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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이 때 아닌 성황을 이루고 있다. 삭감된 연봉을 채우기 위해 대리운전으로 ‘투잡’을 뛰는 직장인들,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장을 떠난 이들, 자영업 수입이 시원찮아 수입을 보충하려는 이들, 정년퇴직 후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이들,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대리운전으로 몰려들고 있는 까닭이다. 대리운전자들의 수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리운전보험 가입자는 5만4000명가량으로 집계되지만, 이는 대리운전자 수를 파악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수천 개에 달하는 대리운전업체들조차도 소속 대리운전자 수를 알기 어려운 데다 미등록 대리운전업체들도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또 대리운전자 등록을 해놓고 실제로 뛰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고, 대리운전자 가입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갈수록 대리운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직자들의 ‘부업 1순위’로 떠오르고 있는 대리운전의 세계를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4월3일 금요일 밤 10시경 서울 종로2가 길에서 만난 1년차 대리운전자 석진용씨(49)는 “금요일인데 아직 한 탕밖에 못 뛰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수요가 가장 많다는 금요일인데, 그것도 종로 한복판에서…, 왜일까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대리운전업체로부터 정보를 받는 기사의 PDA 단말기에 본부의 ‘오더’가 계속 찍혔지만 그는 원하는 지역이 나오지 않아 오더를 무시하는 중이었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면 돈이 안 돼요. 1만원짜리 잡고 변두리 쪽으로 가버리고 나면 이 대목(금요일)에 이래저래 다 놓쳐 버려요. 조금만 더 지나면 좋은 건수 잡을 수 있거든요.”
석씨는 강남 쪽이나 아예 안양이나 일산을 노리며 새벽 4시까지 영업할 작정이라고 했다.
상위권에 속한다는 한 대리운전업체의 간부는 이렇게 얘기했다.
“목요일, 금요일쯤 되면 기사들이랑 벌이는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기사들이 오더를 일부러 안 잡죠. 돈 안 된다 싶으면 찍질(오더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손님 호출이 많은 강남 같은 데는 기사님들이 우글우글한데도 (요금이) 1만원짜리나 시내 구석으로 간다 싶으면 안 찍고 더 기다립니다. 특히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피크타임에 더 그렇습니다. 우리로선 아주 골치 아픈 일이죠. 어떤 때는 다른 곳(다른 소속의 기사)으로 오더를 넘기기도 합니다.”
이 간부의 말처럼 특정 회사에 대리운전을 신청하더라도 반드시 그 회사 소속 기사가 온다는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대리운전자들에 따르면, 몇 개의 대리운전업체들이 연합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해 있는데, 이 그룹 소속 업체들끼리 대리운전 콜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이 같은 ‘연합 영업’을 하는데, 이들은 적극적인 영업을 위해 고객의 정보까지 공유하기도 한다. 가령, 고객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 심지어 무슨 요일에 주로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 까지 체크해서 해당 요일에 ‘우리 대리운전자가 고객님을 위해 특별히 대기하고 있다’는 식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업체 간 고객 유치전은 이처럼 뜨겁다. 대리운전 초보자라 하더라도 3~4일 정도 영업을 뛰다 보면 치열한 업체 간의 고객 유치 경쟁은 물론, 기사와 대리운전업체 간의 ‘요금 신경전’에 익숙해진다고 한다.
“잡느냐 무시하느냐” 오더 신경전
4월8일 오후 8시경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옆 한 은행 앞에서 대기 중이던 3개월차 대리운전자 김정섭씨(29)는 말끔한 정장차림에 귀에 무전기 이어폰까지 꽂아 언뜻 경호원처럼 보였다. 그는 낮에는 취업준비,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새벽 1시 정도까지 영업하는데, 이 시간을 넘어가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새벽시간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영업시간을 정해두고 있다.
“회사에서 꼭 정장차림을 하라고 합니다. 보험도 들지 않고 가격 덤핑까지 쳐서 대리운전 이미지를 안 좋게 하는 사람들과 확실한 차이를 두려면 매너, 옷차림, 말투, 이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김씨 옆에 있던 양복차림의 40대 대리운전자가 거들었다.
