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In Love (사랑에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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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도 없고 심심해서 장미의 가게에 와서 열심히 일일 알바중이다.
장미가 보수는 후하게 준다그래서 하는거다.
'딸랑'
"어서오세요."
"어머. 윤샛별?"
낯익은 목소리에 옷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명품으로 도배한듯한 옷차림의 박서진.
"박서진? 너가 명품사러 안가고 여긴 웬일이니?"
대놓고 빈정거리는 듯한 내 말투에 서진이 발끈하다가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곤 힘겹게 미소지었는데 그 미소가 마치 악마의 미소같아보였다.
"아. 너 레이디 전속모델됐더라? 너 원래 꿈이 모델이었니?
내 기억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귀국한지 얼마나 됐다구?
혹시.. 그것도 너희 할아버지 빽이니??"
무시하려고 했지만 듣자듣자하니 열받아서 도저히 못듣겠다.
"유학갔을 때 알바로 모델일했었어. 그리고 그때 작가님 추천으로 하게 된거고.
그리고 내 꿈? 원래는 통역관이었지. 공부하기 너무 힘들더라구. 이제 됐니?
옷이나 보다 가지 그래? 장미야!! 중요한 손님 오셨다."
내 말에 분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박서진.
그리고 사무실에서 장미가 나왔다.
둘이서 잘 해결하기를 바라며 유니폼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마자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처음보는 번호.
어깨를 으쓱이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거 윤샛별씨 전화 아닌가요? 콜록콜록."
"맞는데요.. 누구세요?"
"나 연진이야. 샛별아. 도진이 누나."
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연진언니였다.
그러고 보니 귀국하고 한번도 못 찾아갔었구나..
"아. 언니였구나! 나 귀국한건 어떻게 알았어?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귀국한건 도진이한테 들었구 번호는 은한이한테 물어봤어."
그렇지 참. 도진이는 내 번호 모르는구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밝은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언니. 내가 거기로 갈까? 나 심심한데."
"나도 너 만나려고 전화한거야. 그리고 나 병원아니야, 샛별아.
언니 퇴원했거든. 음.. 어디서 볼까? 아. 어필 어딘지 알지? 거기서 만나자."
"응!히히."
지금 내 복장을 쓱 훑었다.
편한 티에 청바지, 그리고 푹 눌러쓴 모자가 보인다. 젠장.
5년만에 보는건데 좀 너무하다 싶어서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너가 뭔데 여길 오냐구! 너 같은 손님 안 받는다니까?"
"어머어머."
한숨을 한번 내쉬고 옷을 뒤적였다.
마침 맘에드는 옷을 하나 발견했다.
주저 없이 택으 뜯고 탈의실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어리둥절한 장미가 삿대질을 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
"야, 윤샛별! 너 그 옷이 얼마짜린줄 알어? 야!!야!!"
"장미야~ 오늘 알바비로 치던가 아님 월말에 계산하자. 내가 지금 카드가 없어서.."
"저 미친 것!"
장미의 엉덩이를 몇번 토닥여주고 가게를 나왔다.
내 모습에 만족하며 밖으로 나왔더니, 젠장. 차가 없어졌다.
견인된건가.
택시를 잡아타고 어필로 향했다. 택시비가 꽤 나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언니가 날 향해 손을 흔든다.
"언니! 진짜 오랜만이다. 몸은 괜찮아진거야?"
"더 안좋아졌지 뭘. 실은 얼마 안 남았대.. 널 만난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무슨 일일까.
좀 진지해 보이는 언니.
"무슨일인데 그래. "
"5년전에 도진이가 너랑 헤어진 이유."
"무슨말이야 언니. 싫증나서 헤어진건데 이유가 어딨어."
갑자기 언니가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당황해버린 난 언니를 서둘러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서럽게 눈물을 터뜨리는 언니.
"언니, 왜그래. 우선 진정 좀 해봐."
언니의 등을 토닥여주자 점점 눈물을 멈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심한 듯 날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뗀다.
"흐으.. 미안해 샛별아. 내가 도진이한테 부탁했었어. 제발 너랑 헤어져달라고.
그렇게 부탁했었어.. 흐으..."
"어..언니..왜.....왜?"
"은한이 때문에.. 내 사랑 때문에 너희 헤어지게 만든거야.. 미안해.."
"그게 무슨말이야, 언니. 나 이해가 안되.."
언니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왠지 긴장이 되 서 온몸이 굳어버렸다.
"은한이가 도진이한테 너랑 헤어지라고 그랬나봐. 안그러면 나랑 파혼하겠다고.
도진이는 너랑 절대 못 헤어지겠다고 무시하려고 했는데..그랬는데..
내가 그거 알아버려서 도진이한테 부탁했었어.
너도 알잖아. 나 은한이 없으면 못사는거. 알지? 그렇지?
그래서..울면서 너랑 제발 헤어져달라고 부탁했었어.
바보같은 도진이가 알았다고 울지말라고..흐으....나때문에..나때문이야..
미안해..미안해 샛별아. 도진이 용서해줘.
그리고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 나 어차피 죽잖아. 나 얼마 안남았댔어.
그러니까 나 신경쓰지말고 도진이랑 다시 시작해. 그동안 나도 도진이 보기 너무 괴로웠어."
"언니...나..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거든...나 지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입으로는 연신 '말도안되..말도안되..'만 중얼거리고 있다.
"나 참 못났지. 죽을 때 되니까 사실 밝히고 도진이 돌려주네..
어차피 죽을년인데.. 괜히 너희들 괴롭힌것같아서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정말 미안해. 그리고 우리 도진이 좀 잡아주라. 도진이 좀 잡아줘, 샛별아.
우리 도진이 맨날 일만해. 박서진 그 여우같은 기집애가 끌고 안가면 일만해..
잘 자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아.. 5년동안 그랬어 .."
"언니.. 나 먼저 갈게.. 혼란스러워서 더 이상 못있겠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럼 이 일이 다 결국 은한이덕분이었다는 건가.
은한이 때문에..
그나마 나아졌던 머리가 다시 지끈지끈 아파온다.
장미의 가게까지는 좀 먼 거리인데 걷다보니 어느새 장미의 가게이다.
힘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날 본건지 장미가 인상을 쓰며 달려오다가 내 표정을 보고 금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무슨 일 있어? 왜그래? 어디 아파?"
"후우.. 장미야... 나 머리아파.."
"무슨일 있었구나. 언니한테 속시원하게 털어놔 봐. 언니가 상담해줄게."
"풉. 그러지말고 술좀 사줘라. "
"이자식 술은... 얘는 꼭 무슨일 있으면 술 찾더라."
그러면서도 장미는 알바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