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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영광보다 크리라(1)
학 2:1-9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1)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1-9 / [새 성전의 영광과 축복] ㄴ) 다리오왕 2년 7월 21일에 여호와께서 예언자 학개에게 다시 이런 말씀을 시키셨다. (ㄴ. 같은 해 10월 17일) 2)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살아 남은 백성 전체에게 이같이 전하여라. 3) `이 성전이 본래 얼마나 장엄하고 화려하였던가를 본 사람이 너희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느냐? 그런데 너희가 지금 여기서 보는 성전은 얼마나 초라하냐? 이것은 너희가 보기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4) 그렇지만 스룹바벨아, 실망하지 말아라!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실망하지 말아라! 이 땅의 모든 백성들아, 실망하지 말아라! 힘을 내어라! 너희는 계속 일을 하여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었던 계약과 같이, 나의 신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전혀 두려워하지 말아라.' 6)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를 뒤흔들고 7) 또 내가 세계 만민들을 소름이 끼치도록 공포에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들의 보물을 모두 이곳으로 가져오도록 하겠다. 나의 집이 화려하게 장식되도록 내가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8)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은과 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9) 이 성전의 장래 영광이 본래의 영광보다 더 클 것이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또 네가 이곳에서 내 백성에게 평화를 주겠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본문은 학개 선지자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고 초라한 새 성전을 보며 낙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새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1-5) 성전 재건 공사가 재개 된 지 한 달이 지난 주전 520년 7월 21일에 말씀이 선포됩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해 스룹바벨 성전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이에 낙담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지금 재건되는 성전이 외형적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출애굽 할 때 그들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확인시켜 주십니다(출 29:45, 46; 24:10). 그리고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위로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결심하고 나아가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이 나를 낙담시키고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마음을 스스로 굳세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6-9) 1차적으로는 스룹바벨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입니다. 이에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성전의 원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탄생할 우주적 교회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과 성도가 영원히 함께 거할 메시야 왕국의 영광에 대한 예언입니다.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힘겹고 때로는 낙망도 하며 두려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오실 만국의 보배 되시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합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머무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사람이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의 참 모습입니다.
적용: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 모습이,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 낙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의 위로와 격려로 스스로 굳세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 영광이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말하고 나중 영광이란 지금 재건하고 있는 성전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초적인 의미에서는 성전 건물의 외적인 화려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에 가득한 것을 뜻한 것이므로, 솔로몬 성전을 가득 채웠던 하나님 임재의 영광보다 더욱 뛰어난 어떤 하나님의 임재가 이 성전에 있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신약성경이 말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되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성전의 기능을 완성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설 교 >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해 주십니다
학 2장 6~9절 / 임현수목사
지난 몇주간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IMF이후 가장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때 우리를 위로한 분들이 있습니다. {올림픽 우승한국 야구팀, 올림픽 축구팀, 골프 신동 신지애,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선수} 이 분들의 선전은 애국하는 모습이었습니다…잠간 감격의 순간들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어 냈을 때 온 국민이 열광하던 일이 생각 납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어떤 사람들은 히딩크 감독을 대통령으로 내보내자고 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 히딩크의 지도력과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한국, 호주, 러시아의 중간급 축구를 국제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린 사람입니다.
미국전에서 0―1로 뒤진 상태에서 이을용이 페넉티 킥을 실축했고, 이탈리아와 사활을 건 16강전에서도 경기초반 안정환이 역시 페넉티 킥을 실축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에 주어진 두번의 페넉티 킥의 천금같은 기회를 나란히 날려버린 역적이 되었지만 그러나 곧 바로 어시스트와 결승골을 각각 만들어낸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을용 선수가 페넉티 킥에 실축을 했어도 감독은 끝까지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페넉티 킥에 실축을 했어도 역시 끝까지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인정해준 감독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선수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고 결국 실축했던 선수들이 전부 일을 해냈습니다. 설기현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감독이 실망하고, 윽박지르고 야단치고, 화를 발했다면 더 기가 죽고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끝까지 '인정해 주는 것' 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딩크 신화의 비밀입니다. 인정해 주는 것 입니다…. 인정 받는것…
폴란드의 시골뜨기 청년 하나가 불란서 파리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맨 앞줄에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였던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이 앉아 있었는데 슈만은 이 청년의 연주가 끝나자 마자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모두들 모자를 벗으십시오. 천재가 출현했습니다.”이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 무명의 청년 피아니스트를 일약 세계적인 대 음악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무명의 청년이 바로 쇼팽(Frdric Franois Chopin 1810∼1849) 이었습니다.
슈만이 그를 인정하는 한마디가 위대한 쇼팽을 만드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인정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가 중요한 것 입니다.
예를 들어서…음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제 노래를 듣고 저에게 찾아와서 “와~우 노래 소리가 정말 환상적이네요!”라고 말한다면,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정말 내 노래 실력이 인정받고 있구나!’하고 착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의 대가이신 박재훈 목사님께서 “참 잘했어. 임목사는 성악을 했으면 좋을 뻔 했어.”라는 칭찬을 듣는다면, 그때 느끼는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자신을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인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서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에 의해서 인정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남들이 우리를 인정해 주면 우리는 그것을 쉽게 극복하고 그 일을 잘해 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행해나갈 때 악한 마귀는 집요하게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마귀의 손길에서 우리를 막아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친히 이루어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일을 잘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런 저런 장애로 인해서 계속 힘들어 하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역사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친히 정리해주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힘들어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 >는 제목을 단 것 입니다. 옆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6절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목적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안팎에서 그들을 방해했습니다. 밖으로는 못된 무리를 시켜서 그들을 대적하며 성전 건축을 막고자 했습니다. 안으로는 그들의 마음속에 실망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옛날의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지금 자기들이 짓고 있는 성전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낙심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낙심하지 말아라. 스스로 굳세게 해서 힘껏 일하여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내가 언약한대로 반드시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나의 신이 너희와 함께 하면서 성전 건축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게 하리라."
그러고 난 뒤에 하나님은 또다시 오늘 본문에서 "조금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 언제라도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바다를 진동시키셨습니다. 그러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은 강을 진동시키셨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진동시키셨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하나님은 하늘을 진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양이 기브온에 머물게 하시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원하시면 언제라도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은 아폴로 15호를 타고서 인류역사상 네 번째로 달에 착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사람들은 달에 착륙했더라도 그저 걸어서 달 표면을 탐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임스 어윈은 최초로 "라버(Rover)"라고 불리는 월면차를 타고서 반경 10km의 넓은 지역을 두루 탐사를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폴로 15호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였습니다.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우주선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지구의 중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대형 낙하산 세 개가 펼쳐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지점에서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 개의 낙하산 가운데 두 개만 펴지고 하나는 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스위치를 작동해도 펴지지 않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나사 본부에 급히 연락을 했습니다. 나사 본부에서도 나름대로 비상 조치를 취했지만 웬일인지 마지막 한 개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이제는 아폴로 15호가 곧 박살이 날 것이라고 공포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우주선 안에서 알게 된 제임스 어윈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아멘."
기도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땅에서 회오리바람이 올라왔습니다. 그 효과가 대형 낙하산 한 개를 편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15호는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일을 계기로 제임스 어윈은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1972년과 1980년에 그는 우리나라에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의 간증을 직접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저는 그때 그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셔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있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곧 우리를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의 두 눈으로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목적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만국을 진동시키십니까? 만국의 보배를 끌어다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짓고 있는 초라해 보이는 성전을 영광으로 충만케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금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금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또 우리에게서 은금을 취하여 가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 솔로몬 성전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했습니까? 성전의 내소와 외소, 온 전을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기명들도 금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때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해서 하늘과 땅과 육지를 진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멸하시기 위해서 만국을 진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때 그토록이나 웅장하고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성전에 있는 모든 보배들을 빼앗아서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어려운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은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보배들을 다시금 되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할 만큼 초라해 보이는 성전을 다시금 영화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은금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은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물질이 있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 건축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슥4:6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물질의 능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이 역사 하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는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시는 하나님, 만국을 진동시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도 천하만국을 진동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진동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면 삭개오의 마음을 진동시켜 재산의 절반도 내놓게 하십니다. 고레스라는 왕의 마음을 진동시켜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십니다.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내시 재무장관의 마음을 진동시켜 아프리카 복음화의 주역으로 삼으십니다. 두로왕 히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다윗을 도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보내 성전을 건축케 하십니다.
은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움켜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천하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여시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쌓아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를 두 가지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짓고 있는 성전을 위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그 옛날 이스라엘이 빼앗겼던 모든 보배가 다시금 이스라엘로 되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그대로 문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학개서의 배경이 되는 에스라서의 몇 구절을 읽어봅니다.
에스라6:8∼10절입니다. 이때는 바사왕 다리오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사왕 다리오의 마음을 진동시키셨습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풍성하게 주도록 했습니다.
"내가 또 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서편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저희로 지체치 않게 하라 또 그 수용물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소청대로 영락없이 날마다 주어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에스라7:15의 말씀입니다. 바사왕 다리오의 마음을 진동시키신 하나님께서 그 뒤를 이은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마음도 진동시키셨습니다. 그리해서 성전 건축을 위한 은금을 이스라엘로 보내게 햇습니다.
"왕과 모사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 돈으로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전 단 위에 드리고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선히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지며 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만국의 보배가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그 뒤에 헤롯 왕조 때 이르러서 제2의 성전, 곧 스룹바벨 성전은 엄청난 규모로 확대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예루살렘 성 전체의 1/4 크기를 차지 했습니다. 성전 입구에는 대리석으로 큰 기둥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지붕은 황금색으로 칠했습니다. 그래서 태양 빛으로 성전 전체가 황금처럼 휘황찬란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짓는 데만도 80년이 걸렸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고서 너무나도 감탄한 나머지 "무한대의 풍부함으로 건축한 집"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보기 전에는 화려한 건축물을 논하지 말라."
