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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
이것도 퍼온 건데 한번 논해봐라
첫댓글 이건 디시에서 존내 까이지 않았던가 -_-;;
너도 함 까봐
몆개만 반박하겠다. 4번은 최치원의 역사인식에 크게 문제가 있고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구려 후기 요하전선의 각 성 병력 그리고 고혜진 고연수의 동원병력으로 추정할 수 있는 병력이래야 30-50만에 지나지 않는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 9번은 이사람이 주장하는게 맞는 얘긴데? ㅋㅋ
18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는 사실 그 정확성이 상당히 부족해서 실제보다 축소되었다. 고려의 병력동원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고려가 농경민족이라는걸 감안해 본다면, 210만의 인구에서는 불가능하다. 조선 또한 학자들이 실제 인구로 추정하는 인구와 기록되어 있는 인구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려의 영토가 지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영토가 아니고 그 이상 크기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그러냐? ㅋㅋ
더깨비/다 틀리다고는 하지 않았다.
21번은 4번과 18번의 잘못을 감안하면 전혀 맞지 않는다.
이중에 틀린것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몇개가 틀리다고 해서 이글 전체가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 같구나. 그런데 니가 틀렸다고 하는 것들은 너에 역사의식에 기초한 것인데, 그 역사의식이나 근거도 왜곡된 것일 수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할거다. 우리나라 현 주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한국인이 쓴 고대사는 부정하고, 사마천의 왜곡역사기술 이래로 자신에게 유리한건 확장왜곡 시키고 불리한건 축소 왜곡해서 감춘다는 중국역사기술 원칙에 충실한 왜곡 중국사서는 인정하고 있는 받아들이는 한국역사학계의 실정도 또한 감안해야할거다
36번같은 경우는 단순히 만주어의 음차일 뿐이다.
18번에 대해서 추가로 반박하자면, 일본으로 이주한 인구는 조금 계산에 넣지 않은듯하다.
38번은 그 원문이 그런식으로 써 있을지도 불분명하며(누르하치가 조선에 원병을 파병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에 명군을 따라서 온 여진군의 행태를 본다면 가히 약탈등으로 그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60가지가 전부 틀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근거가 될 수 있는 원천자료가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의심스럽다.
이 사람이 써 내려간 것으로 볼때 삼성기 태백밀사 규원사화 등을 근거로 해서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니가 말하는 것처럼 일제시대 일본넘들이 20-21만권 한국고대사 역사책을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현재로서 남아있는 삼국사(삼국사기) 나 삼국유사에 근거해야한다는건데, 만일 삼국사나 삼국유사를 정사로 받아들인다면 삼성기나 태백밀사 규원사화 를 또한 정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어짜피 현 역사학계 역사학자라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기도 전에 왜곡된 중국역사서를 들먹거리며 마치 한국역사처럼 떠들어 대놓은 것이 어디 한두군데인가?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 이 경우는 현 왜곡된 백제영토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대목으로 미스테리임이 분명하다
일단 이걸 까는 리플같은걸 퍼올테니 봐라. 뭐 사실 난 60가지 미스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게 얼마 안되니깐. 물론 까는 리플도 읽어본적은 없지만 그냥 많이 눈에 띄였다.
http://orumi.egloos.com/1779098
일본놈들이 태운 책이 20만권인건 맞는데 그중에서 고대사 책 비중이 얼만지는 알 도리가 없다. 뭐 여러가지 잡지도 많아 그안에.
오히려 짱개 개새들이 유기 100권하고 신집 5권등을 모두 말살해버렸기 때문에 난감하지.
니가 써준 출처가서 길어서 다는 못 읽어보고 몇개 읽어봤는데 그걸 반박해 놓은 사람도 반박해 근거로 중국이 기술한 걸 그대로 인용하고 있더라. 왜곡된 중국역사서를 말이다. 치우천황에 관한부분 반박이 그 대표적 예다, 그리고 반박한 논리도 누구도 부인못할정도로 근거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식으로 대충대충 얼버무려 반박이랍시고 해놓은것도 몇개 눈에 띄는구나 ㅋㅋ
뭐 나도 송호정 저서를 좀 높게 쳐주는거 보고 고개가 갸우뚱 했지만 ---;;;
이거 자위글로 유명한 글이잖아. 딸딸이 치는 소리가 서울 시내 밤하늘을 가른다~
푸딩횽 근데 고대사에도 관심있어요? ㅎㅎㅎ
푸딩아 역사는 좀 알고 자위라고 하는거냐? ㅋㅋㅋ 보통 우리는 무식이 용감하다고 하지?
