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
한편, 조조(曹操)의 명령(命令)으로 천자(天子) 명의(名義)로 보내진 조서(詔書)를 받은 기주(冀州)의 원소(袁紹)는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입을 열어 말한다.
"조정(朝廷)에서 조서(詔書)를 반포하여 나를 대장군에 봉하고 무정후(務政後) 작위를 내린다고 하오. 더구나 기주와 청주, 심지어는 우리가 얻으려 해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병주까지 모두 나한테 내린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말한 원소(袁紹)는 잠시 좌중을 돌아보며, 이어서 말한다.
"말들 해보시오. 조서(詔書)를 받아야 하오, 말아야 하오?"
그러자 백관들의 좌중에서는 한탄의 말이 나온다.
"아이고, 저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게 말이야 큰 걱정이군!"
그러나 무장 쪽에서는 한 장수가 일어나 읍하며 아뢴다.
"주공의 대장군 승차를 경하 드립니다. 조서(詔書)는 받아야 합니다."하고 말한다.
그러자 백관 쪽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지금 천도(遷都)한지도 얼마 안 되어 천자께서도 지치신 몸이신데. 그 조서(詔書)를 직접 쓰셨을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여기까지 듣고만 있던 모사(謨士) 허유(許攸)가 말을 자르며 앞으로 나선다.
"주공, 소관이 생각하건대 겉으로 보기에 그 조서(詔書)는 선심(善心)을 쓰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 속으로는 악의가 다분히 숨겨져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허유(許攸)의 말을 듣고, 원소(袁紹)는 물론 좌중(座中)의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은 허유(許攸)의 다음 말에 촉각(觸角)을 곤두세웠다.
좌중(座中)을 돌아 보며, 잠시 뜸을 들인 허유(許攸)의 말이 이어진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조서(詔書)가 비록 황제의 명의로 반포되었다고는 하나 조서 안에 글자 하나하나에는 조조(曹操)의 간교한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조서(詔書)를 받들어 감사의 뜻을 표하게 되면 주공께서는 조조(曹操)가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諸侯)들을 호령(號令)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고, 조서(詔書)를 받들지 않으시면 신하의 도리를 어기고 천자와 조정(朝廷)에 대항하는 역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조서를 받는다 해도 만약 또 다른 조서가 오면 양식을 바치라고 하던가 철군을 하라거나 심지어 영토(領土)를 내놓으라고 하면 그때 주공께서는 받들겠습니까, 말겠습니까? 지금은 조서(詔書)를 받들든 안 받들든 곤란(困難)해지십니다. 조조(曹操)의 간교(奸巧)한 계략에 이미 넘어가신 겁니다!"
그러자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원소의 입에서는 <으음 !"> 하는 짧은 한탄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 나서 이런 한탄조의 말을 하였다.
"내가 왜 그때 선생 말을 안 들었던지.... 내가 만일 그때 천자를 내 손에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諸侯)들을 호령(號令)하는 사람은 조조(曹操)가 아니고 나였을 것인데.... 내 군사(軍事)들은 조조(曹操)보다 이십만이나 더 많고, 영토(領土 )역시 두 배나 더 크지 않은가 말이야! 이곳으로도 천자가 천도(遷都)할 수가 있었지 않았느냐 말이야, 으이그!... 순간의 판단 착오로 조조(曹操)한테 기선도 뺏기고 놈의 간교(奸巧)한 계략(計略) 따위에 놀아나게 되었으니, 허참!..."
그러자 원소(袁紹)의 한탄조(恨歎調)의 말을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듣던 허유(許攸)가, 헛!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문을 연다.
"아쉽군요. 그때 제가 천자를 구해야 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 저에게 그러지 않았습니까? <허유(許攸)의 말이 타당치 않고 염려가 지나치다>고...."
허유(許攸)는 이렇게 말을 하는 도중에 눈을 돌려 모사 전풍(田豊)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미 허유(許攸)의 말을 안절부절하며 듣던 전풍(田豊)이 말을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瞬間), 원소(袁紹)가 두렁 두렁 한 눈을 치켜뜨고 손을 들어 허유(許攸)를 말린다.
"그 일은 내가 망설이다가 그르친 거요. 다른 대신과는 무관하오."
원소(袁紹)는 단언하듯이 말한 뒤에, 이번에는 사정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 그러면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자 허유(許攸)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공, 신이 단언컨대 오 년 안에 주공과 조조는 생사의 전투를 벌이게 되실 것입니다." 하고 잘라 말했다.
"으잉 그렇게나 빨리?"
원소(袁紹)가 양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허유(許攸)는,
"주공, 생각해 보십시오. 조조(曹操)가 왜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고 다른 제후들에게는 관작(官爵)을 내리면서 왜 자기 자신은 마다했겠습니까? 그의 생각은 이미 자기가 천자고, 천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의 대권(大權)을 쥔 마당에 관작(官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상, 지금의 조조(曹操)는 그가 소유(所有)한 영토(領土)의 넓이는 물론 군사의 수에 있어서도 주공에 못 미칩니다. 그러나 조조는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는 이점을 충분히 이용하여 한 걸음씩 성장할 것입니다. 주공, 조조(曹操)와 동탁(董卓)을 비교해 보았을 때 조조(曹操)가 백배(百倍)는 더 교할(狡猾)할 것입니다. 속으로는 천하(天下)를 노리는 것이지요."
