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분께서 나얼의 뒤를 이을 알앤비뮤지션에 대해 화두를 던지셨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나얼은 발라드가수에 가깝지 않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브아솔 콘서트를 4번 정도 다녀오고 나얼이 참여한 모든 음악을 접해본 저로써는 처음엔 다소 의아스러웠다가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얼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건 아무래도 '벌써 일년'을 필두로 브라운아이즈의 히트곡이 대부분이고 브라운아이드소울과 솔로 활동을 하면서도 '정말 사랑했을까'나 '바람기억' 등 잔잔한 발라드 성향이면서 나얼의 초고음이 귀에 꽃히는 노래들이었죠. 거의 좀처럼 방송에 비추지도 않거니와 이미 상당한 매니아층을 다져온지라 일반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고 최근 작업물에 대한 평론의 주목조차 잠잠한 편입니다.
헌데 나얼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국내에서 거의 독보적인 소울 뮤지션입니다. 불세출의 콤비로 평가받던 브라운아이즈도 사실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윤건(알앤비 스타일을 지녔지만 기본적으로 이지리스닝 팝의 달인이라고 생각합니다.)과 음악적 지향점이 다르다는게 해체의 공식적인 이유였죠. 이후 선보인 브아솔은 작정하고 나얼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 하려고 만든 중창단이었고 자신의 솔로앨범에선 노골적인 욕심을 드러냅니다.
알앤비도 워낙 범위가 넓은 장르다보니 사람마다 생각하시는 범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알앤비가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 알켈리, 시스코, 브라이언 맥나잇 등 업템포에 가까운 리듬감이 강조되거나 보컬의 기교가 극대화된 노래들이 많은터라 상대적으로 나얼의 음악은 결이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나얼은 당시 트렌드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제임스 브라운, 마빈 게이, 오티스 레딩, 스티비 원더 등의 60~80년대 소울 펑크를 지향했기 때문이죠.
나얼이 지금까지 했던 음악 중에서 그런 블랙이 짙게 뭍어난 곡들을 감히 몇개 추려봤습니다. 곡 소개를 겸해 제 감상이 섞인 넋두리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아무쪼록 나얼의 음악세계가 조금이라도 공유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1.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 <Soul Free>의 '술(C2H5OH)'
팀명부터 소울 장르 중 하나인 블루아이드 소울을 겨냥했을만큼 진또배기 코리안 소울뮤직을 하겠다는 네이밍에 비해 사실 다소 무난한 팝 앨범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몇 트랙은 이들이 지향하는 음악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나 추천드리는 이 곡은 좀처럼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루브를 선보입니다.
2. 나얼 솔로 리메이크 앨범 <Back to the soul flight>의 '한 여름밤의 꿈'
최근 뉴트로 열풍과 함께 예전 8090년대의 국내 시티팝의 재발견도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는데, 나얼은 무려 15년전을 앞서갔습니다. 한국만의 소울이 듬뿍 담긴 명곡들을 엄선한 이 리메이크 앨범은 국내 소울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마스터피스라고 생각되네요. 개인적으로도 갓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아침에 선임들이 틀은 엠넷에서 '귀로'를 듣고 잠시 10초간 얼이 빠졌다가 무지하게 혼났던 추억이 있어 더욱 강렬했네요. 너무 좋은 음악이 원래 그렇게 위험합니다. 어느 한곡 빼놓을 수 없지만 순전히 제 취향으로 고른 '한 여름밤의 꿈'은 나얼의 보컬에서 고음보다 리드미컬한 전개능력에 초점이 맞춰진 노래라 생각합니다.
3. 브라운아이드소울 2집 <The Wind, The Sea, The Rain>의 '바람인가요'
브라운아이즈, 브라운아이드소울, 솔로 앨범 등을 통틀어 나얼의 노래 중 탑3 안에 제가 꼽는 트랙입니다. 경쾌한 기타리프부터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고막을 거쳐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흠흠. 브아솔만의 독보적인 바이브가 점차 구축되는 과정에서 1,2집에 주를 이룬 가요스러움과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울음악의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4. 브라운아이드소울 3집 <Browneyed Soul>의 'Blowin' My Mind'
5년간의 제법 긴 공백기간을 깨고 선공개한 이 곡은 대부분의 팬들은 이게 뭥미라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그리고 저를 비롯한 흑인음악 매니아들한테는 대단한 열광을 이끌어냈죠. 완전히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운드 재현과 멜로디 전개까지 앨범 타이틀처럼 브라운 눈동자의 소울을 한껏 담아내기 시작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때부턴 우리 좋을대로 할테니 좋아할테면 좋아해라(?)식의 근자감을 내세워 자신들만의 음악 컬러를 확립하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정엽을 비롯해 다른 멤버들의 독자적인 활동도 점차 많아지게 됩니다.
5. 나얼 솔로 1집 <Principle of my soul>의 'You&me'
나얼의 첫번째 솔로 앨범에서도 앞서 3집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낸 취향을 마음껏 펼쳐내기에 이릅니다. 이 앨범이 나올때쯤이 은폐엄폐형 연예인의 최고봉인 나얼이 라디오DJ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하는데 그 때 셀렉된 플레이리스트는 지금도 흑인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될만큼 상당한 내공을 자랑했다죠. 이 곡은 그걸 고스란히 물려받은듯 짙은 소울을 뿜뿜합니다.
6. 브라운아이드소울 4집 <Soul Cooke>의 '밤의 멜로디'
점차 무르익는 그들의 소울감성이 집대성한 곡으로서 '필리 소울'이라 일컬어지는 60대 모타운 음악의 정점을 완벽히 되살렸죠. 타이틀의 'cooke'는 저희가 아는 그 요리의 뜻을 지닌 단어 'cook'에서 유래된게 맞지만 오타가 아닌 소울 레전드 샘 쿡(Sam Cooke)의 성에 붙어 있는 ‘e’를 넣어 소울 레전드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겁니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죠.
7. 나얼 솔로 2집 싱글 <Baby Funk>의 'Baby Funk(Extended Version)'
가장 최신작이자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곡은 나얼의 정규 2집엔 수록되진 않고 그 이전에 싱글 형태로 나온 'Baby Funk'의 확장 버전입니다. 10분에 가까운 재생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다채로운 변주와 충만한 그루브로 촘촘히 엮였죠. 현지에 내놔도 꿀릴게 없을만큼 고퀄이지만 몹시 개인적으론 너무 영어가사로 채워진게 다소 아쉽더라구요. 그럼에도 소울에서 디스코, 훵크로 또 다시 확장해가는 나얼의 바운더리를 귀담을 수 있는 명곡이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론 나얼이 발라드 가수라는 주장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네요 ㅎㅎ. 저랑 최애곡이 같으시네요. 2집 바람인가요 듣자마자 아직도 제 통화연결음입니다.
감사합니다 플레이리스트 참 좋네요 전곡 다 잘들었습니다
나얼 is Soul
바람인가요.. 진짜 명곡이죠..ㅜㅜ
나얼에 대한 게시물이라니 너무 좋습니다
나얼 이름부터 소울 느껴짐
나얼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궁금하신 분들은 호랑나비, Brown city 들어보시는걸 추천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11.24 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