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종 123권, 31년(1449 기사 / 명 정통(正統) 14년) 2월 25일(병자) 3번째기사
일본 살마주 등원 희구가 단목·납철·호초 등을 바치므로, 정포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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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살마주(薩摩州) 등원 희구(藤原熙久) 가 사람을 보내어 단목(丹木) 1천근, 납철(鑞鐵) 1백근, 호초(胡椒) 9근, 속향(束香) 1백근, 백단향(白檀香) 50근, 백합(白蛤) 10개, 등(藤) 5백개, 오매목(烏梅木) 1천근, 유황(硫黃) 2백 50근, 상아(象牙) 11근을 바치니, 정포(正布) 1천 1백 24필을 회답으로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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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외교-왜(倭) / *왕실-사급(賜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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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종 82권,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9월 29일(경술) 1번째기사
의정부에서 각 섬의 왜인에게 행상을 경과하는 데에 소요되는 양곡의 양이 과다하니 거리에 따라 적절히 감할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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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부산포(富山浦) 로부터 대마주(對馬州) 북방 지대까지 순풍(順風)이면 하룻 길이요, 종정성 · 종무직 이 살고 있는 곳은 이틀 길이요, 일기주 는 나흘 길이요, 좌지전 과 지좌전(志佐殿) 은 닷새 길이요, 비주 원의 가 사는 곳은 엿새 길이요, 구주 종금 이 사는 곳은 이래 길이요, 석견주 의 주포겸정 과 등관심(藤觀心) 이 사는 곳은 열 사흘 길이요, 살마주 의 등원희구 가 사는 곳은 보름 길이온데, 그 지급하는 식량의 수량이 과다하여, 장차 잇대어 주기가 어렵사오니, 마땅히 그 수량을 적절히 감하여 좌지전 과 지좌전 에는 20일 분의 식량을 주고, 비주 는 15일 분의 식량을 주며, 구주 는 20일 분의 식량을 주고, 석견주 와 살마주 , 그리고 대우전(大友殿) 이 사는 풍후주(豐後州) 는 모두 30일 분의 식량을 주고, 대마주 는 종전대로 주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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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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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과 2)번을 종합하여 검토하면, 조선의 부산포로부터 살마주는 뱃길로 순풍일 경우 15일이나 걸리는 장거리 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나오는 특산물에는 '상아'가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일본의 정예군이 있던 살마주는 현재의 태국부근이 확실하며, 이 곳으로 부터 조선시대 배와 뱃길로 15일 거리에 '부산포'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맞설 상대가 없는 일본의 최정예군이라는 살마주군대는 무에타이를 수련하는 '태국의 전사(무사)'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마도를 이 기록은 '대마주'라는 것으로 표현하여, 대마도가 섬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문종 5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1월 4일(갑진) 8번째기사.
일본국(日本國) 관서로(關西路) 살마주(薩摩州) · 대우주(大隅州) · 일향주(日向州) 3주 태수(太守) 등원 충국(藤原忠國) 이 보낸 춘곡(春谷) 등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고,..
다시말해, 살마주는 일본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지역이라는 것으로 현재의 태국 또는 미얀마의 위치가 더욱 신빙성을 가지게 됩니다..
“살마주”에 대한 총 검색건수 : 146 건 ->성종 66건 (이 66건의 대부분이 일본 살마주에서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는 내용이네요..) 그만큼 성종이 '대-일본' 정치를 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의 번영은 얼마나 일본을 잘 포섭하느냐?.. 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종 104권, 10년(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5월 16일(신미) 1번째기사
지금 온 박다 의 왜인 신시라 등이 출송(出送)을 하여 나흘 낮 이틀 밤 만에 살마주(薩摩州) 에 이르러,... 유구->살마주....나흘낮 이틀밤...정도의 거리... 말레이시아로부터 태국까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책은 왜곡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게 이상하군요
어젯밤 꽤 많은 자료를 일일이 검토한 결과,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조선초기의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대륙이 조선으로 보이지만, 선조이후, 즉 임진왜란 이후의 경우, 대륙이 현재의 China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왕조실록 내에도, 여러가지 변화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도 또 다시 변화의 모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고종이후도 분명히 다른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일본의 살마주와 대마주 사이가 너무도 안좋아, 조선으로 흘러온 살마주의 백성을 대마주를 통해서 보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즉, 대마주가 조선과 가까워, 보통, 풍랑을 만나 조선해변으로 흘러들어온 일본의 백성을 대마도를 통해서 송환했는데, 당시, 살마주와 대마주의 전쟁으로 살마주의 백성을 대마주로 보냈을 경우, 참수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죠..그 만큼 일본내에서도 전쟁이 빈번하였고, 안정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이 광폭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나옵니다. 이 곳은 지속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살마주' 군대가 전쟁으로 단련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유구국으로 흘러온 조선의 백성이 살마주로 보내달라는 의견에, 유구국의 왕이, 그곳의 백성이 광폭하여, 좀 멀기는 하지만, '강남'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살마주와 강남이 보다 가깝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메콩강 하류가 강남이 될 수 있으며, 현재의 베트남 남부 지역이 해당될 수 도 있으며, 해당지역이 전라도가 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러가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베트남의 고서들이 우리 선조들이 쓰던 한문입니다 그지역을 양자강 한양에 있던 말기조선이 속국으로 삼았다고 봅니다
아직도 의문인 것은 이렇게, '세종'과 '성종'시대에 '보물들'을 대규모로 싸들고 오던 일본인들이 도대체, '선조'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일까요?...
그 방면은 이탄 님에게 질문을 한번 해 보시지요 눈이 확 떠지는 답을 할 겁니다 요즈음 통 안 보이는군요
'이탄'님, 보시면 답변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