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칫하면 선생이 될 뻔했다.
일본에 유학가기 전, 강릉농고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아버지 역시 강릉농고 교사로 재직했었다.
그러나, 다행이다. 교사가 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잘된 일이었다.
한 청년이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에게 어느 시골학교에 교사 자리 하나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청년은 스승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 학교에 가거든 화장실을 잘 둘러 보게. 한 줄의 낙서도 없는 그런 학교라면 취직해도 좋겠네.”
공교롭게도 그 학교 화장실은 깨끗했고, 그래서 청년은 그 학교에 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 학교 재정이 열악해, 월급이 형편없었다.
청년은 몇 번인가 한눈팔 생각을 했고, 그럴 기회도 찾아 왔지만, 그 가난한 시골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이 그의 마지막 직장이 되어버린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학교 아이들은 운동장에 떨어진 십원짜리 동전 하나도 몰래 제 호주머니에 넣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교내방송을 통해 기어코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애를 썼다. 청년 교사는 아이들의 착한 마음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그 학교에는 아이들을 정직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흐르고 있었다. 청년 교사는 그 기운에 감전이 되어, 꼼짝없이 거기 눌러 앉았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런 학교들이 적지 않았다. 스승은 높은 이상으로 어린 제자들을 일깨우고, 제자들은 스승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는 학교. 제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그리고 그 부형들이 가슴을 열고 지혜를 함께 모으는 그런 학교들이 여기저기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학교가 전멸했을 리야 만무하지만, 세상은 퍽 달라졌다.
폭력과 집단따돌림이 횡행하고, 인터넷 게시판과 동영상만이 제 권리를 지키는 수단이라고 믿는 학생과 부형이 자꾸 는다. 참 스승, 진정한 교육은 날로 시든다. 다들 물질적인 잣대로 학교를 재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마저 숫자로 평가해 차별대우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 시장원리를 내세워 국공립 대학까지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천국. 희망을 가르치는 스승이 사라지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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