“손님들 중엔 기사들한테 ‘보험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보험 안 든 사람들도 들었다고 그러지 누가 무보험 기사라고 그러겠어요. 사실 손님 입장에서는 이 기사가 보험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대리운전업체에 전화해서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잖아요. 가장 편하게 구분하는 방법 가르쳐 드릴까요. 양복을 깔끔하게 입었는지, 대충 점퍼 하나 걸치고 대리 뛰는지를 보면 대충 맞아요. 양복 입고 매너 있게 뛰는 사람들은 보험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정씨는 PDA 대신 무전기처럼 생긴 단말기를 사용하면서 업체 상황실과 교신을 주고받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정씨는 무전기에 대고 “27번 콜”이라고 답한 다음, 시청 뒤편 북창동 쪽으로 뛰어갔다.
정씨 소속 회사의 경우, 상황실이 대리운전 출발지를 소속 전체 기사들에게 알리면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고유 번호와 ‘콜’을 외친다. 그러면 본부는 콜을 먼저 외친 기사의 단말기에 요금과 손님의 휴대전화번호 차량번호 등의 정보를 송신하고, 기사는 이 정보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서울·수도권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지리를 잘 모르면 콜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정어정하다가 밤새 한 콜도 못 잡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콜(혹은 오더)을 못 잡아서 머뭇거리기보다는 입맛에 맞는 오더를 기다리기 위해 소위 ‘영양가 없는’ 오더를 일부러 무시하는 일이 더 많다.
이런 내막을 업체들은 잘 알기 때문에 나름의 방지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른바 페널티 제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동작구 사당역 부근에 대기 중인 대리운전자에게 ‘사당동 출발→양천구 신월동 도착, 1만6000원’이라는 오더가 내려졌지만 기사는 이를 무시한다. 주어진 배차를 취소한 것이다. 회사는 세 번 정도까지 기사의 ‘배차 취소’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후 ‘취소’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매긴다. 취소할 때마다 500원가량의 벌금을 물게 한다.
배차 취소가 쌓일수록 벌금은 계속 추가되기 때문에 기사로서는 입맛에 맞는 오더를 계속 기다리기가 부담스럽다. 오더를 받아놓고, 즉 배차 확인을 해놓고 이를 취소할 경우엔 1000원의 벌금을 문다. 하지만 이 정도 벌금을 물더라도 사당역에서 안양, 군포, 수원 등 대리운전 요금이 최소 3만원까지 나올 수 있는 거리를 뛰어야 돈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엔 몇 천원의 벌금을 물더라도 기사는 배차를 취소한다. 업체로선 계속 배차 취소를 하는 이런 기사가 얄미워 ‘좋은 오더’를 이 기사에게 주기 싫을 법도 하지만 사당역에 수요가 많을 경우 이 기사에게 ‘좋은 오더’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런 신경전은 대리운전 수요가 많을 때일수록 더 치열하게 벌어진다. 월~수요일 특히 강남에 비해 대리운전 수요가 현저히 떨어지는 강북 지역은 오더가 내려지는 대로 곧바로 배차 처리된다. 외곽에서 시내까지 제법 먼 거리라도 ‘1만원 OK’ 경우가 흔하다. 수요가 많은 시내로 나간다는 점 때문에 이런 오더를 앞 다퉈 잡으려는 것이다.
대리운전자들은 주로 오더가 많은 쪽에 밀집해 있다. 그 중에서도 시외로 빠지는 길목이면서 동시에 번화가인 곳이 인기가 좋다. 성남·분당으로 빠지는 길목인 강남과 잠실은 물론이고, 군포·안양·과천 등으로 이어지는 사당동과 구로동, 또 하남·구리 등 동쪽의 길목 번화가인 천호동, 일산으로 통하는 신촌·홍대, 북쪽의 노원구 일대 등에 운집해 있다. 물론 어디로든 통하는 상권 중심지인 종로도 기사들에겐 인기다.
