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樂soccer 원문보기 글쓴이: 문별이
애당초 파라티치가 다니엘 레비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그가 유벤투스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2021년 6월 그가 토트넘에 합류할 때만 하더라도 '유벤투스의 기준'을 토트넘에 가져다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토트넘은 거의 매년 마주한 정체성의 위기 중 하나를 마주하고 있었고 레비는 빅클럽의 전문 지식을 팀에 주입하고 싶어했다.
유벤투스를 몇 년간 운영해왔고 클럽 축구를 가장 잘 운영하는 예시 - 지금은 달리 보여지지만 - 로 여겨졌던 파라티치보다 나은 인물이 있었는가? 조세 무리뉴 시기의 표류를 겪은 이후 이제 구단에 책임을 물을 시간이었다. 파라티치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이점을 주면 토트넘은 그 결과로 프로페셔널하고 매끄러운 느낌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채 2년도 되지 않아 파라티치의 토트넘 생활을 끝낸 것은 파라티치가 유벤투스에서 했던 일 때문이었다. 지난 1월 'Plusvalenza' 스캔들로 인해 이탈리아축구협회(이하 FIGC)로부터 30개월 자격정지를 받은 이후 그의 입지는 엄정한 감시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파라티치는 자신의 무고함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토트넘은 심지어 FIFA가 그의 징계를 전세계로 확장시킨 후에도 그를 지지했지만 그는 그로부터 이틀 후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단 내부에서는 파라티치가 항소에서 승리해 복직하기를 원했으나 징계가 유지되고 파라티치의 항소가 기각되면서 그는 사임을 택했다.
비록 이러한 일이 토트넘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구단은 파라티치와의 연관성으로 더럽혀졌다. 토트넘은 이를 다르게 볼 것이고 이 징계가 원래는 이탈리아에만 적용됐고 곧바로 항소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어떠한 진정한 조직에서 할 일과 적법한 절차가 이뤄졌다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토트넘은 그와 결별한 수차례와 기회를 놓쳤다. 2022년 11월 이 일로 인해 안드레아 아넬리, 파벨 네드베드를 비롯한 유벤투스의 고위직들이 사임할 때도 파라티치에게 그들의 감독한테 보여주는 충성심과 인내심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줬다. 이는 구단의 의사결정에 관한 중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를 부임한 것부터 이 모든 일에도 그를 붙잡고 있는 과정까지 말이다.
유벤투스 스캔들에서 끝났어야 하는 일이 토트넘 스캔들로 버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토트넘이 파라티치를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평판이 떨어지는 일 또한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토트넘은 이에 대해서도 반론할 것이고 레비가 금요일 아침에 나온 성명서에서 밝혔듯 '적법한 절차가 지켜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하기를 원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이를 보면 구단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특히나 해가 되는 일이었다. 레비는 20년 넘게 토트넘을 이끌어오고 있었고 이 기간 동안 감독은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드진의 안정성은 놀라울 정도로 유지됐었다. 토트넘이 우승을 하지 못해 레비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기적 전략과 구단의 명성에 집중하며 언제나 능숙하게 운영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할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레비는 아마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미시적인 고위인사일 것이다. 회장 이상으로 그는 구단의 모든 면 - 영입부터 건설, 재정과 운영까지 - 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 2021년 6월 레비가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파라티치를 위해 'Managing Director of Football' 라는 직책을 만들어 함께 이끌어간 것은 큰 결정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남겨졌어야 하지만 22개월만에 끝났다.