막13:1에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당시의 성전을 보면서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시옵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전의 주인이시요, 성전보다 더 크시며, 만국의 보배가운데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성전을 찾아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영광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 전의 나중 영광은 이전보다 더 크게 된 것입니다.
둘째,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평강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문은 닫아 두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도 하늘의 문을 닫았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한재가 임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황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성전의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도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여실 것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한 때, 적절한 양으로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기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평강의 근원이요, 샘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구 소련이 몰락을 당했습니까? 러시아의 대문호 솔제니친이 내린 결론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라도 경제도 몰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들이 다시 성전의 문을 여니까 서서히 나라의 사정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왜 북한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중의 하나가 되었습니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기 바랍니다. 해답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성전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해야 나라와 경제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십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윤택하게 해 드립시오.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같은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평강의 사람이 됩니다. 시편 122:6에도 보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가 평안하게 하는 평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든든히 서 가고 부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복 중의 복은 평강의 복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천하만국을 진동시키시며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욱더 사랑하십시오. 소중히 여기십시오.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심정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은금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하늘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줄 믿습니다.
기도: 힘들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낙심은 금물 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친히 돌보십니다. 염려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조금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 시키실 것입니다. 필요하면 만국을 진동 시키실 것입니다.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라 하십니다. 만국의 보배가 이르게 할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면 이전 영광보다 더 큰 영광과 축복이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환난이 없는 평강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축복의 전당
학 2장 6~9절 / 김홍도목사
미국의 부호이며 자선가인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 씨가 그 옛날 뉴욕에 리버사이드 쳐취(Riverside church)라는 크고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하고 봉헌예배를 드릴 때 한 사람이 “보이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아닌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큰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비평하자 록펠러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의 옷이 비록 아버지의 몸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몸을 담으실 옷을 값지게 잘 지어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입니다. 오늘날도 크리스천이란 이름은 가졌지만 참 믿음을 갖지 못했거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를 서슴없이 비판하고 악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분은 큰 예배당을 짓는 대신에 그 돈을 자선사업에 쓰는 것이 낫지 않느냐, 왜 비생산적인 데 낭비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많이 지어질수록 그 나라는 복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있던 교회도 다 파괴해 버리고 50년 동안 교회다운 예배당을 하나도 짓지 않았는데 북한이 잘 삽니까? 일 년에 100만 명씩 굶어 죽지 않습니까? 교회(예배당)는 축복의 전당입니다. 많을수록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 어떤 이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악평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교회 다니면서도 그만큼 나쁘다면 그가 예수님 믿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나빴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그 정도로 나쁜 것입니다.
◎ 어떤 분은 바닷물은 염분이 2.5%밖에 안 되도 바다생물이 썩지 않는데 한국에 크리스천이 25%나 되는데 왜 한국에 부정부패가 많고 죄악이 많으냐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을 듣고 한국교회가 반성도 해야겠지만 교회가 많아도 죄악이 근절되지는 않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가 영도할 때도 별별 죄가 많았고, 성군 다윗이 통치할 때도 별별 죄가 많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33년 동안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온갖 죄악이 창궐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말세가 되면 죄악은 더욱 관영해졌다가 예수님이 죄악을 심판하러 재림하셔서 마귀를 무저갱에 가둔 다음에야 죄악이 근절되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져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 후에 영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그나마도 교회가 많이 있지 않았다면 벌써 공산화 되어서 북한과 같이 처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축복의 전당입니다.
1. 교회는 축복의 전당
교회가 왜 그렇게 중요하고 축복의 전당이라고 할까요? ①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진 곳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하시고 또 18~19절에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는데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릅니다. 천주교는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가진 제 1대 교황이고 2대, 3대 계속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거의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중심인 개신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인간 베드로나 교황이 천국 열쇠를 가지고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몇 절 후에, 16장 23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책망하시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16:23)라고 꾸짖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은 거의 다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전도를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진 축복의 전당입니다. 이보다 귀한 기관이 어디 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②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서 예배행위보다 귀중하고 가치 있는 행위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 1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도 해체되고 신앙생활도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예배의 장소입니다.
③ 교회는 기도하는 집
하나님과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 13절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에도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할 때, 역대하 6장 40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대하7:12,7:15)라고 말씀했습니다. 나라가 환난을 당하거나 재앙이 임하거나 흉년이 들거나 할 때 성전에서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④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집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집이 교회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복된 집이 어디 있겠습니까?
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장소
하나님의 영광은 일류대학이라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국회의사당이라고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학개 2장 7절에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고, 역대하 7장 1~2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라고 했습니다.
⑥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
1980년대의 통계입니다만 한국의 복지시설 즉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장애인시설, 정신박약아시설이 당시 455개 인데 그 중의 84%를 교회가 세웠고, 운영하는 기관들입니다. 약 20년 전에 한국 교회 전체 예산이 4,400억 원이라는 발표가 나자 전 매스컴이 한국 교회를 치고, 까고, 혹평했습니다. 그해 술 먹어 없앤 돈이 2조 3천억 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술 마셔 없애는 돈이 20조가 넘으리라고 예상합니다. 사탄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혹평하고 파괴하려고 듭니다.
최근에 소위 기독교 방송국(CBS)이라는 데서 “덧글 토론”의 주제가 “목사가 없어야 교회가 산다?”였습니다. 제목부터가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계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 34장 5절에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13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방향으로 나갈 때 “목사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것으로 대응하는 말도 오고갔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방법의 일환이 목사무용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온 세계를 테러와 잔인한 공산주의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것도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돈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라고 쓰여 있습니다. 미국의 중심지인 워싱턴 DC에는 초대형 공원이 있고 그 한편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 있습니다. 이 조형물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과 그 옆에는 이런 글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조국이 요구했을 때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응해준 우리의 아들, 딸들을 존경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뭉클한 말입니까? 그리고 한국전 참전자의 사망자가 54,246명이고 부상자까지 다 합하면 15만 명이나 됩니다. 이것이 다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이 된 나라이기 때문이며 교회의 영향력입니다.
⑦ 교회는 축복의 전당(God's blessing house)
교회보다 더 큰 축복의 기관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문명하고 잘 사는 선진국가는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교회가 많은 나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투옥한 공산주의국가들은 예외 없이 인권이 유린당하고 처참하게 가난한 나라들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84편 4~5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피로 사신 몸 된 교회보다 더 큰 축복의 기관과 장소는 없습니다.
교부 Tertullian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크리스천으로서 올바르게 양육될 수가 없습니다.
2. 올바른 교회생활
어느 분이 “교회생활을 바로하면 2대, 3대 내려가면 그 후손이 반드시 복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교회생활은 어때야 합니까.
①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84편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요한복음 2장 17절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신자가 정상적인 크리스천입니다. 주일날 예배 시간이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온 것처럼 귀찮아하면 정상적인 신자가 아닙니다.
②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 믿는 것이 본업이고 세상 직업은 부업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내 집보다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전에 황해도 재령읍에 정찬유 장로라는 분이 있었는데 주일성수도 잘하고 십일조생활도 잘해서 물질의 축복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2층 양옥집을 잘 지으려고 설계사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책망하시는데 “네 집은 그렇게 화려하게 지으면서 내 집은 어찌하여 양철집으로 내버려 두느냐”라고 하시더랍니다.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나서 무릎 꿇고 회개하면서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해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내일부터 곧 하나님이 계실 거룩한 집부터 건축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건축한 예배당이 “재령 동부 예배당”인데 그의 아들들도 서울에 와서 축복받고 잘 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③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해야 합니다
이번에 중고등부 수련회에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정말 감사하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중고등부 교사들이 276명이나 올라와서 얼마나 구슬땀을 흘리면서 수고하는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기 위해 휴가를 내서 그 고생하는 것 볼 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주일마다 수고하는 교사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고하는 차량 안내원들, 예배 안내원들, 식당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수고하는 여선교회원들, 찬양으로 은혜 끼치고 영광 돌리는 각 성가대원들, 참으로 그 수고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학개서에 보면 성전 건축할 때가 되었는데도 자기들의 집만 잘 짓고 가꾸면서 성전 건축은 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을 보시고 학개 1장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장 19절에는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영광으로 전에 충만케 하라
학 2장 6~9절 / 김남수목사
지난 주간에 우리는 새 성전에 입당을 했습니다.
