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을 부를 때마다 진리가 응답한다.
처음에는 기적으로 반응하고, 그 다음에 진리 자체로서 우리에게 돌아온다.”
진리의 반영인 용서는 어떻게 기적을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제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감옥에서 탈출할 것인지 말해줍니다.
당신의 거룩한 아들을 먼저 형제 안에서, 그 다음 제 안에서 가리킵니다.
당신의 참음성은 제게 당신의 말씀을 듣고, 받는 대로 주라고 끈기 있게 가르칩니다.
오늘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당신께 이르는 길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당신의 참음성을 듣습니다.
‘그의 죄없음을 보고 치유받아라.’가 그 길이도록 당신께서 지정하셨습니다.
...
[예수의 추가 설명]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그대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추구한다.
몸매를 가꾸고, 재정적으로도 추구한다.
엔터테인먼트도 추구하며, 이 모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용서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한다.
가장 작은 판단조차 하지 않을 때, 그대는 기적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대는 기적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곧 그대는 의도적으로, 또한 온전한 자유의지로써 에고가 하기를 원하는 것의 반대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에고를 해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이 행성에는 많은 영성 실천이 있다.
모두가 무엇을 하고 사용할지, 어떻게 할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판단하지 않는 것, 형제와의 증오스러운 관계를 멈추는 것은 그대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이 책은 그대의 마음을 기적적인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 세상의 온갖 빛나는 것은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며, 그대에게 손짓하고, 그대를 유혹하고, 그대에게 같이 놀자고 요청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열정을 따를 수 있고,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
다만 거기에 그대의 용서를 더하라!
이 선물이 그대에게, 그리고 그대를 위해 얼마나 강력한지 이해하라.
용서는 신이 주는 선물이다.
그림자가 에고의 판단을 가져다주듯이, 빛은 용서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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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의 설명]
오늘 레슨에 기적수업에서 자주 반복되는 아이디어가 제시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통해, 하느님께 가는 길을 발견할 것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우리는 먼저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며, 그 다음에는 우리 자신 안에서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부를 때 진리가 언제나 응답합니다.
첫 응답은 우리가 용서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제공하는 기적입니다.
그런 후, 진리가 우리에게 돌아와 그 자체가 됩니다.
당신의 거룩한 아들은 처음에는 제 형제 안에서, 다음에는 제 안에서 저에게 알려집니다.
이것이 기적수업의 길입니다.
“제가 오늘 당신의 아들을 바라볼 때, 즉 내가 주위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때, 저는 당신이 정하신대로의 당신께 가는 길을 발견하라고 알려주는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른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그 응답의 두 단계는
1) 기적들
2) 진리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
형제들에게 제공되는 용서의 형태인 기적들은 단지 진리의 상징일 뿐입니다.
용서는 오직 진리의 반영일 뿐입니다.
기적들 안에서 나는 신의 아들을 봅니다.
먼저 형제 안에서, 그리고는 나 자신 안에서.
기적들이 축적되어 가면서, 그리고 내 마음이 훈련되어 가면서 진리 자체가 내게 분명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같다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수업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 집중하면, 두 번째 단계는 스스로 올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저는 많은 영적인 길들이 하느님을 직접 깨닫는데
집중하는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이 옳기에, 그런 노력은 결국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긴 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려는 노력, 이미 일어난 것을 일어나게 하려는 노력, 우리가 잃은 적이 없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끝없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분투이자 에고가 지속되게 하는 완벽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추구는 너무나 천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땅에서는 어떤 용도로도 쓰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더렵혀지기 싫어서 부상당한 여행자를 그냥 지나친 바리새인, 독선적인 근본주의자를 봅니다.
그는 기도가 너무나 중요해서 가족과 그들의 필요를 무시합니다.
기적수업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여기에서의 용서를 통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추상적인 결합의 경험에 대한 추구 속에서 길을 잃지 마세요.
오히려 용서를 실습하세요.
실습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형제와의 결합에 집중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과의 결합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자료를 가지고 작업하세요.
관계들이 당신 손에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영적인 은둔으로 달아나지 마세요.
그것은 실패할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쥐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과정을 건너뛸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가는 길은 당신의 형제를 통해 가는 길입니다.
그가 당신의 구원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수업의 길은 자기애적인 길이거나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수업은 분명히 우리 홀로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곳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하느님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봄으로써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 곁의 사람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완전한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 자신 또한 그 창조물의 일부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를 하느님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이끕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우리 곁의 사람을 통해 가는 길입니다.
“그의 죄 없음을 보아라, 그리고 네가 치유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