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노동자 성 요셉 기념 미사 강론>
(2026. 5. 1. 금)(마태 13,54-58)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마태 13,54-58).>
1)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시며 ‘목수’이셨다는
것은(마르 6,3),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고장 난 세상과 인간들을 고치려고,
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오신 ‘하느님의 목수’이십니다.
그래서 목수라는 직업은 예수님의 사명에 직결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그 당시 목수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쪽에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메시아’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직업이 농부라는 뜻은 아니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농부들이 하는 일과 같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2).”
하느님은 생명체들을 만드신 분이고,
그 생명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 관해서 말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2코린 9,10).”
하느님은 우리에게 씨앗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고,
그 씨앗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고, 그 열매를
풍성하게 늘려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께서 주신 씨앗을 잘 심고
가꾸고 돌보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6-9).”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협력자입니다.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3)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은 그 자체로
‘선’이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선’과 ‘사랑’의 반대쪽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아담’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신 다음에
그곳을 관리하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 대한 전권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권한은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의 반대쪽에 있는
‘악한 일’이고, ‘하느님의 선과 사랑’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쟁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파괴가 아니라 구원을 향해서, 또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4) 복음서에는 ‘농부’이신 하느님과 ‘목수’이신 예수님에
이어서, 사도들이 ‘어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사람 낚는 어부’ 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사도” 라는 뜻입니다.
<‘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물속에 있는 사람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생명’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먹고사는 일만 신경 쓰면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사람 낚는(구원하는) 어부’로
변화되었는데,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부르심에 응답할 때 자신들의 직업을 버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사도’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는,
천막을 만드는 일이 직업이었습니다(사도 18,3).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사도가 된 후에도
직업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서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선교활동을 위한 활동비를 벌기 위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사도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원래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
또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협력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