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오안(五眼)
1940년에 발간된 원보산의 '금강 반야 바라밀경 下'11p에는 '五眼'이 나온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불안(佛眼) 법안(法眼)을 말한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고 하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안목과 소견이 제일이다. 그 안목이니 소견이니 하는 것은 견해일 수도 있고, 사상일 수도 있고, 생각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육안(肉眼)은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소위 살덩어리로 된 눈이다. 사물을 볼 줄 아는 눈이다. 사물을 보는데 육안이 있어야 된다. 육안이 없으면 사물을 못 본다.
천안(天眼)은 멀리 내다보는 눈이다. 육신통(六神通)중에 천안통이라 해서 거리나 눈앞에 막힌 것에 상관없이 투시해 볼 줄 아는 눈이다. 아무리 막혀 있어도 다 보는 눈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초능력적인 입장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혜안(慧眼)은 지혜의 눈이다. 존재의 실상과 이치를 제대로 꿰뚫어 보는 눈이다. 일상생활에도 ‘그 사람 혜안이 있다’ 라는 표현을 쓴다. 지혜의 눈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물과 사건과 세상과 인간의 실상들을 사실 그대로 볼 줄 알고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천안이 있고, 세상과 사람의 실상과 이치 돌아가는 것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불안(佛眼)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는 눈’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처 눈에는 부처로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부처가 되어야 부처로 볼 줄 아는 눈이 있다. 보통사람들도 ‘아, 그 사람은 부처님이야’이런 표현들을 간혹 하지 않는가?
불안(佛眼)을 ‘사람을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는 눈’이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이론적으로라도 자꾸『법화경』의 사상이라든지, 대승불교, 선불교의 궁극적인 사상을 보고 듣고 배우고 깊이 사유하여 그것들이 우리의 사상이 되고 살림살이가 될 때, 백퍼센트 불안(佛眼)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사람을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는 힘’이 조금씩은 생길 것이다.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나름대로 생긴다.
또 법안(法眼)은 진리를 볼 줄 아는 눈이다. 여기서 법은 진리다. 육안이나 천안이나 혜안이나 불안이나 법안이나, 이 진리를 볼 줄 아는 눈까지도 따지고 보면 다 서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또 세분하면 이렇게 나누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성계가 무학대사가 오는 날 무학대사를 이렇게 놀렸다. "대사께선 돼지 같이 생기셨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말했다. "제 눈엔 임금께서 부처님으로 보이십니다" 그러니 무안한 이성계가 물어보길 "저는 대사께 돼지라고 하였는데 대사께선 어찌 그렇게 말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무학대사가 말하길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입니다."
-------------------------
옮겨온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