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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입한 신해철의 인터뷰집인 쾌변독설을 이제서야 마쳤다.
그 특유의 현란함과 지적인 느낌, 달변이 가득한 책...
사실 그의 세계관과 정치적 입장은 대체로 설득력이 있어서 대부분 공감하는
바이지만 대마초에 대한 그의 입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논쟁은 대마가 중독성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강변하면서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국가가 왜 그런 자유까지 제한하느냐로 이어지는데...
머 여러가지 입장차가 있을 수 있겠으나, 마약류에 대해서는 도저히 개인의 자유
같은 걸 끌어들일 계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가 선을 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말과 나치의 기억을 통해서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조금 침해되더라도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으로 남길 바라는 게 개인적 바램인터... 그로 인한 부작용은
대마초 피울 수 있는 자유의 상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미국이, 남미 국가들이, 그리고 미얀마 같은 국가들이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아... 얘기가 옆으로 완전 샜다.
그나저나 그를 서태지와 함께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혁신의 양대 아이콘으로 보는 견해가 많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하면 서태지는 신해철에 대긴 좀 무리라는 생각이다.
물론 서태지가 좀 더 대중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서 더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에서 손을 들어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음악적 완성도와 "특히" 가사의 품격에
있어서는 신해철의 (양)손을 들어 주고 싶다. 음악적 측면에서 서태지가 동시대의
최신 트렌드를 자신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이면서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면
신해철은 동서고금 팝/락 음악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완성도 있게 쌓아 나아갔다.
또한 서태지가 앨범마다 특정 장르에 focusing하여 음악을 소개했다면, 신해철은 저걸
다 어떻게 소화할까 싶을 정도로 메탈, 발라드, 아트락, 랩,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질높은 완성체로 공급해 주었다.
한편으로 서태지가 소박하고 간결한 가사로 시대상을 녹이려는 시도였다면, 신해철은
가사 하나하나가 정갈한 시구이자 문학작품이었다. 후반기 들면서 가사가 거칠어 지긴
했지만 초창기 그의 가사는 사랑 노래를 부를 때나 시대의 아픔을 터치할 때나 내면적
고민이나 성찰을 토로할 때나 단어 하나의 낭비도 없이 깔끔하고 품격이 있었다.
현란한 미사어구 없이 말이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한 때는 서태지에게서는 천재 뮤지션 보다는 천재 사업가
라는 이미지가 풍겨진다고 생각했다. 그 지독한 신비주의하며 철저하게 개인을 감추면서
필요할 때(?) 한번씩 음반을 내는 모습이 지나치게 전략적으로 비쳐진달까...
그 반대 쪽에서 신해철은 음악적으로나 음악외적인 측면에서나 그야말로 온 몸으로 부딪치고
싸우고 깨지고 망가지면서 옳다고 믿는 길을 찾아 왔다. 그래서 이런저런 비난도 많이
받아왔고, 오해도 받아 왔으리라. 키스케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으음..
(서태지와 신해철과의 비교를 팬심으로 정리하다 보니 혹시 서태지에 대한 폄하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런 의도는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길... 객관적으로 볼 때 서태지도 아주 훌륭한
뮤지션이라 생각한다.)
신해철/넥스트의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가지고 그냥 몇 마디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려서 일단 넥스트와 OST 앨범을 먼저 정리하고
솔로 앨범은 나중에 기회가 되는대로... (먼가 바뀐 거 같지만... 으음...)
BAND
[무한궤도]
에코만 이빠이 들어가고 사운드가 명징하지 못 한 것이 레코딩 측면에서는 빵점
이지만, 곡들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시작부터 한 곡 버릴 것이 없는 수작을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이 앨범의 키보드는 재벌 효성가의 둘째 아들로 얼마전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수놓았던 조현문 변호사이다. (한편 신해철은 효성의 라이벌 그룹이자
내가 다니는 회사인 K사의 오너 외가쪽 친척이라는 소문도 있다.)
[넥스트 1집(Home)]
좋은 곡들도 많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앨범의 완성도는 왠지 약간 아쉽다.
하지만, 다른 앨범들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인형의 기사', '아버지와 나'와
같은 수작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테크노와 락을 중심으로 앨범이 구성되어
있으며 어설프나마 컨셉 구성을 실험해 본 앨범. 개인적으로는 '영원히' 라는
곡이 맘에 짠하게 남는다. 20대 초반에 듣는 이 곡의 가사가 어찌나 뭉클하던지...
[넥스트 2집(Return of the NEXT:The Being)]
신해철의 앨범 중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이 앨범이 되겠지. 본격적인 컨셉앨범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으로 놀라울 정도의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 껍질의 파괴와
같은 헤비메탈 넘버(라고는 하지만 이 곡에서도 프로그레시브의 향기가 난다)라든지
The Ocean, The Dreamer와 같은 완연한 아트록까지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 있었구나 라는 감탄을 자아냈던 기억이 난다.
