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의 문이란 문을 모두 활짝 열어 놓았고, 어린아이는 벌거벗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날 대낮, 할 일 없는 한량들이 낮부터 술을 마시기 위해 모였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는 주점이나 기루가 아니므로 술을 밖에서 구해오고 있다.
댓돌 위에는 남자 신발 두 켤레와 여자 신발 한 켤레만 있다.
맨상투 바람의 사내의 신발은 반대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여인의 신발은 댓돌 위에 놓여 있고, 앉아 있는 위치도 문간 쪽이다.
기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세 있는 대갓집도 아닌, 초가에 남자 셋이 술 마시는 자리에 나올 만큼이면 이 여인도 전성기는 지난 한물 간 기녀로 소리를 팔며 술자리의 흥취나 돋우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여인일 터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술병을 들고 오는 여인은 이 집의 주인이고, 맨상투 남자의 내연녀이며 아이의 엄마일 것이다.
혜원은 익살스럽게 벌거벗은 아이 아랫도리에 수직선을 그어 놓아 이 아이가 계집아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아이의 미래도 두 여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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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감댁에 열다섯살 찬모 삼례가 새로 들어왔다.
사돈의 팔촌쯤 되는 먼 친척의 연줄로 고래 대궐같은 권대감댁 새 식구가 된 것이다.
쉰이 넘은 나이 지긋한 찬모 밑에서 아궁이에 불 지피고 우물에서 물 길어 오고 설거지하는 게 우선 삼례의 할 일이다.
가끔씩 부엌에 들어오는 안방마님은 마흔이 될까 말까 한 나이에 살결은 백옥처럼 희고, 짙은 눈썹에 사슴처럼 큰 눈, 오뚝 솟은 코, 도톰한 입술하며, 흑단 같은 머리는 동백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흘렀다.
“삼례라 했지.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느냐?”
“없습니다, 마님.”
안방마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떤 날은 안방에 불려 가 먹을 갈았다.
자개장 옆으로 병풍이 둘러쳐졌고 화장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화사하고 드넓은 안방에서 노란 장판 위 보료에 앉은 안방마님은 넓은 전지 위에 사군자 수묵을 쳤다.
권대감이 퇴청해서 귀가할 때면 안방마님은 물론이고 온 집안 하인들이 대문 옆에 늘어서 허리를 굽혔다.
권대감은 사랑방에 정좌하고 글을 읽고 손님을 맞았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권대감은 살림 차려 준 소실도 없는지 퇴청하면 곧바로 집으로 오고 안방마님과 금슬도 남달랐다.
어떤 날은 후원 정자에서 안방마님과 가끔씩 웃음을 섞어 도란도란 끝없이 얘기꽃을 피웠다.
권대감은 매일 밤 사랑방에서 잤다.
장맛비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밤.
글을 읽던 권대감이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도 금슬 좋던 권대감과 안방마님이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안방과는 마루를 두고 마주 보고 있던 찬모방에서 삼례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세웠다.
“이 쌍년이.
철썩!”
“죽여라 죽여.
이 개 같은 놈아!”
그 점잖고 그 품위 있는 대감마님 내외가 이런 쌍소리를 하다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이 처마의 낙수 소리도 아랑곳없이 고래고래 터져 나오고, 자지러지는 비명 끝에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술상이 마당에 날아가 그릇과 호리병과 소반이 박살났다.
삼례가 비를 흠뻑 맞으며 마당에 나가 널브러진 술상을 챙기고 방으로 들어오자 늙은 찬모는 킬킬 웃었다.
‘이 여자도 미쳤나?’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살인이 날듯이 싸우던 안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덜컥 겁이 난 삼례가 고양이 걸음으로 마루를 건너 안방 문 앞에 가서 귀를 기울였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던 삼례는 또 한번 놀랐다.
촛불도 끄지 않은 채 아수라장이 된 안방에서 대감과 마님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두몸이 한몸이 되어 가쁜 숨을 토하고 있었다.
온 방을 헤집으며 온갖 자세로 뒹굴더니 마침내 큰 숨을 토하고 쓰러졌다.
삼례의 놀람은 끝이 없었다.
“부인, 다친 데는 없소?”
“오늘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엔 더 때려 주십시오.
대감.”
이튿날,
늙은 찬모가 삼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저잣거리에 가서 소반 하나와 호리병 하나, 막술잔 하나 사오너라.
시장에서 제일 싼 걸로.”
첫댓글
맷정도 정 이라더니만 그런 취향을 가진이가 있는 모양 입니다 ~ ㅎㅎ ㅎ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