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나는 “올드”한 것이 좋다
지난 이야기는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1)”였습니다. 아직도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한 분들은 2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살아가는 잡다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주에 내려오니 모든 것이 새것이라 생경하게 느껴지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한 것은 개인적인 습성과 성격하고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숙소는 벽과 가구들이 모두 흰색으로 도배되어 있어 내 집인데도 가구에 때가 묻을까 조심스럽다. 내가 주인인데도 집과 가구가 주인인 듯한 느낌이 든다. 사무실은 흰색 벽에 책상과 책장, 회의테이블 모두 브라운 톤으로 세팅되어 있다. 실적이 저조한 부서에는 어울리지 않게 사무실이 호사스러운 느낌도 들고 이것도 주객이 전도된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새것이라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이사할 때 묵은 짐을 정리한다고 그간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꽤 많이 버려 사무실은 휑한 느낌이고 숙소인 오피스텔은 냄비 몇 개 달랑 있으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나 책과 살림살이가 채워지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
사실 나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 남들보다 먼저 구매하여 사용하는 Early Adapter가 아니라 남들이 써보고 대중화가 된 후에 구입을 하는 Later 또는 Old Adapter이다. 새 제품들의 불편함이 개선된 후 사용하겠다는 실용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예전부터 “올드”한 것이 편하고 좋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무교동의 가수 김정호씨가 운영하던 “꽃잎”이라는 라이브 통기타 경양식 레스토랑에 재수생시절부터 드나들었다. 구석자리는 내 지정석이어서 내가 들어가면 웨이터가 앉아있던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그 자리로 안내했다. 그 당시 무명개그맨 임하룡, 김학래씨가 Live Show 사회를 봤고 전유성씨는 연예부장 이었을 때니 무척 오래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음식점, 같은 자리를 좋아하는 탓에 무교동 낙지볶음집도 낙원낙지집만 다녔고, 피맛골 감자탕집도 수년간 다녔다. 같은 집만 고집한 탓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지 못했지만 주인아줌마가 단골손님 왔다고 덤으로 주는 돼지꼬랑지도 별미였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친구 놈들이 나를 찾으러 올 때는 세군데 술집만 들르면 되니 편한 점도 있었다.
집사람과 장을 보러가서 사는 과자도 **깡, 맛** 으로 달달한 것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입맛에 맞고 맛있는 것을 사오라는 경고를 받았다. 아직도 내 입맛에는 50년 전에 맛보았던 영양갱, 40년 전에 먹었던 **깡, 맛**이 최고이고 빵은 아무것도 넣지 않는 식빵이 맛있고 시골길에서 파는 옥수수빵의 담백함이 좋으니 이상한 일이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자동차도 “올드”하게 생긴 크라이슬러의 PT크루저를 구입하려 했다. 연비도 좋지 않고 잔고장이 많은 차로 평가되지만 순전히 디자인에 “필”이 꽂힌 탓이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나오는 1930~40년대풍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집사람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런 망측하게 생긴 차를 타고 다니면 주위에서 욕한다면서 너무 올드 또는 너무 앞서가는 디자인의 차를 타고 다니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나 뭐래나.
여자들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쓰고 커피도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먹듯 자동차는 남자들의 기호품이라는 것을 집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PT크루저는 단종 되어 사지 못했으나 복고풍 스타일의 차가 출시된다면 집사람 몰래 사려 한다.
회사 업무를 할 때는 새롭고 남들이 해보지 않은 영역을 하는 편이지만 먹고 입고 즐기는 것은 “올드”한 것이 좋다. 정신과 감정을 받을 정도로 옛것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유행에 뒤쳐졌다 할지 몰라도 나는 오래되고 느리고 익숙한 것이 좋다.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젊었을 때는 몇 번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술집, 과자도 바꾸지 않는 성격 탓인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No"라고 대답했다. 색상은 퇴색되었는지 몰라도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하고 새벽같이 출근하고픈 회사가 대한민국 어디에 존재할까 싶다. 나는 여전히 ”올드“한 우리 회사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쫓겨나지 않는 한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불을 켜고 직원들을 맞이하려 한다.
집사람도 “올드”한 내 습성에 대해 못마땅해 하지만 나주에서 기러기아빠로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안심하는 사항이 하나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것에 낯을 가리는 내가 절대로 바람은 피지 않을 사람이라고 ... 새 여자에게도 낯을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니 바람을 안 피는 것이 아니라 못 피는 사람이라고. 맞다, “올드”를 고집하는 怪癖(괴벽)이 있지만 이 정도면 집사람도 결혼을 잘한 거다. 바람도 못 피고 집사람이 “올드”해 질수록 더 좋아 할 테니까.
2014.12.15 전력사업처 임순형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