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경기는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함을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올 시즌은 트라이아웃을 시행하기에, 셋터의 실력이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좋은 경기를 위해서는, 토종 공격수와의 호흡이 잘 맞아야겠죠.
영상에 보시는 바와 같이 셋터가 상대 블로커들을 속였을때, 득점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수봉 선수에 대한 기사입니다.
기사데로, 올 시즌 기용은 후반부에나 가능하겠지만, 좀 더 많은 연습을 통해,
국가대표 레프트로 성장해 주길 바랍니다.
허수봉 선수의 사인 올려봅니다.
-한자암기박사 中에서-
習 (익힐습)
하수가 고수가 되는 유일한 방법
<논어> 학이편의 첫 페이지 첫 줄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易說乎)” 로 시작한다. 학(學)이란 가르침을 받는 것이고 습(習)이란 학업을 익히는 것이며, 시습(時習)이란 수시로 익히는 것이다. 생각의 단계는 학과 사 그리고 습(習)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인풋-인출-인습화’하기의 3인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식이해(學, understanding)만으로는 공부라 말하기 부족하다. 생각(思,realizing)을 덧붙이고 자신에 맞게 내면화(習,internalizing)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선순환해야 한다. 자신 혹은 자기 조직의 DNA로 체화한 단계에 이르러야 생각을 해낼 수 있다. 배워야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습(習)은 알을 깨고 나온 어린 새가 날개(羽)를 퍼드덕 거리며 자주 나는 것이다. 즉, ‘나는 법은 이런 거구나’하고 머리로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익히기 위해 실행해보며 끊임없이 퍼드덕거린다는 뜻이다. 깃 우(羽) 밑의 부수는 날일(日)로 보아 ‘해 아래에서 여러 번’으로 풀이하거나, 또는 스스로 자(自)의 모양이 변해 백(白)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백(白)이 힘센 엄지손가락으로 처음, 우두머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 ‘새가 처음 깃털이 생겨서 나는 연습을 하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외에 어린 새가 날개를 파닥일 때마다 겨드랑이의 흰색이 드러난다고 풀기도 한다. 즉 습(習)을 날개짓이 흰빛을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반복의 과정을 나타내는 글자로 보는 것이다. 모두 습(習)이 뜻하는 ‘익히다’, ‘반복하다’로 해석하는 점에서는 통한다.
오래 자주 날든 스스로 날고자 하단, 습(習)은 몸으로 현장에서 적용하며 배운다는 뜻이 강하다. 새끼 새가 하늘을 나는 방법을 배우려면 부단히 날개짓을 연습해야 한다. 몸에 익히려면 수 없는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습(習)이란 글자에서 읽을 수 있다.
한 동안 인터넷에 회자된 차하순 할머니가 있다. 운전면허 시험에 무려 775번이나 낙방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아 기어코 면허를 딴 의지의 한국인이다. 필기시험에 떨어지기를 밥 먹듯 했지만, 실망하기보다, “4년째 하는 거니까,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며 굽힘 없이 도전해 마침내 성공했다. 초보운전을 나설 때 능란한 고수 운전자들을 보면 부럽고 샘이 나기도 하지만, 그들도 따지고 보면 예전에는 초보였다. 처음에는 다들 벌벌 뗠고 부딪히고 사고도 쳤지만, 그 같은 익힘 끝에 능수능란하게 된 것이다. 하수와 고수 사이를 이어주는 사다리는 습(習)밖에 없다. 조리에서도 날것을 숙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익힘’아니던가.
<중용(中庸)>에 ‘백천지공(百千之功)’이란 말이 나온다. “남이 한 번에 능히 하면 나는 열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히 하면 나는 천번을 노력한다. 그러므로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만일 능하지 못하면 결코 배움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공자는 사람들의 학습재능을 3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 생이지지(生而知之) 단계는 성인처럼 배우지 않고도 태어나면서부터 깨닫는 것이다. 두번재 학이지지(學而知之) 단계는 위인들처럼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곤이학지(困而學之) 단계는 고생하면서 공부한 끝에 앎에 이르는 것이다. 비록 사람에 때라 배우는 데 드는 노력과 어려움에 차이는 있지만 ‘배움의 단계’에 이르면 다 똑같다는 말이다. 운전면허에 775번 떨어지고 겨우 붙은 차하순 할머니나 단박에 붙은 사람이나, 운전하고 다니면 모두 똑같다. 익히는 속도에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일단 ‘아는 지점’에 도달해서는 생이지지나, 곤이학지나 차이가 없다.
결국 마르고 닳도록 습(習)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습(習)에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응축돼 있다. 지금 혹시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려 하지 않는가. 새의 날개짓을 보라. 스스로 날기 위해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연습하지 않는가.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익혀야 내 것이 된다.
‘익숙하다’와 ‘익히다’는 뿌리가 하나다. 익히지 않고서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中에서-
첫댓글 잘봤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