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ㅌ-ㅁ으로 분해하기 싫다
퇴직이 다가오면서 어떻게 보내야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으며, 틈이 생길까 두려웠다. 퇴직 6개월전 공로연수에 들어갔고 학원가서 유튜브 제작법을 배웠다. 유튜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하고 싶었다. 2달간 열심히 배워 유튜버가 되었고 다양한 내용으로 하여 많은 유튜브를 올리고 있다. 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나고 평을 받았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모 협동조합서 마을신문기자를 모집 한다는 현수막 보고 지원하여 기자수업 배워 즐거움을 전하는 파랑새 같은 기자가 되어 많은 기사를 올리고 있다.
거주지 동시무소서 마을문고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 보고 지원하여 1주일에 2시간씩 봉사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다른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기자활동과 문고 봉사 활동으로 구청장 국회의원 시 구의원 주요인물들을 알게 되었고 전년도에는 새마을 유공자 대상자로 지정 구의장 표창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전공이 화학인지라고 퇴직 무렵 전공이 그리워 과학책을 보기 시작하였다. 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 골구루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로 공부하고 국립중앙과학관 주최 과학 탐사에도 참여하였다, 학교에서 폐기된 책들 중 과학관련 서적들을 집으로 가져와 읽었고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하루라도 과학공부 안하면 무언가 허전하다. 성당을 꾸준히 다니면서 액션단체에 가입 교우들과 어울리면서 신앙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같이 근무했던 교장선생님이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였다. 시 못써요 했더니 예시를 보여주었다. 많은 수필을 썼지만(작품성은 없다) 시를 쓴다는게 고욕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요구대로 시 쓰기 시작 동시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마침 대덕구청에서 시 수필 쓰는법 강좌가 있어 신청하였고 전문 시인으로부터 배워 지금까지 깊은 인연이 되어 계속 배운다. 또한 여러 도서관서 개설한 시 쓰기법 시 낭송법 수필쓰기에 찾아가 배웠고, 잡지책에 수필 시 투고하여 나오기도 하였고 시 낭송대회에도 나가 상장도 받있다. 문학활동이 내 삶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 시조 수필을 좋아했고 지금도 마음속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교장선생님은 지금도 연락 주고 받고 있으며 삶의 은인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셨던 지역 가수 한분을 알게 되었다. 주로 여러 노래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축제 행사에도 나가 노래를 부른다. 그의 부탁으로 노래교실서 그가 부르는 노래를 찍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여러 행사에 가서 그와 다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유튜브에 올린다. 다른 가수들과도 알게되었다. 그리고 노래자랑 행사에 대해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빈틈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을 싫어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내 아내이다. 그냥 어디든 취직해서 돈을 벌어 오라는 요구를 한다. 매달 받는 연금으로는 부족한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아파트 경비원. 조끼입고 교통정리와 청소활동. 학교 경비원 등등 썩 내키지은 않다.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 처형과 동서이다. 동서는 나보다 3년 늦게 퇴직하였고 받은 연금이 부족하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보고 취직이나 할것이지 그런 걸 하느냐고 나무라고 있다. 물론 한다면 한다. 취직할경우 삶의 틈이 벌어질까 두렵고 지금 삶을 포기해야 하는데 어느것부터 포기 해야한단 말인가. 마치 내 살을 도려내는 기분이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현재 지금 구성하는 조각들을 겨우겨우 붙잡고 있는 중이다. 자칫 삐그덕 거리면 삶이 무너지기 쉽다 틈을 ㅌ-ㅁ으로 분해하고 싶지 않다. 분해가 될 시 조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 삶의 틈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작은 행동들 하나하나가 어쩌면 삶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조용한 받침대가 아닐까
첫댓글
그렇지요
평생 몸담은 직장을 퇴직한다는 후일에 생각은
참으로 고놔의 시간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 틈에 또 다른 빈틈을 허용할 수는 없으리라요
청우우표 님
삶을 다져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