감격 속에 우리는 예배를 드렸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느 분은 그렇게 사모하고 기다리던 이 성전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감격이 왔다고 합니다. 또 어느 분은 세상을 떠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름답게 지어진 하나님의 성전을 보고 죽겠다고 결심을 하고, 기도한 대로 성전을 보신 감격에 눈물을 흘리신 분도 계십니다. 어느 분은 자기 집을 크게 짓고 들어가는 즐거움보다 더 감격스럽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면서 춤을 추듯, 사모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 성경 본문은 학개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과 그 영광에 관계된 하나님의 말씀을 저들에게 전하는 내용을 지난 주와 이번 주에 이어 말씀 드립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시작했다가 사마리아 인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것을 핑계로 해서 아직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 해 성전 건축을 중지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을 짓는데,더 바빠져서 하나님의 집을 14년이나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사람 학개가 지적을 했습니다. 너의 소위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주면서, 그 전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므로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고, 입어도 따듯하지 아니하고,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농사를 지어도 수확이 풍성하지 않고, 저축을 해도 저축이 되지 않는 이러한 현실의 원인과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의 관심을 버리고, 세상의 관심을 두고 바빴다는 지적을 해 주십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너희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성전을 지으라. 이로 인하여 내가 기뻐하고, 영광을 얻으리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자체가 축복이고, 그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감당할 때, 상급도 받고 부수적으로 세상에 빠지지 않는 축복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변명이 많이 생기고, 이유가 있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그만 두거나 기피하거나 거부하거나, 외면하면, 결국 우리는 세상으로 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결국 이로 인하여 세상에 빠지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세속화 되고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도 축복이 되는 것이고, 교회도 잘 되고, 우리도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우리 손으로, 우리 집은 하나님의 손으로 이것이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꾀를 쓰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축복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하면 막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높이시기로 하면 낮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그 자체가 축복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이 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열심히 하면 안될 것입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세상 일은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도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많습니다. 바쁘다, 자리를 잡아야 된다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또 신앙적인 이유도 많습니다. 교회를 잘 안 나오시는 분들은 교회에 대한 이유가 많습니다. 목사가 싫다든지, 성가대, 장로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등 이유가 많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 손해입니다. 마귀가 신앙 좋은 사람 넘어뜨리는 기교가 여러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돈도 있는데, 마지막에 보면 작은핀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해, 자꾸 물어보니 중요한 것이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라 가르쳐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물어 보니, 그것은 섭섭함이라고 했습니다. 괜히 섭섭한 생각을 들게 하고, 그 곳을 자꾸 치면, 조그만 틈이 생기는데, 틈에 섭섭함을 넣어 주고 닫아 버리면 속에서 끓어 올라, 불평, 불만, 시기 등 온갖 소리가 나와 결국 그것이 신앙을 넘어뜨린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뿔 달리고 과격하게 온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고 섭섭하게 만드는 것을 사람들은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섭섭함 때문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주님만 바라보고, 사람은 바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지, 세상의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를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피 흘림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았으면 감사하고, 그 이상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 받은 이상의 감사가 어디 있으며 구원 받은 것과 비교해서 그것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해야 될 그만한 일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쁨이 되시고, 하나님의 일이 잘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일을 한 없이 축복하셔서, 가정도, 사업도 자녀도 잘되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은혜를 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 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14년 동안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을 했지만, 수확과 결실이 없고, 결국 영적으로 공허하고, 심령이 피폐하고 메말라서 허덕이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 사실을 지적했다는 것이 오늘 드리려는 말씀의 서론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학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학개는 이스라엘의 젊은 청년으로 포로로 잡혀 가서 아마 바벨론에서 1차 귀환 때 돌아 온 사람인 듯 싶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포로 귀환 할 때 와서 성전 건축을 도운 사람이고, 말라기는 느헤미야와 약 100년 후에 성전 건축 이후에 성전 벽을 쌓았던 사람들 인 것입니다.
학개, 스가랴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을 보고, 전의 영광, 지금의 영광, 그리고 앞으로의 영광을 잘 비교 할 수 있었는데, 오늘 이 말씀은 전의 영광스럽고 찬란한 무너지기 전의 성전을 보았는데, 그 후의 수리한 성전은 그만큼 영광이 못돼서 별로 전의 영광과 비교해 찬란 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후에 오는 영광스러운 성전은 이 전 것보다 영광스럽고 찬란함이 있을 것이다 라는 설명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마치 예루살렘이 신부가 신랑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찬란한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서 강림하실 그 날에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즐거워하는 영원한 성전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설명을 하면서 이제 장차 머지않아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 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 시킬 것이요,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하고 예언한 말씀을 생각합니다.
이 영광스럽고 찬란한 예배당,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에, 그 기다림만큼 성전의 찬란한 영광스러움에 감격해서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공중에서 재림하실 때,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아름답고 영원한 성전으로 우리를 안내하시고, 인도 해 주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그 영광을 미리 소개했던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모형이고,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 구약입니다. 구약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오실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 그 영광과 찬란한 하나님의 집을 미리 예언하고 보았던 것을 주석가들은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불가능하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지만, 믿음이 있는 분들이 인내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신 분들은 그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지, 인내의 결과, 기도의 응답이 무엇인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영광스러운 성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7장1절을 보면,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이 약속을 우리가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눈물과 인내와 기도로 그 날을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성전의 영광은 장차 올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땅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떠한 건물이나 성전에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의 거룩한 성전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강림 하시는 날, 우리를 부르시는 날,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 날을 기다리고,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일수록 자기를 지켜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어떤 분이 만일 사랑하는 이와 약혼을 하고 미국에 와서 안정을 갖고 결혼 준비를 해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혼녀와 약속을 하고 미국에 왔다고 합시다.
미국에 온 사람이나, 한국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날까지 잘 정숙하고, 신실하게 있어 어려움과 유혹과 시험이 오고, 문제가 있어도 잘 견뎌 내고, 참아 내어 기다린다면 어느 날 신랑이 왔을 때, 아름답게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미국에 간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아무렇게나 지내고 있는다면 신랑이 왔을 때 신실하게 행복하고 찬란한 결혼을 올릴 수 없을 겁니다. 또 미국에 와서 마음이 변하여 이곳 저곳에 다니면서 제 멋대로 생활을 하다가 결혼식을 올리겠다면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Since we have these promises, dear friends, let us purify ourselves from everything that contaminates body and sprit, perfecting holiness out of reverence for God.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완전한 성결, 완전한 거룩함을 영과 몸이 그리스도의 날에 점도 흠도 없이 보전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 상태를 변질시키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contaminate, 이것은 공해에 변질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오염 될 수 있습니다. 물이 오염 될 수 있습니다. 세균과 오물, 어떤 화학 물질에 변질 되고 오염되면contaminate 라고 합니다. Purify는 순결, 깨끗함을 뜻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나타 나실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전을 기다리기 때문에 우리는 purify하고, 주님을 위해서 변질되었던 것을 다시 decontaminate 해서 순결해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아 오신 분 축하합니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 격려 합니다. 그렇게 살아 가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날마다 힘쓰고 애쓰는 분들께 격려를 드립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지고, 이미 어떤 일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purify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깨끗한 심정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순결한 성도의 자세에서 넘어지고 쓰러졌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책임일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그 영광스러운 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애쓰고 힘써야 될 줄 믿습니다.
기도: 영광의 그 날을 바라 봅니다. 찬란한 주의 강림하심과 거룩한 주님의 성전을 바라 봅니다. 땅에 세운 성전도 우리 마음에 감격과 눈물을 짓고 영광스러운 주의 빛을 보게 하셨는데,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스러운 아름다운 성전,하늘의 집이 우리들의 눈에 약속대로 바라보고, 그 곳을 향해서 땅에서 살 동안 인내와 눈물을 소망과 인내로 그 길을 잘 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 2장 1~9절 / 피영민목사
서론
학개서는 네 개의 메시지로 구성되어있는데 이것은 날짜별로 구분됩니다. 학개서를 보면 날짜가 네 번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학 1:1). “칠월 곧 그 달 이십일일에” (학 2:1).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학 2:10). “그 달 이십사일에” (학 2:20). 다리오 왕 2년 6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약 석 달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네 개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주로 야단치는 내용입니다. 성전이 황무한데 너희는 판벽한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가하냐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야단치십니다. 하지만 두 번째 메시지는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2년 뒤인 B.C. 536년 성전 지대를 놓았습니다. 성전 지대가 놓이자 사마리아인들이 집요하고 간교하게 방해하여 16년 동안이나 성전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백성들 마음속에는 절망감만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에스겔 36장 28~30절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의 궁핍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포로 되었다가 해방되어 돌아온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2등으로 사랑하고 1등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크게 화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1등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0). 우리 성도들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면 그때부터 축복이 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나가는데도 축복을 받지 못하시는 분은 하나님을 2등, 3등으로 두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1등으로 사랑하면 그때부터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오게 된다는 것이 학개와 스가랴의 기본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간교한 방해에 부딪혀 낙심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격려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 2:9). 지금은 물질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는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명한 해가 솟는 것처럼 점점 좋아질 존재입니다. 제가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시면 점점 영광스런 축복이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학개 선지자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Ⅰ. 성전건축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책망하는 의미가 있다
바벨론에서 포로 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예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새로 지으려는 스룹바벨 성전이 보잘것없이 보였습니다.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스 3:12). 성전 지대를 놓고 보니까 예전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런 태도를 책망하였습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더 크게 될 것이니 성전이 작다고 멸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슥 4:10). 노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많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컸습니다. 청장년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고 모범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 가운데 있던 노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얽매여서 과거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노인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청장년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정적인 태도를 책망하고 고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조금도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는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빠져 봤자 얼마나 나빠질 것이며 나빠져서 죽는다고 해도 죽으면 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망할 수도 없고 실패할 수도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정적인 태도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부정적인 태도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성전을 짓는데 돈이 없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재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너희가 성전을 짓겠다고 순종만 하면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건축헌금을 하라고 해서 하지 마시고 건축헌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십시오. 그러면 그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물질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제가 제 친구 목사의 예를 가끔 말씀드리는데 그 친구는 낡은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까 고속도로 중간에서 고장도 나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성도 한 사람이 차를 사줘서 차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니까 교회 성도 중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고를 쳐서 감옥에 들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그런 상황에서도 교회를 건축하는데 헌금도 내고 싶고 목사님 차도 바꿔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산에 살던 이 사람을 창원으로 이사 가게 하셔서 보신탕집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공단이 많이 지어져서 근로자들이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게 되었는지 돈을 세지도 못할 만큼 매일 돈이 쌓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목사님 차도 사드리고 건축헌금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돈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돈이 들어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져가시면 있는 돈도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 성전을 짓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태도는 버리시고 성전건축을 하고 교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축복해달라고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부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솔로몬과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왕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슥 4:7).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슥 4:9). 스룹바벨이나 솔로몬이나 모두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들이고 결국 성전을 짓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셔서 하시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고 지도력 약하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유다 백성의 노인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해 새로 짓는 성전의 영광이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영광이 성전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7). 성전에 만국의 보배가 이르러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국의 보배는 영어로 ‘the desired of all nations’입니다. 모든 나라, 열방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존재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은 나중에 헤롯 왕이 개축해서 헤롯 성전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꾼들 다 내쫓으시고 그곳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영광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영광인 것입니다.
Ⅱ. 성전건축을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긍정적인 태도가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서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세 가지 긍정적인 태도를 요구합니다.
