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아침 대구가는 고속버스를 타고서 바로 카톡,페북에 남긴 글이랍니다.)
아침 네 시간 자고 불쑥 일어나 가족들에게 말도 않고 집을 나왔습니다.
15분 걷고 화순버스로 광주터미널에 와서 서대구가는 버스에 올라탔어요.
오늘은 김수경 열사 31주기 추모식, 작년에 못가서 올해는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비정상인거죠? 누구랑 함께 가자고 말붙일 사람이 없네요. 늘,종종 그렇지요.
벗들이 가는 자리엔 없고, 벗들이 가지않는 그곳에 홀로 가는, 학생자치활동과 참교육운동 탄압에 항의하며 투신했던 김수경, 늘 생전의 느낌으로 생생하게 만나고픈 친구랍니다.
다녀와서 다시 연락할게요.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싶네요.
혹시는 궁금해할겁니다. 왜 학생열사에게 가느냐구요.
저는 한편에선 교사의 맘으로 가고, 다른 한편으론 학생청소년의 맘으로 갑니다. 사실은 후자가 먼저랍니다.
어제 전교조위원장은 김철수열사에 대한 추모사를 보내면서 '당신이 스승이고 교육동지'라고 고백하시더군요. 귀하고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겐 청소년운동,고등학생운동의 벗이요,동지랍니다.
저는 억압적 교육환경에 맞서 싸우는 벗들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저의 중.고시절 바람이었고,미처 할 바를 다하지 못하고 떠밀려나온 후 지금까지 숙제로 느끼는 '오래된 과거, 오래된 미래'랍니다.
대학시절 교육학과에 속하면서 미처 못한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싶었고, 군에 다녀온 후 복학하여 몸과 맘으로 품은 일이 중.고등학생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답니다.
오래된 일이죠. 그리고 저는 민망스럽게도 아직 그 맘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겐 참교육운동 이전에 청소년의 생존권운동이요, 해방운동입니다. 그리고 청소년,아동이 해방되어야 비로소 인간의 해방도 제 개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도덕적 책무가 아니며, 교사의 참교육,학교혁신타령이 아니랍니다.
굳이 말하자면 교육노동운동에서도 소수자운동 같기만합니다.
언제 차분히 이런 제 맘을 더 깊이 고백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녀와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부디~.(대구 간다고 생각하니 그 옛날 동지같았던 박미경선생님이 그립네요. 그 분의 묘소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를 소개해주시는 이 분은 김수경 열사의 벗, 추모사업회를 오래 이끌어주신 대표 한민정 선생님.
제일 왼쪽은 최진열 선생님 --김수경 열사의 2학년때 담임선생님으로 당시 해직되셨으며 열사가 유언같은 편지를 선생님에게 남기고 떠났음. 대구지부장 임성무 선생님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못하시고 지부 정책실장 김정기 선생님, 사무처장 장선미 선생님이 참석하셨지요.
사무처장 장선미 선생님이 지부장의 추모사를 대신 읽었는데 그 순서 전에 김철수 열사 유언을 앞에 다른 분이 읽어주셨습니다.
그 때 이미 울컥했음인지 장선미샘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추모사 시작을 한참 버벅거렸습니다. 본인은 74년생인데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면서, 김수경 열사나 김철수 열사를 늦게사 알게됨에 너무 감동이고 감사하다 하시면서 부끄러워하셨답니다.
첫댓글 먼 길 수고가 많으셨네요.
글 속에서 뭔가 선생님께서 외롭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거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