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국 장
김 이 듬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파무크*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밝은 조명 아래 내 우울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습관처럼 깊이 눈을 감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습격한다 밀려내려가다 꼼짝없이 매몰되었던 사람들 필시 친구는 알고 있을 텐데 이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악했을 텐데 …(중략)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트렁크 끌고 공항철도를 타며 말해야 할까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것들이 조각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하다면 이즈음 나는 어두운 방에 나를 가둔 채 발작하지 않았겠지 신경안정제 부작용인지 부은 얼굴로 너를 마중하러 나오지는 않았겠지 네가 예민한 건 아니야 친구가 와서 나를 안아주면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
* 오르한 페리트 파무크 (Orhan Ferit Pamuk, 1952~) : 터키의 소설가, 수필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비교문학과 글쓰기 교수.
-『국민일보/시가 있는 휴일』2023.11.30. -
투명한 것과 없는 것 - 예스24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가진 양면성에 관해 생각한다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혼동하지 않을 때까지”이 도시를 사랑하고 싶기에,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기에또다시 날개를 펼쳐 마음을 부딪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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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문학동네 | 2023
[시가 있는 휴일] 입국장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폐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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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 / 김이듬 『국민일보/시가 있는 휴일』 ▷원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