첫째,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4). 여기서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메시지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누구에게 말씀하시느냐? 행정적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영적인 지도자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강한 분을 모시면 강해집니다. 깡패들도 그러지 않습니까? 내가 모시는 분이 누군 줄 아느냐면서 자기가 모시는 두목이 강하면 어깨에 힘주고 다닙니다. 자기가 모시는 분이 강하면 자신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시는 분은 몇 년 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정치 지도자도 아니고 또 사업을 하다가 불경기가 되면 망할지도 모르는 재벌도 아닙니다. 우리가 모시는 분은 영생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어떤 일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모시는 분이 위대하므로 우리도 목에 힘주고 다녀도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메시지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약에도 있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 6:10). 약한 마음은 먹지 마십시오. 병이 오면 병원에도 가고 기도로 고치십시오. 사업에 어려움이 오면 이제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망하는 사업은 접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스스로 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바쁘게 일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학 2:4). 스스로 굳세게 하여도 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스스로 굳세게 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일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번다고 부자가 됩니까?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아도 일한 것보다 더 축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주일 내내 일하시는 분들은 결국 병에 걸리게 되고 죽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식일 하루는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바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기도도 해야 되고 밥도 해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해야 되기 때문에 게으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17). 하나님께서도 일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일하시므로 성도들도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냐며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왜 할 일이 없습니까? 기도가 얼마나 큰일인 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또 사업을 부지런히 해서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설거지하는 것, 전도하는 것, 청소하는 것 모두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강하게 하여 복음 증거를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 2:5). 반대자나 권력자 혹은 일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딱 한 분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정말 많습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예측하지 못하는 사고와 재난에 대한 두려움, 사업, 자녀들의 미래 등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하나님 한 분인 줄로 믿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보면 로렌스 경의 기념비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에 어떤 류의 사람도 거의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렌스 경이 누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Ⅲ. 성전건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공급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신을 공급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의 공급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학 2:5). 주의 일은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신으로는 됩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우리에게 성령께서 함께 계시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평강을 공급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성신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또 성전건축에 필요한 은, 금, 재물도 모두 주실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강하게 하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신약시대에 성전건축을 명령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령받은 성전은 영적인 성전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교회의 확장, 전도와 선교를 명령받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너희는 이 세상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전도와 선교를 통해 영적인 성전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예배당은 엄격한 의미에서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전건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예배당 건축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목회를 처음 할 때는 교회 자체에 투자하는 일보다 밖으로 선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예산의 50%를 전부 선교와 전도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면서 교회가 부흥되었는데 사람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니까 땅을 사서 예배당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땅값이 너무 올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전도나 선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건축을 위해 예산을 비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목회와 미국에서의 목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속도가 빠른 사람이 부흥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두 빠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속도전으로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속도가 빠른 것보다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땅이 좁기 때문에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속도가 빠른 교회가 아니라 공간을 차지한 교회가 부흥합니다.
우리는 선교하고 전도하라는 엄위한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선교와 전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교와 전도의 센터가 되는 예배당 건축하는 일도 중요한 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 하나님께서 예배당 건축의 귀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는 버리고 모두 긍정적인 태도로 이 사명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약한 태도는 버리고 스스로 강하게 하시고 게으른 태도는 버리고 스스로 부지런하게 일하시며 두려워하는 태도는 버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을 사모하는가?
학개 2장 1-9절 / 조영식목사(김포한신교회)
들어가는 글
8월 셋째 주일입니다. 폭염이 멈추지 않고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에어컨 별명을 굴비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굴비를 매달라 놓고 바라만 보면서 밥을 먹었듯이 전기 누진세가 무서워서 에어컨을 틀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니까 굴비라고 한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70년 지난 후에 그들이 포로에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을 추진하였지만 주변의 방해로 14년 동안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개 선지자의 독려로 중단 되었던 성전을 다시 재건하였습니다(학1:14).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재건한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실망한 이유를 깨닫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스스로 굳세게 하였는가?
한국 교회가 교회를 건축할 때 학개서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러나 학개서는 교회를 절대로 크게 지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한 달 만에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학1:15,2:1). 그 이유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그 재료로 성전을 건축하였기 때문입니다(학1:8). 그리고 한 달 만에 건축한 성전을 7년 동안 건축했던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보니 너무나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3절). 우리들은 이전 것보다도 나중 것을 더 크게 지어야 하나님이 복 주셨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 것보다도 더 작고 초라하게 지은 성전을 보면서 무척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망하는 그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를 세 번씩이나 말씀하였습니다(4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전의 겉모양을 보면서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솔로몬의 성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이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대단한 건물의 교회를 다닐지라도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규모나 숫자 등의 겉모습만을 보면서 평가를 합니다.
저도 어떤 교회가 좋은 장소에 세워져서 많은 숫자가 모인다는 소문을 들으면 괜히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규모에 위축되지 않고 굳세게 하라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그러므로 성전의 겉모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이 없으면 언제나 겉모습을 비교하면서 위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믿음이 있으면 겉모습에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 굳세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겉모습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굳세게 세워가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세상의 핍박을 받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핍박이 두려워서 14년 동안 성전 공사를 중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변에서 많은 핍박이 있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민족들의 비난 때문에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굳세게 해야 합니다.
저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위축되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흔들인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사람들 눈치 보다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향을 잡을 때 믿음을 굳세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비난에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굳세게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들도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굳게 세워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자신들의 초라한 존재를 보면서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정착하여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이루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보니 현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현실에서의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라한 처지에 있는 백성들에게 마지막 세 번째는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라고 동사를 다르게 말씀합니다(4절). 그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계속하여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5절). 포로생활에도 머물렀던 성령님은 돌아와서도 계속 그들 가운데 머물러 계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 할수록 저의 무능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무능한 모습에 위축되어서 초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능하고 초라할지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머물며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까? 성령님은 제가 무능하고 초라한 존재가 맞지만 그럴수록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하늘에 소망을 굳세게 가져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건강할 때도 머물러 계신 성령님은 연약해졌을 때도 계속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세상에서 무능하고 초라해질수록 성령의 위로로 하늘에 소망을 굳세게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무엇을 사모하는가?
교회는 겉모습보다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영광이 충만해야 합니다(7절). 어떻게 주님의 영광의 충만할 수 있습니까? 학개 선지자는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고 합니다(7절). 하나님의 성전은 보배를 통해서 영광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입니다. 오직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본문에서 ‘보배’ 위에 작은 1자를 표시하고 아래에서 ‘사모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7절). 그러므로 우리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이 보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합니다(시73:25). 하늘과 땅에서 오직 사모하는 보배가 주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떨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보배가 된다면 천국에 대해서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보배가 된다면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보다도 다른 것을 사모하기 때문에 시험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고난이 있다면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지에 대한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오직 보배 되신 주님만을 사모함으로 믿음을 굳세게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겉모습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믿음을 굳세게 세우며, 사람들의 말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방향을 잡아서 믿음을 굳세게 세우며, 세상에서 무능하고 초라해질수록 성령의 위로로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하소서. 하늘과 땅에서 오직 사모하는 보배는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모든 교회들이 오직 보배 되신 예수님만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격려, 힘을 내어라!
학 2:1-9 / 송기성목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입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은 격려와 칭찬에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기를 꺾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하다가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학2:4)라며 직접 격려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하심은 ‛용기를 내라’ (Take courage.), ‛힘을 내라’ (Be strong.)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성전보수 기공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격려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격려, 힘을 내어라! 우리가 힘을 내도록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 하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재건코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가서 방해에 부딪쳐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스4:1,23)그리고 공사가 중단된 채 15년이 지났습니다. (스4:1,23)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였건만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습니다. (학1:2,9) 성전 재건, 곧 하나님의 일을 중단한 15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침체와 경제적인 빈핍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들로서는 성전 재건의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2:5)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총독과 대제사장과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 언약하신 말씀 대로 그들과 여전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내어 다시 일을 하였습니다.
학개 1:8에 하나님께서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성전보수의 동기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보수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함입니다. 사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성전 재건의 의욕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와 방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힘을 합해도 인적 지원이나 물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결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15년간 중단되었던 공사를 4년 만에(B.C.520-516)완공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보수를 위해서는 사람도 필요하고 헌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전보수의 역사는 반드시 바람직하게 성취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성전보수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고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 속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저와 함께 고백하고 선언하십시다. ‟예, 나는 할 수 있습니다!” “Yes, I Can!” ‟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Yes, You Can!” ‟예,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예,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Yes, God Can!”
2. 하나님의 약속 둘,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성전에 터를 닦고 기초를 놓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었으며, 레위인들도 제금을 들고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건축의 기초공사를 보면서 너무 감격해서 환성을 울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서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스3:12) 그 이유는 새로 짓는 성전이 옛날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하여 볼 때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며 탄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전의 터를 닦고 기초를 놓은 사람들을 비웃으며 성전 건축을 업신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학2:7,8,9)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총독과 대제사장과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 언약하신 말씀대로 그들이 재건하는 성전이 비록 웅장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금과 은을 내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옛 성전보다도 더 영광이 충만하게 하시고 그 백성에게 평강과 번영의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내어 일을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5:2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게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 지니라” 하셨습니다. 역대상 29:14에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라며 감격해 하였습니다. 다윗의 감격스러운 고백, 그것은 오늘날에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하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주께 드리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가능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저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학2:8)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우선 우리 집에 은과 금이 있다면 그것부터 봉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전보수의 봉헌은 우리 신앙의 척도입니다. 그리고 성전보수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번영의 복입니다. 또한 성전보수의 사명은 주님께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14:23)하신 복음의 전파와 선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전보수를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힘껏 봉헌하고 헌신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영광이 이전보다 더욱 크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심을 불과 1년 후에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년 5월 31일 저는 26년간의 미국 이민교회 목회를 내려놓고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 우리 정동제일교회에서의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2017년 6월 4일, 바로 오늘은 정동목회 11년째에 들어선 첫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시설개선과 성전보수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성전보수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감회가 새롭고 사명이 막중함을 느낍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 아니라 교우 여러분의 노고에 치하를 드립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힘을 내어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새롭게 보수될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복도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비전을 막는 3대 대적
학개 1장 2절
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감격적으로 성전 건축에 나섰다가 도중에 중단했는가? 먼저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 첫째, 이방인의 방해공작이 있었다. 둘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육신적인 피곤함이 있었다. 적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성전 건축을 하니까 공사 기간이 늦어지면서 점차 몸이 힘들어지니까 건축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가 늘어났다. 여러 외부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은 내적인 대적이었다. 어떤 대적인가?