기사들의 인기지역 쏠림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강북지역은 강남에 비해 대리운전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부족한 틈새를 무보험 대리운전자들이 메우는 위험한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중구 필동에 있는 한 대리운전업체 사장의 이야기다.
“호출 받은 지역에 기사가 없으면 불가피하게 프리랜서 기사까지 쓰는 경우가 있는데, 당장 급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 확인을 일일이 할 수 없는 그런 측면도 있어요. 기사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콜을 잡으려 하는데,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잖아요. 다른 데랑 연계해서 기사들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대리운전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와 특히 무보험 대리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아직 관련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계속 국회에선 대리운전법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정부 부처와 업계의 이견 등으로 인해 심의조차 되지 않은 채 폐기돼왔다. 대리운전업계를 국토해양부가 맡을 것인지 경찰청이 맡을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첨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간단한 교육·보험금 내면 기사등록
4월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한 대리운전업체에 기사 등록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다. 운전면허증 제출과 간단한 서류 작성, 그리고 회사 간부와의 짧은 면담으로 면접 절차를 마쳤다.
간부는 “13일에 다시 나와서 등록 및 교육을 받고 업무에 들어가는데, 그 전에 한 달 보험료 6만원 중 13일부터 30일까지의 18일치에 해당하는 보험료 3만6000원을 회사에 입금해야 기사 등록이 된다”고 말했다.
보험금 입금을 한 다음 13일 오후 4시 요금계산, PDA 이용방법 등 각종 업무요령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넥타이 정장차림으로 밤 8시부터 업무에 투입됐다.
강남역 부근에서 먼저 시작했다. 첫 오더는 9시가 다 돼서야 잡혔다. PDA 단말기엔 손님이 있는 장소와 전화번호, 요금과 목적지 등의 정보가 떴다. 삼성 신사옥 주변 음식점으로 가서 손님의 NF쏘나타 승용차를 운전해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부근까지 가서 무사히 주차까지 마쳤다. 이동구간이 10㎞ 미만의 짧은 거리였기 때문에 요금은 최소 금액인 1만원.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태원 번화가로 이동해 서성이기 시작했다.
유흥거리가 눈앞에 펼쳐있었지만 마땅한 오더가 잡히지 않았다. 10시30분쯤 상암동으로 가는 오더를 잡았다. 요금은 1만6000원. 두 번째 대리운전을 마친 시간은 밤 11시. 대리운전의 ‘피크타임’이었지만 현재 기자의 위치는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상암동 아파트 단지 내였다.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싶어 버스를 타고 마포구 망원동까지 나왔다. 도로변에 상가가 즐비해 대리운전 수요가 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별 수확이 없었다. 그리곤 40분가량이 흘렀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피크타임을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던 차에 길동사거리까지 가는 2만원짜리 오더가 떨어졌다. 시외로 나가면 최소 2만5000원짜리를 잡을 수 있지만 수요가 별로 없는 월·화요일에 시내에서 2만원을 벌기는 쉽지 않다. 요금도 괜찮고 강변북로나 올림픽대교를 타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단축도 되는 꽤 괜찮은 오더였다.
많은 대리운전업체들이 ‘가격 덤핑’으로 ‘시내 무조건 1만원’이란 광고 전단지를 뿌려대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 중 상당수는 대리운전업체와 전화통화하면서 가격 흥정을 한다. 값을 1만원대 초반으로 깎기 위해서다. 하지만 흥정을 하다보면 손님은 ‘무조건 1만원’이 아니라 ‘최단거리 1만원부터’였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기자가 소속된 업체의 시내요금은 기본요금 5000원에 1㎞당 500원이 부과되는데 10㎞ 이내는 기본적으로 1만원이다. 14㎞까지는 1만2000원에 1㎞당 500원이 붙는다. 원칙적인 계산은 이렇지만 대리운전 상황실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에 맞춰 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월·화·수요일처럼 상대적으로 수요가 부족할 때는 요령껏 가격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해당 지역의 대리운전자에게 ‘이 정도 가격에 이 위치까지 가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대리운전 첫날에 번 돈은 모두 4만6000원. 20%의 회사 몫을 뺀 3만6800원이 수익이었지만, 세 번의 오더를 처리하는 동안 썼던 버스비, 택시비, 야식비 등 1만원을 빼면 수중에 떨어진 순수익은 2만6800원에 불과했다.
