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대교를 건너와
팔월이 하순에 접어든 넷째 일요일이다. 폭염 기세는 누그러진 처서 절기를 하루 앞두었는데 늦여름 기상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여름 들머리 뒤늦은 장마가 와 짧게 끝나 가마솥 같은 불볕더위를 넘겼는데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가을장마에 든단다. 내일이면 올여름은 아직 우리나라로 겨냥해 올라오지 않던 태풍 하나가 남해안으로 상륙이 예상되어 다음 주는 내내 강수가 예보되었다.
어제는 태풍 전조와 무관한 강한 강수대가 형성되어 우리 지역은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주중에 거제에 머물다 주말이면 창원으로 복귀하길 기다리는 벗과 함께 하는 근교 산행 일정은 차질 생겼다. 강수량이 적었으면 우산을 받쳐 쓰고 서북산 임도를 걸어보려 했으나 빗줄기가 너무 세차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점심나절 빗속에 산책을 나서 창원천 천변을 걸어 지귀상가로 나갔다.
천변 산책로를 따라 명곡 교차로까지나 창원대로 건너 공단 배후도로를 따라 봉암갯벌까지 내려가 보려다 도중에 발길을 멈추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고 산책로도 물이 흥건해 봉곡동으로 건너가 창이대로 보도를 따라 지귀상가로 갔다. 마침 지귀 오일 장날이었는데 비가 와 제대로 장이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빗속에 비닐 천막 밑에 푸성귀나 생선을 파는 상인이 몇몇 보였다.
썰렁한 장터 골목을 둘러보고 낡은 상가 목로주점에서 곡차를 들었다. 장터는 인적이 드물어도 주점에는 테이블마다 손님이 그득해 주인은 바빴다. 일용직 노무자들이 비기 와 공사 현장으로 나가지 못해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는 부녀들도 차지해 담소를 나누었는데 나는 이방인처럼 느껴져도 파전을 시켜 곡차를 비워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일조를 하고 나왔다.
날이 밝아온 일요일은 간밤과 달리 하늘이 맑았다. 아직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뭉쳐 있긴 해도 야외 활동에 지장은 없을 듯했다. 그럼에도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머물렀다. 집 밖으로 나가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혀올까 전전긍긍하는 아내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나절 거제로 떠날 짐을 꾸려야해 조신하게 지내며 형님과 조카에게 선산벌초 건으로 통화를 나누었다.
점심 식후 같은 아파트단지 카풀 지기의 차에 동승해 거제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 안민터널과 진해터널을 지나니 용원과 부산 신항이었다. 눌차대교에서 터널과 거가대교를 건너 장목에서 대금산 나들목으로 내려섰다. 명상마을 대금산 주막에 들려 일주일치 반주로 삼을 곡차를 마련했다. 매번 일요일이면 운전을 하는 지기와 나는 2리터 생수병에 채운 막걸리를 각 2병씩 준비했다.
연초호를 둘러 이목을 거쳐 송정에서 연사와실로 들었다. 카풀 지기는 옥포로 돌아가고 나는 와실 창문을 열어 환기가 되는 사이 교정으로 올라갔다. 본관을 돌아 서편 울타리로 가니 교장은 가족과 함께 비탈의 텃밭에서 가을 채소를 심을 이랑을 다듬고 있었다. 어제 거제에도 비가 많이 왔는지 봉숭아는 절정에서 하강하는 끝물인데 열매를 단 꼬투리가 여물면서 쓰러지기도 했다.
뒤뜰 산언덕 옹벽에도 심어둔 봉숭아는 일부를 뿌리째 뽑아내고 거름을 흩어 뿌린 다음 맨드라미 모종을 심었다. 창원에서 친구가 키워준 맨드라미 모종이었다. 며칠 사이 활착이 되는 즈음인 엊그제 비료까지 살짝 뿌려주었다. 토질이 워낙 척박해 거름기가 부족해 영양분을 보충시켜 주어야 할 형편이었다. 주말에 흠뻑 내린 비를 맞고 맨드라미 모종은 생기를 띠며 잘 자라주었다.
뒤뜰 언덕으로 올라 맨드라미 그루를 살피고 주변에 쓰러져 헝클어진 봉숭아 잎줄기를 정리하고 잡초를 뽑아냈다. 맨드라미 꽃밭을 살피고 실내로 들어갈 일 없이 곧바로 교정을 나서 와실로 들었다. 방바닥을 닦아내고 샤워를 마치고 저녁 끼니는 그냥 건너뛰었다. 아까 들렸던 명상마을 대금산 공 씨 할머니 곡차만으로도 한 끼 열량은 충분할 듯했다. 일찍 잠들어 새날을 맞으련다. 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