허유(許攸)의 구구절절 옳은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원소(袁紹)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한때는 내 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내 눈치나 보던 놈이, 이젠 나와 천하를 두고 다투게 되었다고? 흥!"
하고 심히 불쾌한 내심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허유(許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드러운 소리로,
"주공, 저의 직언을 용서하십시오. 앞으로 조조는 주공과 천하를 쟁취할 뿐만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허유(許攸)의 입바른 소리를 들은 원소(袁紹)가 순간,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으흠! 내가 이 자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그 순간 문무백관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소(袁紹)의 격앙된 명령이 이어졌다.
"조조가 내게 도전할 능력이 생기기 전에 내가 먼저 조조를 쳐서 자웅(雌雄)을 가리겠다. 명을 내린다! 추수가 끝나면 십오 만 병력을 출병해서 먼저 유주와 병주를 공격한다. 그리고 군사를 재정비하여 조조를 멸하겠다.!"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두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며 일제히 외친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허유(許攸)도 두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며 한마디 더 하였다.
"주공, 그렇게만 하신다면 주공은 천하의 주인이 되실 겁니다."
허도로 천도를 감행한 이후, 천자를 수중에 넣다시피한 조조는 각지 제후들에게 천자의 명의로 조서를 보낸 얼마 후, 후당에 연락을 베풀고 문무백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 자리에서 조조(曹操)는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여포(呂布)가 지금 서주(徐州)의 유비(劉備)에게 몸을 의탁(依託)하고 있다는데 그들이 힘을 합하여 우리를 쳐오면 매우 귀찮은 일이오. 그것을 미연에 방비할 수 있는 계책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허저가 이내 이렇게 말한다.
"주상! 저에게 정병 오만을 주시면 유비와 여포의 머리를 베어와 주상께 바치겠습니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 모사 순욱이 소리 내어 웃는다.
"하하하, 장군의 용맹은 익히 알지만 어찌 어려운 방법을 쓰려고 합니까?"
"순욱(荀彧)! 남의 말을 비웃지 말고 좋은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조조가 정색을 하며 묻자 순욱은,
"계책이 없는 것은 아니오나, 이제 막 천도(遷都)를 단행하여 민심이 안정되기도 전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것은 맞는 말씀이오. 그렇다고 염려스러운 적을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되잖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싸우지 아니하고서도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를 쓴다면 주공의 걱정을 단박에 덜어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호경식지계 라니?"
"가령 두 마리의 굶주린 호랑이가 있다고 하십시다. 그런 경우 누가 먹기 좋은 한 덩이 고기를 던져주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한 덩이 고기를 위해 두 마리의 호랑이가 크게 싸워서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긴 호랑이도 반드시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분명하니 그러면 호랑이 가죽 두어 장쯤 얻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이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써야 되겠소?"
"유현덕(劉玄德)은 지금 서주(徐州)를 잠령(占領)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조칙(詔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용해 천자(天子)의 명의(名義)로 칙사(勅使)를 보내어 서주(徐州) 태수(太守)로 봉(封)하는 동시(同時)에 여포(呂布)를 죽여 없애라는 밀명(密命)을 별도(別途)로 내리면 될 것입니다."
"음... 그럴듯한 계책(計策)이오!"
"그 계책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그대로 우리에게 유리하고 만약 그 계책이 실패하더라도 여포가 유현덕을 죽일 것이므로 이래저래 우리에게는 유리하게 될 것입니다."
"순욱(荀彧)? 당신은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구먼... 그러면 구체적인 계획은 나하고 다시 의논합시다."
조조는 좌중을 휘돌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편, 서주에서는 천자(天子)의 칙사가 도착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천자(天子)의 조서(詔書)가 내렸으니, 편 장군 유비(劉備)는 조서를 받들라!"
유비(劉備)가 황급히 달려 나와 두 손을 합하여 예를 보인 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유비(劉備)가 조서(詔書)를 받드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칙사(勅使)는 조서(詔書)를 큰 소리로 읽어 내린다.
"천명을 이어 받은 황제(皇帝)께서 이르시길 유비(劉備)가 서주(徐州)를 영도(領導)한 이래 나라에 충성(忠誠)하고 백성(百姓)들이 태평(太平하)여 짐(朕)이 기뻐하노라 이에 유비(劉備)를 서주 목에 봉하고, 서주(徐州) 육군(六郡)을 다스리며 정동 장군 의성 정후(征東將軍 宜城亭侯)에 봉하노라. 이상!"
그러자 유비(劉備)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읍한 뒤 다시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칙사(勅使)가 유비(劉備)에게 다가와 천자(天子)의 조서(詔書)를 건네주며 나지막한 소리로,
"서주목(徐州牧)에 오르신 것에 대해 경하 드리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장군께 별도로 밀서(密書)를 보내셨습니다. 장군께서는 그대로 시행하십시오." 하며 천자(天子)의 조서(詔書)와는 별도의 밀서(密書)를 유비(劉備)에게 건네주었다.
유비(劉備)는 다시 황급(遑急)히 허리를 숙이며 칙사(勅使)가 내민 밀서(密書)를 두 손으로 받아 쥐었다.
삼국지 - 79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