순간의 선택이 하루를 좌우하는 ‘오더 잡기'
대리운전 둘째 날인 14일엔 오후 8시30분경 종로구 종각 앞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최소 네 개 이상의 콜을 챙겨보겠다는 각오까지 했다. 밤 9시가 조금 못 됐을 때 첫날과 마찬가지로 1만원짜리 오더가 주어졌다. 다른 대리운전자들이 ‘배차 취소’했던 오더라고 짐작했다. 종각에서 마포구 염리동 아파트로 가는 짧은 거리였다. 윈스톰 SUV 차량을 운전하는 동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손님은 “하루 얼마 버느냐”, “요즘 대리운전자들 매너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보험 안 든 기사들 때문에 소비자들만 피해 보는데,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를 쉬지 않고 했다. 한마디로 ‘짜증나는 손님’이었다.
“이런저런 잔소리 지겹도록 실컷 하는 사람들 중에는 간혹 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선배 대리운전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5분 남짓의 운행시간 동안 손님의 비위를 맞췄다. 이 손님은 차에서 내리면서 주차상태까지 트집 잡은 뒤,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염리동에서 마포역 부근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밤 10시쯤 한 건이 또 잡혔다. 마포역 부근 도화동에서 상암동 아파트단지까지 들어가는 1만2000원짜리 오더였다. 20초 이내에 배차 할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10초 정도가 지나는 동안 망설였다. ‘에이, 또 상암동이야?’ 하지만 확인 결정을 했다. 전날 상암동까지 들어갔다가 별 성과를 얻지 못했던 ‘학습효과’ 때문에 머뭇거려진 것이다. 일단 배차 확인을 했기 때문에 최대한 고객이 있는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 했다. 뛰면 10분 내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다. 배차 확인하고 목적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3~4분.
가양대교 입구와 인접한 서울 서쪽 외곽의 상암8단지아파트에서 1만2000원을 받아들고 전날처럼 버스를 타고 그곳을 나왔다. 홍대 부근까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 상수동 극동방송에서 멀지 않은 야외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피크타임인 11시가 돼가고 있었다.
공용주차장엔 대리운전자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거리에 주차된 차량엔 서로 다른 대리운전 전단지가 4~5개씩 꽂혀 있었다. 한 대리운전자가 부지런히 전단지를 주차된 차에 꽂고 있었다. 그는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오는 이들에게 “대리 쓰시게요?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라고 홍보했다. 이곳에 대기하면서 이곳 주차장 차량들을 대상으로 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대리운전한 지 6개월이 됐다는 정성규씨(55)는 아내와 함께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10평짜리 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에 20일 이상 대리운전 해서 70만~80만원은 벌어간다고 했다.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일하는데 100만원 넘게 번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초부터 철물가게 수익이 떨어지면서 고민 끝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지금 정씨에겐 대리운전 수입이 주요 수입원이다.
