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분 좋음을 처음 느낀 건 '오후' 라는 말이 손색없는 일요일 세시즈음 집을 나설 때 였다. 가을볕의 따스함과 여름이 줄 수 없는 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오늘 세시 서점에 들린 후 피곤함과 과제 구상이라는 명목하에 일찍 집으로 오는 길에 야한 비디오 하나를 빌렸다. 당초 빌리고자 했던 것의 부재로 소실적 한번 보고 크게 감명 받은 바 있는 M이라는 비디오를 빌렸다.(이것은 이니셜 일 뿐, 이런 비디오 찾지는 말라) 조금은 쌀쌀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찬물로 몸을
씻고 위속의 허기를 단적 영양소의 존재들로 달래놓은 후, 가뿐하게 비디오를 돌렸을
때 vtr 액정의 ERROR라는 대문자가 나를 보고 꿈뻑거리는 것을 본다. 나도 꿈뻑. 전기
코드까지 다시 꽂는 여러 차례의 시도를 뒤로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았다.
피곤함이 엄습해 온다. 잘 꽂혀지지 않는 전기 코드를 꽂고 빼는 동안 에너지 소비가
있었나 보다. 한시간의 잠을 청하기로 무언의 나와 협상한 후 20시의 알람만 휑하니 남겨 놓아 둔다.
깊은 잠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기분 좋게 누워 있었다. 그러나
적막의 방안에 누군가, 아니 무엇인가 나를 깨웠다. 그것도 아주 짜증나게...막판 가을
시즌을 겨냥한 소리도 내지 않는 한마리의 모기라는 것이 왼손 구석 구석을 탐방, 그들 종족의 몇 세대의 영겁적 진화로도 이기지 못할(그럴 수 도 있겠지 ) 곤히 자려는 못먹는 인간을, 찔러나 본것이다.집게 손가락 측면과 깨끼 손가락의 주름 있는 곳과 손바닥의 생명선 한 가운데가 그 모기양의 오늘의 사격장이었던 것이다.
왠만한 모기의 물림으로도 곤히 자는 우둔함을 가진 나에겐 그 찔러나 본 장소는 가히
인내심의 집앞에서 꼬장 부리는 격이었다. 나는 미치기 시작했다. 왼쪽 손의 그 부위
들을 이빨로 물고 있다 그제야 물파스가 책꽂이 두번째 줄에 있음을 깨닫는다. 몇번의
덧바름 후, 사상 초유 초저녁 시간대에 모기향을 꺼내 불을 붙혀 놓았다. 왠만한 여타의 제품에 신뢰를 갖질 못하는 나는 하지만 그렇게도 마음 편히 심신을 다시 침상으로
옮겼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여기 까지 왔구나..허
100g중 디(시스/트란스)알레트린 0.3g 성분의 이 모기향을 나는 절찬리 모기약으로서
몇백억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다던 에프킬라(에푸킬라)나 에이드 보다 믿고 애용한다. 그 원유는 물론 효과에 있어 나를 한번도 실망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칙칙
거리며 내 위를 다량의 알지도 못하는 화학 성분의 결합체, 에푸킬라의 뿌려댐은 날 공포(혹시라도 얼굴에 떨어질까봐, 입안에 떨어지면 죽을까봐) 그 자체로 몰아대곤 했다. 또한 이불속에서 그 다량의 액정이 지상으로 착륙하기를 기다리고 잠을 청한 후에도 모기는 꼭 나를 찾곤 했다. 또한 내가 뿌리는 모기 살충제를 싫어라하는 이유는 모기가 날라다니는 위치를 찾아가면서 뿌려대야만 하는 바보스러운 귀찮음과 한마리를
죽이기 위해 방바닥을 흥건히 적셔야 하는 참혹성 때문이다( 물론 이때 언젠가 그위치에 밥풀이나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주어 먹지 않겠느냐 는 상상 또한 작용한다)
또한 이 모기향은 환경 오염에 있어 폐기 후에도 어떠한 자연해를 입히지 않는 제품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하여 이 100g중 디(시스/트란스)알레트린 0.3g이라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일까.아니다. 그 독성은 사실 에푸킬라 보다 더하다.
어릴적, 시골에는 유난히 모기떼가 판을 쳤다. 집의 창과 문같은 출구라는 데는 온통
모기장을 설치하고도 모자라 방 한칸, 한 칸 마다 사각 모양의 모기장을 설치하고 문단속 후에도 모기향을 사용했다.더러 우리 어머니는 가끔 에푸킬라를 내 얼굴위에 뿌려대곤 하셨다. 자식을 정말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실 가끔 너무 과하셨다. 그
고리 모양의 큰(그 고리를 펴면 얼마나 길까...) 모기향 하나를 뚝딱 초저녁부터 불을
붙혀 다음날 아침까지 타게 두셨던 것이다. 실상 모기는 어린 자식들을 손톱만큼도 건드리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꼬리를 무는 연기의 천정 아래 고리로 인해 방안이 희뿌애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어린 자식이 숨이 막혀 기어가 방문을 열어 놓으려해도 어머니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놔둬라"
하지만 우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을 맞았다. 흡사 전쟁터의 화염이 사라지고 잿빛 연기 떼가 어딘가로 바래지 듯 제 할일을 다하고 곱게도 고리 모양 그대로를 떨어
뜨려놓은 어제와 다른 색깔의 모기향의 흔적을 보며 머릿속이 하애지곤 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보았다. 선반위 화분의 식물이 말라 죽은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보았다. 인간이 얼마나 독한지를.
하지만 어머니의 타의적 손길로 그 후로 우리는 모기향을 피워댔고 그후로 십몇년이
흐른 지금 시골이 아닌 서울 하늘 아래서도 그것도 초저녁에 나는 모기향을 피워댄다.
이제는 그 향이 방안 옷장의 옷속에 구비 구비 물들어 내 향수가 되어 버렸다. 등교 후
지우들은 말한다. "모기향 냄새 징하구나 네 주위에는 모기가 있을 수가 없겠다"
징한 모기향을 지금도 맡고 보며 사람이 이겨 낼 수 있는 어느 미미한 독소의 무마를
생각하며 왠지 모를 뜨거움이 속에서 이는 건 뭘까.
아, 숙제가 도저히 손에 잡히질 않아 끄적여 본다는 것이 어느새 알람은 9시 반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첫댓글 글쓰는 스타일이 정말 독특하십니다. 잼있게 봤어요
모기향을 별로 신뢰를 안했었는데. 야외같은데선. 그 효과가 정말 좋더라구요. 후훗. 요즘 늦모기들이 워낙 드세서. 모기 조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