[넥스트 3집(Return of the NEXT:The World)
원래는 더블 앨범으로 기획된 2집이 너무 지연되면서 우선 part1개념으로 한장만
먼저 발매되고, part2가 3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이 앨범에서 사운드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실험을 한다. 작품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사운드의 퀄러티를 높일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고. 이런 시도는 앨범에
그대로 반영되어 정말 뇌를 녹일 것 같은 환상적인 사운드가 뿜어져 나오는가
하면 반면 곡이나 앨범의 완성도는 전 앨범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사운드 프로덕션 수준이 해외에 비해 턱도 없이 떨어졌던 당시 국내
필드에서 외국 어느 앨범보다도 우수한 사운드를 자랑하던 기념비적인 앨범.
[Here I stand for you(싱글)]
싱글시장이 없이 앨범만 팔리는 독특한 국내 시장에서 싱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에
대한 테스트지로써 발매한 음반.
Here I stnad for you라는 걸출한 러브 송과 국악을 접목시킨 Arirang의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해철은 Komerican blues, Go with the light 등에서도 락과 국악의
성공적 접목을 이루어 냈는데, 완성도면에서(곡 전체에 좀 더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느낌) 개인적으로 서태지의 시도보다 신해철 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넥스트 4집(Lagenca)]
이번에는 TV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독특한 개념의 앨범..
대규모 오케스트라 작업이 더해진 앨범으로 여전히 수준 높은 곡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The Hero 같은 경우는 기존 가요(?)들의 일반적인 곡의 틀과는 다른 독특한
구성으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었다.
[넥스트 5집(개한민국)]
또 다른 실험. 이번에는 저예산의 홈 레코딩 설비로 어느 정도 수준의 음반까지
제작 가능할 지 가보는 실험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무명의 후배들도 큰 비용
없이도 음반을 제작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였다. 그렇기에 거친
사운드야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물이지만, 가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바뀐 모습이다.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표방하는 가사는 거칠기 그지 없다. 어쩌면 이러한 노골적인
비판적 태도에는 이런 형태의 가사가 더 효과적이라 판단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호불호는 개인에 따라 갈리겠지만, 예전의 그 깔끔한 High quality 지향적 태도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넥스트 5.5집(Regame?)]
기존 발표곡 중 사운드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곡들을 선정해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하고 사운드를 보강한 리메이크 앨범. 편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The Dreamer 같이 이미 완성도가 최고로 달했던 곡은 건들이지 말고 그대로
두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넥스트 6집(666)]
만들다 만 작업을 그냥 발매한 듯한 느낌이어서 뒷맛이 안 좋은 앨범.
인트로를 빼면 4곡 25분 러닝타임의 EP 수준의 분량도 그렇지만, 앨범 부클릿은
작업 초기의 컨셉 스케치가 그대로 덜렁 실려있다. 이전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장난기가 노골적으로 스며 나오고 있으며 왠지 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느낌.
그럼에도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다.
SOUNDTRACK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
솔직히 앨범은 정말 허술하다. OST임에도 앨범 전체의 통일성도 느낄 수 없고,
곡 간 수준 편차도 심하다. 앨범 부클릿도 너무 엉성하고...
다만 엄정화가 '눈동자'라는 기똥찬 댄스곡으로 데뷔하고 있고 틱톡의
'설레이는 소년처럼'이라는 잘 만들어진 슈가팝이 귀를 끈다.
또한 World에 수록된 Komerican blues의 원형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정글 스토리(1996)]
오로라도 언급하고 종태도 얘기를 했지만, 이 곡은 본인에게도 신해철의 Top3 안에
드는 앨범이다. '절망에 관하여'나 '70년대에 바침'과 같은 신해철 특유의 Killing track
뿐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영국의 2인조 Shampoo를 연상시키는 '아주 가끔은' 같은
신선한 여성 Rap 곡도 훌륭하다. 특히 이 곡의 가사가 신해철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항정신 그러나 방종이나 무절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
아주 간결하지만 명징한 메세지, 그 와중에도 절대 놓치지 않는 깔끔한 감각.
정말 멋진 곡들이고 정말 멋진 앨범이다.
[세기말(2000)]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우울한 인더스트리얼적인 느낌의 연주곡들로 채워져 있다.
딱히 별다른 코멘트를 남길 것이 없다...
[쏜다(2007)]
신해철은 앨범의 Producing과 Mixing을 맡았고, 넥스트는 The generation crush
2007이라는 곡을 싣고 있다. 재밌게도 이 곡은 완연히 Linkin Park의 내음을 풍긴다.^^
그럼에도 곡은 좋다. 넥스트의 다른 멤버들이나 신해철 회사의 소속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이 앨범은 연주곡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80년대의 락/메틀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데(솔직히 내 취향이다) 그 질은 솔직히 상당히 실망스럽다.
음악적으로나 가사 측면에 있어서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
어떤 곡은 Friday afternoon 딱 그 수준이다.
첫댓글 가사가 참 좋은 곡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글쵸, 가끔씩 음악이 아니라 가사 때문에 전율이 일곤 한다는^^
데뷰후 10년간이 경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최고의전성기였죠 넥스트해산이후 번돈만까먹구 경제적으로 힘들어진게 그를죽음까지 간거같네요
성남시에 신해철기념관(?)이 생길 예정이라는데, 성남에 신해철 작업실이 있기때문..
건물 1층은 신해철 기념관으로.. 2,3층은 저렴하게 이용할수 있는 연습실등을 만든다고..
아직 성남시에서 신해철 유족과 동료가수들과 논의중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