드디어 시외 오더가 잡혔다. 안양 비산동 부흥고등학교 인근 관악현대타운까지 가는 그랜저TG 차량의 오더였다. 요금은 이틀 중 가장 높은 2만5000원. 안양까지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콜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일단 ‘시외’라는 점에 기대를 걸었다. 이 손님은 친절하게도 차량의 내비게이션을 작동해 편히 운전할 수 있게 배려해주곤 뒷좌석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서부간선도로를 이용, 30분 남짓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근 4호선 범계·평촌역 주변 상권이 발달해 있어서 그런지 오더가 제법 떴다. 하지만 안양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오더를 받지 못하고 번번이 배차를 취소했다. 페널티가 쌓여가는 듯해 마음이 불안해졌다. 서울로 일단 가야겠다는 마음에 버스를 탔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역 부근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는 동안 두 건의 오더가 떨어졌다. 그 중 하나는 수원까지 가는 3만원짜리였지만, 지금 수원으로 내려가면 새벽까지 PC방이나 사우나에서 3~4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포기했다. 잠시 뒤 대림동에서 목동3단지아파트로 가는 1만2000원짜리 오더가 잡혔다. 기본요금 거리인 해당 지점까지 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오더 네 건을 소화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이날 네 건의 대리운전으로 올린 매출은 모두 5만9000원. 회사 몫 1만1800원과 페널티 2500원을 뺀 4만4700원이 수익이었다. 여기에다 교통비와 야식비 등으로 쓴 1만1000원을 제하면 3만3700원이 이날 하루 순수익이었다.
요령·의지 부족…손에 쥔 돈 6만원 남짓
이틀 동안 모두 일곱 번의 대리운전으로 벌어들인 돈은 10만5000원. 이중 수익은 회사 몫과 페널티 등을 뺀 8만1500원이었지만 손에 쥔 돈은 대리운전 도중 교통비 및 야식비 등을 뺀 6만500원이었다. 이틀을 일해서 6만원 남짓 밖에 못 번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리운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하루에 네 번을 뛰고도 수익이 이 정도로 낮은 것은 전적으로 요령과 의지 부족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금·토요일처럼 대리운전 수요량이 많을 경우 다섯 건 정도의 오더를 소화하면 많게는 10만원까지 챙길 수 있다. 이런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오더에 대한 빠른 판단이 필수적이다. 우선 출발지가 현재의 내 위치에서 가까운지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프로’들은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정도의 거리는 피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그 다음 오더를 받아내기 쉬울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고객을 찾아내기가 쉬운지, 운행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운행 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번화가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대인지도 중요하다.
일종의 자영업이나 마찬가지인 대리운전의 수입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리운전자들에 따르면, 대리운전업을 본업이라 여기고 하루 10시간가량 풀타임으로 뛸 경우 수입은 150만~250만원 수준. 대리운전의 생리에 익숙해져야 이 정도 수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일요일을 쉬고 하루 5~7개의 오더를 소화한다.
취업준비 중인 젊은 층과 ‘투잡’에 나선 직장인들의 경우 마지막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새벽 1시~1시30분 정도까지 ‘파트타임’으로 대리운전에 임한다.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4차례 대리운전을 한다. 월 10~15일 정도 일하면 월 50만원가량 벌어들인다고 한다.
대리운전자들이 말하는 고수익을 위한 '3계명' "뛰고, 걷고, 안 먹는다"
1. 밤새 뛴다
대리운전을 하다 보면 손님이 있는 곳까지 빠른 시간에 가기 위해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택시를 타선 안 된다. 밤새 뛴다는 각오로 대리에 임해야 고수익을 낼 수 있다. 대리운전자가 습관적으로 택시를 탄다면 대리운전 안 하는 게 백 번 낫다. 남는 게 없다.
2. 밤새 걷는다
오더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다가 몸이 피곤해 PC방이나 만화방 같은 곳에 들어가는 그 순간 고수익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 된다. 거의 모든 시간을 밖에서 대기해야 오더를 적극적으로 잡을 수 있다. 날씨 탓에 일단 실내로 들어가고 나면 심리적으로 밖으로 나오기가 싫어지기 때문에 오더를 놓치기 쉽다. 대리운전자에게 ‘무작정 걷기’는 돈 버는 가장 좋은 습관이다.
3. 식사는 집에서
대리운전 중에 식사하는 습관을 들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리운전 중에 식사를 해야 일을 할 수 있는 고약한 버릇에 빠질 수 있다. 고수익을 내는 사람은 대리운전 중에 절대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하루 4000~5000원 식사비가 한 달 간 모이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고수익을 내려는 대리운전자들에겐 길거리 어묵과 편의점 컵라면도 사치다.
첫댓글 힘들어요
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