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경기, 승부와 관계없이 의미있고, 재미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아직, 리그 초반인데, 최태웅 감독님께서 준비한 히든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 염려도 됩니다.
8일과 11일에서 김재휘 선수의 활약이 많이 돋보였습니다.
8일 경기에서는 상대 셋터가 김재휘 선수를 피해서 공을 사이드 쪽으로 올리더군요.
김재휘 선수를 보면, 마치, 여자 배구의 양호진 선수를 보는 듯 합니다.
중앙에서 팀에 대한 공헌도가 대단합니다.
아무래도, 상대팀은 김재휘 선수의 높이가 많이 부담스러운 듯 합니다.
직접 관람은 하지 못했지만, 11일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일까요, 현대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던, 가스파리니 선수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현대와의 경기는 매 경기 어렵다. 왜냐하면 매 경기 많은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라고 밝히더군요.
제가 지난 V리그를 지켜본 결과, 모든 용병들의 공통점은
현대와의 경기는 어렵다. 였습니다. 이유는 높이를 뽑더군요.
트라이 아웃으로 인해, 올 시즌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레오 선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현대 스카이워커스의 업템포와 몰빵대왕의 레오콘서트.
맞 대결은 전 세계 스포츠계의 이슈과 될 만한 흥미 진진한
선과 악의 한국프로배구사에 남을 세기의 대결일 것입니다.
11일 좋은 경기 보여 준, 김재휘 선수와 허수봉 선수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동안 한국 프로 배구의 목을 조여왔던,
재미없는, V리그를 망쳐놓은 몰빵배구를 때려 뿌셔버려 주길 바랍니다.
김재휘 선수의 사인 올려봅니다.
-한자암기박사 中에서-
깰 파 破
깨치는 각성과 깨지는 용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다.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익숙한 지식, 신념, 기득권, 관습을 떨치고 새롭게 태어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깰 파(破)는 말 그대로 돌(石)의 표피(皮)가 몸체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현재와 분리되는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 익숙한 그 세계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돌 한 부스러기로 그칠지, 하나의 새로운 개체가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파(破)할 것인가. 거기에서 영웅과 범인(凡人)이 갈린다. 시쳇말로 ‘흙수저’와 ‘금수저’로 갈려서 태어나는 것은 운명이지만 평생 한 벌의 숟가락만으로 살지는 않는 법. 파(破)에는 자신의 제한된 흙수저 운명을 깨고 금수저를 창조하고자 한 인물들의 결연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예컨대 초나라의 항우, 후한대의 맹민, 당나라 때의 유세란 인물이 그 영웅담의 주인공이다.
파부침주(破釜沈舟). 상대가 강해 보이거나 목표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 때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문화 코드로 말하자면 ‘다윗과 골리앗’에서 다윗의 마음을 일러 하는 말이다. 모기업에서는 아예 ‘파부침주’를 신년구호로 삼는 것도 보았다. 하긴, 결연한 각오를 말할 때 이만한 구호도 없다.
파부침주의 주인공은 바로 초나라 항우다. 항우는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는 배수진을 침으로써 불멸의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 군대에 비해 여러모로 열세였다. 그러나 항우는 이 같은 셈법을 역전시켰다.
“우리가 타고 왔던 배를 모두 부숴 침몰시켜라. 3일분의 음식을 만든 후 모든 밥솥을 깨뜨려라!”
다시 타고 갈 배도 없고, 사흘 후부터는 먹을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 돌아갈 방법은 싸워 이기는 것 뿐, 막다른 궁지에 몰린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전승을 거뒀다.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다는 ‘파격(破格)의 승부수’가 승리를 견인한 것이다.
새롭게 도전하기 어려운 것은 대개 쥐꼬리만 한 현재의 기득권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돌을 아끼면 돌팔매를 던질 수 없다. 깨고 나온다는 것은 ‘깨치는 각성’과 ‘깨지는 용기’를 함께 요구한다.
항우의 결연한 파부침주 이야기가 탄생한 산동 거록 지역에서는 또 하나의 ‘깨진 솥’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번에는 솥을 깬 것이 아니라 깨진 솥에 대한 이야기다. 파증불고(破甑不顧), 이미 깨진 시루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전하는 사연은 다음과 같다.
맹민이라는 사람이 시루를 짊어지고 가다가 실수로 땅에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깨진 시루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태연하게 계속 걸어갔다. 당대의 석학인 곽임종이란 인물이 이 광경을 보고 물었다.
“시루가 깨졌으면 한 번 정도는 돌아보고 아쉬워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어째서 돌아보지도 않는가?”
맹민이 말했다.
“이미 깨져서 쓸모가 없어졌는데 그것을 뒤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깨진 시루를 아까워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러지 않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라’는 말처럼, 이 이야기는 이미 벌어진 일에 애면들면하지 않는 결연함을 보여준다. 간혹 야담에서는 이 담대함을 높이 산 곽임종이 맹민을 문하에 받아들여 인재로 키워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파천황(破天荒)에도 파(破)가 들어간다. 파천황은 혼란에서 새 질서를 창조한다는 추상적 의미다. 천황(天荒)이란 천지(天地)가 아직 열리지 않은 때의 혼돈 상태이고, 파천황은 이것을 깨고 용솟음쳐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려면 거죽을 벗는 탈(脫)만으론 부족하다. 본체에서 박차고 나와 깨지는 파(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냈음을 의미하는 파천황(破天荒)에도 ‘맨땅에 헤딩’한 성공담이 담겨 있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 도입 돼 당나라 때 자리 잡았는데, 유독 형주란 지역에서는 과거급제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형주를 인재가 배출되지 않는 낙후된 지역이란 뜻으로 ‘천황(天荒)의 땅’이라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미태복음 효과’는 있다. 인재 배출지역에서는 인재가 계속 나오고, 인재 흉작인 곳은 ‘빈익부 부익부’ 현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선종(宣宗) 때 유세라는 사람이 형주 최초로 과거에 합격한 것. 사람들은 천황(天荒)을 깬 ‘개천의 용’이 나왔다며 그를 가리켜 ‘파천황’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산간벽지에서 최고 명문대 합격자가 나온 것을 축하한 말이다. 요즘도 산간벽지에서 수능 고득점자가 나오면 출신학교에 현수막이 걸린다. 그것을 유난한 형태라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과도한 축하는 한 인간의 ‘세속적 성공’에 대한 축하를 넘어 다른 ‘개천의 이무기’들에게 꿈을 주기를 기대하는 바람에서다. 아마 파천황의 무거운 이름을 일개 개천 용에게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혹시 세상의 편견과 선입관,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에 지쳐 자포자기하거나 낙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미 깨진 과거의 시루는 잊어라(파증불고). 결연한 의지로 현재의 쥐꼬리만한 기득권은 깨버리고 새로운 도전의지를 다지라(파부침주). 그리고 파천황의 의지로 미래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자. 과거는 떨어내고, 현재는 떨치고, 미래를 향해 떨리게 도전하자.
돌 조각을 쪼는 석수의 심정으로.
-리더를 위한 인문학 中에서-
첫댓글 잘봤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