첫째, 핑계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들어 성전 건축을 중단했지만 사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 세상의 어떤 비전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되는 경우는 없고 다 어려움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말하지만 사실 돈이 있어야만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경이 나빠서...”라고 환경 탓을 돌리고 핑계를 돌리며 성전 건축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모습은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남 탓을 돌리고 환경 탓을 돌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핑계를 대면서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은 분명히 핑계다. 뉴스를 보고 유튜브를 볼 시간은 있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핑계하는 무책임한 인생이 되지 말라.
둘째, 태만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의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전 기초석이 놓인 곳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 상부 건축을 하나? 언젠가는 꼭 성전을 건축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있을 때 바로 나서야 하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라고 하면서 자꾸 성전 건축을 미뤘다. 더 나아가서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남에게도 이런 말로 의욕을 꺾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현재 형편상 너무 어렵다. 나중에 형편이 풀리면 하자.”
하나님의 때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고 적절하게 숨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성급하면 부작용을 낳는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무조건 시작부터 해서 낭패를 보고 더 낙심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러나 때를 기다린다면서 현재 해야 할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때만 기다리고 현재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지만 열심히 헌신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때와 기회를 허락해주실 것이다.
셋째, 불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핑계를 대고 영적 나태에 빠지고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해졌는가? 간단히 말하면 불신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진정으로 믿지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무시했다. 가장 단순한 축복 원리가 있다.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면 하나님도 나를 최대한 높여주시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나를 무시한다는 원리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호칭하셨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닌 ‘이 백성’이라고 호칭하신 것에는 무서운 경고가 담겨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나를 “너는 내 자녀다. 내 백성이야.”라고 생각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여겨주신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떠나고 주님을 불신하고, 영적으로 나태와 무관심에 빠진다면 비유적으로 나에 대한 호칭이 ‘내 자녀’에서 ‘이 자식’으로 바뀔 수도 있고 ‘내 친구’가 ‘이 친구’로 바뀔 수도 있다.
비유적으로 심하게 표현하면 주님은 나에 대해 “이 친구, 정말 못쓰겠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무서운 일이다. 늘 주님의 일에 최상의 관심을 두고 적극 참여하라. 하나님은 나를 통해 큰 비전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그 사명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회피하는 핑계를 대거나 영적 나태함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최상의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1-9 / 지성래목사
미국 이민자들 중에 일본 사람들은 도착하면 스시집 문을 연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화교촌과 같은 지역에 식당 문을 연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교회를 시작한다. 그것이 어느 누구의 가정집에서이든 혹은 미국인들의 예배당을 빌려서이든 말이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출애굽의 선봉에 모세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해 주신 말씀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셔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민족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바로 왕 앞에서 제사를 위해서 애굽을 떠나게 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하였다. 출애굽한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광야에 성막을 건축한 것은 사람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규모와 재료와 식양과 공간 구분과 용도를 자세하게 명령하여 지어지게 하셨다. 성막을 회막이라고 한다. 성막이란 거룩한 장막이란 뜻이고 회막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 주신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회막은 광야 생활을 끝으로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헤체되고 이동되어 재 조립되었다. 물론 이는 광야 생활의 이동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막은 언제나 열두 지파의 중심에 자리 잡고는 하였다. 사사 시대와 사울 왕 시대와 다윗 왕 시대까지 성막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중심, 제사의 중심이었다. 성막에서 제사하던 다윗의 소원은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은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야 다윗 왕의 기대와 소원이 이룩되었다.
열왕기상 8장에 보면 건축이 마무리 된 성전 안으로 성막에 있던 여호와의 법궤를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법궤는 언약궤라고도 한다. 언약궤는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어져서 옮겨졌다. 거룩하고 장엄하고 신성한 장면이었다. 성전의 지성소에 언약궤를 안치하고 제사장들이 지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였다. 열왕기상 8장 11절에 보면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솔로몬의 대 국민 연설 내용과 하나님 앞에서 드린 기도 내용이다. 그 당시의 왕이란 제정일치시대의 중심 인물이었다. 광야시대의 모세, 사사 시대의 사사의 뒤를 이어서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역할이 하나로 합치된 온 백성의 중심이 되는 거룩한 신분이었다. 솔로몬 왕은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 바라 보고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8:23) 짧지 않게 이어진 솔로몬의 기도 내용을 여기서 일일이 묵상할 시간은 없다. 열왕기상 8장 54절에 보면 솔로몬 왕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났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기도를 시작한 솔로몬 왕은 어느 순간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를 계속한 것이 분명하다.
열왕기상 9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친 후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만일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고 경배하면 내가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 이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릴 것이다.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와 비웃음거리가 되게 할 것이다.”(왕상9:4-8)라고 경고하셨다.
솔로몬 왕의 사십 년 통치 기간 동안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 나중에 얼마나 변질되고 타락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다. 열지파 중심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사마리아 중심으로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들었다. 솔로몬 왕은 죽었고 41살에 대를 이은 아들 르호보암이 남 왕국 유다의 초대 임금이 되었다. 르호보암은 이방 나라 암몬 사람 나아마를 통해서 솔로몬이 낳은 아들이다. 르호보암 왕 때의 남 유다는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세우고 아세라 상을 세웠다. 그 땅에 남색하는 자가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쫓아내신 이방 백성들의 가증한 일을 유다 백성의 무리가 본 받아서 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남 유다는 제 20대 왕 시드기야의 때를 끝으로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망했다. 이 때에 솔로몬의 성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바벨론의 침략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금을 비롯하여 귀한 모든 것들을 모두 다 집어 가 버렸다. 심지어는 야긴과 보아스 두 놋 기둥까지 모두 다 끌어 가 버렸다. 제사에 사용하던 부젓가락 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집어 갔다. 그야말로 솔로몬의 성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경고하신 말씀 그대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저들은 처철한 심판을 받고 말았다. 이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주전 722년에 멸망한 후였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내용은 바벨론 포로 생활 칠십년을 끝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예루살렘에 되돌아 올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건축되던 때의 장면이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앞장 세우셔서 이 일이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주전 520년 7월 21일의 일이다.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된지 약 한달 쯤 지난 때의 일이다.
성전 재건축의 외관이 드러나면서 백성들은 실망스러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솔로몬 때의 성전에 비해서 그 외관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학개서 2장 3절의 끝에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라고 성전 재건의 중심 인물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하셨다. 그 당시 스룹바벨은 총독 이었고 여호수아는 대 제사장이었다. 그는 모세 때의 여호수아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이다.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일일이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도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하게 한다.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말씀 말이다. 이런 말씀은 다윗이 죽기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해준 역대상 28장 20절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나온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 말이다. 하나님은 바베론 포로 생활의 땅에서 꿈처럼 살아 남아 되돌아 온 백성들의 중심에 총독 스룹바벨과 대 제사장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굳세어라”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서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졌다.
자! 그러면 스룹바벨 시대의 성전 건축이 다시 가능하도록 새 기회를 열어 주신 하나님이 포로의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이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함 받은 백성들 가운데 늘 함께 하신다는 임재와 동행의 약속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뜻에 담아 주신 것이다. 임마누엘의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이다. 430장 찬송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의 후렴은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라고 찬송하지 않나.
우리는 한 걸음 앞을 모르고 한 시간 앞을 모른다. 한 시간은커녕 일 분 혹은 일 초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해석하기 조심스러운 성경 말씀이지만 예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을 예로 드시면서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라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사고와 사건의 소식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며 살아 간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생로병사가 주님의 손 안에 있다. 이는 개인이나 민족의 운명이 다 마찬가지이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애굽의 노예 환경에서 태어난 히브리 사내아이가 한두명이었겠나. 바로 왕은 그 당시에 태어나는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런 때에 삼 개월을 숨겨 키우던 아기가 모세가 아닌가. 갈대 상자에 담아서 어린 아들 모세를 나일강에 띄울 때의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다. 갈대 상자 속에서 들려 오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은 것은 강가에 목욕하려고 나갔던 바로 왕의 딸 공주였다. 공주는 모세를 강물 위에 흘러 내려가는 갈대 상자 안에서 꺼내 안았다. 그리고 모세를 데리고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모세의 삶은 전개되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어른이든 어린 아기이든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이렇게 사고와 사건이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이라도 평안하게 살아 갈 수가 없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증거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하였다. 추수 감사의 달을 지내다 보면 11월 27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째 주일이다. 올해도 남아 있는 날들을 언제 어디서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은총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榮光)이 충만하게 하리라.
우리의 생활 중에 예배당이 없는 일상을 상상해 보라. 물론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 반도에 예배당이 한 곳도 없었다. 처처에 성황당이 널려 있었다. 마을 입구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전봇대만한 나무로 깎아 다듬은 수호신이 버티고 있었다. 산야마다 암자와 사찰이 넘쳐 난다. 조선 시대 500년은 철저히 유교 사상이 짓 누르고 있었다. 대개의 백성들을 천년 불교의 영향에 젖어 살고 있었다. 무속 신앙과 미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과 민비는 무당의 지배 아래 있었고 철저한 무속 신앙에 젖어 있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심하던 시대 상황에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이 받아 들여지고 오늘날처럼 복음이 큰 겨자나무가 자라나듯이 펴져 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강화도에는 마을마다 교회가 있다. 예배당이 없는 마을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 장안에도 얼마나 예배당이 많은가. 눈에 띠는 예배당 말고 어떤 상가에는 한 건물에 여러 교회가 층을 달리하고 방을 달리해서 입주해 있기도 하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계속하여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새 성전을 건축할 감격스러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학 2:7)
그렇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 즉 예배당은 그 건물이 크든 작든 혹은 독립된 예배당이든 혹은 상가 지하의 좁은 예배실이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들여다 보라. 내가 스스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에 구름으로 성전을 가리심과 같이 거룩하고 경건하고 신비한 여호와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충만하게 채워 주셔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이 성전이다. 우리의 마음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해지려면 말씀 묵상 생활과 기도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가야만 한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운동도 하고 섭생도 골고루 하고 보건과 위생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이처럼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여 해야만 한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무하려 한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하려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길 밖에는 없다.
