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몇 가지
小珍 박 기 옥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지도 1년이 넘었다. 미국의 3억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그런 변방 인물이 '세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만인의 이목이 집중되었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매스컴마다 온갖 '최초'와 '최다'를 붙여 경쟁 보도를 하더니 지친 모양이다. 오늘은 색다른 기사가 하나 눈에 뜨인다. 그를 만든 '3대의 여인' 즉,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이야기이다.
입장에 따라 세 여인을 보는 시각과 관심이 다르겠지만 나는 우선 외할머니인 메들린 페인 던햄을 주목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외손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바로 전날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편리한 점도 있었다. 살아있다면 유명세 때문에 나의 초대에 응하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국화 한 다발을 안기며 그녀를 맞이했다.
“궁금해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딸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저명한 인류학자였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돌며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인도네시아어, 자바어,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재원이었다. 그런 딸이 대학 재학 중 케냐에서 유학 온 흑인의 아이를 낳고 미혼모가 되었다.
“실망하지 않았나요?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다음으로 어머니인 스탠리 앤 던햄이다.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다. 두 번째 결혼한 남편을 따라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당연히 오바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바마가 다녔던 학교 담벼락은 당선 기사가 실린 신문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부지런한 어느 사진작가는 어린 오바마를 안고 활짝 웃는 스탠리의 사진을 붙여 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참으로 궁금해요”
나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아들(오바마)과 함께 사는 동안 새벽 4시에 아들을 깨워 영어를 가르쳤다. 그녀 자신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왕성한 지적탐구욕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아들에게 흑인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을 읽도록 했다. 흑백차별 철폐 운동을 펼친 흑인 가수들의 음반을 사 와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타깝게도 오바마의 아버지와는 헤어졌다. 오바마의 나이 두 살 때였다.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이었나요?”
이번에는 아내인 미셀 오바마이다. 그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요즘 눈만 뜨면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을 피할 방법이 없다. TV든 신문이든 다투어 그녀의 보도로 혈안이 되어있다. 이른 아침 나는 신문에 실린 그녀의 독사진을 마주하고 앉았다.
“궁금한 게 있답니다”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오바마와는 출생과 자란 환경이 확연히 다른 여인이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상의 온갖 불리한 조건을 딛고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성공한 여성이다.
오바마는 종종 ‘모르는 것은 아내에게 물어본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오바마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나 역시 오바마처럼 모르는 것이 있어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은 반쪽 흑인인 남편에게서 문화의 차이를 느끼지는 않나요?”
마지막으로 인류학자들에게 질문이 생긴다. 미국에 ‘꿈이 있다’고 외친 흑인 목사가 있었듯이 다른 나라에도 꿈을 주는 지도자는 많았다. 아프리카의 흑인과 사랑에 빠진 용감한 백인 여성이 미국에 있었듯이 신분을 뛰어넘는 세기의 사랑 또한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있어 오지 않았던가. 메들린처럼 흑인 외손자를 명문 사립학교에 보낸 헌신적인 백인 할머니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우리들의 부모 역시 손발이 닳도록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쳐오지 않았던가.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1776년 건국 이후 232년만이라고 한다. 1865년 노예제도 폐지 이후로는 143년만이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 는 연설을 한 지 45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수 개념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은 진심으로 궁금한 숫자를 하나 얻기 위함이다. 오바마의 당선을 ‘미국 민주주의의 진화’로 보고 건국을 기준으로 232년이 걸렸다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종차별, 이념의 대립, 지역감정을 적용시켜 유럽 각국, 일본과 중국, 마지막으로 한국의 예상 수치를 그래프로 나타낸다면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
쓰다 보니 나도 참 실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수치가 왜 갑자기 궁금한가 말이다. 통장 확인을 해 보니 이번 달도 마이너스 인생이구먼.
첫댓글
예전 작품 한 편 올려 봅니다.
창 밖으로 들려오는 선거유세를 접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