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면 저는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여자아이입니다. 흥인 초등학교 3학년 2반이며 부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반장이라고 해서 꼭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옷에 부반장이라고 써진 명찰을 꽂고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 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럴 필요 없으나 늘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합니다. 그래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작은 수족관 속 올챙이 다섯 마리가 혹시 죽지 않았을까 들여다보고, 선생님 책상을 닦은 후 칠판에 새 분필을 놓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제가 그런 일을 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고개를 저으며 부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선 우리 엄마한테 영희가 너무 예의가 바르고 속이 깊다고 말씀하셨나봅니다. 저는 우리 동네에서 착한 아이입니다. 사실 부반장으로서의 책임 이런 건 위인전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뿐인데요.
학교에서 집에 오면 저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문구점에 들러 지우개를 사며 놀곤 했지만 언니가 아픈 후론 집안일은 거의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언니가 아픈데 왜 그러냐구요? 엄마가 하루 종일 언니 옆에 붙어 있어서 말입니다. 설거지라든가 청소, 심지어 제 실내화를 씻는 것조차 깜빡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했던 거지요. 엄마의 임무를 상실했다고 아빠는 가끔 화를 내시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언니가 그만큼 많이 아프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가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던 노릇입니다. 주부 토론도 실은 엄마가 항상 보시던 프로그램이라서 제가 대신 보고, 혹시라도 나중에 엄마가 물어보시면 얼른 대답해드리기 위해 감상문도 써두었습니다.
언니는 저와 세 살 차이로, 한 달 후면 중학교 2학년이 됩니다. 그런데 몹시 아팠습니다. 병명은 자세히 모르겠고 그저 암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암은 불치병이라면서요. 죽는다. 전 이 말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습니까. 죽는 건 올챙이 아니면 개미, 아닙니까. 저는 교실 작은 수족관에 간혹 올챙이가 죽어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죽은 걸 본 적은 없습니다. 들은 적도 없습니다. 어느 책을 읽어도 위인전을 읽어도 사람이 죽었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로 여행을 간 것뿐이지요. 엄마는 언니가 여행을 떠나는 게 싫었나 봅니다.
언니는 사춘기입니다. 주부 토론 286회에서, 언니 때의 나이는 사춘기이기 때문에 반항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꼭 맞습니다. 특히 암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언닌 거의 매일, 외박을 하고 술을 마시는 등 어른스런 행동을 했습니다. 전에 없이 엄마와 아빠에게 소리도 지르구요. 울면서 미친 듯이 벽에 머리를 박기도 하고 발에 걸리는 물건은 뭐든지 걷어차고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빤 화는커녕 덩달아 울면서 언니를 매우 안쓰럽게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갑작스럽게 돌변한 언니가 너무나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언니가 겨우 잠이 들면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언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언니가 부럽기도 했습니다만.
언니는 한 달 전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늘나라는 영혼만 갈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몸은 그대로 여기에 남고 영혼만 가볍게 하늘로 날아가는 겁니다. 올챙이도 그 무거운 머리를 두고 간 것이지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언니는 저희 집 거실에서 추위에 떨며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 추워. 너무 추워.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요. 엄마는 언니를 마치 아기를 안듯이 품에 안고는 언니의 굳어져가는 손을 마구 주물렀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이제껏 언닌 엄마가 곁에 오지 못하도록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댔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는, 필사적으로 엄마의 팔을 꽉 쥐고 입술을 부르르 떨며, 엄마, 나 죽기 싫어. 엄마 옆에 더 있고 싶어. 엄마랑 더 살고 싶어. 죽기 싫어, 엄마……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도 눈물을 꾹 참으며 절대 보내지 않는다고, 우리 예쁜 딸 영원히 엄마랑 살 거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끝까지 살고 싶다고 말하다가 눈을 감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바깥에선 벌써부터 신년을 맞이하는 폭죽이 연이어 터졌지만 저희 가족에겐 한없이 우울한 연말이었습니다.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냥 까닭 없이 눈물이 무한정 흐르는 것입니다. 반장 투표 때 세 표 차이로 부반장이 된 이후 제일 많이 운 것입니다. 언니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간 일이 부럽진 않고 그저 다신 볼 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올챙이가 여행을 떠난 일하고는 천지차이만큼 다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엄만 다시 웃기 시작합니다. 아빠도 웃습니다. 나도 웃습니다. 왜냐구요. 저한테 곧 동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잘록한 뱃속에 내 동생이 들어있다고 하니 기분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의 입에서 오랜만에 피어오르는 미소가 좋습니다. 하늘나라 주소를 몰라서 걱정되지만 그 곳에 간 언니에게도 조만간 편지할 것입니다. 저도 언니가 된다구요. 그리고 사랑스런 동생과 나는 언니 대신 영원히 엄마 아빠 곁에 있을 거라구요.
이제 고작 11살이 되었지만, 행복은 눈물 끝에 있는 게 아닐까요? 많이 운 뒤에 짓는 미소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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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압박이 심해서 태그 해봐도 안되네요. (.. ) 쳇.
뭔가 잠자면서 생각해놨던 건데 글로 잘 표현이 안되서 실망입니다. 휴.
그렇네요. 행복이란 불행 끝에 있는 거라고. 고생 끝 낙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러니까 지금 겪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수정 했습니다. 민우오빠가 처음에 이상하다고 말했을 땐
"나한텐 잘 보이는데?"하고 넘겼었는데 지혜언니도 그렇다고 말하니 확실히 이상하긴 한가봅니다.
첫댓글 글 멋진데^-^
잘 봤습니다.앞으로도 건필하시길-
훈훈하네요. ㅎ
행복이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