이 스포츠 제재 다음에 오는 것은 파리티치의 끝이다. 항소 과정은 사실상 끝났다. 엄밀히 말하면 FIGC의 징계를 전세계로 확대하기로 한 FIFA의 결정에 항소하는 것은 남아있지만 FIFA가 FIGC의 원래 결정을 지지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판결을 뒤집는 것이 반전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난 주 FIGC의 연방 검사 쥐세페 피네가 프리즈마 범죄 사건에서 더 많은 실마리를 찾았고 급여 지급 연기, 에이전트와 타 구단과의 파트너십에 대한 파라티치와 그 일당들에 대한 별개의 조사 역시도 마무리했다. 연방 검사의 징계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추가 징계의 가능성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유벤투스의 재정을 두고 진행중인 범죄 사건이다. 파라티치와 11명의 전직 유벤투스 디렉터들이 참여하는 예비 청문회가 당초 3월 27일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5월 10일로 연기됐다. 파라티치와 유벤투스는 잘못을 부인하고 있는 중이다.
토트넘 입장에서 보면 파라티치를 대신해서 새로운 풋볼 디렉터를 데려올지 아니면 파라티치의 사임과 함께 이 역할이 사라질지의 여부도 불분명하다. 어쨌든 구단은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다. 하지만 파라티치 시대가 끝난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이 시대를 평가할 수 있을까? 토트넘에 그의 유산이 남을까? 아니면 늘 금융 사기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으로 남게 될까?
파라티치 시대는 어려운 시대에 그가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시작되었다. 모든 일은 토트넘이 무리뉴의 후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출발한다. 테크니컬 퍼포먼스 디렉터 스티브 히첸은 최종 명단을 제출했으나 한지 플릭은 토트넘행을 거절했고 레비는 에릭 텐 하흐에 완전히 매료되지 않았다.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PSG로부터 복귀시키려 했으나 프랑스 구단은 그들의 새로운 감독을 빼가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다. 레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고 5월 말 그는 파라티치와 안토니오 콘테라는, 두 명의 이탈리안을 데려오는 아이디어를 제시받았다. 각각 유벤투스와 인테르로부터 사임해 소속팀이 없었던 두 사람을 토트넘에서 결합시키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은 경기장, 훈련장과 더불어 최고의 인물을 원하던 레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콘테는 'No'라고 답했지만 파라티치는 PSG의 관심을 거절하며 - 당시 레오나르두가 스포츠 디렉터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분명한 역할이 없었음 - 'Yes'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6월 초 배후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의 첫 번째 업무는 감독을 선임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그가 선호한 인물은 로마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파울로 폰세카였으나 세부사항을 마무리하기 위해 코모에서 그를 만난 후 파라티치는 폰세카가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파라티치는 사단에 대한 폰세카의 선택에 매료되지 못했고 그는 토트넘의 물샐틈 많은 수비를 고치는 데에 좀 더 집중할 인물을 원하고 있었다. (폰세카는 이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팀을 박스 주위에서 수비시키기 위해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 파라티치는 그의 친한 친구 조르제 멘데스 -그들은 이적 시장 기간 동안 거의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 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파라티치에게 젠나로 가투소가 피오렌티나와의 계약을 파기할 거라 말했다. 파라티치는 여전히 이탈리아에 있었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가투소를 토트넘의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합의에 도달했다.
그는 가투소의 강한 성격을 아주 선망했고 짧은 시간에 팀을 한 데 모을 수 있을 거라 느꼈지만 토트넘 팬들이 가투소의 이전 발언 (역자 주 :: 당시 토트넘 팬들은 가투소의 성소수자 혐오성 발언을 이유로 그의 선임을 반대함) 을 이유로 그의 선임을 반대했을 때 레비는 가투소 선임을 막아야만 했다. 토트넘을 이끄는 것은 이탈리아 팀을 이끄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놀란 파라티치가 배운 가혹한 교훈이었다. 만약 유벤투스라면 이 선임을 그대로 끌고 갔겠지만 잉글랜드에는 훨씬 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파라티치는 그의 업무가 공식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프리시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고 토트넘은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내부에서는 여전히 브라이튼의 그레이엄 포터에 대한 지지가 있었지만 파라티치는 또다른 멘데스의 고객인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를 원했다. 토트넘은 초여름 때만 하더라도 누누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그를 선임하는 아이디어를 배제했으나 누누는 몰리뉴에서 했던 것보다 더 공격적으로 팀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가 안정감을 가져다 줄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 여름 파라티치가 해야 하는 또다른 일은 이적시장에서 선수들을 리프레시하는 일이었다. 토트넘은 형편없는 영입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있던 선수들을 내보내는 데에 실패했고, 포체티노가 필요로 할 때 그를 도와주지 못했으며 2019년 여름에 큰 돈을 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선수단은 늙고 신선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에 그의 일은 어린 선수들을 데려와 평균 연령을 낮추는 일이었으나 구단이 쓸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파라티치의 특성인 재치있는 딜(스왑딜은 그가 유벤투스에 있을 때 했던 주특기였다)이 나왔다. 그는 어떻게 토트넘의 타겟들을 데려올 수 있을지를 알고 있었다.
