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양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자살은 실수'라 했다. 라는 문구를 보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죽어 버려야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도 비가 내렸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고 죽어 버리자 라는 마음을 먹고 집을 뛰쳐나와 동네 앞 기찻길을 향해 뛰어가 철길 옆에 서 있었다. 선로위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달려온다. 내 두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서운한 마음의 폭발이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빗물과 함께 범벅이 된 내 얼굴을 기관사의 의심어린 손전등 불빛이 정지된 나를 똑바로 감시하며 지나간다. 덜커덩 덜커덩……. 죽으려고 뛰어와 기찻길 옆에 섰기는 했지만 무섭고 두려워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천천히 걸으며 친구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리며 집으로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슬그머니 뒷문을 통하여 골방에 들어가 낮에 농사일을 돕느라 몹시 피곤하였던지 바로 잠이 들어 버렸다. ·
그 날 상황은 이러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족 모두가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환경이 나빠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며 "왜 우리 집이 환경이 나쁘냐· 어미 애비가 남에게 나쁜 짓을 하냐, 도둑질을 하냐, 그저 죽을힘을 다해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데 무엇이 환경이 나쁘다는 거냐" 크게 야단을 치셨다.
내 생각은 학교에서만 공부하고 집에서는 부모님 농사일 돕느라 배운 내용을 예습, 복습을 전혀 할 수가 없다는 단순한 투정인데 아버지께서는 다른 상황으로 들리셨나 보다. 제 머리로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만으로는 도저히 학습 진도를 이해하며 따라 가기가 너무 힘겨웠다. 더 잘하며 앞서가고 싶었다. 나는 집에서 공부는 할 수 없고 부모님이 시키는 농사 심부름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다. 친구들은 우리 집이 농토가 많아 부자라며 부러워했었다. 나는 정작 농토가 없어 부모님의 일손을 도울 일이 없이 마음 놓고 뛰어놀며 공부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었다. ·
다음날 잠에서 깬 나는 어제 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계면쩍고 부끄러워하며 안방으로 나왔다. 온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한 마음으로 서있었다. 할머니께서 보시고는 얼른 가슴으로 끌어안으시면서 "여기서 잔줄도 모르고 너를 찾느라 온 식구가 밤새도록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는데 여기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내 두 뺨을 적신다.
"정말로 네가 죽으러 나간 줄 알았다. 이놈아! 그래 잘했다. 더 좋은 환경에서 너를 공부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모가 죄다. 어린 네 맘을 아프게 했으니……. 됐다. 이제 이렇게 멀쩡하니 밥 먹고 학교 가야지." 할머니께서 따뜻하게 말씀해주신 사랑이 가슴을 울렸다. 할머니 가슴 속 눈물은 내 그리움의 눈물로 이어졌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내 나이가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부모님은 힘들게 농사지어 8남매를 키우고 가르치셨다. 농사일을 하시면서 90세로 청주 향교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시면서 현재는 유도회 고문을 맡고 계시며, 한시를 배우시어 전국에서 열리는 한시대회는 모두 참여를 하신다. 그리고 6.25참전용사 전우회 간부로, 조상님들의 얼을 되새기시는 일에 적극적이시며 신앙서원의 일과 죽계서원 회장직을 수행하고 계신다.
농사를 지으시며 모든 일에 소홀함이 없이 참여를 하시면서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 아버지의 삶을 본받아 살고 싶다. 엄부자친은 부모의 길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마음 길이며 사랑의 길이다. 실수를 하지 않은 그 후로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 앞에 서면 작아지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아직도 부족함을 위하여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시간 계획을 세워 하루하루를 보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 없이 얽히고설킨 마음 길에서 내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고통을 감내하고 극기의 길을 가다보면 내 뜻을 이룰 날이 오지 않을까. 행복한 삶은 내 마음의 선택, 내 행동에 달려있으리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극한에 달한 마음 길의 이정표가 아닐까.
참고 참으며 힘들게 찾아가는 마음 길 그것이 인생이리라. 실수는 내일이 없는 인생의 종말이 아닌가. 실수는 하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 행복한 삶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도 비오는 날 기적소리가 들리면 내가 옹졸했던 그 시절이 한없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 이기원 수필가 |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강가제8회 도민백일 운문부문 차상 수상 -학생체험활동 인솔교사 안전연수 강사 -2015년 황조근조훈장 수상 -중고등학교장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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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맏딸이라 동생들이 많아 동생을 돌 보면서 공부 하는게 짜증났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불평했던 일들을 떠 올려 보면 부모님께 죄송하게 생각하는게 나이 듦에 철이 드는것 아닐까요.
삶의 길에 대한 의미 감상 잘 하였습니다.
누구나 철없는 시절에 가졌던 부끄러운 기억 하나쯤 있을 겁니다.
깨달음을 얻게 하는 글 감상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참으며 힘들게 찾아가는 마음의 길 그것이 인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