날마다 골고루 섭취하는 영양 섭취와 종합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건강 관리를 위해서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다.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조차 제공 받기 어려운 가난한 제 삼 세계의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어른이든 청년이든 어린 아기이든 누구나 다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의 균형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우상 숭배와 육체의 탐욕을 벗어나서 여호와의 영광이 내 삶의 중심에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계속하여 사모하여야만 한다.
6-7절의 천지를 진동하며 모든 나라를 진동할 보배 그는 우리가 기다리는 재림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시다. 예수로 충만하고 복음으로 충만하고 언약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꾸준히 사모하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원한다.
내가 이 곳에 평강(平康)을 주리라.
9절에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의 말씀이 여기에 나온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자, 그러면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점점 커질 나중 영광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더욱 구체적인 약속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평강’이다. 그렇지 않나. 평강이 얼마나 중요한가. 평강이 얼마나 소중한가. 평강이 얼마나 필요한가. 그렇지 않나. 아무리 대궐같이 넓은 집에 살고 아무리 값 비싼 자동차를 타면 뭘하나.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재산이 많으면 뭘하나. 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그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왕이면 뭘하고 재벌의 총수이면 뭘하고 양쪽 어깨에 별을 네 개 씩 단 장군이면 뭘하고 박사 학위가 몇 개씩 되면 뭘하겠는가. 평강이 내 마음에 없다면 젊었으면 뭘하고 얼굴이 예쁘면 뭘하고 인물이 잘 났으면 뭘하고 인기가 하늘을 치솟은들 뭘하겠는가.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이런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보람과 즐거움과 소망이 우리 각 사람을 평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라는 찬양을 부르자.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11월 29일은 예수사랑교회 설립 제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추수감사 주일과 함께 교회의 탄생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예배를 드릴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예배당은 어떤 곳인가. 당신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떤 곳인가. 이곳에서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충만한 주의 영광과 더불어 풍성한 평강을 누리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 안의 성전을 재건하라!
학개 2:1-9 / 박신진목사
학개는 포로기 이후에 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로, 학개서의 저자다. 스룹바벨과 스가랴와 동시대 사람이며,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을 마친 사람이다. 곧 B.C. 521년부터 35년 동안 페르샤를 통치하였던 다리오 왕 시절, 2년 B.C. 520년 6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3개월 23일) 간 성전 짓는 일을 하였다. 이때 학개는 온갖 방해와 부정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성전 재건을 위해 백성을 일깨우고, 귀환한 백성을 부추겨서 성전 재건 사역을 끝내게 했던 열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이었다. 스가랴는 학개의 사역 마지막 달에 함께 일한 것으로 보인다(슥 1:1-6).
학개는 스가랴 등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완수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 백성에게 마음의 고향이요 예배의 중심이었다. 포로 잡혀 온갖 고생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보니 성전은 무너졌고 유다 민족은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흩어져있었다. 이들을 향하여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1:4) 판벽한 집은 당시 좋은 나무 판자로 지은 고급스런 집을 말한다. 자기 생활을 위하여는 집을 잘 지으면서 영혼의 집, 마음의 중심인 성전은 황폐한 채로 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지난 주일은 서울 이태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참사가 일어나 156명이나 되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죽음을 당했고, 180여 명이 부상을 입고 치료했거나 아직도 치료 중에 있다. 전 세계의 언론은 앞다투어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했고, 어떻게 치안과 질서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도시의 골목에서 150명 이상이 압사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이 사건이 일어난 뒤 이번 달 5일까지 한 주간을 국민애도기간으로 선포했고 모든 백성이 슬픔 가운데 지냈고 아직 슬픔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러다 말겠지. 하나의 해프닝으로 이 사건은 지나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둘 젊은이들의 마음 아픈 장례가 치러지고, 한참 실태 파악과 법적 책임 운운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잊히지 않을까,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이 우리가 절대 스쳐 지나버려서는 안 되는 이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참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이 가기 좋아하는 도시의 중심,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한 한류의 근원지라고 할 곳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기쁨이 슬픔으로, 자랑이 수치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나는 이태원의 이 비극적 상황이 포로 후기 성전재건을 외쳤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느꼈다. 포로잡혀가면서 성전은 무너졌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했다. 이제 하나님은 학개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면서 포로후기 다시 지은 성전이 초라할 것을 염려하는 백성들에게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하면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격려하신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2:3) 재건될 성전은 이전 성전에 비해 보잘것없을 텐데 뭘 굳이 지어야 하나,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하나님은 성전을 재건하라 명하신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속문화, 물질문명에 포로잡힌 시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젊은이들의 문화는 육체의 정욕과 세속의 탐욕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대 청년들의 기독교 복음화율이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복음화율이라면, 가히 미전도 종족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이다. 종교와 신앙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는 세대이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도, 기독교문화를 제대로 세우지도 못해서,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이태원에서 세속적인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모여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핼러윈 데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켈트족의 송년 축제에서 유래되어, 가톨릭의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만성절 절기와 연관이 되었고, 젊은이들의 코스튬 축제가 되어, 나라마다 상업적인 데에까지 연결이 되면서 현대판 세속 축제가 된 걸 무어라 하겠는가? 젊음을 나름대로 즐기고 자본주의의 상업과 연결되어 술판을 벌인들, 우리 시대에서 누가 뭐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기독교 입장에서는 아쉽다. 이 시대의 젊음이 이렇게 소비되어도 되는가? CCC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의 연합수련회, 각종 기도회, 단기선교 들이 대학사회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이제 각종 축제와 행사라 하면서 이들의 퇴폐와 방탕을 어디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러던 차에 엄청난 참사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원인과 상황에 대한 조사와 결론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언제까지 세속의 바벨론 문화에 포로잡힌 사람들을 보아야 하겠느냐고,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신다. 지금은 유다가 바벨론이나 페르샤에 포로잡힌 것처럼 이 시대를 이끌고 가는 문화가 번영과 쾌락을 추구하는 탐욕과 정욕의 문화여서, 현대인이 포로잡혀 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으니, 우리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의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하신다(6-7절). 하늘과 땅과 나라들을 뒤흔들어 놓겠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니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이다. 마음의 성전을 재건하자! 우리 삶에서 성전을 바르게 세워보자!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때도 우리는 세계 1등 국가라는 미국이 진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 이듬해에는 미국의 교회들이 예배자들로 꽉꽉 찼었다. 하늘과 땅,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충격을 받아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안의 성전을 재건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이제 누구 탓을 하거나 자꾸 시간을 미루지만 말고 우리 안의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우리 안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첫 예루살렘 성전이나, 포로기 이후에 학개 시절이 되어 완성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도 하는 제2 성전이 아니다. 우리 안의 성전은 삶의 성화요 성별이다. 참된 예배이다!
우리 인간의 삶을 잘 들여다보라. 창세 이후로 세상은 탐욕과 정욕만을 찾는 세속화의 길로 들어선 것 같지만, 사실은 지존자의 존재를 믿으며 하나님과 가깝게 교제하기를 계속 찾아왔다. 인간은 막연하게나마 예배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입증되어왔다. 만국은 그들이 가까이 모실 수는 없지만 바라볼 수는 있으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신 한 분 하나님을 갈망해왔다. 만국이 하나님 보기를 원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인류에게 드러내시고 온전히 계시하셨다. 인도 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은 두 종류예요. 당신들을 만드신 신과 당신들이 만든 신.”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신을 찾으면서 믿음의 성전을 짓는다!
온 세상의 사람들은 신의 계시 혹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참된 교제를 사모하였다.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사의 수단을 통해 은총을 누리게 하는 분임을 믿었다. 예배라고 하는 중보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즉 자기 나름의 성전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서 제시하는 계시와 중보의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성서의 종교인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찾지도 아니하고 찾을 수도 없는 길을 열어준다.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우리 안의 성전을 지어주셨다.
여러분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는 거룩한 전을 지어놓았는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모든 기독교도들은 우리 안의 성전을 지어놓아야 한다. 형식적인 외적 예배만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셔서 우리 마음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다. 학개가 성전을 지으려고 그렇게 애썼던 것을 바울은 깨닫고 고린도전서에 적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자기들 안에 각자의 성전을 지어놓으라고 일러주어야 한다. 우리 안에 죄악이 집을 짓고 내 인생을 무너뜨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공부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하고 성공도 해야 인생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안의 성전을 지어가도록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이처럼 하나님이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시절이 없었다. 소위 ‘세속화 시대’가 되었다. 절대자 하나님을 묵상하지도 예배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죄악과 악한 영이 문화를 삼켜버렸고 젊은이들이 크게 진동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그 한 예라고 보면 지나친 해석일까?
마음을 굳세게 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4절,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영어로 표현해보면, “Be strong!” 강해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한 마음을 가지고 일하여 성전이 재건해야 한다는 밀씀이다!
1) 성전을 재건하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을 강하게 회복하라는 뜻이다. 즉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히 모시라는 말씀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안에 재건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죄를 사하시는 구주시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되신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장 분명하게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당신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시는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모신 자이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다. 여러분 안에 확실히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그분이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시는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라, 그리하면 우리 안에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2) 이 말씀은 예배를 회복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외롭고 인생이 무너져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 야곱의 역사를 떠올리셨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4:12) 예수님은 야곱은 물을 마시게 하였으나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예배에 대해 가르치신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러면서 바른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깨우쳐주셨다. 예배의 감동, 예배의 능력,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라! 예배에 집중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심령이 회복되고 치유됨을 경험하라!
