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불교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산 속에서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하는 우리 민족고유의 仙을 추구하는 나라였습니다. 광개토태왕도 백두산과 강화도 마니산 제천단에서 제천의식을 하고 仙음악을 즐겼던 대제사장이였습니다.
황하상류지역의 [영락궁]도 그러한 고구려의 仙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광개토태왕의 황후인 <평양>은 <소수림제>의 원비인 <연>씨의 소생인데, 젊어서는 선약仙藥 일을 즐겨 하였고..<소수림 대제>가 담덕에게 권좌를 물려준다고 명하였기에, 소수림 대제의 장자였던 <강>은 권좌를 담덕에게 양보하고 仙宗선종이 되었다. "
광개토태왕의 황후이름은 [평양]으로 광개토태왕의 큰아버지 소수림 태왕의 딸로 광개토태왕과는 사촌관계입니다. 단군조선이전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황족들은 근친혼으로 황족의 피를 유지하고 확산시켰습니다.
[평양]황후는 젊은 시절부터 선약仙藥을 추구하였고 덕이 있었으며, 행실은 맑았고 정조를 지켰으며 광개토태왕이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의논하였습니다.
上 在 東 宮 時, 累以義直諫. 至是, 擢以代<鞱>. "광개토태왕이 동궁(태자) 시절에 여러 번 의롭게 직간하였더니, 이 때에 왕의 후계자로 발탁되었다." [직간 :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잘못된 일에 대하여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직접 말함을 뜻한다.]- 고구려사초 고구려사략 제19세 <영락대제>기
고구려사초 고구려사략 제19세 <영락대제>기
第十九世<永楽大帝>紀 제19세 <영락대제>기
전하여오길 제의 휘는 <담덕>이다. 모친은 <연>씨로서 <천강>상태후로 불렸으며, <천원공><림>의 딸이다.
꿈속에서 신록과 교호하여 제를 낳았다. 모습은 그윽하면서도 크고 듬직하였으며, 큰 무인의 기풍을 가졌었다. <수림>이 나라를 물려준다고 명하였기에, 장자이었던 <강>은 양보하고 선종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군대의 일을 좋아하여 병서를 읽었으며, 정사에 간예하였더니 <연도>가 범접하지 못하였다. 傳曰; 帝, 諱<談德>. 母, 太后<淵>氏, 號曰<天罡>上太后, <天原><琳>女也. 夢與神鹿交好而生帝. 幼而雄偉, 有大武之風. <獣林>命傳國, 故長子<岡>讓為仙宗. 自幼, 好軍事, 讀兵書, 干預政事, <淵鞱>畏之.
◎ 元年辛卯, 六月, 葬大行于<故國壤>, 禁殉葬及珍宝, 只置烟戶及碑以記功德. 以<天罡>為皇太后, <吐山>為皇后. 以<積>太子為太輔, <淵億>左輔, <朋連>右輔. <免衡>中畏大夫, <琳>之庶子也. 其母, 以<免柯>女, 以<衡>為<柯>孫. 上 在 東 宮 時, 累以義直諫. 至是, 擢以代<鞱>.
○ 원년{단기2724년/AD391}신묘, 6월 대행을 <고국양>에 장사하였다. 순장을 금하고 진귀한 보물도 부장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단지 연호{烟戶=守墓人}를 두고 비석{碑}만을 세워서 공덕을 기록하라 하였다.
<천강>을 황태후로, <토산>을 황후로 세우고, <적>태자를 태보로, <연억>을 좌보로, <붕련>을 우보로 삼았고, <면형>은 중외대부로 삼았는데, <림>의 서자였으며, 그의 어미는 <면가> 딸로서, <형>을 <가>의 손자로 삼았다.
상이 동궁에 있을 때 여러 번 의롭게 직간하였더니, 이 때에 이르러 발탁되어 <연도>를 대신하게 되었다.[직간 :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잘못된 일에 대하여 직접 간함을 이른다.]
◎ 七月, <奈宻>遣使吊賻, 請献二女為侍妾, 許之. 上, 謂群臣, 曰; “今, 四海諸國, 無不建元. 獨我國無此, 久矣. 宜體三代建元之例, 更建新元.” 於是命, <春>太子上號, 乃以<永楽>為年號, <平安>為徽號. 上, 可之. 上, 謂太后, 曰; “<平陽>, 以伯帝之女, 事朕以貞. 今又生女, 而累勧其弟<岡>讓嗣于朕. 其功不少, 亦立為后, 何如.” <天罡>曰; “天下事, 唯陛下主之. 老妾何知.” 上乃命<免衡>, 迎<平陽>于新宮冊皇后, 一如<吐山>例. <平陽>, <獣林帝>元妃<燕>氏出也. 少好仙薬之事, 有窈窕之德而淨貞, 自守. 年過二紀未甞斜視一人. 上, 潛邸時, 以<平陽>為宮人, 尋受幸生女. 至是, 又生女, 陞皇后, 宝算三十三. 后有聖德, 上每有大事必議而行之.
○ 7월, <내밀{=내물}>이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며 부의하고는 두 딸을 바치면서 시첩으로 삼아주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상이 군신들에게 이르길; “지금 4해{四海; 나라 밖}의 모든 나라들이 년호{年號}를 세우지 않은 곳이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없는 지가 오래되었소. 3대 시절{<추모>·<유리>·<대무>}에 건원하던 예를 살펴서 응당 새 연호를 세워야 할 것이오.”라 일렀더니, 이 명을 따라서 <춘>태자에게 호를 지어 올리길, <영락>을 연호로, <평안>을 휘호로 하자고 하였다. 상이 그리 하자고 하였다.
상이 태후에게 아뢰길; “백제{伯帝; 先帝 故國襄 大帝의 형 小獸林 大帝}의 딸 <평양>은 짐을 섬김에 깔끔하고 정숙하였었으며, 지금 다시 딸을 낳았고, 여러 번 자신의 동생 <강>에게 일러서 짐에게 사위를 양보하게 하였습니다. 그 공이 적지 않으니, 역시 후로 삼으려합니다. 어떠신지요?”라 하니, <천강>이 아뢰길; “천하의 일은 오로지 폐하께서 주관하시는 것인데, 어찌 노첩이 알겠습니까?”라 하였다. 상은 이에 <면형>에게 명하여, <평양>을 새 궁전으로 맞아들이도록 하여, 황후로 책봉하고 <토산>의 경우와 하나같게 하였다.
<평양>은 <수림제>의 원비인 <연>씨의 소생인데, 젊어서는 선약仙藥을 즐겨 하였고, 요조窈窕(말과 행동이 정숙하고 자태가 기품이 있음)의 덕이 있었으며, 행실은 맑았고 정조를 지켜서, 나이 20살이 넘도록 다른 이를 곁눈질 하지 않았다.
상이 <평양>을 궁인으로 삼았더니, 승은을 입어 딸<가련 공주>을 낳았고, 다시 딸을 낳고 황후가 되니 나이 서른 셋이었다. 황후는 성덕이 있어서, 상은 큰 일이 있을 때 마다 꼭 황후와 의논하고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