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70) /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Route of Santiago de Compostela; 1993)
아라곤 자치 지방[Autonomous Communities of Aragon], 나베레(Navarre), 라 리요야(La Rioja), 카스티야-레온(Castile-Leon)과 갈리시아(Galicia)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1987년 유럽회의에서 처음으로 선포한 유럽의 문화 여행로(旅行路)이다. 아직까지도 순례자들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순례길을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종교 건물과 민간 건물들이 1,800개 정도 자리 잡고 있다. 이 길은 중세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와 그 외 유럽 지역들이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유럽 전역의 사회 계층과 국가를 넘어 유럽인들에게 영향을 준 기독교 신앙의 힘을 보여 주는 증거로서 남아 있다.
중세 서유럽의 정신과 문화생활에서 순례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 또 이 길을 따라서 순례자들의 정신적인 안정과 육체적 휴식을 위한 시설들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는 교회와 민간 건물, 크고 작은 집, 토목 건축물 등의 형태로 중요한 기록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중세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와 그 외 유럽 지역들이 양방향에서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유럽 어디에도 이 정도의 규모와 지속성을 갖는 기독교 순례길은 없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다른 두 곳의 순례길은 파편처럼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위대한 역사적・정신적 가치 외에도 이 순례길은 유럽의 예술과 건축이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단면을 뚜렷하고 완벽하게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다른 순례길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사도의 무덤[Apostle's tomb]’ 아래에서 만나게 되며, 마찬가지로 여러 예술품과 건축물이 이 순례길과 연결되어 있다. 이 순례길의 곳곳에는 아주 많은 문화유산들이 풍부하게 흩어져 있는데 이들은 로마네스크 예술의 탄생을 대표한다. 또한 이후의 고딕 양식의 성당들과 여러 수도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위대한 사도 성 야고보[St. James]가 스페인에 복음을 전파한 장소를 찾는 순례의 전통은 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기경 성 제롬[St. Jerome]은 사도의 라틴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일을 다룬 전례서)>에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했던 장소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Acts of the Apostles]>에 의하면 유대 왕인 헤롯 아그리파(Herod Agrippa)에 의해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순교한 야고보는 유대 왕인 헤롯 아그리파의 명령으로 예루살렘에서 순교했고, 이곳 스페인으로 옮겨져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콤포스텔라에서 사도의 무덤이 발견된 시기는 9세기 이후였다. 8세기 말에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의 지원으로 스페인 북부의 기독교 왕국인 갈리시아(Galicia) 왕국과 아스투리아스(Asturias) 왕국이 합병했는데 이슬람 세력에 들어 있던 이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세계로 재정복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 세계로 재정복하는 과정은 1492년까지 계속되었다. 기독교 왕국은 이슬람의 위협에 대항해 성 야고보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떠받들었다. 알폰소 2세(Alfonso II)의 통치 아래 있던 9세기 초,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교구에 은둔해 있던 페라요(Pelayo)와 토데미로(Todemiro) 주교가 한 작은 성지에서 사도의 무덤을 발견했다.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서유럽 전체로 빠르게 퍼져 갔으며, 무덤이 발견된 이곳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잇는 순례길과 비교될 만한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10세기 초까지 투르(Tours), 리모주(Limoges), 르퓌(Le Puy)에서 프랑스의 길을 따라 스페인을 향해 순례가 이어졌다. 또 공식적인 순례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안정을 위한 시설들이 점차 들어섰다. 콤포스텔라에서도 사도의 유적을 보관하기 위한 새 바실리카와 교회, 예배당,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 병원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12세기에 순례길은 서유럽 전역에서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사용하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139년에는 최초의 순례길 안내서가 칼릭스틴(Calixtine) 필사본 제5권에 등장했다. 칼릭스틴 본이므로 칼릭스투스 2세(Calixtus II) 교황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순례자인 아이메릭 피카우드(Aymeric Picaud)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스페인 북부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정확한 여정과 순례에 도움을 주는 시설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박한 예배당과 숙박 시설부터 웅장한 성당까지 이곳의 유적들은 로마네스크에서 바로크 시대 이후까지의 예술과 건축의 발전상을 반영하고 있다. 또 중세 시대의 신앙과 문화 사이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설명해 준다. 순례길은 상업 목적의 경로로도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이 길을 따라 형성된 많은 도시들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순례길은 두 곳을 통해 들어가는데 각각 론세스바예스[발카를로스(Valcarlos) 길]와 칸프랑크[Canfranc; 솜포트(Somport) 길]이다. 두 길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바로 앞의 팜플로나(Pamplona) 서쪽에서 합쳐진다. 5개의 자치주와 166개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가는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 1,800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 현대적인 길과 고대의 길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주춤하기는 했지만 ‘산티아고로의 순례’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87년에 유럽 회의는 이곳을 ‘유럽의 첫 번째 문화 여행로’로 선포했으며, 그 후 이곳은 중세의 영적 역할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매년 수천 명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이 순례길을 따라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