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뼈의 효과 / 조미숙
처음에는 전국적으로 온다는 비 소식에 기대하지 않았다. 설왕설래를 계속했지만 그래도 가야겠단다. 일기예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작은딸과 광주로 출발했다. 막상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먹구름은 끼었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아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광주에 들어서니 이슬비가 내렸다. 다만 이 비가 계속되지 않길 빌 뿐이다.
서둘러 출발해서인지 야구장은 한산했다. 작은딸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해 나갔다. 인생네컷(즉석사진관 체인점 및 즉석사진 자체를 칭하는 말로 무인 포토 부스에서 사진을 찍어 네 장을 인쇄할 수 있다.) 사진을 찍고 상품점에서 굿즈(마케팅을 위한 기획상품) 열쇠고리와 응원봉을 사고 나니 아직도 입장 시간이 남았다. 할 수 없이 입구에 서서 30분을 기다렸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는 오락가락. 다행히 궂은비는 아니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작은딸은 들어가자마자 또 뭔가를 사야 한다고 달려갔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나서야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묻는다. 우선 편의점에서 물과 휴지를 사고 그 옆 매점에서 햄버거를 골랐다. 물기에 젖은 의자를 닦고선 몇 시간 만에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도 두 시간을 “제발 비야 오지 말아라.” 하며 우산을 폈다가 비옷을 입었다가 했다. 다행히 방수포가 걷혔다.
드디어 경기 시작. 상대팀의 응원가가 구장을 흔들었다. 대부분 원정 경기 응원은 소수의 인원이 오는데 오늘은 그 팀의 홈경기 같았다. 1위 팀의 위세랄까? 라인업송(선수 등장 곡)은 웅장했다. 슬쩍 기가 죽는다. 전 경기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았던 투수는 처음부터 얻어맞더니 수비 실책까지 더해 1점을 내줬다. 불안한 출발의 1회를 겨우 마무리했다. 뒤이은 우리 공격은 공 네 개로 끝났다. 응원가를 부를 새도 없었다. 이어지는 부진은 우리의 응원을 무색하게 했다.
우리 옆자리에 두 명의 젊은 아가씨가 있었는데 카메라맨이 다가왔다. 스케치북에 선수 응원 문구를 만들어와 열심히 흔들며 응원한다. 모르는 노랫말이 없다. 동작도 틀리지 않고 잘 따라 한다. 나를 찍는 건 아니지만 행여 살짝 비출까 봐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번엔 우리를 찍는 것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이 표날까 봐 그냥 열심히 응원에 집중하려는데 자꾸만 동작도 틀리고 가사도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선수마다 등장 곡과 응원 곡이 있는데 립싱크하기도 버겁다. 우리 팀의 공격이 짧게 끝났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응원에 또 그 카메라맨이 다가왔다. “아이고 미치겠네. 왜 자꾸 와. 아까 햄버거 먹고 입도 안 닦은 것 같은데. 머리도 엉망일 거고.” 딸을 붙잡고 하소연한다. 큰딸이 우리가 방송에 나왔다고 전했다.
구장에 가기 전에 큰딸이 응원 영상을 보여 주며 노랫말과 동작을 외워가야 재밌다고 했는데 그게 한 번 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나처럼 음치 박치인데다 나이까지 먹으면 아무리 쉬운 응원가도 외우고 따라 하기 힘들다. 모르면 커닝도 하면서 목이 터져라 불렀는데 기어이 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응원단장이 “우리가 진다고 응원을 안 합니까? 더 힘을 내라고 함성을 지릅시다.” 한다. 9회 말 마지막 공격에 체면 유지라도 하라고 홈런이 터졌다. 기적이 일어나도 이기기 힘든 7대 1의 상황에 연속되는 안타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고 있었다. ‘기아 없이는 못 살아’를 부르고 ‘비 내리는 호남선’을 열창하며 ‘최강기아’를 외치며 힘을 보탰건만 기어이 지고 말았다.
난 노래를 못한다. 닭 목뼈는 내가 다 먹었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악보는 읽을 줄도 모른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는 거라곤 남동생이 한때 베이스기타를 친다며 긴 머리 휘날리며 다니던 시기에 알게 된 헤비메탈이다. 그래봤자 스틸하스(Steel Heart)의 ‘쉬스곤(She’s Gone)‘이지만 말이다. 우쿨렐레라도 배워볼까 하다가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할 게 뻔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노래 잘 부르거나 악기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참 부럽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노래를 잘하는지 모르겠다.
난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해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누구보다 즐긴다. 흥은 주체못하지만 그에 견주어 노래 실력은 받쳐주지 않아 난감하다. 노래방에서도 템버린 흔들며 노는 것은 자신 있는데 노래를 시키니까 가지 않는다. 오늘처럼 경기장에서 비록 못하는 노래지만 한마음으로 하는 응원가 떼창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들고양들의 ‘마음 약해서’를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해서 흥에 겨워 부르던 엄마의 그 유전자가 내게 전해졌다.
첫댓글 하하, 닭 목뼈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려나 봅니다. 그래도 흥이 있으니 분위기는 잘 맞추잖아요? 나는 그런 흥도 없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저도 앞으로 목뼈와 친해지야겠습니다. 맞아요. 떼창으로 하면 자신있게 부를 것 같습니다. 예전에 축구장에를 다녔는데 저도 그때는 떼창을 한 것 같아요. 떠올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 읽다 보면 저도 야구장에 가고 싶어져요.
전문 용어 라인업 송도 배웁니다.
제목이 왜 목뼈일까 궁금했는데 이유를 알고는 빵 터졌습니다.
'마음 약해서'를 창작해서 부르는 엄마 모습도 그려 보고요.
선생님 글, 매번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하하, 목뼈! 저도 좋아해요. 잘 읽었습니다.
재목처럼 글도 재미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진짜 많이 먹었습니다. 닭 목아지. 저에게도 효과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작은딸이 다녀갔군요. 응원으로 뜨거워진 야구장의 분위기가 잘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글을 써서 그곳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
기아 경기할 때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야구장 가고 싶어지네요. 닭 목뼈가 효과 있으면 천 만원어치는 먹을 수 있겠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