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 금지'된 천 년 절터로 가는 숨겨진 산길남원시 주천면 파근사지 답사 여행
23.07.04 17:29ll
지리산 국립공원의 입구인 남원시 구룡계곡의 육모정에서 백두대간 고개인 정령치 방향의 주천면 고기리 내기 마을에서 비지정문화재 승탑재 안내판을 확인하며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로 2.1km를 한 시간 걸어서 마을 뒷산 중턱의 파근사지(波根寺址)에 도착했다.
남원시 요천 물의 근원을 이루는 계곡에 사찰이 위치하여 파근사라고 했다. 이 옛 절터로 가는 산길은 지리산 국립공원의 비지정 탐방로여서 자연공원법에 의해 통행이 금지된 구간이므로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남원불교대학에서 2일 오전에 지리산불교역사탐방 행사로 남원시 주천면의 파근사지를 답사하였다. 이날 행사는 조용섭 지리산향토사연구자가 30여 명의 참가자를 인솔하여 안내하고 파근사의 유래 등을 해설하였다.
소나무 숲 아래 오솔길은 낙엽이 쌓여 부엽토가 푹신하다. 여름의 무더위를 헤치고 숲속 그늘의 청량한 솔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만난다.
산죽 군락을 지나고 낙엽송 그늘 바위에 잎 모양이 5cm 크기로 널찍한 엽상 이끼의 생기가 푸르다. 노각나무꽃이 산길에 많이 떨어져 있어 나무를 올려다보아도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노각나무꽃과 산목련꽃과 형태와 하얀색이 비슷한데 노각나무꽃이 크기가 약간 작다.
옛 절터 어귀에 큼지막한 바위가 있고 반듯한 표면 중앙에는 맷돌 아랫돌이 파여 있는데 직경이 60cm 정도 된다. 이렇게 우람한 바위 맷돌을 활용하여 절집 식구들의 음식을 장만했던 절집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승탑이 아랫돌은 서 있고 윗돌은 누워있다. 아랫돌은 높이 80cm 정도이고 윗면 중심에 사리함을 넣었던 구멍이 선명하고, 윗돌은 높이 120cm 정도인데 연꽃무늬가 아로새겨졌고 범어(梵語) 문자를 돌려가며 새겼다. 윗돌의 세로로 깨어진 부분에 惠菴堂(혜암당) 글씨가 보여 이 유물이 혜암스님의 승탑임을 확인한다.
주초 지름이 1.1m이고 기둥 아랫면이 접촉하는 주초의 상부는 원형으로 직경이 60cm 크기이다. 이 주초로서 사찰 건물의 기둥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폐사지의 넓은 공터에 키 높은 교목들이 들어서고 그늘에는 풀숲이 무성하며 여기저기 축대 등 건물터 흔적이 산재하고 기와 조각이 지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파근사가 지리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선 국사가 신라 말기에 남원부의 지세를 비보 풍수로 이곳에 파근사 사찰을 세웠고, 이 사찰은 천 년을 이어오다가 19세기 말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폐사되기 이전에 이곳 파근사는 상당한 규모였고 덕망 높은 스님들도 상주하였다. 파근사는 지리산 남서부 권역 사찰들의 중심에 있어서 감로사(현재 천은사), 파근사와 실상사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에서 18세기에 활동한 서산 대사의 법맥을 이은 고승들의 행적을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서산 대사가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지리산 일대에서 수도라고 포교를 하였다.
정유재란 때 활동했던 이 지역 출신인 조경남 의병장의 <난중잡록>에 파근사가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지역에 머물던 승려들이 남원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승병들도 이곳 파근사에 머물며 남원성 전투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폐허된 옛 절터를 답사하며 느낀 허허로운 마음을 산길에서 야생화를 감상하며 애써 잊었다. 꽃창포는 붓꽃과 여러해살이풀로 물가나 습한 곳을 좋아한다. 자주색으로 우아하면서도 흐드러진 꽃잎의 큼지막한 자주색 꽃송이가 녹색의 풀숲을 배경으로 강렬한 인상이다.
콩과식물 낙엽관목인 싸리나무는 짙은 분홍색 꽃 꼬투리가 화려한 듯 소박하고 향토적이다. 이 나무는 옛날에 마른 싸릿대를 엮어 싸리비 빗자루를 만들었고, 회초리로 종아리에 매를 맞으며 성장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다.
싸리나무꽃은 줄기에 조록조록 붙어서 많이 피어 꿀벌의 밀원이 된다. 젓가락이 필요할 때 싸리나무는 안성맞춤의 젓가락으로 가능했고, 불을 피울 때 연기가 거의 안 나고 잘 타서 땔나무로도 유용했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품고 있는 들녘인 운봉고원은 바다에서 먼 내륙이므로 생활필수품인 소금 조달이 힘든 일이었다. 운봉고원의 백성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능선의 고개를 넘어 경남 하동이나 전남 구례의 장터에 가서 소금을 구해왔다.
그렇게 지리산을 넘는 고갯길로 운봉고원의 모데미 마을에서 파근사가 있었던 이곳을 지나 백두대간 능선인 만복대와 영제봉 사이의 다름재를 넘는 12km의 험한 산길이면 구례 산동에 도착했다. 모데미 마을에서 주천 원평 마을을 지나 숙성치를 넘어 산동에 이르는 22km의 산길도 있었다.
운봉고원에서 지리산 고개를 넘을 때는 콩을 짐 지고 가서 구례에서 팔고 소금을 사서 돌아왔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지를 넘어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하던 차마고도(茶馬古道)와 같은 기능으로 소금과 콩 짐을 지고 지리산을 넘는 길을 이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천 년 동안 지리산의 고개를 넘는 길에 파근사가 포근한 쉼터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파근사에서 지리산 다름재를 넘어 구례 산동으로 이어지는 천 년의 지리산 고갯길은 인적이 끊겨 숲으로 덮여가며 잊히고 있다. 모데미 마을에서 숙성치를 넘어 구례 산동에 이르는 길은 지리산 둘레길로서 잘 정비된 걷기 코스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