3) 성전을 재건하라는 이 말씀은 성경말씀을 회복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연 계시, 말씀 계시로 나눌 수 있으나, 성경을 통한 말씀 계시의 회복을 주로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어둠을 밝혀줄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할 때 내 안의 성전이 온전히 지어질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119:105-106) 말씀을 좀 더 자주 읽고 묵상하고, 더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생활을 하면 우리 안의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말씀을 잃어버린 교회는 주님의 성전이 무너진 유다백성과 다를 바가 없다.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학개 시절처럼, 말씀을 듣고 읽고 새기며 살아서 말씀 부흥의 시대를 열어가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 안의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성서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약속한다. 우리가 지금 어려워도 각자의 마음과 생활 속에 성전을 세우기를 힘쓰면, 그 영광이 엄청나리라는 것이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은도 금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우리 안의 성전을 세우면, 내 안에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이뤄지면, 인생과 역사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우리는 이 성전의 이전 영광, 일찍이 교회의 황금시대에 교권으로 이뤘던 엄청난 시대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큰 영광의 시대가 올 텐데,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성전을 세우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 안의 성전을 세우면 믿음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고, 세계 역사도 진정한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중흥의 시기가 올 것이다. 9절 하반절을 보면 성전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또 한 가지 나타나는데,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평강, 샬롬은 성전에서부터 나오고 성전예배에서부터 시작된다. 샬롬은 번영, 축복받은 풍성한 삶이다. 폭력과 굶주림이 없는 사회, 고난과 근심이 없는 상태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하여, 예배 회복을 통하여, 말씀 부흥을 통하여 우리 안의 성전이 재건된다!! 그리하면 평강이 하늘에서부터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가득히 임할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 메리온 웨이드(Marion E. Wade)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회사의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한창 꿈을 펼쳐갈 30대의 어느 날 실험실에서 폭파 사고를 당하여 두 눈이 멀게 되었다. 절망에 빠지게 된 그는 방 안에만 들어낮아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메리온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거룩한 성전을 지었던 것이다. “하나님, 제가 왜 이 젊은 나이에 눈이 멀어 폐인이 되어야 합니까?”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는 어느 순간, 하늘로부터 은혜가 임하였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 은혜가 임하고 기쁨이 넘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용기가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 후로 메리온의 인생이 달라졌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여, ‘서비스마스터 컴퍼니’라는 시각장애인을 돕는 서비스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고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기업경영의 신조로 내세웠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을 바탕으로, 경영의 목표를 다음 세 가지에 두었다. 첫째, 종업원들의 행복을 추구한다. 둘째, 고객들의 만족을 추구한다. 셋째, 이익 증대를 추구한다. 회사는 나날이 번창해, 90억 달러 이상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회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당뉴스> 2012. 2. 17.)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9절 말씀이다! 70년대 여의도에서 구름떼와 같은 주의 백성들, 백만 명의 크리스찬 젊은이들이 모이고 복음의 새 시대가 열리니까, 80년대, 90년대의 부흥과 발전의 시대가 왔었다. 이제 다시 우리 안에 믿음의 성전을 지으면 통일과 번영을 이루어 민족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 안의 성전을 재건하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우리 안에 성전을 재건하라! 이 시대도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여 세속과 정욕의 타락 방황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새로운 황금시대가 오며,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평강을 주실 것이다. *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학개 2:1-9 / 이상웅목사(마중물교회)
자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우리 어릴 때는 이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자녀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선배 목사 중에는 “우리는 가정집에서 시작했고, 천막치고 개척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내가 전도사 때는 이랬는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나이 드신 집사님중에 우리 젊을 때는 애기업고 심방다니고 주방 일 다 했다고 하시는 분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가 더 좋았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그때 열정적으로 살았던 자신에 대한 자긍심같은 것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게 되면 현실을 무시하고 과거에 매여 있게 되기에 주변 사람들을 뒤로 잡아당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난주 학개서 1장의 말씀을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열정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다가 주변의 반대로 16년간 중단된 성전건축이 재개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자기의 행위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폐허가 되어 있는데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 여러 자연재해로 인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밭의 소출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모습, 이런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성전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지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라도 해와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마음에 감동이 있어서 으샤으샤 하면서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했던 것입니다.
1. 7월 21일에 왜?
학개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을 받은 날이 6월 1일이었고, 공사를 재개한 날이 6월 24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학개에게 7월 21일 두 번째 말씀을 주셨습니다. 학개는 왜 이렇게 날짜를 기록하고 있을까요? 날짜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7월 21일은 공사가 재개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어떠했을까요?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시작을 했는데,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주변의 반대가 있었고, 포크레인도 없던 시기에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곳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가장 김빠지게 하는 것은 아마 내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약 70년전에 성전이 무너졌으니 이전 솔로몬 성전을 본 사람들은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분들의 눈에는 옛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은 너무 보잘것없고 초라했던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백향목으로 지어졌고 금으로 입혔고, 크기도 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작고, 성전 짓겠다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우리 때는 이랬는데’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나면서 열정도 식어갈 때 이런 말을 들으면 의욕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7월 21일은 매우 의미 깊은 날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입니다. 그러니까 7월 21일은 초막절 마지막 날, 명절의 절정에 이르는 날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초막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의 초막 생활을 인도하신 것에 대한 감사와 여름 추수를 하고 초막에 저장하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절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을 지키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들도 제 2의 출애굽이라 할 수 있는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인데 자연재해로 인해 추수의 결과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드린 날이 초막절이었습니다(대하 7:8-9). 아마 백성들의 마음이 우울했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옛 성전의 영광은 이랬는데’하면서 의욕을 꺾어놓고 있지, 한쪽에서는 초막절인데 뭘 감사해야 하냐며 푸념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2.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두 번째 학개를 통해 주신 말씀의 성격이 어떻겠습니까? 첫 번째 말씀은 책망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기의 행위를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말씀은 격려와 지지의 말씀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말을 3번이나 하셨습니다. 당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주변의 김빠지게 하는 말에 흔들리지 마라, 당장 보잘 것 없고 초라하다고 낙망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인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5절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4절 말씀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과 맺은 언약, 즉 율법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고, 하나님의 영이 계속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성막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만이 아닌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 성전에 머무실 수 없었습니다. 뭐가 좋은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전건축을 보잘 것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런 말에 흔들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엇이 성전의 본질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는 것이 성전에서 핵심이지 금이냐 은이냐 크기가 얼마냐 이런 것은 다 부수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6)고 말했습니다. 성전의 본질은 ‘금으로 입혔느냐, 크기가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느냐?’였던 것처럼 참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륜과 경력과 지위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하느냐’입니다. 교회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명이 모이느냐, 예산은 얼마냐?’ 이런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느냐?’라는 것입니다.
3. 진동 중에 임하실 모든 나라의 보배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 지금 너희들이 짓는 성전을 통해 이런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7절입니다.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국의 여호와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이 건축하고 나면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나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진동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진동은 하나님의 출현에 대한 반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16입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기 위해 임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다 떨었다,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의 핵심은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입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를 이방인들이 성전으로 가져올 예물들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를 어떤 성경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사모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열방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분이 이 성전에 이를 것이라 하셨습니다. 스룹바벨과 백성들이 앞으로 4년에 걸쳐서 완공하게 되는 성전은 예수님 당시 헤롯에 의해 리모델링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에 친히 오셨습니다. 오셔서 친히 자신이 성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막 14:58)고 하심으로 성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세운 이 성전에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진정한 성전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때 열방의 모든 백성들이 그 성전의 영광,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떨며 주님 앞에 나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9절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에 예수님이 임하시기에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성전에 임하심으로 우리들에게 진정한 샬롬을 주시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깨어졌던 모든 관계를 회복함으로 진정한 평강이 넘치게 되는 길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옛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말에 좌절하고, 초막절이지만 너무도 적은 소출에 초막절에 이게 뭐냐며 우울해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백성들이 어땠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내가 지은 이 성전에 모든 나라의 보배, 모든 나라 사람들이 보기를 사모하는 메시아가 오시는구나, 크기는 보잘 것 없고, 금은으로 치장된 것은 아니지만 이 성전에 큰 영광이 임하고,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평강이 성취되는구나’ 당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알게 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큰 격려였고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잘못하고 있는데, 잘못인지도 모르고 있을 때는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우리를 의욕을 꺾고 낙망케 하려고 할 때는 의미부여를 하심으로 격려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마중물 성도님들! 주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분명히 이런 우리를 가만 나두지 않을 것입니다. 힘 빼놓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네 지금 처지는 뭐냐고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에 낙망하여 손을 놓고 지내지 맙시다. 우리를 평가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모든 일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모든 나라의 보배되신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재림하셔서 만나든, 죽음이후에 만나든 주임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섬기며 경험했던 그 어떤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우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날 주님께 저의 작은 섬김을 이렇게 영광스런 자리로 인도하심에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나중의 영광을 바라보시며 오늘을 스스로 굳세게 하시는 마중물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학 2장 1~4절 / 지태일목사
70년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일의 과제는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일보다, 자기들의 거처할 집을 짓는 일보다 먼저 행해야 할 것은 바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자마자 열심을 내어 하다가 유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유, 정치적 이유, 개인적인 이유를 대며 시기상조라고 기피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16년만에 다시 학개선지를 통하여 성전을 다시 재건하도록 1:14절 말씀처럼 말씀을 청종케 하고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6.24일(1:15절) 하나님의 전 역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달 정도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낙심하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지 이제 70년이 지났으므로, 그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화려한 솔로몬 성전을 목격하고 그 모습을 기억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는 솔로몬 성전에 입혀진 황금을 추억했을 것이고, 또 어떤 자는 보석과 현관과 기둥들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옛날 솔로몬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사람들이 현재 재건되는 성전을 보고 너무 보잘것없다고 비교하며 실망을 줍니다.
16년만에 선지자 학개의 독려로 한 달 동안 세운 성전은 화려한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 형편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재건한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였던 듯합니다. 이것이 성전을 재건하는데 방해물이었습니다. 뜻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일하지만 그들을 의기소침케 했던 것은 그 기초를 놓고 난 다음에 보니 솔로몬이 7년간 세웠던 그런 화려한 성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뿐더러 그런 성전을 지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3절).