근데 일단 내가 링크해 준 반박글에 따르면 완파되는게 적지는 않을꺼야 -_-;; 나도 그 반박글이 전부 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근데 사실 이 주제중에서 이미 몆몆은 재야사학이나 강단사학 모두에서 논의가 활발해서 굳이 미스테리라고 불리기도 뭐한게 있다. 이를테면 9번이나 10번 혹은 22번 45번등.........
일단 이런 의문들에 대해 보다 세밀하고 조사하고 연구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 그리고 아까 반박했다는 사람이 쓴 반박글에 보면 사마천 사기에 본기에 보면 옛날 천황 지황 태황 이 있었다 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위 사람이 쓴 12번 글에 치우천황이라고 했음에도 고리국 황제라고 했다는 말꼬리를 붙잡고 반박도 아닌 말꼬리 붙드는격으로 반박이랍시고 했다.
우리는 치우천황을 치우천황이라고 하지 치우황제라고 하지않는다. 고리국 황제라고 쓴 건 글쓴이가 아마도 다른사람들 에게 이해되기 싶게 쓰려고 하다보니 황제라고 했거나 아님 습관화되어 무의식중에 그렇게 했거나 둘중하나지 그런 말꼬리붙들기식으로 붙들어놓고 마치 전체를 반박하는 즉 치우천황이 우리와 아무상관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고 있더라 그걸 반박이랍시고 해놨더라 ㅋㅋ 그 반박 대목은 존나 어이없음
근데 치우는 문헌상으로는 교차검증까지 되지만 결정적으로 유물이 하나도 없다 -_-;; 그래서 중국에서도 인정 안하는게 대세더라.
중국에가면 진시황 유적에 치우천황상까지 있고 그걸 기념물이라고 파는곳도 있다고 몇달전인가? 작년인가? KBS에서 중국기행으로 치우천황상까지 나오던데? 그땐 아무생각없이 얼핏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건 -_-;; 그냥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뿐이고(그 지역의 유명한 전설정도로 치부하는거지) 치우가 쓰던 철가면이나 청동창같은게 나온게 없다.
나온게 없는게 아니라 중국놈들이 부러 덥어놓은 것이겠지, 만주에 피라미드 캐다가 우리의 유적이 나오니까 몰래 덮었던 것처럼,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치우천황상을 기와로 해놓은 것이 있는데 그걸 우리는 그동안 도깨비상 알고 있었다. 그런 ㅅㅏ실은 아냐? ㅋㅋ
나보다 더 고수인 드가모프햏의 답변을 기대하라우.
드가모프가 사학과냐? ㅋㅋㅋ
전통기와에 그려져 있는 우리가 잘못알고 있던 도깨비상이 도깨비상이 아니라 치우천황을 형상화한 문양이다
기껏 근거로 든다는 한단고기가 위서로 판단되는 판국에 무슨 논쟁이 된다는 말인지 몰겠네.
위서라고 판단하는그 근거자체도 논리 부족 반반근거도 희박하다. 내눈에는 우기기로 밖에 안보인다. 한단고기가 위서라고 판단하려면 단군릉을 파헤쳐서 반박해야하는데 현재상태로는 중국이 단군릉 접근을 막아둔 상태이므로 누구도 그걸 아무리 그럴듯한 포장논리로 위서라고 반박한들 객관적인 반박근거가 거의 없으므로 위서로 판정지을 수 없다.
그나마 한단고기도 진본이라는 근거는 아예 없잖아? 다른 사서들과의 교차검증 안됨, 원본도 발견되지 않음, 고대에 쓰이지 않던 지명,단어 사용 도대체 뭘 믿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1979년에 일개 개인이 짜집기해서 발표한 종이 쪼가리 가지고 많이도 낚는구나.
일단 이 주장들이 성립될려면 1.지금까지 중국 역대 왕조(이민족 왕조 포함) 역사서는 모두 날조 2.동아시아 모든국가 역사서도 모두 날조 3.유적, 유물 다 짜가 4.한단고기를 제외한 한국 역사서도 모두 날조 휴... 음모론을 꾸밀려고 해도 참 거창하게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