우선 피엘루이지 골리니를 아탈란타로부터 임대로, 브라이언 힐을 21M+에릭 라멜라로 그리고 크리스티안 로메로를 42.5M 의무이적 조항을 포함한 임대로 아탈란타로부터 영입했다. 아르헨티나의 캡틴인 리오넬 메시가 2021 코파 아메리아케서 로메로의 플레이스타일에 매료된 후 바르셀로나에게 그를 영입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을 알았기에 로메로를 데려오기 위한 요구 금액을 내기로 한 결정은 파라티치가 토트넘에서 한 가장 영리한 결정 중 하나로 남아있다.
시장 막판에는 파페 마타르 사르를 메츠에서 그리고 에메르송 로얄을 바르셀로나에서 데려왔다. 모두 어리고, 그렇게 비싸지도 않으면서 구단의 전반적인 전략에도 부합하는 선수들이었다. (라멜라뿐만 아니라 포체티노 시대의 잔재였던 무사 시소코와 토비 알더웨이럴트도 팀을 떠났다.)
토트넘이 변했다. 무리뉴 시대에만 하더라도 레비는 훈련장에서 존재감이 큰 사람이었고 감독과 주기적으로 미팅을 가졌다. 하지만 레비는 이러한 일에서 물러나고 싶어했기에 훈련장은 파라티치의 것이 되었다. 그는 매일 훈련장에 가 누누와 선수들과 대화하고 누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또렷히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구단 관찰자들은 초기의 그가 누누보다 훨씬 더 존재감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파라티치는 분명히 첫 몇 달 동안에는 아주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레이튼 오리엔트, 콜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MK 돈스와의 프리시즌 경기를 앞두고는 누누와 함께 서있었고 가끔 자리를 벗어날 때는 헤드폰을 통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첫 이적시장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여겨졌고 로메로는 뛰어난 영입이었다. 그는 분명히 파라티치가 로스터에 가져다준 가장 큰 업그레이드였고 토트넘이 얀 베르통언과 알더웨이럴트의 노쇠화 이후 필요했던 센터백 자리의 퀄리티를 가져다줬다. (무리뉴는 자기가 없을 때는 정상급 센터백을 데려오기 위한 돈을 가지지 못하다 그가 떠난 후에야 가진 것을 가지고 불평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파라티치는 빠르게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람으로 자리잡았고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2021년 9월 셸허스트 파크 원정 경기를 앞두고 팀 버스에서 그가 나올 때 그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그 경기는 토트넘의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후 진행된 첫 경기였고 첫 3경기를 모두 쓸어담은 토트넘은 당시만 하더라도 리그 선두였으나 그 경기에서 3-0 대패를 당했다.
그러나 파리티치가 전반적으로 인기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으나 몇몇 내부자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는데, 개막전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도중 관계자들을 라커룸에서 질책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를 묘사하기 위해 '격식 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었으며 특히 명성이 부족한 누누와 비교했을 때 그가 너무 저명하고 눈에 띈다는 시선도 있었다.
