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내륙의 영양은 예전에 비해 교통이 많이 편리해졌지만 가는 길은 여전히 힘겹다. 오죽했으면 ‘육지 속의 섬’이라거나 ‘서리는 흔하고 햇빛은 귀하다’는 말이 나돌까. 영양 관내 지도를 찬찬히 훑어본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와 자연 자원이 예사롭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의 한복판, 싱그러운 자연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빼어난 강변 풍치에 넋을 놓다
영양읍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입암면 연당리에서 청계천(‘동천’으로도 불린다)과 합류하니, 이름하여 남이포다. 강 건너 절벽에 촛대 같이 치솟은 선바위는 남이포와 어우러져 멋진 절경을 보여준다. 바위 절벽이 버티고 선 남이포 강변길은 기분 좋은 산책을 약속한다.
강변에 들어선 영양 고추홍보전시관에도 들러본다. 고추전시관은 홍보관, 테마관, 전시판매장 등으로 나뉘어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영양 고추 축제, 고추 이야기, 고추 재배의 변천 과정, 생활 속의 고추, 고추음식 모형, 고추 농사 모형, 고추 종자 등 영양 고추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옛 산촌 생활을 재현해놓은 영양산촌생활박물관도 지척이다. 너와집, 투방집, 굴피집 등 옛날 가옥을 볼 수 있으며 박물관 안에는 살림살이, 마을 살이, 농경 활동, 화전경작, 여가활동, 공예 활동 등 산촌의 삶을 주제로 한 실물과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야외에 전시한 투방집은 통나무를 사각형으로 쌓아 만들었고 판자로 벽을 만들고 지붕에 판자를 얹은 너와집과 굴참나무껍질을 덮은 굴피집도 눈길을 끈다.
서석지
남이포에서 더 북쪽으로 들어가면 보길도의 부용원,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정원에 꼽히는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이 만든 아담한 연못(정원)으로 규모는 작지만 단아한 기품과 멋이 예사롭지 않다. 서석지는 연못을 중심으로 서재인 주일재(主一齋)와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경정(敬亭)이 있고 요(凹)자형 연못 주위로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가 심겨 있다.
문학(文學)으로 뭉친 세 마을
문학은 영양의 아이콘이다. 시인 조지훈과 오일도, 소설가 이문열 선생이 다 이 고장 출신이다.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다. 여기서 지훈은 그의 호고,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일본 강점기 때인 1939년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文章)’을 통해 등단했다.
주실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을 비롯해 옥천종택, 옛 서당인 월록서당 같은 고택이 즐비하고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검팽나무, 팽나무, 산팽나무, 시무나무, 버드나무 등이 우거선 마을 앞 생태숲 옆으로는 실개천이 흘러간다.
조지훈생가
선생이 태어난 호은(壺隱)종택을 둘러본다. 조선 중기인 인조 때 지은 집으로 한국전쟁 때 일부가 소실됐던 것을 복구한 것이다. 원형이 일부 망가지긴 했지만 경북 북부지방의 집 구조인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진 막힌 ‘ㅁ’자형이다. 월록서당은 지훈이 어린 시절 한학과 한글을 배운 곳이다. 마을 한복판에 들어선 지훈문학관은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교육 공간이다. 조지훈의 육필 원고집은 물론 여권, 넥타이, 모시두루마기, 부채, 가죽장갑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양 북쪽에 주실마을이 있다면 동쪽에는 두들마을(석보면 원리리)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 선생의 고향마을이다. ‘두들’은 언덕이란 뜻으로, 30여 채의 전통가옥들이 둔덕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문열은 몇몇 작품에서 자신의 고향마을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선생이 세운 광산(匡山) 문학연구소도 이곳에 있다. 문학도들이 창작과 연구, 토론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마을 한편에 있는 ‘석간정사’는 이문열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때 광제원(오늘날의 국립병원)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뒤 둔덕에 올라앉은 석천서당은 조선 인조 때 유학자인 석계 이시명(1599~1674) 선생이 한때 기거하며 학문을 닦았던 곳이고, 석계고택은 이시명이 1640년에 지은 한옥이다.
감천마을은 영양읍 내에서 6㎞쯤 더 가야 한다. 시인 오일도(1901~1946)가 태어난 마을로 선생은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애국 시인이다. 일본 강점기 때 문학을 통한 식민지 저항운동을 펼쳤다. 마을 뒷산에 물맛 좋은 샘이 있어서 ‘감천(甘泉)’이란 이름을 얻었다. 마을은 아담하고 소박하다. 야트막한 한옥들이 어깨를 기대고 있고 장미가 꽃을 피운 흙담 길 옆으로는 텃밭이 있다. 현재 후손들이 사는 오일도 생가는 마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청정한 일월산과 대티골 숲길
일월산(해발 1,218m)은 영양을 대표하는 산이다. 경북 내륙에서 해와 달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고 해서 일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일월산은 곳곳에 오지마을을 두고 있다. 일자봉(1,219m)과 월자봉(1,205m) 사이에 포근히 안긴 대티골은 영양에서도 깊은 오지에 속한다. 근래 들어 이 산골 마을에 도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운치 있는 숲길이 있기 때문이다.
숲길은 옛 국도길(3.5㎞), 칠밭길(0.9㎞), 옛 마을길(0.8㎞), 댓골길(1.2㎞) 등 4개 코스로 총 7.6㎞에 3~4시간 정도 걸린다. 이 길은 가파르지 않아 누구나 걷기 편하다. 중간마다 쉬어갈 수 있는 나무 의자도 놓여 있어 기분 좋은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산길을 오르기 전, 식수와 약간의 간식을 준비해 가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길의 시작점은 윗대티골 입구다.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다듬어놓은 흙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산바람 소리와 새 소리를 들으며 한참 가다 보면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군을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뿌리 샘이 나온다. 작은 동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은 계곡을 따라 졸졸 흘러간다.
용화리 대티골 마을 입구에는 일월산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모아 심어놓은 일월산자생화공원이 있다. 공원이 들어선 곳은 1930년대부터 일월산광산에서 채굴한 광물들을 제련하던 장소다. 그 후 아무렇게 방치된 것을 2001년 영양군에서 오염원을 밀봉, 매립하고 흙을 부어 공원으로 만들었다.
일월산은 빼어난 경치만큼이나 주변에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31번 국도 봉화 방면 영양 터널 아래 용화리 한구석에는 그 옛날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던 곳이라는 선녀탕이 있다.
수비면 계2리 문상천은 바위와 소나무가 절경을 이룬 곳으로 상 하계폭포가 둘러앉아 있다. 하계폭포는 관법사 왼쪽 계곡에 박혀 있는데 절에서 만들어 놓은 출렁다리에서 암반 사이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볼 수 있다. 상계폭포는 하계폭포에서 숲길을 따라 500m 위쪽에 있다. 우람한 바위 사이로 비껴 흐르는 폭포가 더위를 저만큼 물러나게 한다.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www.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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