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는 기도의 방편
매일성경, 2024년 7/8월호에서는 묵상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코너에서 예수기도, 짧은 문장 기도, 향심기도를 소개하는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p.180~185) 그러나 이러한 기도의 형태를 소개하는 내용은 기도가 가지는 신앙적 합당한 방편에 있어 경계와 재고가 필요하다 사려되는 바, 소개된 기도의 문제를 상고하여 보고자 합니다.
먼저 여기서 예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을 들숨과 날숨의 호흡에 따라 고백하는 것이며, 짧은 문장 기도는 자기 마음에 알맞은 구절을 택하여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기도, 향심 기도는 마음이 분산되고 기도에 집중이 잘되지 않을 때, 거룩한 단어(하나님 등)를 반복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의 유형과 내용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으로 들숨과 날숨의 호흡에 맞추어 기도하는 것이라 합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말하며 숨을 들이쉬고,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p.182)
이것은 마치 주문과 같으며 호흡에 맞추어 내쉼으로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은 마음수련에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면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잡념을 빼내는 명상과 같습니다.(Daum, 마음수련)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은 이러한 기도문을 들숨과 날숨에 맞추어 읊조리는 것을 기도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짧은 문장 기도입니다.
이는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에 기록된 기도의 한 구절 혹은 자신에게 알맞은 구절을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것입니다. (p.183) 예를 들면
시편 70: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이 구절을 반복할 것을 말하는 데, 정작 시편의 기자요, 이 고백의 저자인 다윗은 도와주실 것을 반복하여 말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모를 당하게 하여달라고 간구를 이어갑니다. 같은 기도의 고백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70: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이렇듯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은 같은 구절,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며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으로 같은 말을 많이 한다고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숭배하였던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이 자신들의 신을 숭배하며 기도할 때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언부언의 태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예를 봅니다.
왕상 18: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이는 엘리야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 간에 있었던 일로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을 증명하는 자리에서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우리에 응답하소서” 같은 말로 계속 부르짖었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던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왕상 18:20~26)
이처럼 바알을 숭배하던 선지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현대에서 남묘호렌겐교와 대비될 수 있는데, 남묘호렌겐교는 “남묘호렌겐교”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외우며 말합니다. 이렇게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우는 것은(혹은 말하는 것은) 이를 통해 마음에 원하는 소망이 실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Daum, 남묘호렌겐교)
이렇게 볼 때 짧은 문장 기도는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문맥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한 적용으로 볼 수 없으며 반복적인 읊조림을 기도로 표현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겠습니다.
세 번째는 향심기도입니다.
향심기도는 짤막한 낱말을 택하되 가급적 한 음절로 된 낱말을 택하라 합니다. 이를 테면 주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 거룩 등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를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거룩한 단어를 사용할 것을 말합니다.(p.184)
이러한 단어를 마음이 분산되고 기도가 방해받을 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특정 단어들을 주문처럼 사용하는 바가 강한데,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드렸던 어떤 믿음의 선진들을 보아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마음이 분산되어 그러한 단어를 언급하며 마음을 다잡은 표현이 없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께 행하신 일들에게 감사할 때는 기쁨의 고백을 드렸고, 주어진 삶과 상황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찾으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중에 사랑, 거룩, 하나님 등 특정 단어를 통해 마음을 잡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잡을 이유도 없이 그 마음을 따라 순적히 고백하고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시편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무엇보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기도드리며 간구할 때 먼저 부르는 고백하는 대상으로서 언급될 수 있으나 자기 마음이 분산되고 기도가 방해받는 다?고 툭 던지듯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러한 상황에 하나님, 성령님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됩니다.(출 20:7)
시편 71: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향심기도 역시 바람직한 기도가 아니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며 경배의 대상이요
경건한 신앙의 의의를 가진 단어들을 가벼이 부를 수 있으니 주의하고 경계함이 마땅합니다.
글. 배병두 집사(대구 서문교회 사랑부 교사) 2024.7.19./20
첫댓글 💖삶에도 여백의 공간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에 여백이 클수록 사랑과 행복을
넉넉히 채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좋은 산앙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