파라티치 시대의 첫 문제가 발생한 것이 머지않아 분명해졌다 :: 누누가 한계에 봉착했다. 첫 몇 경기들에서는 희망을 보였으나 선수들 혹은 팬들의 지지를 받는 데에 실패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고 경기력은 더 안 좋았다.
토트넘이 홈에서 유나이티드에서 0-3으로 대패한 후 팬들은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비록 파라티치가 처음에는 후임을 찾는 한편 누누를 지지하고는 있었으나 레비가 새로운 감독이 이미 준비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 콘테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는 비록 파라티치가 운전석에는 있으나 레비가 몸을 숙이다 옳다고 생각할 때는 운전대를 잡을 것임을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파라티치가 이런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재밌는 것은 콘테의 워크 퍼밋이 승인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콘테의 첫 경기를 앞두고 미디어의 질문을 받아야 했던 사람은 레비가 아닌 파라티치였다는 점이다. 비록 콘테 선임을 이끈 것은 파라티치가 아닌 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라티치는 언론에 이를 합리화했다. 그는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축구는 축구다."라고 말했다.
콘테가 마침내 토트넘에 부임할 때 구단 전체는 갑작스레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콘테의 선임에 따라 기준치가 올라갔다. 축구계에서 어떻게 콘테를 이끌어야 할지 아는 사람 - 감정적인 순간을 통해 말로 구슬리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 - 이라면 파라티치일 것이다. 둘은 유벤투스에서 함께 했고 몇 년 전의 파라티치는 콘테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이는 그가 토트넘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가 됐다.
콘테가 선임되자마자 파라티치가 한 일은 그가 이기기 위해 필요한 선수들을 찾는 일이었다. 레비는 콘테에게 엄청난 이적자금을 약속한 적은 없으나 분명히 구단 정책과 콘테의 요구사항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토트넘은 어리고 더 저렴한 선수를 원한 반면 콘테는 바로 팀에 들어올 수 있는 경험있는 선수들을 원했다. 파라티치의 역할은 둘 사이에서 간극을 좁이고 콘테에게 맞는 선수들을 토트넘에게 합리적인 금액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콘테의 부임 이후 처음 열린 2022년 1월의 겨울은 이 역할이 시험대에 오르는 기간이었다. 이적시장 초기는 어려웠는데 파라티치-콘테-레비라는 3명의 결정권자를 가지고 있는 게 항상 도움이 되는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콘테와 파라티치는 아다마 트라오레를 윙백에 쓰기 위해 그를 영입하는 것을 고려 - 파라티치는 직전 여름 누누를 위해 그를 임대로 데려오는 데에 근접했었다 - 했으나 레비는 매료되지 않았고 트라오레는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었다. 레비는 루이스 디아즈 영입에 더 관심있었으나 그는 리버풀을 택했다.
원하는 타겟을 얻기 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언제나 선호하는 것은 파라티치는 이 시점 비판의 대상이 됐다. 참을성 없던 팬들은 왜 구단이 4위권 싸움을 위한 영입이 필요한 시점에서 영입을 마무리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적시장 막판 파라티치는 자신의 솜씨를 드러냈고 그가 토트넘에 있는 동안 가장 뛰어난 무브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콘테가 간절히 영입을 원함에 따라 파리티치는 유벤투스에서 막스 알레그리 눈 밖에 난 2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로드리고 벤탄쿠르를 16.7M에 그리고 데얀 쿨루셉스키를 18개월 임대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영입 옵션을 통해 영입했다.
당시 파라티치는 자신의 옛 소속팀으로 돌아가 영입을 한다는 이유로 음해를 받았으나 두 선수가 토트넘의 시즌을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선수가 함께 선발로 나온 첫 경기, 토트넘은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승리했고 이는 4위 싸움을 위한 토트넘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토콘테는 포체티노 전성기 시절 이후 가장 뛰어난 토트넘 팀을 만들었고 파라티치는 천재처럼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아마 토비 알더웨이럴트와 손흥민을 영입한 2015년 이후로 토트넘이 영입에서 얼마나 죽쒔는지를 생각해봐라. 포체티노 시대 말년과 포체티노 이후에 진행된 토트넘의 빅 사이닝 - 탕기 은돔벨레, 지오 로 셀소, 스테번 베르바인 - 은 거의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로메로, 벤탄쿠르 그리고 쿨루셉스키를 초기 이적료 70M(쿨루셉스키 옵션을 발동하더라도 100M 남짓에 불과하다)에 영입함으로써 파라티치는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기록을 남겼다.
