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덤비는 싸움이었기에 이탈리아 패밀리는 프랑스 패밀리를 상대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비록 원정 초반에 알레한드레 1세 황제가 죽었지만, 그의 아들 페르디난도 1세가 황제위에 올라 장례식까지 간소화하고 동군연합을 밀어붙였다.
"내 장례식 때문에 프랑스 왕위를 놓치면, 난 널 죽어서도 저주하리라. 꼭, 프랑스를 가져... 라."
아버지의 섬뜩한 유언을 아들은 결코 무시할수 없었다.
이탈리아군은 전군을 동원하다시피하여 조기에 프랑스 전역을 점령해갔다.
2달만에 파리를 함락시키자 승세가 저절로 보이다시피 했다.
카스티야 해군과 포르투갈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잡아주었다. 이탈리아 해군은 지중해 해군이라 대양에서는 쥐약이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프랑스에게는 불행하게도, 비자야나가르가 프랑스에 맞서 싸우겠으니 길을 내달라고 했다. 이탈리아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승낙했다.
비록 빈 공방전에서 지기는 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여기에 꺼벙하게 프랑스에 동조한 보헤미아를 응징하면서 반란군을 때려잡기도 했다.
프랑스 전역이 제압되자, 황제는 대담하게 브리튼의 프랑스 영토 상륙을 지시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보헤미아는 이미 이탈리아에게 전 국토가 난장판으로 유린당하는 작태를 보고만 있어야했다.
결국 보헤미아는 영토를 크게 바치고 겨우겨우 빠져나갔다. 이제 독일이나 동유럽 영토는 마음만 먹으면 이탈리아가 먹을 도시락 신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브리튼 상륙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10만에 이르는 이탈리아 상륙군이 프랑스 군에게 밀려 전멸당한 것이다. 황제는 대노하면서 15만 대군을 추가로 브리튼으로 보냈다.
거기서 5만 대군이 추가로 섬멸당했지만, 나머지 군이 합심단결하여 프랑스 왕 친위군을 섬멸시키는 대승을 거두고 런던까지 함락시켰다.
그렇게 런던까지 함락시키고 북상을 계획할 즈음, 사신이 왔다.
"폐하. 제발 프랑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한다면, 현 왕을 폐위시키고 위대한 황제 폐하를 모시겠나이다. 제발, 저희에게 자비를..."
연이은 전쟁으로 풍요로운 프랑스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프랑스 고위층들은 현 왕을 내칠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프랑스를 가지려고 했지 파괴하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관대한 조건으로 승낙해주었다.
필립 8세의 폐위. 페르디난도 1세의 프랑스 왕 즉위. 이것은 세계의 역사의 최종적인 변곡점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탈리아-프랑스 동군연합제국 완성. 이제 이탈리아는 설립 당시의 취지 때문에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 지중해를 휘어잡았던 로마 제국의 정신적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프랑스와의 동군연합으로 인해 아라곤-이탈리아 시절 내내 숙원했던 옥시타니아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제 때가 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하나가 될 것이다.
프랑스와의 동군연합 이후 이탈리아는 열강 두셋이 뭉쳐야 겨우 맞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 지중해는 물론 유럽 대부분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각 지역이 데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다스리는 제국이 되었다.
1766년 9월 1일.
오랫동안 숙원했던 카스티야 통합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충분히 개척될때까지 기다렸던 보람을, 이제야 취하는 것이다.
카스티야와의 통합으로 교황이 구 카스티야 식민지들을 모두 이탈리아가 가지도록 허락했다. 허락 안해도 교황을 갈아치우면서 교회의 '허락'을 구했겠지만.
쌍방 100만이나 되는 군대의 소모를 메꾸기 위해, 황제는 새로운 군사들을 징발하기로 했다. 특히 브리튼 침공 당시 150 연대의 상실은 이탈리아로서도 부담이 컸다.
이탈리아는 절대 제국이었다. 아메리카 식민 전쟁과 혁명 오스만 응징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된 것이다.
원주민들 쯤이야 가뿐했다. 어느 세계의 아즈텍이나 마야, 잉카였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한편 황제는 오랫동안 고대했던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옛 성인이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다.
한편 혁명 오스만은 이제 로도스를 제외한 전 지중해를 잃어버렸고, 아나톨리아와 이집트 땅도 맛집삼아 양도해야했다.
ㅎ
황제는 회복된 군사력을 주체하지 못해 왈라키아 원정을 계획했다.
무제한 정복 능력의 쟁취. 이것은 이탈리아 제국의 폭주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제국은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했다.
알자스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이탈리아 군은 수효가 많고 잘 훈련되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오스트리아는 이제 멸망을 향해 치달았다.
...그래도 멸망한 왈라키아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한편 이탈리아 제국 내부에서는 농업 혁명이 시작되었다.
내친김에 황제는 잉글랜드 식민지도 떼어먹기로 작정했다.
군국주의와 이단척결활동은 이탈리아 제국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허가가 없는 유럽의 동인도 회사는 이탈리아가 마음대로 압류해도 된다는 무자비한 칙령을 떼었다.
잉글랜드는 형편없이 스러져갔다.
이제는 숫제 아일랜드까지 이탈리아 왕국에게 점령당했다.
잉글랜드는 결국 엄청난 식민지 영토와 아시아 무역회사 지역을 이탈리아 패밀리에게 양도하고, 그리고 스코틀랜드 일부를 원 주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이제 유럽은 이탈리아의 놀이터가 되었다...
첫댓글 어느 세계의 아즈텍,마야,잉카가 모두 이쪽으로 타임워프해서 삼국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에 맞선다면..
걔네들 NI와 개발도를 생각하면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어요. 그 전에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100%라서 문제지.
마레 노스트롬. ㅎ
우리의 바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