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와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입니다. 이는 남북 모두가 합의한 사항인 것입니다."
"남과 북은 같은 한민족 한형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남북한 간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북에 대한 비판을 불허합니다."
"김정일과 김일성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남한의 조폭찌라지 언론들과 옛 독재정권들이 그 사람들을 나쁜놈들로 매도해왔을 뿐입니다. 특히, 김일성은 항일운동가이셨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국 군대에 장교로 입대해서 일본군 놈들의 부하 역할 할 때 말입니다."
"故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을 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의원장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고, 故 정몽헌 회장 같은 분들이 금강산 관광길과 개성공단건설 등의 길을 트셨습니다. 그리고, 경의선 및 동해선 등도 곧 개통될 것이고요... 남북은 지금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등의 말씀을 하시는...
운동권 여러분들 및 진보주의자 여러분들...
여러분들도... 어제 아래의 내용과 같은 보도 내용을 보셨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민족통일"은 어떠한 것입니까!
북에서 뽑혀온 사람들과 여러분들이 서로 엉키고 설켜서...
카메라 앞에서 눈물흘리고 그러는 것...
그래서 여러분들이 매스컴 크게 타고... 주목받고... 지지받고...
그리고, 여러분들 다니는 혹은 다니던 학교들에서도 크게 튀어보고...
이러는 것이 아닌지...
때론 묻고 싶어집니다.
*오프닝 멘트: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출장을 갔다가, 또 여행을 갔다가 강제로 북한에 끌려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날벼락을 맞은 가족들에게는 위로와 보상 대신 압박과 감시, 그리고 멸시 천대가 이어졌습니다. 끌려간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일부가 이산가족상봉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저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습니다. 가족들만 피눈물을 삼키고 있습니다.
*박선규 기자:
지난해 북한의 두 여동생을 만났던 김애란 할머니.
<현장음-상봉장면>
"흑 흑.. 작은 동생 복실입니다..."
*박선규 기자:
당시 김 할머니는 상봉장에서 35년 전 납북된 남편의 사진을 꺼내 들어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애란 할머니(80살, 납북자 부인):
"세상에 보지도 못하고 가나 싶어요. 숱한 미움만 나는 맨 날 받았네요.내 놓으라고 하면 내 놓겠어요? 우리 주인양반..."
*박선규 기자:
북한 방문 후 상실감이 더 커진 것 같다는 아들은 이럴 줄 알았다면 상봉신청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고 후회합니다.
*최성구(61, 납북자 아들):
"그 이산가족 상봉한다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참 저 사람들... 그 허탈감이란 것은 말 못합니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훨씬 나아..."
*박선규 기자:
예순을 넘긴 이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납북의 상처는 짙게 배어있습니다.
*최성구(충남장항, 납북자 아들):
"내가 인생을 체념하고 산지가, 그때가 68년도, 70년도 그때니까... 고등학교 동창인 애가 조그만 회사를 했어요. 거기에 서기로 들어갔는데 몇 달 후 그만 뒸습니다. 경찰이 찾아 와서 뭐 저런 사람을 데리고 있냐..."
*박선규 기자:
아들은 결혼도 포기한 채 어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영상구성-납북자의 편지>
"아버지 구실을 못했지만 이 아버지는 34년간 어느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이 아버지의 얼굴 기억 못하겠지만 이 아버지는 너희들 3형제 얼굴을 기억하고 어머니도 계속 생각나지. 너희들 만나기 전 절대 죽지 않는다. 살아서 기어이 선조의 무덤이 있는 고향 땅을 찾아 갈 것이다."
*박선규 기자:
제 3국을 통해 전해진 납북자들의 편지마다에는 이렇게 절절한 사연들이 담겨있습니다.
*박선규 기자:
경상남도 거제의 농소 마을. 1972년, 고기잡이에 나섰던 주민 24명이 한꺼번에 납북된 후 평온했던 이 마을은 눈물의 동네로 변했습니다. 지난 7월 북한을 탈출해 귀국한 김병도씨가 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사진을들고 모였습니다.
<현장음>
"이게 우리 옥렬이..."
"예. 옥렬이 맞습니다."
"맞아?"
"근데 옥렬이가 나는 다른 도에 있는가 했는데 그 후에 내가 알아보니까 함경남도 고원군에 있는 것 같아요."
"이거 강소동이거든..."
"강소동이, 강소동이!"
"어 비슷하쟎아."
"근데 이 군복을 입고 이래 있으니 잘 모르겠는데 강소동이 알죠."
*박선규 기자:
김 씨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민들의 표정이 복잡해 집니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영혼결혼까지 시켰다는 김순선 할머니는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감격합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이내 한숨으로 바뀝니다.
*김순선(76, 납북자 어머니):
"살아있다 카는데 다시 언제 보겠노... 어찌하든가 좀 만나고 죽구로 해주이소. 기어라도 내가 갈 겁니다."
