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여름 끝자락 팔월 다섯째 일요일이다. 고향에서 매년 음력 팔월 초하루가 되기 전 선산 벌초를 함이 연례행사다. 연전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은 벽화산 정상부에 위치한 고조부와 증조부 산소를 마을 뒤 숙부님 산소 곁으로 옮겨왔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소도 멀지 않은 곳이라 이제 벌초가 힘들지 않게 되었다. 진주 조카는 일요일 벌초를 예정해 형제 조카들이 고향을 찾는 날이다.
사흘 뒤 음력 팔월 초하루가 되는 이번 일요일 창원의 작은형님은 대구 사촌과 함께 벌초를 하러 갔다. 나는 코로나 확산세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라 이동 제약이 따라 벌초에 동행하지 못함을 양해 받았다. 아직 몇 달 더 교단에 머물러야 하는 교직 말년이라 코로나 감염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조카와 큰형님에게 내년 이후는 벌초나 시제에 빠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고향을 찾으면 벌초도 벌초지만 큰형님이 농사를 지은 몇 가지 챙겨올 물품이 있었다. 밭농사 산물이다. 빻아둔 건고추와 끝물 풋고추가 있다. 여름 농사로 수확한 참깨도 두 되 준비해두십사 했다. 이런 짐 꾸러미들은 창원에서 간 작은형님이 승용차로 운반해 오기로 했다. 큰형님이 손수 지은 농산물은 시세에 따라 값을 쳐 통장으로 입금해 드리고 일부는 그저 받아먹기도 한다.
일요일 오전은 집안에 머물면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 생활 속 글을 몇 줄 남겼다. 점심나절이 되자 벌초를 마친 작은형님이 고향을 출발해 창원으로 온다는 연락이 왔다. 차에 실어올 짐들을 집으로 올려놓고 거제로 가도 될 듯했다. 내가 땀 흘리지 않았지만 고향 흙냄새가 물씬한 농산물이라 여겨진다. 시중 판매되는 여느 농산물과는 값어치를 따질 수 없으리만치 소중하다.
벌초를 다녀온 작은형님이 시골에서 보낸 짐 꾸러미를 아우네 집으로 실어 왔다. 예상대로 큰형님이 흘린 땀과 고향 흙 내음을 느낄 수 있는 농산물이었다. 참깨와 고추 말고도 여름 푸성귀가 가득했다. 큰형수님은 애호박과 호박잎에다 고구마 잎줄기까지 따 보냈다. 일찍 심은 쪽파도 뽑고 부추도 잘라 보내왔다. 끝물 풋고추는 양이 많아 냉동실에 보관해 가으내 먹어도 될 듯했다.
고향에서 온 농산물을 옮겨 놓고 거제로 떠날 짐 꾸러미를 챙겼다. 주중에 먹을 반찬과 세탁한 옷가지들이었다. 같은 아파트단지 카풀 지기와 접선하려고 아파트 뜰로 내려서니 성근 빗방울 들었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초등 친구가 가꾸는 꽃밭을 먼저 살폈다. 여름내 친구가 땀 흘려 가꾼 꽃밭에는 족두리꽃과 맨드라미가 눈길을 끌었다. 불꽃 맨드라미는 내가 근무지에도 심어 놓았다.
친구가 가꾼 꽃밭을 둘러보고 카풀 지기를 만나 차에 동승했다. 시동을 거니 성근 빗방울은 강한 빗줄기가 되어 내렸다. 25호 국도를 따라 안민터널을 지난 석동에서 2호 국도 진해터널을 지났다. 신항만에 이르니 바다 건너 거제는 비가 오지 않는 갠 하늘이었다. 눌차대교를 건넌 가덕도에서 거가재교를 지나 장목에서 대금 나들목을 나와 율천마을을 거쳐 대금산 꼭뒤 주막으로 갔다.
거제로 건너와 주중에 반주로 삼을 곡차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십여 년째 명품 막걸리를 빚어 파는 할머니와는 안면이 익숙해졌다. 지기와 나는 2리터 생수병에 담은 곡차를 두 병씩 챙기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곡차를 두 잔씩 비웠다. 나는 더 비우고 싶어도 운전대를 잡은 지기를 위해서라도 잔을 더 비움은 참아야 했다. 주막을 나서 연초호를 둘러 연사 와실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와실로 들어 환기를 시키고 반찬은 냉장고에 넣고 옷은 옷장에 두었다. 저녁 끼니는 건너뛰기로 하고 아까 가져온 곡차를 반상에 올렸다. 지난주 먹다 남긴 한치 숙회를 안주로 곡차를 두 잔 비우고 병뚜껑을 닫아 남겼다. 저녁밥을 건너뛰니 설거지를 할 게 없어 좋았다. 내일 아침밥이 될 1인분 쌀을 씻어두고 잠에 일찍 들련다. 날짜변경선 전후에 잠을 깨면 새벽이 무척이나 길지 싶다. 21.08.29