그 때 학개 선지는 백성들에게 수사학적 질문으로 세 가지를 묻습니다. 곧 '이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는 말씀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 지금 초라하게 재건되는 성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재건된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다섯 가지가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1) 제단의 거룩한 불, (2) 하나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비한 구름인 세키나, (3) 법궤와 그룹, (4) 우림과 둠밈, (5) 예언의 영입니다. 탈무드의 기록처럼 이러한 것들이 빠져 있는 성전을 본 유다 노인들은 저으기 실망하였으며 그 동안 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부분 있습니다. 살아 있는 노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좋지만 이전 시대의 찬란했던 업적만을 자꾸만 들추어 냄으로써, 현 시대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낙심하게 하는, 즉 방해하는 잘못을 범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7:10절을 보면 "예전이 지금보다 낫다는 말을 하지 말라"(전 7:10). 그랬습니다. 옛날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예전에도 나쁜 점이 있었고, 또 지금이 그 전과 같지 않다고 나쁘다고만 말하지 말고, 지금은 지금대로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니,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해 나갈 것을 하시는 말씀입니다.
1. 그러면 격려의 소식이 언제, 누구에게 들려졌습니까?(1-2절)
1절에 보면 “ 칠월 곧 그달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하나님께서 학개선지를 통하여 격려하는 말씀이 전해진 날짜는 7월 21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셔서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역사를 시작한 6월 24일, 1:14-5절 말씀처럼 한 달간 공사를 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순종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에 전진하라는 새로운 격려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수레 바퀴를 움직이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기름을 치실 것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시기 위해 격려해 주심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 소식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전하여집니까? 2절을 보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라." 그랬습니다. 즉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한" 듣고 순종한 바로 그 사람들에게(1:12), 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분발, 흥분시키셨던 바로 그들(1:14)에게 임하였습니다. 다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 열심을 내는 사람들에게 임하신 축복입니다.
2. 구체적인 격려의 말씀입니다.(4절)
4절을 보면 구체적인 격려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유다 백성이 스롭바벨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을 때 그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습니다. 옛날 성전은 정말로 화려지만, 그것에 비하면 지금 재건하는 성전은 정말로 보잘것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전을 보았던 유다 백성들은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부족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눈에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지만 그 일을 계속하라는 격려가 왔습니다(4절). 비교의식에 빠진 백성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쏟아집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어라.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어라. 모든 남아 있는 백성들이여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이제 힘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했습니다. 주의 말씀입니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3-4)
학개선지는 재건한 성전이 형편없이 초라함을 보고 실의와 좌절에 빠진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그 말씀의 1차 대상은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남아있는 모든 백성에게도 역시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남아잇는 있는 백성들에게, 그래도 떠나지 아니하고 순종하여 다시 재건의 역사에 참여한 모든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주심니다.
여기서, “스스로 굳세게 한다” 함은, 성전 재건에 대하여 용기를 가질 뿐 아니고, 견인지구(堅忍持久), 끝까지 인내하여 성과를 가져와야 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비록 좋은 일을 시작하였으나 힘들고 어렵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것을 끝까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끝까지 이루지 못한 일들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부패케 하여 청소의 대상이 되니, 일하라고 하는데 일은 안하고 도리어 일거리만 만드는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나 반도이폐 하면 병적인 것이 됩니다. 반도이폐(半途而廢)란 말은 “일을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 둔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못나가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도에 그만두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반도이폐, 중도하차,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두사미가 되어선 안됩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산에 오르다가 힘들고 어렵다고 오르다 안 오르면 안오름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지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에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쓰러지거나 그만두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 굳세게 끝까지 나갈 것을 오늘도 권고하십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고백하고 찬양했잖습니까?
♬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교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굳세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선지자 학개는 본 절에 세 번씩이나 거듭 말씀합니다. 귀한 성전 재건의 역사를 16년만에 다시 시작하여 한달이 되자마자 옛날 솔로몬 성전과 지금 재건되는 성전을 비교하다가 자존감을 잃어 버리고 실의에 빠진 것입니다. 큰 일을 좌절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과 나와의 잘못된 비교는 사람을 실망과 좌절로 몰아가는 독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다른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도, 같은 형제들끼리도 잘못된 비교는 큰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성장을 방해합니다. 심지어 다른 교회와 내 교회의 좋은 면에서, 선의의 비교는 서로를 격려하고 자극을 주지만 잘못된 비교는 우리 스스로를 힘들게 합니다. 아프게 하고 낙심케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광야에서 12정탐군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그러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거인이요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고 그들의 밥이라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애굽에 이끌어내어 이제 광야에서 죽게 하는구나. 이제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게시지 않는 언행, 믿음이 없는 그런 언행과 잘못된 비교 판단은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낙심케 합니다. 모든 것을 접어두게 만듭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게여 가게 하기보다 애굽으로 돌아가도록 선동하는 못된 일을 자애 냅니다. 아예 일어서지도 못하게, 주저 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우리를 들이실 것을 믿고 그땅을 향하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너무 큰 교회, 너무 잘 지은 교회, 조직력이 있고,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은 그런 교회와 비교한다면 성전 건축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지나치게, 성도가 중심이 아닌 세속적인 건물중심의 교회를 비교하면서 짓는다면 스스로 좌절하고 낙심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선지를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약속하십니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사랑하는 새빛의 모든 성도들이여!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 찬송가 344장.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눈에 보이는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을 따라 살지 맙시다. 오늘 우리는 잘못된 비교의식 때문에 교회나 가정에 자녀들에게 힘을 빼지는 않습니까? 잘못된 비교의식을 버리고 주신 은혜와 은사와 직임을 통하여 주님이 주신 땅으로 나가도록 자신을 굳세게 하시기 바람니다. 그리고는 일하시기 바람니다.
3.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4절)
그래서 4절 하반절에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동일한 권면을 세 번 반복한 이후에 주어진 명령은 4절 하반절에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입니다.
4절 하반절에는 우리가 굳세게 일해야 할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굳세게 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 말씀하심니다. 이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말이라고 증거합니다.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등을 사용하여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백성들과 함께 할 것임을 강력하게 보증하여 주심니다.
학개 선지는 학개선지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일할 때 두려움이 밀려오고,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여 성전건축을 거부하게 됩니다. 과연 이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고민하고 의심합니다.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생각하면 도무지 지금은 일할 마음도 없습니다. 현재를, 현재 해야 할 일에 등한히 하게 됩니다. 비교의식에 사로 잡혀 도무지 일할 마음이 안 생깁니다. 사람도 부족하고 물질도 부족하고 어려움이 너무 예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 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두려움이 없고 힘들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화려하지만 그것보다도 앞으로 여러분들의 손을 통하여 두 번째 건축될 성전의 영광이 더 클 것을 생각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1997년에서 2007년, 10년만에 교회 맹지 문제와 상가 건물이 해결이 되고, 더구나 좋은 교회 부지를 허락하시고 우리 교회에 특별히 주어진 사명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성전건축하는 이 일과 일하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신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인생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은 두 가지로서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눈에는 잘 안보이지만 모든 교회 공동체가 함께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 나가는 성도들의 진정한 모임으로서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입니다.
교회 건물은 어떻게 지어져 갑니까? 모래와 자갈에 물을 붓고 시멘트를 섞어 철근과 함께 부어 넣으면 기둥이 든든해 세워집니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를 연결시켜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됩니다. 설계자와 시공자가 한 마음이 되고, 건축가와 여러 분야의 일꾼들의 수고가 하나로 뭉쳐져 아름다운 건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는 자갈처럼 마음이 단단한 사람도 있고 모래처럼 깔깔한 성품의 사람도 있습니다. 철근처럼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 성령로 하나가 될 때, 좋은 교회,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한 마음이 되고, 서로 사랑을 나누며, 기쁨과 고통과 성취와 아픔을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그런 교회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일날 점심을 할 때마다 아주 맛있는 김치를 먹습니다. 이 김치를 먹으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교회가 어떤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성도의 멋은 바로 김치의 맛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치는 어떻게 먹습니까? 배추를 날 것으로, 그냥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숯불에 구워먹는 것도 아님니다. 뜨거운 물이나 기름에 튀겨서 먹는 것도 아님니다. 물에 말아먹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밭에서 배추를 가져오면 소금으로 숨을 죽이고, 양념을 잘 만들어 버무리고, 그 양념을 절인 배추 사이사이에 잘 넣어서 다시 그릇에 넣어 다독다독 눌러, 몇일 익히면 그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효소가 생깁니다. 때가 되고 기한이 차면 김치 특유의 놀라운 맛이 생겨납니다. 그 맛은 배추 맛도 아니요, 소금 맛도 아님니다. 메운 고추 맛도 아니며, 톡 쏘는 마늘 맛도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맛, 새로운 존재의 맛을 내는 것이 바로 김치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 속에는 배추처럼 풋내기도 있고, 소금같이 간과 맛을 내는 사람도 있고 고추처럼 얼큰하게 매운 사람도 있고 무처럼 잘게 채를 쳐 고춧가루와 함께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들어가든,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시고 만나게 하시든 성령의 역사로 오밀조밀 버무려서 은혜의 갈보리 십자가 아래 잠재우면 믿음안에서 참 맛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 공동체, 교회가 형성됩니다. 이런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이라는 맛을 내며 열심히 충성을 다합니다.
사실 우리 성도는 악기와 같습니다. 악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악기를 누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집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생활을 하나님이 연주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연주하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하늘의 감격과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이번 성전 건축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연주하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위대한 전환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충만한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들의 앞 길에는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가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히11:6절 말씀처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든 교회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시어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손 붙들고 사업하면 사업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손 붙들면 병자가 일어납니다. 주님의 손 붙잡으면 환난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손에 붙잡혀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무엇보다도 스스로 굳세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주시는 굳센 믿음으로 견인지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