*박선규 기자:
그러나 이 아들의 어머니는 몇일 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상심해 누운 뒤 세상을 떴습니다.
*최성용(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뭐라고 했냐면 안 돌아가셨다 내가 북한에 다시알아봐서 생사확인 시키고 어떻게 하든 탈출시킬 테니까 밥 잡숫고 조금만 기다려라 했는데..."
*박선규 기자:
김씨를 보고 설움이 더욱 복받쳐 주민들은 힘겨웠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털어 놓습니다.
*김점선(72살, 납북자 부인):
"나무 해 갖고 넣어다고 연필 사주고... 공부시키고 흑흑... 하나 업고 나무 이고 내려오다 이 동네에서 저 멸치 삶는데 그 때 이어다가 내가 팔고... 우리 큰 아들이 충북 수전에 댕겼거든요. 그래 댕기다 3학년 올라가 갖고 즈그 아바이 이래되니까 만날 학교 가면 너그 아버지 빨갱이다..."
*박선규 기자:
납북된 사람들이 대부분 가장이었기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관찰대상자’ 라는 이른바 연좌딱지는 숨통을 더욱조였습니다.
*김점선(납북자 부인):
"만날 순경이 와서 저 옆에 보면 서가 있고... 빨갱이라고 우리를. 아무 것도 모르고 간 사람을 왜 순경이 감시하고..."
*유우봉(68살, 납북자 부인):
"말 못하지요. 우리 살아 온 거는 말을 못합니다. 어떤 이는 신고 없이 이사했다는 이유로12일 동안 경찰서에서 갖은 고초를 다 겪었고, 어떤 이는 결혼비용이 어디서 났냐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선규 기자:
지난 95년 중국 연길에서 납치된 안승운 목사 가족, 안 목사 납북 후 가정은 완전히 엉망이 됐습니다. 부인은 파출부로 나서야 했고 자녀들의 학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연순(납북자 안승운 목사부인):
"벌써 9년, 8,9년인데 얼마나 궁금하시겠어요. 얼마나 오고싶고..."
(꿈속에서라도 뵌 적 없으세요?) "왜요? 꿈에 나오죠." (뭐라고 그러세요?) "꿈에요. 오셨다 가고 그래요." (오시면 뭐라고 그러십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조금 있다가 온다고 그래요."
*박선규 기자:
중국 정부가 납치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남편이 북한에 살아있는 사실까지 확인됐지만 송환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이제 화를 내는 것도 지쳤습니다.
*이연순(납북자 안승운 목사부인):
(요즘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거 보실 때 느낌이 남 다르실 것 같아요.)
"근데 전 그런 거 보면 속상해요. 그냥 가서 얼굴만 보면 뭐합니까? 전 지금 거기 북한에서 안 목사님 와서 잠깐 만나라고 그러면 전 안갑니다. 억류당한 것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거를 놓고 그냥 돌아서 옵니까..."
*박선규 기자:
학비문제로 휴학중인 아들은 탈북자만큼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어이없어 합니다.
*안상엽(납북자 아들):
"참 아이러니컬한게... 자기 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 솔직히 어떻게 보면 한민족이긴 하지만 우리 국민은 아니잖아요."
*박선규 기자:
상황은 이렇게 심각하지만 납북자 문제는 철저하게 당사자와 가족들만의 문제일 뿐입니다. 정부는 국군포로를 제외한 납북자가4 86명이라고확인까지 하면서도 생사확인은 물론 이들의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박선규 기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어진 화해 분위기 속에서도 납북자 송환을 정식으로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00년 북한의 요구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내면서도 납북자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윤미량(통일부 이산가족 1과장):
"정부차원에서 다른 것하고, 가령 대북지원이라든가 남북협력 속에서 왜 납북자 문제를 좀 더 잘 못 풀어내고 있냐고 그러면 우리 남북간에는 지금 얽힌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납북자에만 집중을 못했다라는 그 말씀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박선규 기자:
송환요구 대신 정부는 지난 2천년부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납북자 가족을 일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박상용(독일통일연구소 소장):
"납북자 문제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납북자 문제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다시 송환요구를 하는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의 한 범주 안에 납북자 문제를 다뤘다는 것이 이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경우 당시의 내독성이죠. 우리나라 통일붑니다. 내독성 장관이 가방에 10만 마르크를 들고 갑니다. 여기서 한 명의, 최초의 정치범을 데리고 귀환을 하죠. 이것이 시초가 돼서 무려 3만 4천명의 정치범들을 석방시킵니다."
*박선규 기자: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당사자들은 이제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 1970년납북돼 30년 만에 돌아 온 이재근씨, 그를 구해낸 것은 정부가 아닌 납북자 가족들이었습니다. 그에 의해 60여명 납북자들의 생사가확인됐습니다.
*이재근(납북자 출신 탈북자):
"79년도부턴가 (납북자)강습을 했단 말이요. 강습을 했는데 그냥 한번할 때는 보통 이제 한 50명 내지 54명, 60명이 하는데 다 모이니까 막 반가워서 끌어안고 니 어디 사니, 누구는 어디 산다..."