파라티치는 두 가지를 마침내 만족시켰다. 첫째, 그는 토트넘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의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1군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한 한편 리그 순위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다음 세대를 이끌 어린 선수들을 영입했다. 파라티치의 명성은 그대로였고 PSG가 그에 대한 오랜 관심을 재점화하는 것을 고려한다는 기사가 나자 토트넘에 헌신할 것을 분명히 했다.
한편 무대 뒷편에서는 영입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22년 2월 히첸이 사임했다. 그와 파라티치는 파라티치의 첫 6달 동안 함께 가까이 일했으나 파라티치가 오자 히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항상 있었다.
토트넘이 여름에 새로운 인물을 고용하기 전까지 파라티치는 산적한 일들을 거의 혼자 해야 했다. 지속할 수 있는 수준 아니었고 파라티치의 계획은 큰 변화를 만들기에 앞서 토트넘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 평가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큰 변화는 지난 여름 찾아왔는데 그레타 스테인손, 레오나르도 가바니니 그리고 앤디 스쿨딩이 임명되어 1군 영입 부문을 맡았다. 파라티치 혼자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조를 만들고 토트넘의 축구 운영 부분을 현대화하려는 계획이었다.
파라티치의 주요한 일은 이제 22-23 시즌을 향해 있었다. 토트넘이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 - 이는 콘테의 잔류를 확실히 했다 - 지은 며칠 후 토리노에서 콘테와 대화를 하면서 차기 시즌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이 시작되자 파라티치의 일은 1월 이적시장의 마법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었다 :: 콘테를 계속 행복하게 만드는 한편 곧장 1군에 들어올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계속해서 구단의 미래를 발전시키는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실패했다.
전례없이 ENIC로부터 최대 150M까지 현금 지원을 받으며 이전에는 하지 못했을 만한 딜을 성공하며 6명의 선수를 영입한 토트넘이었다. 그들은 히샬리송 영입을 위해 에버턴에 50M를 지출했고 시즌이 끝난 며칠 후에는 이반 페리시치를 FA로 데려오면서 18만 파운드를 주급으로 주는 데에 합의했다. 레비를 설득시키는 파라티치의 능력이 도드라졌지만 슬프게도 이 선수들 중 첫 시즌에 인상을 남긴 선수는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파라티치는 주전 선수로 뛰기에는 부족한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는 월드클래스급 왼발 센터백을 영입하려는 희망을 이루지 못해 클레망 랑글레를 임대로 영입했다. 이브스 비수마는 브라이튼의 스타였으나 토트넘에서는 스쿼드 플레이어가 되었다. 제드 스펜스는 입단하기 전부터 콘테에 의해 공개적으로 '클럽 사이닝'이라 낙인이 찍혔다. 이번 시즌이 시작할 때 콘테는 이미 이적시장과의 거리를 뒀으며 토트넘을 타이틀 컨텐더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렸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번 시즌의 이야기는 콘테의 방식, 콘테의 지겨운 아이디어, 선수들과 스탭들과 망가진 콘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됐다. 파라티치의 잘못은 아니지만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만약 콘테에게 더 나은 선수를 가져다줬으면 1년 더 행복하게 콘테를 만들어 심지어는 새로운 계약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장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시즌 파라티치의 주요 업무는 콘테를 다스리려 노력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엄청난 책임감이 동반되는 일이었다. 파라티치는 구단 내 콘테의 유일한 진정한 동맹이었고 콘테는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경직됐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파라티치로 하여금 콘테에게 더 동질적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심지어 콘테 시대의 마지막 몇 주간 파라티치는 콘테를 지키기 위해 레비에게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트넘이 마침내 콘테와 갈라섰을 때 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명서에서는 파라티치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파라티치의 미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고 결국 FIFA가 파라티치의 징계를 전세계로 연장하기로 한 전날 밤 올라온 비디오 인터뷰로 이어졌다. 