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1박2일간 강원도 '홍천'에 다녀왔다.
경사가 가파른 산에서 '칡'을 캤다.
수확량이 꽤 많았다.
안 쓰던 근육을 집중적으로 쓴 탓에 모든 관절과 근육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강원도 지역은 땅 속에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아 작업이 어렵고 힘들었다.
매번 그랬다.
그래도 모두가 '칡캐기'에 베테랑들이라 자신의 몫을 척척 잘 해냈다.
예닐곱 시간 가량 '칡캐기' 과업을 잘 마쳤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서산으로 해가 저물 때였다.
그래도 절기 상 '춘분'을 앞두고 있는 싯점이라 겨울보다 낮이 길어져 다행이었다.
삽과 곡괭이, 낫, 톱, 지렛대를 내려놓고 족대와 바케스를 챙겨 '내촌천'으로 달렸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천렵'을 끝내야 했다.
천변 응달엔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그대로 있었다.
역시 강원도는 강원도였다.
신발을 신고 바지를 입은 상태 그대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얼음장 같이 차가웠지만 소싯적으로 돌아간 듯 즐겁고 재미졌다.
중년 남자들 입꼬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회탈'로 돌변했다.
1급수의 맑은 계곡물이었다.
물고기도 많았다.
약 40여 분간 꽤 많은 성과를 올렸다.
연신 키들거리며 족대질을 해댔다.
세 명이 '어탕국수'를 먹기엔 충분한 양이라고 판단하여 천렵을 끝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농장으로 돌아와서 고기도 굽고, '어탕국수'도 만들었다.
산삼주, 소주, 막걸리, 노고방주 등 우리가 준비한 주종은 다양했다.
자신이 원하는 주종으로,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홀작거리며 정담을 이어갔다.
고된 작업 후에 먹는 식사라 맛도 끝내줬다.
살살 녹았다.
식사 후엔 커피까지 마셨다.
그렇게 장작불을 쪼이며 밤이 깊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소중한 우정과 깊은 배려에 서로 감사를 건넸다.
한 친구가 3월 말일부로 정년을 맞는다.
근무는 14일자로 이미 끝났고 보름간은 '공로휴가'였다.
35년 6개월.
정말로 긴 세월이었다.
그 친구의 한결같은 성실과 열정에 힘찬 박수를 보냈고 몇 번의 건배도 이어졌다.
친구를 위해 뭔가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었다.
'산'을 좋아하고, '철인3종경기'를 즐겨하는 친구였다.
''후지산 등정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남정네 세 명은 현장에서 바로 의기투합했다.
10초도 안 걸렸다.
금년 여름에 3,776 미터의 '후지산'을 함께 등정할 예정이다.
땀과 고행, 두려움과 낯섦에 맞서야만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생기는 법이다.
우정도, 추억도, 미래도 열심히 준비하고 왕성한 실행력으로 엮어내야만 결실이 생긴다.
다정함도 지능이고 추억도 능력이다.
모두 환갑을 넘긴 친구들이라, 성찰과 피드백이 없는 과거는 막연한 미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은 성찬인데 빈약한 행동으로는 우리네 인생을 향기롭게 연출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주지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지속적 고행'과 '간헐적 행복'을 위해 더 정진하자고 했다.
친구들의 관심과 배려에 늘 감사할 뿐이었다.
우정은 깊은 산 속 오솔길 같은 것이다.
자주 내왕하지 않으면 수풀에 덮혀 끝내 길이 사라지고 만다.
무릇 인간관계란 십중팔구 그런 것이다.
헌신과 배려가 없으면 부서진 파도의 포말같이 금세 휘발하며 그것으로 끝이다.
한번 갈라진 틈새는 다시 봉합하기 어렵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것이 또한 '인간관계'다.
주말에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매 순간 동고동락한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랑과 이해심이 깊은 사람들.
그런 이들로 인해 사는 맛이 난다.
한여름, '후지산' 등정을 위해 조금씩 몸을 만들어야겠다.
땀의 의미와 자연의 이치를 잘 헤아릴 줄 아는 멋진 사내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