정받는 것임을 알고 관계를 맺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회는 자신의 내부에는 갈등과 불만이 없을 수 없지만 외적으로는 충분히 자제할 수 있기에 눈에 띄는 갈등이 잘 보이지 않으며 큰 무리없이 지내갑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포함한 글이나 말 역시 이쪽에 서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저쪽에 있는 자들이 내놓고 비난하거나 무시하고 욕지거리 비슷한 짓을 하는 사회라면..
탐욕과 무지에 치우친 자들이 설치는 후진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어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드물게 대부분의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은 최고의 선진 국가라는 자부를 숨길 이유도 없지요.
우리가 선진 시민임은.. 미국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2024년 파리에서 치른 올림픽 경기 운영을 보면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고등교육의 핵심은 고등 기술 교육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이쪽과 저쪽을 알고 그에 대해 분별 있는 행동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만 선하게 잡으면 저쪽에 있는 자와 즐겁게 웃으며 손잡고 나갈 수 있는 바탕이 충분히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등 지식이나 인성을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아니한가요..
한 마리 미꾸라지가 작은 연못을 흙탕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쪽과 저쪽이 함께 나서서 미꾸라지가 벌인 흐린 물을 정화시키는 게 성숙한 사회인데..
우리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그런데 미꾸라지가 벌인 못된 짓을 이쪽과 저쪽이 악의적으로 부추긴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사회가 파토 나는 건 원치 않습니다.
만일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 힘으로 다른 쪽을 강제하려 하면.. 자신이 어느 쪽이든 냉정히 나서서 말려야 합니다.
이 정도는 세 살 먹은 자의 이해가 되었음에도
자기 이익에 빠져 못 본 척.. 더 나아가 부추기고 있지 않은지..
반복하지만 한강 작가는 이쪽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그에 대해 저쪽은 불만이 있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지요.
그러나 한 강 작가를 저쪽인 자기 쪽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내가 안 바뀌는 것처럼 너도 안 바뀔 것이니..
당신이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건강한 자라면..
평소 한강 작가를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노벨 문학상 수상을 했으면..
설사 성향이 다를지라도 함께 기뻐해야만 하는 게 아닌지요..
만일 누군가가 저쪽으로 나와는 성향이 다르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이나 평화상을 수상한다면..
이쪽저쪽 가리지 말고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어야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같은 한 나라의 성숙한 시민이니까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꼭대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백척간두 진일보]' 라는 말은..
보통 사람은 이쪽이나 저쪽에 서 있는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니.. 이쪽과 저쪽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유튜브를 보면 이쪽과 저쪽에서 한강 작가에 대한 편향적인 자기 소리와 주장을 하고 있는데..
자기주장을 외부에 하려면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한 자 즉 이쪽 저쪽을 벗어난 깨침이 있는 자가 된 이후에 해야만 한다는 것이니..
섣부른 송아지처럼 나서서 농사를 망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활동한 작가들을 흔히 세 그룹.. 항일과 친일과 순수로 나뉜다고 배웠습니다.
항일은 현실 부정인 자세요, 친일은 현실 긍정이요, 순수는 초현실입니다.
당신이 작가라면 어느 쪽에 서서 글을 쓸까요..
순수라 하여 오직 문학만 보면서 글을 쓸까요?..
한림원(Swedish Academy)에서 뽑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보면 그 나라에서 약자 편에 서 있는 작가가 많습니다.
작가 한강은 약자 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요.
그에게 비치는 사회는 강자의 폭력에 비참한 약자의 모습입니다.
지금 세계는 강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 원인의 핵심이지요.
약자와 함께 자유와 평화 공존을 이루려는 민주제가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강이 잘못 세상을 보고 있는 건가요?.
일본인이나 중국인이지만.. 한국의 여성 작가가 문학상 수상한 것을 같은 동아시아인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눈에 띕니다.
그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우리가 왜 한강의 문학상 수상을 크게 축하하지 못하느냐 말입니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라고 하는 이유는
이쪽이나 저쪽에 취우쳐 현명한 대응을 못하고
오히려 분란을 더 크게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이쪽저쪽에서 나와 양쪽을 아우르는 쪽으로 넘어갈 때입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