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능 스님은 당 태종 정관 12년 중국 최남부 지방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성은 노씨이며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소년 시절부터 나무 장사를 하여 늙은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했다.
그는 어느 날 시장에 나무를 팔러 갔다가 탁발승이 독경하는 소리를 들었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듣던 중 용무소주 이생기심(응당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이라는 구절에 마음이 끌리고 홀연히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가 독경한 스님에게 “무슨 경입니까?” 라고 물으니 스님이 “금강경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금강경 배우기를 간청하며 자기가 조금 전 듣고 느낀 심경을 이야기하니 탁발승은 황매산 오조 홍인 대사를 찾아가라고 소개해주었다. 탁발승은 젊은이의 발심을 기특하게 여겨 금 열 냥을 건네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옷과 음식을 사 어머니를 편히 모신 뒤 홍인대사를 찾아가 뵈옵고 예배했다.
홍인대사가 물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그가 대답했다.
“영남 신주에서 오직 깨달음의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영남인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사람은 남쪽 북쪽이 있지만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홍인대사는 몇 마디 나눈 말로 젊은이가 비범한 큰 그릇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학인들의 눈치를 염려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며 방앗간에서 일이나 하라고 몰아내었다.
그날부터는 노씨 성을 가진 행자라는 의미의 노행자로 불리며 방아를 찧어 스님들을 공양했다. 노 행자가 방아를 찧기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가 방앗간을 둘러보게 되었다. 대사는 힘이 부족하여 돌을 등에 지고 열심히 방아를 찧는 노 행자에게 말했다.
“혹 나쁜 사람이 너를 해칠까 염려하여 더 말하지 않은 것인데, 네가 그 뜻을 알았느냐?”
그 질문에 노 행자가 대답했다.
“예, 저도 스님의 뜻을 짐작했습니다.”
하루는 홍인대사가 문하대중을 모아 놓고 일대의 놀라운 포고를 했다. “대중은 들으라. 세인들은 생사가 큰일인데 너희들은 복이나 구하고 있지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는 구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은 스스로의 지혜를 돌아보고 본심의 지혜로운 마음을 게송으로 표현하여 나에게 가져 오라. 만일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대에게 초조 달마대사 이래의 가사와 발우 그리고 법을 전하여 육대조사로 삼겠노라.”
그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오조의 법을 이어받아 육조가 될 자라고 지목을 받고 이가 있었는데, 바로 신수 대사이다. 신수 대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대중들이 다니는 복도 벽 위에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붙였다.
몸은 보리의 나무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이것을 본 홍인대사는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게송임을 알았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라고 했다. 노 행자는 여전히 방아만 찧다가 어느 사미승이 외우는 어느 사미승의 게송을 들었다. 노 행자는 역시 그것이 아직 깨달음의 진의를 증득하지 못한 게송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글을 잘 모르는 노 행자는 동자승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부르는 게송을 신수의 게송 옆에 써 달라고 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도 역시 바탕이 아니로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먼지가 묻으리오
노 행자의 게송을 본 대중은 놀랐다. 그리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육신 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수근거렸다. 홍인대사도 노 행자의 게송을 보았다. 그러나 신발로 문질러 지우며 “이 게송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조실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홍인대사는 방앗간에 가셔서 허리에 돌을 달고 방아를 찧는 노 행자에게 물었다.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
이에 노 행자가 대답했다.
“쌀은 찧은 지 오래되었사오나 키질을 아직 못하였나이다.”
이 말을 듣고 홍인대사는 주장자로 방아를 3번 내려치고 거처로 돌아갔다. 노 행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삼경에 찾아가니 홍인대사가 부촉했다.
“네가 이제 제 6대조가 되었다. 잘 두호하고 지키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
노 행자는 무명의 나무장사로 출가한 지 8개월 만에 동토 초조 달마대사의 정법상승인(후계자)의 의발(가사와 발우)과 법을 오조 홍인대사에게 전수받아 육조 혜능대사가 되었다.
신라성덕왕 때 의상조사의 제자인 삼법 스님은 대비 스님과 함께 중국에 불법을 최초로 전수한 달마대사의 법통을 이은 육조 혜능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혜능 스님이 입적하셨다는 말을 듣고 몹시 슬퍼했다. 그러다 혜능선사의 <육조단경><유통부척>편에 “내가 멸한 뒤 5-6년 후 내 머리를 가지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 부분을 읽고 등신불이 된 혜능선사의 머리를 모셔오겠다고 결심했다.
삼법 스님은 김유신 장군의 부인에게 2만 금을 빌려 중국에서 혜능선사의 머리를 훔쳤고 경주 영묘사에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꿈에 나타난 혜능선사의 계시에 따라 강주(진주)의 지리산에 한겨울에도 칡꽃이 피는 곳 화개를 찾아 머리를 깊이 봉안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웠다. 암자가 소실 된 후에는 진감 선사가 이 터에 다시 암자를 창건하고 육조 혜능의 정상을 봉안한 그 위에 육조진전을 건립했다.
출처 : 진조 스님 / 지리산 대화엄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