파라티치를 둘러싼 법률 사가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그를 여전히 많이 믿고 있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왜 그가 오랫동안 구단에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콘테의 경질 이전부터 파라티치는 그의 후임을 위한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고 자신의 미래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는다는 것이 팬들에게 분노로 다가왔다. 만약 파라티치가 항소에서 승리했다면 그가 콘테의 대안을 찾는 일에 복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파라티치에게 그의 명성을 되찾을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파라티치가 시작했던 일을 파라티치 없이 해야 한다. 그가 선호했던 후보자 - 루이스 엔리케 같은 - 들을 영입할 기회를 놓칠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파라티치에 대해서는 레비가 말했듯 '축구에 살고 숨쉬는' 남자에게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비록 많은 관찰자들이 거의 공감하지 않겠지만 거의 지난 2년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조사는 그와 가족들에게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파라티치가 동료들에 의해 어떻게 기억될지는 복잡할 것이다. 그는 전반적으로 인기있었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으며 훈련장 주변에서는 붙임성 있고 상냥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와 비슷하게 에이전트들은 그와 딜을 하는 게 좋고 즉각적임을 발견했다) 그러나 구단의 몇몇 사람들은 우월감으로 비춰진 것에 대해 분노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하면 그가 종종 유벤투스와 토트넘을 비교할 때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파라티치는 거의 2년 동안 토트넘에 있으며 어떤 유산을 남긴 채 떠날까? 우리는 만약 그가 폰세카를 믿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주제로 하루종일 가설을 세울 수 있겠지만 지금을 위한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누누를 선임한 것은 좋지 못했지만 빠르게 콘테를 선임함으로써 비용을 크게 지출하지 않았다.
파라티치가 선수단에 남긴 변화는 긴 각인을 남길 것이다. 그는 토트넘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좋은 선수들 - 로메로, 벤탄쿠르, 쿨루셉스키 - 을 재정적 이익을 가져다주며 영입했다. 로메로와 쿨루셉스키는 전반적으로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고 벤탄쿠르는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져있지만 그들은 다음 시즌 혹은 앞으로 팀의 근간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파라티치가 데려온 어린 선수들 - 사르, 힐, 데스티니 우도지 - 은 아마 5년 후 파라티치가 새로운 시대의 근간을 만든 것을 두고 칭찬하게 만들 선수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 우선 파라티치가 있는 동안 아카데미가 방치된 것처럼 보였던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짜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살은 콘테에게도 돌아갔고 몇몇 사람들은 파라티치가 유스에 거의 관심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지난달의 영상에서 유스 팀 경기에 관해 말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아카데미와 1군 사이의 생각을 모으는 시대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아카데미를 포함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부서들을 관할하는 최고위 축구 책임자로서 스콧 문이 최근 임명된 것도 파라티치의 유산이 될 것이다.
토트넘이 영입한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는 점진적인 감독을 영입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도 또다른 요인이다. 파라티치의 계획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이야기다. 토트넘에서 자신의 일을 어느 정도 잘했지만 가장 중요한 일 :: 구단의 모든 요소가 향할 수 있는 문화와 전략을 세우는 일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의 소관이 아니었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문제를 결정하지도 못하는 풋볼 딜렉터를 구단의 재구성을 위해 데려오는 의미가 없지 않는가?
결국 토트넘에는 모든 힘이 한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라티치는 폴 미첼, 프랑코 발디니, 다미엔 코몰리, 프랑크 아르네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가게 됐다. 이제 파라티치가 나간 후에도 토트넘의 명성에 금이 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