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김혜숙(49, 가명)씨가 4일 동포사회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서 겪은 자신의 비참했던 삶을 털어놨다. 이에 앞서 김씨는 지난 1일 오타와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인권위원회 청문회에서도 같은 내용을 증언했으며. 2일에는 스티븐 하퍼 연방총리를 면담했다.
다음은 김씨의 증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남하했다는 이유로 13살때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인 북창18관리소에 수감됐다. 감옥 형태가 아니고 오지 탄광촌으로 철조망이 쳐있다. 1975년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던 중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4년 후 질병과 영양실조로 43세에 사망했다.
채탄광부로 하루 16~18시간 일했다. 원래 3교대 하루 8시간 노동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휴일은 한달에 한번뿐이다. 눈과 코에 탄가루가 들어가고 사고도 많이 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매일 일을 마치면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 산을 뒤져야 했다.
10년 넘게 열심히 일하자 결혼 승낙을 해줘 1990년 보위부 지도원 등 5명의 비준을 받아 혼인했다. 첫 임신때 도토리나무순의 쓴물을 빼서 강냉이 가루를 넣어 먹었다. 만삭에도 쉴 수 없어 배낭지고 나물 뜯으러 갔다가 산에서 아기를 낳고 50미터를 기어왔다. 다행히 이웃사람에게 발견돼 아기와 함께 살 수 있었다.
20년 이상 모범 생활을 해 2001년 석방됐고 13세 딸과 9살 아들을 데리고 수용소를 떠나 임시거주지인 순천으로 갔다. 남편은 광산폭발사고로 숨진 뒤였다. 2년 후 아이들은 마을을 휩쓴 대홍수 때 실종됐다. 수개월 찾아 다녔으나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3일만에 깨어났다.
2005년 중국으로 넘어갔다. 젊은 여성들은 팔려갔으나 50살이 넘어 보이자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중국 식당이 인신매매 장소로 이용됐으며 밥 짖는 일을 했다. 1년 넘게 있는 동안 탈북자를 집집마다 수색하던 공안에 발각될까봐 항상 떨었다. 식당 주인이 씨돼지를 구해오라고 북한으로 보냈다. 그곳이 더 싸기 때문이다. 신고가 두려워 10마리를 보냈으나(경비대 연결돼 있음) 이후 5마리를 더 요구했고 그 와중에 안전부에 붙잡혀 다시 수용소로 보내졌다.
2008년 수용소 상황은 더 악화돼 있었다. 한 엄마는 배급된 쌀을 다 먹어버린 아들을 살해한 후 사체를 돼지고기로 팔았다. 그 여성으로부터 돼지고기 한 토막을 샀는데 나중에 이 얘기를 들었다. 맨발로 수용소를 탈출해 라오스로 도망친 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갔다. 김정일이 권력을 잡은 뒤 공개처형이 더 만연했다.
김씨는 ‘그림으로 보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라는 자료집을 동료 탈북자들과 함께 최근 발간했다. 이날 동포사회에 일부 배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