*박선규 기자:
지금도 지난 30년을 떠 올리면 눈물이 앞섭니다.
*이재근(납북자 출신 탈북자):
"달밤에 인자 달이나 휘영청 밝고 할 것 같으면 살다 보면 고향생각이 나죠. 뭐 그 때 완전하게... 내 고향가면 저 달을 보겠는데 하는 이런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죠."
*박선규 기자:
북한에서, 중국에서 그 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정이 격해집니다.
*이재근(납북자 출신 탈북자):
"마지막에 중국에 와서 내가 한국 대사관에 들어가서 내가 한국 사람인데 나를 좀 조국에 가게 해달라 하니까 ‘당신이 세금 낸 게 있는가? 왜 자꾸 국가에 손 내미는가? 당신 힘으로 가겠으면 가라...' 그때 내가 격분했다고요."
*박선규 기자:
이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3명의 납북자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정부가 아닌, 한 개인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괍니다.
*최성용(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처음에는 제 아버님을 구해오고 싶은 마음,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 생사확인을 시켜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가 나섰습니다. 제가 오죽하면 나서서 하겠습니까. 그것도 죽기 살기로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일은."
(시민단체에 대한 서운함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가 2000년도 갈 때 모든 사람들이 시민단체가 도와줬습니다. 그분들 자금, 그분들의 모든 경로, 그 분들의 축하파티...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나서서 도와달라고 시민단체나 정치인들한테 손 내밀고 메시지를 보내고 살려달라고 했지만 우리한테 도와주는 분들이나 시민단체는 한 분도 없습니다. 그것이 제일 통곡할 뿐입니다."
*김병도(납북자 출신 탈북자):
"저는 스물 세 살 때 북한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30년 만에 이 고향에 왔습니다. 나의 모든 청춘은 북한에서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되겠습니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클로징 멘트: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그런 정신에 따라 일본은 납북자 송환을 수교의 가장 중요한 전제로 삼고 있고, 미국은 50년 전 전사자 유해까지 찾고 있습니다. 납북자는 납북자대로, 또 남겨진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첫댓글원래는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의 까페에 올려야 할 글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까페치고... 파시스트들의 소굴이 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여기에도 자칭 진보를 외치는 자들이 가끔 들어오니... 그들이라도 이 글을 보기를 바랠 수 밖에요...
하긴, 한편으로는 정부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잡혀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완전히 "월북자 가족들"처럼 몰아붙인 것으로도 모자라... 막상 힘들여 탈출해 중국까지 온 사람에게... "당신 세금 낸 것도 없으면서 왜 국가에 구해달라 마라야!"라고 했다니... 유신정권, 정의사회구현정권, 보통사람들의 정권
,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 개소리 같습니다. 다들 도덕교과서 등에 자신들이 북한과 얼마나 대화를 많이 했는가를 올리는 것이나 좋아하고, 노벨평화상 받는 거나 밝히고, 더 나아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네티즌들에게 지지받는 것에만 신경썼지... 누구 하나... 이들 사람들에게 올바로 신경썼던지요!
이라크파병문제를 놓고 이라크국민들에 대한 인권을 부르짖으며 울고불고 하는 어설픈 인권주의자들이 북한의 참담하리만큼 억눌린 인권문제에 눈을 돌리고 탈북동포에 대한 지원방안 등에 따뜻한 손길을 전할수있었으면 합니다.제집안에 동포에는 눈길한번주지않으면서 무슨 인권주의 운운이란 말입니까?
첫댓글 원래는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의 까페에 올려야 할 글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까페치고... 파시스트들의 소굴이 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여기에도 자칭 진보를 외치는 자들이 가끔 들어오니... 그들이라도 이 글을 보기를 바랠 수 밖에요...
하긴, 한편으로는 정부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잡혀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완전히 "월북자 가족들"처럼 몰아붙인 것으로도 모자라... 막상 힘들여 탈출해 중국까지 온 사람에게... "당신 세금 낸 것도 없으면서 왜 국가에 구해달라 마라야!"라고 했다니... 유신정권, 정의사회구현정권, 보통사람들의 정권
,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 개소리 같습니다. 다들 도덕교과서 등에 자신들이 북한과 얼마나 대화를 많이 했는가를 올리는 것이나 좋아하고, 노벨평화상 받는 거나 밝히고, 더 나아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네티즌들에게 지지받는 것에만 신경썼지... 누구 하나... 이들 사람들에게 올바로 신경썼던지요!
이라크파병문제를 놓고 이라크국민들에 대한 인권을 부르짖으며 울고불고 하는 어설픈 인권주의자들이 북한의 참담하리만큼 억눌린 인권문제에 눈을 돌리고 탈북동포에 대한 지원방안 등에 따뜻한 손길을 전할수있었으면 합니다.제집안에 동포에는 눈길한번주지않으면서 무슨 인권주의 운운이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